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ne 〃 Gakuto. M 《September, 26》
사람이 끊일 일이 없는 역 근처 카페에 앉아서 나는 창가를 내다볼 거야.
1층에서 받아서 가지고 올라온 2층은 온통 소파와 테이블과 사람들뿐이지.
향긋한 커피 내음과 달달한 크림 냄새. 그리고 온갖 사람 냄새와 눅눅한 공간에 달라붙은 냄새도 함께 나는 곳이야.
공간은 넓지만 일하는 직원은 최소화되어 있으니 가끔 더러운 테이블도 눈에 띄겠지.
나는 창가에 자리 잡은 의자 두 개짜리 둥근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을 거야.
내가 주문한 것은 늘 그랬듯 진하게 부탁한 아메리카노일 거야.
마음이 내키면 월넛 와플도 함께 쟁반에 받아 테이블에 올려놓았겠지.
그 카페는 샌드위치가 별로라서 말이야. 굳이 먹는다면 와플이야.
와플만 달라고 차분하게 말했을 테지만 기분이 별로라면 생크림에 딸기까지 올려서 먹겠지.
시각은 아마 저녁 6시쯤일 거야.
역을 나와 이 카페로 온 나는 곧 창가를 내다보며 제일 먼저 하늘을 살필 거야. 여름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은 온갖 건물들의 배경처럼 자리한 채 시시각각 서늘하고 아련하고 어둡고 포근하게 변해갈 거야.
그러다가 끝내는 옅은 포근함과 아늑함을 온통 뿌리겠지.
하늘이 그렇게까지 변할 즈음엔 내가 쥐고 있던 머그잔의 커피는 거의 다 사라져 있을 거야. 나는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거리낌 없이 들이키고는 내려놓겠지.
와플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채일 거야.
정기적으로 2층을 정리하러 올라오는 직원들 중에 있는 친구가 그 시간쯤이면 다시 올라와 나를 발견하고 우린 인사를 나눌 거야.
일상적이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 친구는 다시 돌아서서 할 일을 하고 내려가겠지.
나는 이제 즐겁게 사람들을 볼 거야. 역에서 끊임없이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과 계속 들어가는 사람들. 역 근처 광장을 횡단하는 사람들. 역세권답게 온갖 가게에 가득한 사람들.
맞은편 피자집에 있는 사람과 유리창을 통해 잠시 시선이 마주칠 수도 있어.
그는 여성일 수도 있고 남성일 수도 있지만 아마 둘 다 언제 눈 마주쳤냐는 듯 고개를 돌려버릴 거야. 그 뒤론 의식적으로 서로의 방향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겠지.
이 시간이면 광장으로 항상 큰 개를 데리고 산책 오는 사람이 보일 거야.
오늘도 개는 복슬복슬한 털의 커다란 몸뚱이로 설렁설렁 걷겠지.
주인은 모자를 쓴 남자야. 자기 개랑 마찬가지로 설렁설렁 대충 걸으며 이 걸음의 목적이 ‘산책’ 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출구에서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붉은색 가방의 여학생이 나왔다면 이제 시간은 7시일 거야.
그리고 난 즐겁게 기다리겠지.
조금 뒤면 핸드폰으로 연락이 올 거야. 문자겠지.
짤막하게 적힌 건 아마 한 문장. 아니 한 단어. 내가 그 문자를 받은 시점에 넌 이미 1층의 가게 문을 들어서고 있을 거야.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은 채 일단 계단을 오르겠지.
그리고 너.
지금 내 앞으로 다가올 너는 반팔 차림이겠지. 다가와서는 못마땅하게 쳐다볼 거야. 시선은 쟁반으로 가겠지. 이미 빈 지 오래인 머그잔은 무시하고 손도 안 댄 와플, 그 식어버린 와플을 보고 중얼거리겠지.
“와플 먹고 싶네.”
나를 한 번 쳐다보곤 다시 계단을 내려가서는 와플을 사서 올라올 거야.
음료는 탄산이겠지.
로리나 핑크일 거야. 넌 전에 페리에를 샀다가 욕이란 욕은 다 한 뒤로 이미 먹어본 로리나 핑크 외에 다른 탄산수를 시도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러곤 또 중얼거릴 거야.
“왜 콜라를 팔지 않는 거야.”
탄산에 설탕을 넣을 생각을 한 건 신의 한 수였어. 하고 중얼거릴 거야.
내 앞에 있는 의자를 빼어선 자연스럽게 앉은 너는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따뜻한 와플을 손에 쥐겠지.
