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長篇]/너의 곁에서

너의 곁에서 《7》

린느  2016. 3. 18. 15:41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어떻게 선배는.”

 

?”

 

매번 색다른지 모르겠습니더. 뒤돌아서면 짜증나네예.”

 

하하…….”

 

아이다, 볼 때마다 짜증나는 긴가.”

 

고운 미간을 아주 얕게 찌푸리고 내 옆에 서있는 사람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리저리 삐죽삐죽한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항시 차분한 말을 내뱉는 입술에, 대놓고 짜증을 내비치는 표정이라든가.

 

임마니 또 뭐가 불만인데?”

 

별로요.”

 

소속은 시텐호지 중학교.

오사카의 오랜 강호로, 우리 기수에는 없지만 선배들 대에선 전국 우승도 한 적 있고, 매년 전국 출장에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학교다.

이랬든 저랬든 전국 순위를 매길 때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년 전국 성적은 준우승. 릿카이에게 패하는 바람에 준우승교라는 타이틀로 올해 전국에 참가했다.

 

긴장도 안 하고뭐 놀릴 건덕지가 없나.”

 

녀석이 코웃음 쳤다. 너무도 적나라하게, 비웃음이라는 걸 확연히 알 수 있게.

 

선배가 놀리긴 뭘 놀린다꼬.”

 

, 실언입니다. 불가능하죠. 하하.”

 

주거니 받거니 녀석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안 주변은 중학생 시합으로는 이례적인 열기가 번지고 있다. 그 열기 안에 있으면서도 여전한 표정의 녀석이 안 어울리면서도 어울린다.

 

시텐호지!”

 

후도미네!”

 

인연인지 뭔지, 4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건 2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긴상의 동생이 있는 후도미네 중학교.

전국 첫 출장, 레귤러 전원이(그 부장은 제외하고) 뉴페이스, 운뿐이라고는 폄하할 수 없는 실력으로 타학교들을 꺾고 올라온 올 해 대회의 이변. 서프라이즈.

 

대단하긴 대단하구마. 점마들 괴물이가.”

 

사람은 아닌 것 같네예.”

 

파란. 그것을 지휘한 부장, 큐슈 전 2강 타치바나.

그리고 나머지 큐슈 2강이었던 치토세가 치열히 접전을 펼치는 코트 위를 보며 감탄하는 내 말에 평소보다 조금 더 뚱해있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네가 보기에도 정상이 아니지?

 

저기, 전원 2학년이제?”

 

맞은편 난간에 붙어 있는 검은 저지 차림의 다른 후도미네 선수들 쪽을 고갯짓 했다.

막 경기를 뛰었던 이들이 탈진할 것 같은 모습으로 코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눈에 담긴 것은 아마도, 미안함이나 걱정. 경탄, 놀람이 경험을 발판 삼아 올라오겠지.

저 녀석들이 올라올 내년 대회엔 내가 없을 거란 게 아쉽다.

 

괜히 싱숭생숭해져서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보통 때라면 밀어냈을 녀석은 전 큐슈 2강의 경기를 보느라 제 머리에 뭐가 닿았는지 정신이 없는 듯 얌전했다.

 

아침부터 삐죽삐죽 세워놓은 자이젠의 머리카락을 살살 매만지며 눈은 경기장에 놓은 채 잡념에 잠긴다.

 

이번 경기는 긴과 뛰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감독은 정체가 뭐냐고.

어디의 놀고 먹는 백수처럼 휘적휘적 다니면서, 아저씨 주제에 라켓 들면 시라이시도 긴장 타게 하질 않나. 근데 그 와중에도 애처럼 웃고. 제일 요상한 건 미리 오더를 훔쳐보기라도 한 것처럼 무서운 출전 명단.

 

오늘도 어김없이 맞아떨어진 오더 덕에 스피드가 자신 있는 애를 스피드로 꺾은 터라 뒷맛이 영 찜찜하다. 이겨도 시원찮고 져도 시원찮은 오더를 내놓다니 악마 같은 감독 같으니라고. 배수진이냐.

 

……선배 손.”

 

? 손 달라고?”

 

아야. 하여간 한 번을 받아주질 않아요.

