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長篇]/너의 곁에서

너의 곁에서 《Prologue》

린느  2013. 5. 12. 02:25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오늘 녀석은 유난히 멍했다.

 

 

 

방과 후의 코트는 평소와 같았다. 하나같이 시시껄렁한 농담에 웃으며, 그러나 라켓을 쥔 눈빛만은 뜨겁게. 한 번씩 돌아가며 개그도 치고.

가장 가까운 놈들부터 짚어보자면, 근래 관서를 들썩이게 만든(실력으로나, 괴짜 기질로나) 1학년 루키는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아저씨 분위기 물씬 풍기는 감독에게 징징 뭐라 매달리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연습시간에 제대로 나온 치토세는 여전히 어딘가 무료한 표정으로 부실 외벽에 기대 서서 넋을 놓고 있었고, 오늘도 변함없이 말끔한 얼굴의 시라이시는 그 옆에 서서 부원들을 쳐다보거나, 치토세와 몇 마디 주고받곤 했다. 코하루와 유지도 착 달라붙어선, 개그 연구를 하는지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긴상은 오늘도 묵직하게 코트의 밸런스를 맞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부서, 아니, 시텐호지 유일로 개그나 만담과는 다른 전파를 주고받는 녀석, 자이젠 히카루는 감독 옆에 앉아 있었다.

 

 

 

그래. 그냥 앉아 있었다.

 

 

-, 원래도 말이 없고 덧붙여 표정도 없지만 오늘처럼, 늘상 끼고 사는 이어폰도 없이 멍하니 하늘만 보는 녀석은 전혀 평소 같지 않았다.

어딘가 정신은 좀 나갔지만 기이하게 실력들은 출중했던 선배들이 졸업하고 돌아온 3학년의 봄. 그건 우리가 3학년이 됐다는 거고, 저 시큰둥한 녀석과 알고 지낸지 1년이 흘렀다는 거고, 바로 그 시크한 팀메이트는 2학년이 되었단 의미였다.

 

첫인상부터 확 눈에 띄던 녀석의 저런 모습은 지난 1년을 함께 지냈지만, 맹세컨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옆에 앉아 킨짱을 놀려먹던 감독도 평소처럼 녀석을 툭툭 치며 실없이 말을 건네지 않았고, 긴상은 묵직한 표정으로 가끔 녀석을 살폈다. 심지어 그 해탈한 분위기의 치토세도 녀석을 힐끔 쳐다볼 정도였다.

 

켄짱, 켄짱.”

 

?”

 

언제 가까이 온 걸까. 코하루와 유지가 날 부르곤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오늘 자이젠 와 저러는 기고? 평소보다 어둡데이

 

켄짱은 뭐 아는 기 없나?”

 

그렇게 물어봐도으음.

 

몰라.”

 

볼을 긁적였다. 내 말에 두 사람이,

 

에에에, 명색이 파트너믄서- 켄짱, 그렇게 안 봤는데 차도남이구마.”

 

애정이 없어~”

 

따위로 히히덕거렸다. 아니, 그렇게 말해도

힐끔 녀석을 곁눈질 한다.

 

. 역시 오늘 뭔가 이상해.

 

연신 우리가 쳐다보는 데도 녀석은 여전히 공허한 시선이다. 똑같이 멍하지만, 치토세는 하늘을 본다, 연습을 구경한다 등의 목적의식, 그러니까, 정신은 살아 있는데 저 녀석은 이미 딴 데로 가 있는 것만 같다.

 

?”

 

시라이시와 눈이 마주쳤다. 난처한 표정의 녀석이 손짓으로 자이젠을 한 번, 어깨를 으쓱, 나를 한 번 가리켰다.

아니 글쎄,

 

몰라.”

 

왜 다들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떨떠름하게 입모양으로 답하자, 이번엔 저도 입을 열며 자이젠을 가리킨다. 아무리 안 보인다지만 삿대질이 열렬한데, 부장님.

 

 

그러니까 결론은.

 

 

물어보라꼬?”

 

끄덕끄덕.