“넌 왜 안 먹어?”
그럼 난 주섬주섬 식은 와플을 손에 쥘 거야. 넌 내가 입에 무는 걸 보고야 자기 몫을 먹기 시작하겠지. 내가 먹는 속도는 네가 먹는 속도보다 훨씬 느려.
난 열심히 우물우물 먹는 너를 쳐다보며 생각나면 한 입씩 뜯어먹겠지.
너는 별반 신경 쓰지 않고 맛있게 먹을 거야.
다 먹고 나면 그때야 반 정도 먹은 날 보고 왜 깨작거리냐고 한 마디 하겠지.
그럼 난 너무 식어서 질기고 맛없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게 사자마자 먹든가. 아깝게 뭐냐.”
혀를 차며 너는 날 보고는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겠지.
난 조금 고민할 거야.
너한테 뭘 먹여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부르면 호불호가 격하게 갈리는 건 잘 알고 있거든. 그렇다면 사이가 있는 친구들 만날 때 먹자고 나서는 메뉴를 꼽아봐야지.
하지만 너는 한창 크고 있는 성장기의 소년인데 파스타나 샤브샤브로 배가 찰 리가.
나는 금방 결정할 거야.
“피자 먹을래?”
보통의 중학생 아이들 입맛과 별로 다르지 않은 너는 크게 싫지도 않고 크게 좋지도 않아서 선선히 동의하겠지. 난 너와 함께 광장을 가로질러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던 가까운 피자집으로 들어갈 거야. 매끈한 실내 장식과 자동문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나는 자리를 안내 받고 메뉴판을 각각 내 앞과 네 앞에 놓겠지.
“좋아하는 거 있어?”
“다 좋아.”
“못 먹는 거 있어?”
“싫은 건 있지만 괜찮아.”
나의 주장과 너의 동의로 아마 우린 감자와 새우가 든 걸로 결정할 거야.
난 최근에 맛본 그 피자에 빠져 있으니까.
너는 제대로 된 탄산음료를 보고 반색하겠지. 난 음료를 두 잔 주문할 거야. 나도 탄산을 좋아하거든. 이 나이 되도록 말이야.
피자를 시키고, 난 먼저 나온 콜라의 빨대를 문 채 너에게 샐러드 가져오라고 재촉하겠지.
난 입맛 까다로우니까 잘 골라 오라고 하면 넌 성을 낼 거야.
그러면서도 대충대충, 신경 써서 집어 오겠지. 난 널 구박해가면서 포크를 들 거야.
피자가 나올 때까지 우린 쓸데없이 티격태격 싸우고 웃고 어린애처럼 놀 거야.
뭘 담아두는 성격도 아니고 쓸데없이 눈치 보는 타입이 아니니까 둘 다.
시시덕대며 먹고 나선 한가득 찬 배로 가게를 나오겠지.
난 너를 잡아끌 거야.
“술 먹으러 가자.”
그럼 넌 기겁을 하겠지.
“야 나 중학생이야!”
“솔직히 말해 봐. 마셔, 안 마셔.”
“마시긴 뭘 마셔! 나 중학생이라고! 네 눈엔 내가 대학생으로 보이냐!”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거야. 표정도 엄해져 있을 거야.
“넌 아무리 봐도 중학생이야.”
내 갑작스러운 정색에 너는 잠깐 고개를 갸웃할 거야.
나는 순식간에 다시 웃겠지. 말끝엔 하트라도 붙을 기세로 상냥하게 말할 거야.
“한 잔 하고 헤어지자.”
별로 네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이끌 거야. 마음 같아선 널 잡고 근사한 술집으로 데려가고 싶지만 넌 아무리 봐도 성인이 아니니까 나는 단골 술집으로 갈 거야.
가서는 화사하게 인사를 나누며 내가 보호자라고 말하겠지.
요즘은 보호자랑 같이 와도 술집 출입 금지지만 그게 다 지켜지면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울 리가 없잖아? 출입 금지가 통용되는 건 번화가 정도고 여긴 아니니까.
그것도 난 단골이고 다 서로 아는 사이인데.
난 나무 인테리어의 가게 안으로 익숙하게 들어가서 익숙한 자리에 앉아 널 맞은편에 앉힐 거야. 메뉴판을 네 쪽으로 보여주겠지.
“안주는 뭐?”
넌 어안이 벙벙한 채로 답하겠지.
“넌 배도 안 부르냐.”