닌 절대 오사카 사람 아니다. 일단 오사카는 성격 좋다로 단합되는 편견이 있다고. 라고 말하면 비웃겠지.

맵게 얻어맞은 손을 붙들고 입으로 흑흑 소리를 내고 있자니 녀석의 눈이 내 쪽을 향한다.

뭐 할 말 있나 쳐다보니 녀석은 뜸을 들이다 고개를 저었다.

.

 

내년엔 후도미네가 우승을 노려볼만 하겠는 걸.”

 

. 강호가 될 거야.”

 

분명 손 치우란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난 연신 녀석의 손을 노렸다.

시시껄렁하게 노닥거리는 동안 긴상과 켄지로가 한 마디씩 주고받는다.

상대팀과의 경례를 끝내고, 짐을 정리해 코트를 나섰다.

 

이겼으니 4강 진출이네.”

 

~ 진짜! 로마랑은 언제 싸우는데?!”

 

다음 경기가 세이슌이데이, 킨짱.”

 

정말?! 그런 건 빨리빨리 좀 말해도 켄짱! 혼자만 알고 비겁하게!”

 

비겁하긴 무슨.”

 

이 야생 짐승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손을 뻗자 튀어나가듯 앞으로 달려간다.

-만치 앞에서 팔짝팔짝 뛰는 걸 보자니 도리어 맥이 풀렸다.

 

됐다, 내가 아랑 뭘 싸우겠다고. .”

 

저러다 넘어지겠네. 하긴, 날쌔서 넘어지지도 않지.

마찬가지의 생각인지 감독님을 비롯해 다들 그저 흐뭇한 표정이었다.

 

자자. 스트레칭 제대로 하고. 들어가서 씻고 좀 편안하게 해줄 테니까.”

 

미팅할거잖아예.”

 

, 당연하지.”

 

뭐 크게 바라지도 않긴 했지만.

다른 학교 팀들에 비하면 매우 자유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지만, 그거랑 별개로 지금 대회를 치르는 한 중간이라는 자각은 알아서들 단단히 하고 있다고.

 

근육이 꼬이지 않도록 쭉쭉 풀어주고, 가볍게 움직여 체온도 보존하고, 뭐 그런 마무리 운동을 끝내고 숙소로 출발했다.

빨리 목욕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고 싶다…….

 

라고 생각한 몇 십 분 뒤.

바라던 대로 목욕도 하고, 뽀송뽀송한 새 옷도 꺼내 입고,

닫힌 방 안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 등 뒤에는 쿠션, 무릎에는 이불.

이보다 완벽할 수 없다.

.

너무 완벽한 나머지 아무것도 할 생각이 안 든다.

 

어이 어이. 소년들. 일어나라고. 자꾸 그러면 저녁밥 없어.”

 

그런 거 안 먹어도 돼이런 기분인데예.”

 

흐아암. 눈이 저절로 감긴다.

말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안 되겠네. 아이스크림 사올 테니까 잠깐만 졸아라. 돌아와선 에어컨 끄고 미팅 들어갈 거니까.”

 

쌔임 너무해악마…….”

 

중얼거리던 시라이시가 테이블에 고개를 박았다.

체력 낭비가 컸든 적었든, 이런 완벽한 조건에서 수마를 물리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미 꿈나라로 간 다른 녀석들의 가벼운 코골이를 배경음 삼아 나도 설핏 잠들려는 순간, 문득 닿는 시선이,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순식간에 잠든 녀석들의 숨소리.

맞은편에서 머리를 파묻은 시라이시. 내 좌측에 드러누운 킨짱. 그 옆에서 고개 숙인 긴상.

벽에 기댄 치토세. 쌍으로 붙어 앉아 잠든 코하루와 유지. 킨짱 옆에 뻗은 켄지로.

사내 녀석들로 꽉꽉 찬 방 안, 내가 잠들려 눈을 감은 이후로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기에 훤히 떠오르는 방 안.

 

올곧게 쏟아지는 시선에 마치 잠 든 것처럼 그대로 굳어 어색하지 않도록 숨을 내쉬는데 집중했다.

 

커어어어…….”

 

누군가 내쉬는 잠투정에 기겁한 가슴으로 속으로 쓰다듬고, 겉으로 티나지 않았기만을 빌었다.

 

보통이었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였다.

