Spring has Co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저거저거 대체 얼마를 파는 거야?
지금 손에 쥔 지폐만 봐도 두툼한데 나도 경찰 접고 저거나 할까?
아니아니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다시 집중하자.
자자 심호흡 심호흡.
점심시간을 이용한 반짝 장사는 1분 만에 완판.
무덤덤하게 간이 테이블을 접는 어린 남자 뒤로 우수수 멀어지는 양복쟁이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분홍색 아이스크림이 쥐여있었다.
근엄한 금융권 종사자인 햄스터 샐러리맨들이 모퉁이를 돌아 멀어지고, 가판을 접은 남자는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막힘이라고는 없는 깔끔한 일처리였다.
“거기 잘생긴 형님.”
트렁크 문을 닫은 남자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햇볕이 강한 날이라 그런지 남자의 피어스 가득한 귀가 더욱 화려했다.
“유기농 아이스크림 하나 줘요.”
듣는 척도 하지 않는 남자가 빠트린 것 없는지 다시 한 번 가판 자리를 확인하고 차체를 돌아갔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하는 말이 안 들렸을 리는 없고.
남자는 거칠 것 없이 나를 무시하며 차의 잠금을 해제했다.
“어이 오빠? 야, 야! 야아아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정말 가버리려는 행태에 여유로운 태도를 버리고 잽싸게 달려들었다.
얇은 후드 점퍼의 모자를 겨우 잡아채 당기자 여태 본척만척하던 남자가 성을 냈다.
“폭력 행위로 신고하기 전에 놓으소.”
“아이고 잠시만 시간 좀 내줘. 돈도 많이 벌어놓고 와 이리 야박해?”
구겨진 얼굴의 남자가 꾸욱 입을 다물었다.
거 대화 한 번 하기 정말 힘드네.
“과묵한 것도 지나치면 독이라고? 자주 얼굴 볼 사이에 이러지 맙시더. 우리 토킹어바웃 시간 좀 가져볼까?”
아무리 뜯어봐도 순진하기는커녕 속세에 찌들대로 찌든 무감각한 얼굴이다.
이 얼굴에서 안쓰러운 미소라니. 꿋꿋한 의지라니. 그걸 어디서 어떻게 봤다는 거지?
그때의 난 좀 눈이 아팠나?
내가 혼자 열심히 자아성찰을 하든 말든, 남자는 그저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다.
후드를 잡은 내 손을 꽉 쥐고 힘을 가하는 악력이 상당했다.
“놓으라고 했습니더.”
이 녀석과의 인연은 사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섬도시의 핵심 중심부로 배치되어 출근한 첫 날.
순진무구한 얼굴로 내게 아이스바를 팔아먹은 녀석을, 오후 근무에선 경계 지역에서 봤다.
순진무구는 개뿔 사람 하나 묻고도 밥만 잘 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툰드라에 넘어간 녀석은 무려 시중 하드를 녹인 즙(하드 즙이라니 맙소사! 하지만 액체화된 하드는 너무 길다)을 눈 덮인 바닥에 찍은 발자국에 붓는 작업을 물 흐르듯 진행했다.
녀석의 옆엔 가느다란 고양잇과 수염을 단 키 큰 동물이 함께였다.
키 큰 동물과 녀석은 자체 제작한 하드 바를 실어서 다시 중심부로 돌아온 뒤 길바닥에 가판을 세웠다.
점심시간을 맞아 우르르 직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회사원들은 마치 마라톤 선수가 이온음료를 집어들 듯 자연스럽게 하드를 집어 들었다.
녀석은 다시 순진무구한 얼굴로 회사원들이 내미는 지폐를 연달아 받아 챙겼다.
1분 만에 완판 한 가판은 차의 트렁크로 사라지고, 키 큰 동물과 지폐를 양분한 남자는 살랑살랑 가벼운 걸음으로 멀어졌다.
그걸 차 끌고 다니며 처음부터 끝까지 본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저거 물건일세…….
집에 들어가서도 잊히지 않아 근무 둘째 날 도심을 순찰하면서도 목적은 녀석이었다.
도로변마다 놓치지 않고 검은 머리를 찾은 보람이 있게도, 또다시 가판을 세운 녀석을 볼 수 있었다.
귀신처럼 장사하고 사라지는 녀석을 때맞춰 찾아낸 것은 아무리 봐도 운명이 아닌가.
속으로 탄복하며 아는 체와 함께 쓸데없는 말로 이리저리 찔러보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고(솔직히 말해서, 제조 과정을 봤기에 차마 먹진 못하고 버렸다) 헤어졌다.
전날처럼 장사를 마친 녀석은 짐을 챙겨 툰드라로 넘어가고, 또다시 하드바를 제작하고, 다시 건너와 장사하고…… 즉, 녀석의 장사는 하루 두 번인 것 같았다.
나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귀를 기울이던 찰나, 녀석과 키 큰 동물이 나누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내일은 차만 빌려가」
「왜?」
「나 다른 돈벌이 잡혀서 내일은 못 와.」
「알았다.」
말인즉 저 동업자가 내일은 쉰다는 뜻이다!
이 역시 하늘이 도우심이 틀림없었다.
동업자가 없으니 오늘은 여기서 접으려는 건지, 녀석은 별로 조급한 얼굴은 아니었다.
뭐 딱히 표정 변화가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으니 전적으로 내 감이지만.
“잘 생긴 오빠야. 내랑 차 한 잔 할까?”
“비키소, 좀.”
“혹시 니도 시텐호지 출신이가?”