 

물어볼 거면 네가 물어보던가. 왜 나야. 닌 부장이잖아. 난 쟤 안 무섭냐고. 아 뭐, 그렇긴 하지만 저 녀석, 분명히 또 뭡니꺼, 선배하면서 홱 고개 돌릴 거라고. 그래도 페어다 뭐다 붙어 다닌 나한테도 그런단 말이다. 나라고 너희들하고 별반 다른 대우 받는 게 아니라고.

 

짜식은 내 눈빛에도 시라이시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기각이냐. 내 인권은 무시되는 거냐.

투덜거리면서도 난 자이젠 녀석에게 다가갔다. 사실, 아까부터 묻고 싶긴 했다.

평소라면 저를 힐끔대는 눈길에 미간 한 번 찌푸리고는 단체로 뭐하십니꺼내지는 옴팡지게 라켓으로 볼을 후려쳐놓을 녀석이 이런 기류에서도, 멍하니 허공만 보는 모습에.

 

 

, 어디 아프나?

 

 

라든가.

 

 

돌았나?

 

 

라든가.

 

야 임마야, 히카루.”

 

녀석은 자이젠, 으로 불린다. 나름 파트너 선배라고 대우해 준 건지, 정이라도 조금은 든 건지(아님, 아량을 베푼 건지도) 녀석을 이름으로 부르는 건 나뿐이었다.

 

……?”

 

그에 반해 난 켄야, 혹은 켄짱으로 불린다. 중학교 입학 전까지 붙어 지내던 사촌과의 구별을 위해서도였고, 나도 딱히 별 생각 없어 난 쉽게쉽게 요비스테를 허용하는 편이었다.

안면 좀 튼 후배들한테서도 켄야 선배, 소릴 듣는데,

 

와 부르셨는데예. 선배.”

 

오시타리 선배를 부르는 건 녀석뿐이었다. 그냥 켄야 선배. 하면 될 텐데, 녀석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날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니 오늘 좀 이상타 안 카나. , 어디 아프나?”

 

새삼 내려다 본 녀석은 여전했다. 새카만 흑발도. 덤덤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검은 눈도.

흰 피부에 대비되는 피어싱들도. 다만 오늘은…….

 

아니아픈데 없는데예.”

 

이봐라! 역시 오늘 이상타고!

 

낯가림에, 낯이 좀 익어도 삐죽삐죽한 주제에, 사람 눈만은 올곧게 응시하던 녀석이, 무려, 시선을 돌리고 있다고!

 

, 뭔데예.”

 

목소리는 평소와 같건만, 녀석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는 채다. 진짜 뭔 일 있나 본데.

 

연습할 흥이 안 나믄, 이만 집 가재이. 이케 바라.”

 

얌전히 벤치에 앉아 있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일어나란 제스처건만, 녀석은 묵묵부답이다.

하물며 제게 닿은 내 손을, 치우라며 밀어내지도 않고 가만히 허공을 보다가,

 

연습 하입시더.”

 

제멋대로 일어나 라켓을 찾으려는지, 부실로 들어간다. 녀석이 지나가는 걸 쳐다보던 시라이시는 탁 부실 문이 닫히고 녀석이 건물로 들어가기 무섭게 물었다.

 

대체 와 저라노. , 점마한테 뭔 짓 했나?!?!”

 

자이젠 오늘 이상해~”

 

…….”

 

입을 연 건 시라이시뿐만이 아니었지만.

 

뭐라카노.”

 

다 들리것다, 머스마들아. 내 말에 또 합, 하고 정적이 앉는다.

 

웃어야 해, 울어야 해, 이런 상황?

 

기냥 데리가래이, 켄짱. 영 아니구마, 상태가.”

 

시라이시의 말에 감독도 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관서대회를 목전에 두고도 2학년 하나의 상태가 더 중요해? 라고 태클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시텐호지.

 

분명히 켄야가 괴롭혀서 그런 걸 끼…….”

 

닌 와 지랄이고.”

 

자이젠 녀석 무섭다며 숨죽이고 이때만큼은 분위기 파악을 하던 킨짱이 나섰다.

왜 다들 나한테 이러냐고. 내가 알 거라 물어보는 건 그렇다고 쳐, 근데 왜 점점 범인으로 지목 되는 것 같지? ?