숨조차 죽인 이가 내게 손을 뻗었다는 걸,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피유우우우우…….”

 

온통 멈춘 듯한 이 방에,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잠에 취한 이 방에서,

단 하나 움직이는 것이 눈으로 보듯 선명하게 연상됐다.

평소의 거침없는 언행은 어디로 보낸 건지, 머뭇머뭇 움직이는 손이 가르는 공기가 닿아 간지럼이 일 것 같다.

 

가만가만 다가오던 손이 어느 즈음에서 멈췄다.

손을 거둔 것은 아닌데, 거의 다 와서는 멈췄다.

눈을 뜨고 싶은 걸 제지하는데 사력을 다 하느라,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지금 어떤 표정인지.

왜 멈췄는지.

왜 내게 손을 내었는지.

 

지금 나를 오롯이 바라보며 손을 내민 게

너 맞잖아 히카루.

 

쿵쿵 복도를 울리는 소리가 난입했다.

잠을 깨우려는 듯 요란하게 다가온, 감독이 문을 열어젖혔다.

 

에어컨 끈다 이것들아- 인나인나. 얼른!”

 

내도록 감고 있던 눈을 누구보다 빠르게 떴다.

곧장 오른쪽으로 돌리니 보인 건 내 쪽을 보고 옆으로 누운 그 녀석. 그 녀석이다.

새카만 머리 아래의 눈은 감고 있을까? 이 자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가까이 붙자, 녀석이 눈을 뜨고 상체를 치켰다.

 

평소 같이 직시하는 눈이 아닌 가라앉은 눈.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얌전한 모습을 말없이 올려다봤다.

너 말이야. 자이젠.

입이 절로 달싹거렸다. 아니야. 안 돼.

 

자자. 입에 하나씩 물어라.”

 

내가 속세의 번뇌에 빠지든 말든, 에어컨은 꺼졌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고, 앉은뱅이 테이블에 아이스크림 통을 올린 감독이 털썩 앉았다.

 

~ 많다!!”

 

킨타로가 뚜껑을 열고 신나서 소리쳤다.

한 눈 팔면 다 사라지는 반복 학습에 길들여진 팔이 저절로 수저를 들었다.

바닐라, 딸기, 메론, 모카다양하게도 사오셨네.

 

“4강전은 릿카이 대 나고야 세이토쿠. 그리고 시텐호지 대 세이슌이다.”

 

릿카이는 결승에 안착하겠네.”

 

켄지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세이슌은 데즈카에, 후지에, 황금 콤비도 있고, 거북한 녀석에거기다 2학년, 1학년도 만만찮잖아. 힘든 준결승전이 되겠는데.”

 

시라이시도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우리 대진운은 좋았잖아. 이번 대회도 괜찮았어.

뭐 말은 힘드니 어렵니 그렇게들 하면서도 눈동자가 초롱초롱한 게, 아이스크림을 푸는 손이 퍽퍽 힘들어간 게 녀석들답다.

 

자이젠.”

 

.”

 

녀석이 내 쪽을 아주 잠깐 흘기고 대꾸했다.

 

니 긴장했나.”

 

기대 중인 거거든예.”

 

아이스크림을 해치우고, 미팅을 끝내고, 연습하고, 저녁 먹고, 잠 들 때까지.

녀석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

.

.

 

큰일이래이.”

 

[큰일이지. 지금 우리 난리 났다. 아토베 금마는 쓸데없이 대쪽 같아선. 니들도 조심하그라. 1학년 거 괴물이다, 괴물.]

 

난리가 나? 뭔데?”

 

[뭐야. 그 얘기가 아인가. 닌 뭐가 큰일인데?]

 

아 그게…….

정말 큰일인데,

 

내 니 좋아한다! 카면 안 되겠제?”

 

[거야 마…….]

 

눈치가 빠르니 누구한테 뭘 외친다는 건지 단박에 알아들은 사촌이 말 끝을 흐렸다.

나 걱정해주는 것 알겠는데, 이젠 나도 내가 걱정된다.

어떡하지. 자이젠 그 녀석이 너무 좋아.

 

[켄야, 임마야.]

 

가가 좋아서너무 좋아서 걱정된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네게 말할까봐.

 

 

 

 

 

# 7,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