별로 숨길 생각도 없이 튀어나오는 사투리가 더없이 친근했다.
남자가 하도 세게 잡아 결국 후드는 놓아주고, 차체에 기댄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붙었다.
딱히 도망칠 생각은 없는지 긴장하는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예. 예.”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저 찡그린 눈으로 올려다볼 뿐이었다.
자세히 보니 나이 어린 건 맞나 보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은가.
“이제 착한 소년 얼굴은 안 하는 기가?”
“예. 예.”
예에. 예. 말끝을 미묘하게 늘어뜨리며 귀찮은 기색을 감추지 않는 남자에게 고개를 꺾으며 필살 미소를 지었다.
“캐서… 어리바리한 경찰 하나 속이니까 즐거웠고?”
남자가 눈을 치떴다. 사실 남자라고 부르기엔 어렸다.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얼굴이 앳됐다.
그는 뭘 속였냐고 되묻지는 않았다. 단지 비웃을 뿐이었다.
“속이긴. 경찰 나리 좋고 나도 좋고 다 좋은 일인데.”
“와. 말은 바로 해야제. 유기농 하드는 개뿔이.”
“마, 원료 그대로 썼으니 유기농 아입니까.”
“아하. 원료 그대로 쓰셨다? 그 원료는 시중 하드고?”
“내는 꿀릴 것 없으예.”
이것 봐라. 아주 물건이야.
나이도 어려 보이는 게 보통내기가 아니다.
하지만 어설프단 말이야. 장담하는데, 수습 못할 악질 범죄는 손 댄 적 없을 거다.
약간 모자라긴 하지만, 도덕성이 존재하긴 하는 정도의 사람.
뭐 이것도 그냥 감이다.
“오호. 양심은 잘라 드신 긴가.”
“양심?”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화 중 가장 큰 리액션이었다.
계속되는 대치가 슬슬 정말로 귀찮았는지 나를 살짝 밀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비키소. 내는 좀 바쁜 몸이라.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안 쉬고 만들어 팔고 있다고예. 열 둘 때부터 한 짓거리라 요령이 붙어서, 눈 말고 딱히 묻은 건 없을 테니 배탈 안 났음 된 셈 치이소. 원래 길거리 음식이 다 그런 거 아닌교.”
대화 중 가장 긴 말이었다.
오. 오오. 훌륭해.
차 문을 열려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 또 뭔데예!”
“흐. 흐흐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리자 이상하다 싶었는지 성을 내며 손을 떨쳐냈다.
하지만 너는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비키소. 내는 좀 바쁜 몸이라.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안 쉬고 만들어 팔고 있다고예. 열 둘 때부터 한 짓거리라 요령이 붙어서, 눈 말고 딱히 묻은 건 없을 테니 배탈 안 났음 된 셈 치이소. 원래 길거리 음식이 다 그런 거 아닌교.」
이야 목소리 좋네. 낭랑- 하구마.
싱글벙글 흘러나오는 웃음을 굳이 감추지 않고 녹음된 목소리를 감상했다.
금방 끝나버린 게 아쉬워 한 번 더 재생.
“어이쿠.”
갑작스런 공격에 펄쩍 뛰어 몸을 피했다.
귀하신 녹음기님 상처 나면 안 되지.
“뭐하자는 짓입니꺼.”
“차 한 잔 할까?”
「……히 묻은 건 없을 테니 배탈 안 났음 된 셈 치이소. 원래 길거리 음식이 다 그런 거 아닌교.」
“말해두는데, 허접한 죄목으로 체포할 생각은 추호도 없데이. 이거 탈세인 거 알제?”
탈세는 중형이다. 세금을 매우 좋아했던 전임 시장의 입김이 들어간 판례가 증명했다.
열 두 살 때부터, 일 년 삼백육십오일을, 하루에 두 번, 가판도 불법이고. 어절마다 끊어서 손에 든 녹음 볼펜을 내 목덜미에 툭툭 쳤다.
녀석의 표정은 야차처럼 무시무시해져 있었다.
어쩌면, 틈나는 대로 내 목을 따야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악질 범죄자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건 전적으로 내 감이니까.
그건 안 되는데. 적당히 놀려야겠다.
역시 중요한 건 완급 조절.
밀당도 적당히 해야겠다고 홀로 다짐하며 다시 한 번 필살 미소를 지었다.
“우쨌든, 차 한 잔 하러 갈까?”
당분간 이 짓은 하지 말고. 응?
매일매일 좋아하는 사람의 가게에 찾아가는 것도 로맨틱하지만, 그 가게가 불법이면 경찰로선 매우 곤란하거든. 불법 행위 중인 네가 다른 경찰한테 들켜도 곤란하고.
오늘 보니 돈도 많이 쟁여 두었을 것 같은데, 당분간은 좀 쉬자.
앙칼진 눈매를 훔쳐보며 숨 죽여 웃었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게 나타났을까.
이 기회가 운명의 여신이 도운 것은 분명해보이니 놓치지 않는 게 인간의 도리겠지.
뒷사정은 내뱉지 않고 기다렸다. 남자는 몹시 좋지 않은 표정으로 항복했다.
“…차 먼저 돌려주고예.”
Fin.
'단편 [短篇] > 테니스의 왕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리시시] 31일과 30일 下 (2) | 2017.01.31 |
---|---|
[켄히카] 여름바람 (0) | 2016.08.22 |
[켄히카] 네가 좋아 (0) | 2015.11.04 |
[오시가쿠] 여름 초입 下 (0) | 2015.04.23 |
[오시가쿠] 여름 초입 上 (0) | 201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