킨짱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꾸욱꾸욱 누르자 들짐승처럼 버둥거린다. 호오, 이거 재밌네.

 

와 아한테 그라노. 내비두래이.”

 

들짐승은 금세 내 손을 빠져나가 시라이시에게 달려갔다.

시라이시, 켄짱이 내 괴롭힌데이, 혼내줘, ? 그래그래.

 

하여간 켄짱, 아 좀 챙겨도.”

 

킨짱을 달래고 선 시라이시. 평화로운 표정의 치토세. 근처의 레귤러들을 제외하면 다른 부원들은 저마다 코트에 흩어져 자율 연습 중이었다.

- 한 번 둘러보고,

 

임마는 와 안 나오노.”

 

부실이 무슨 블랙홀이냐. 라켓 가져온답시고 들어가선 나오질 않아, .

뒷머리를 긁으며 부실 문고리를 잡아 휙 열어젖혔다.

 

, 히카……!”

 

문 앞에 녀석이 서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오후 태양빛에 하얀 얼굴을 한.

 

……선배?”

 

순간, 심장이 덜컥했단 말을 삼켰다.

 

저 녀석, 정말이지 시시때때로 사람 가슴을 놀래킨다니까.

 

연습 할라꼬?”

 

예에 뭐와 알짱대시는 데요?”

 

이 자식, 일단 나 선배라고.

하지만 하나하나에 악악거리기엔 우린 서로 너무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저 심각하게 직설적인 성격도, 변화가 거의 없는 표정도, 그런 주제에 이상한 데서 수줍다거나, 살짝 핀트가 나갔다거나(그래, 사차원). 그런 것 정도는.

 

막 벤치로 나온 부원 둘과 교대하듯 코트를 차지했다.

 

복식?”

 

네트 한 쪽을 녀석과 내가, 그 너머를 부원 둘이 연습을 돕겠다며 섰다.

전위에 선 녀석의 뒷모습을, 정말 게임할 생각이 있는 건가- 괜찮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잠시 응시하다가 서브를 넣었다.

 

 

 

 

 

 

에라이 몰라.

 

 

 

 

 

 

선배. 자이젠 오늘 좀 이상하네예.”

 

……미치것네.”

 

원 세트 매치를 몇 십 분을 끌고, 진이 빠져서 부실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방금 전까지 연습상대를 해주었던 두 사람 중에 하나가 애매한 미소로 한 마디 한다.

시라이시가 건네주는 물을 받아 들이키며 땀을 식혔다.

 

젠장 히카루저거 날 개고생 시킬라꼬…….”

 

덤덤하게 라켓 잡고 서 있기에 그냥저냥 한 판 치려나보다 했다.

분명 칠 수 있는 공을 타구 전에 멈칫하고, 공격 경로는 눈에 빤하고, 서브는 맥이 빠졌고, 그래서 평소보다 두 배는 뛰고, 두 배를 커버하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아까 라켓 뺏고 데리고 가는 건데. 이게 바로 내부의 적이란 건가.

 

숨이 좀 돌아오자 녀석을 찾았다.

안 되겠어. 또 뭔 얼빵한 짓을 하기 전에(그러나 녀석이 한 행동임에 다들 비웃긴커녕 경악해 무서워하고 있었다) 집으로 끌고 가야지.

한 번만 더 연습하다간 공에 얻어맞고 뻗을 것 같아.

 

히카루-!”

 

오른쪽, 담장에 기댄 녀석이 물통을 쥐고 있는 게 포착되자 크게 녀석을 불렀다.

 

이리 온나!”

 

움직이기도 힘드네. 자이젠이 웬일로 말대답 한 번 안 하고 느릿느릿 이쪽으로 왔다.

그리곤 미간을 한 번 찌푸리고.

 

좀 일어나소, 한 세트 뛰고 이러면 어쩝니꺼.”

 

………… 으악. 됐다. 가서 가방이나 챙기래이. 집 가게.”

 

내 말에 빨대를 입에 물고 나를 내려다보던 녀석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와 그리 보내려 하시는데예. 오늘 이상하네예, 선배.”

 

……!”

 

이상한 건 너거든! 지금 너 때문에 내가 이 고생 하고 있는 거거든!