난 금방 꺼질 거라 대답하겠지. 넌 아무거나 좋다고 할 거야. 어떻게 미성년자가 술집에 오냐고 나가겠다고 너는 말하지 않을 거야. 다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구석구석 살펴보겠지. 난 그런 너를 웃으며 쳐다볼 거야.
“넌 몇 잔만 해.”
술 제대로 안 마셔봤지? 취하면 안 되니까.
물론 빈속에 마시는 것도 아니니 정말 약한 게 아닌 이상 몇 잔 정도론 취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계산이지 난.
안주는 내가 시킬 거야. 튀긴 새우와 튀긴 고로케와 튀긴 닭이 같이 나오는 메뉴가 먹고 싶지만 열량을 걱정해 결국 고구마와 연어와 싱싱한 초록 채소가 섞인 샐러드를 시키겠지.
널 위해서 달달한 맥주를 한 병 시키고 내가 항상 먹는 맥주를 시키면, 맥주들과 잔과 따뜻한 우동국물이 먼저 나올 거야.
난 고춧가루가 든 통을 들어 잽싸게 뿌리고 휘휘 젓겠지.
“사실 난 미역국을 더 좋아해.”
아버지랑 술 마실 땐 매일 미역국을 기본 안주로 주는 단골집에서였거든.
소주와 골뱅이 소면 무침이 우리의 메뉴였지.
그곳 아주머니는 무뚝뚝한 아버지와는 달리 살가운 날 보면 만두를 튀겨 내오거나 사과를 썰어오거나 이것저것 가져다주고는 했어. 그땐 내가 어렸으니까 더 귀엽고 대견해 보인 덕도 있을 거야.
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숟가락을 들어 같이 국물을 떠서 입에 물겠지.
나는 달달한 맥주병을 따서 잔을 내밀거야.
“한 잔 받아.”
넌 주춤주춤 차가운 잔을 손에 쥐겠지. 나는 조금 기울이라고 한 다음 술을 따라줄 거야.
술을 처음 받아보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차분히 다 따를 즈음 잔을 세우라고 하겠지.
사실 이건 거품도 없지만 재밌어서.
“그거 단 맛이니까 괜찮을 거야.”
너는 낼름 맛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뜰 거야.
그럼 나는 웃겠지. 시답잖은 수다를 나누고 있으면 샐러드가 나올 거야. 난 젓가락을 들어 고구마를 푹 찌르곤 말하겠지.
“다음엔 나랑 놀이공원 가자.”
뜬금없이 그 소리를 하는 건 뜬금없지만 예전에 실내 놀이공원이 밤이 되면 얼마나 화려하게 빛나는 지를, 열기구 놀이기구를 타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 생각나서야.
그 사진은 정말로 반짝반짝하고, 그때 본 놀이공원 내부도 매우 반짝반짝 해.
꼭 너랑 같이 가서 밤까지 놀 거야.
난 놀이공원에 가면 놀이기구엔 관심 없고 밥에만 관심 있지만 너랑 가면 뭐든 즐겁게 놀 수 있을 거야. 나도 많이 먹고, 너도 운동하는 애라 많이 먹을 테니까 우린 하루 종일 간식거리를 입에 물고 점심 저녁 다 맛있게 챙겨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난 잔을 비우며 샐러드를 네 입에 물려줄 거야.
씁, 줄 때 받아먹어라 하면서 고구마와 연어를 한 움큼 젓가락으로 떠서 내밀겠지.
너는 아씨, 하고 쑥스러워할 지도 몰라.
난 그러거나 말거나 싱글벙글 연신 웃고 있겠지.
우린 정말 즐거운 저녁을 보낼 거야.
자정이 되기 전에 난 널 집에 챙겨 보낼 거야.
넌 학생이고, 내일도 아침부터 일찍 나가야 하는 애니까.
난 술집에서 내내 너의 손을 잡고 있을 거야.
손 잡고, 손을 쥐고, 손을 매만지고. 너를 덧그리듯이 그렇게 만지며 웃으며 너를 볼 거야.
헤어질 때면 난 너의 머리를 쓰다듬을 거야.
나와 비슷한 키지만 구두 굽 때문에 나보다 조금 작아질 너는 툴툴대겠지.
나는 정말로 헤어지기 아쉬울 거야.
너와 만나는 그 짧은 저녁 덕분에 나는 일정표에 그 날을 체크한 날부터 너와 헤어지고 해가 바뀌도록 행복할 거야.
다음에 또 만나는 거다, 가쿠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