왜 내가 이상한 놈이 되냐고!

 

됐다, . 내 오늘 일찍 귀가할 낀디, 심심하니까 니도 같이 하교하재이. 그럼 된 거제?”

 

얼른 집에다 녀석을 넣어두고 내 방에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다. 이상해진 오늘 같은 날에도 여전히 순순하진 않은 녀석이 금방이라도 선배나 가이소하려는 걸, 시라이시가 껴들었다.

 

, 자이젠. 점마 징징대는디 오늘만 같이 가주래이. 니라도 챙겨야지 아님 어쩌겠노, 점마.”

 

켄짱은 바보니까-!”

 

아오. 니들 죽는다. 내일 보자.

시라이시까지 거들고 나서야 녀석은 생각해 보는 듯 했다.

 

그래도 대회가 목전인…….”

 

가자, 가자.”

 

더 듣지도 않고 몸을 일으켜 녀석의 손목을 잡아챘다. 서늘하게 돌아온 얇은 피부 아래에서 맥이 뛰는 게 느껴졌다. 땀을 흘린 건 나뿐이라 대충 생수를 엎고 수건을 어깨에 걸쳤다. 녀석을 잡아끌어 부실로 들어간다.

아무도 없는 부실 안. 밖의 소리가 조그만 창문으로 새 들어온다.

 

코트 면과 슈즈가 마찰하는 소리, 기합 소리, 라켓 면과 공이 부딪히는 소리-

언제 들어도 생동감이 넘치는 기분 좋은 소리다.

 

근데 왜 난 이 우물 같은 곳에서 멀뚱히 서 있는 녀석을 채근하고 있는 거냐고.

내 라커를 열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녀석도 그럭저럭 다시 교복 차림이 되었다.

 

오늘 당번 니 아니제?”

 

레귤러복을 손에 쥐고 라켓 백까지 챙기고 다시 부실 문을 열었다.

구석에 있는 옷 바구니에다 오늘 입은 레귤러 복을 던지고, 뒤따라 나온 녀석이 딴 데로 새지 않도록 다시 손을 잡고 감독님한테 인사했다.

 

먼저 가겠습니데이. 내일 보자.”

 

잘 가래이, 켄야, 자이젠.”

 

감독님의 실실 흔드는 손 인사에 부원들의 가지각색 인사가 이어지는 걸 손 한 번 흔들어 답하고 테니스 코트를 나왔다. 학교 교문(절이랑 똑같이 생겼지만)에 와서야 나는 모르는 척 계속 잡고 있었던 녀석의 손을 놓았다.

서로 닿아있던 사이로 바람이 스치자, 어쩐지 우울해졌지만. 말 한 마디 없는 녀석을 흘낏 쳐다봤다.

 

와 쳐다보시는데예.”

 

나름 티 안 내고 살핀 건데 몇 초 되지 않아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하여간 예민한 녀석.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아직 훤히 떠 있는 해를 노려봤다.

 

저녁 먹으러 갈래?”

 

이 시간에?”

 

그렇게 밥벌레 쳐다보듯 대놓고 보지 말아줄래? 너 말이야, 무표정한 주제에 감정표현은 엄청 잘 드러나거든. 그러니까 그런 한심하단 눈길 엄청 잘 읽힌다고.

 

싫음 마래이. 용돈 남아서 밥이나 사줄까 했더니.”

 

이렇게 뜬금없이 밥 먹자, 놀자, 끌고 간 적이 꽤 되는지라 자이젠은 날 잠시 바라보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해도 생뚱맞은 권유였지만(여름에 들어서는 이 시기, 5시도 안 되선 저녁 먹자라니) 일은 어찌됐건 잘 풀려서-

 

뭐 먹고 싶은 기 있나.”

 

녀석과 더 같이 있을 수 있게 됐으니까.

 

 

.

.

.

 

, 그렇제. 관동도 얼마 안 남았제?”

 

얼추 가는 길목이 겹치는 곳까지 녀석과 같이 오고, 갈라섰다.

이제야 저녁 노을이 내려앉는 골목길. 핸드폰 너머로 도쿄에 있을 사촌, 유시가 웃었다.

 

[거는 걱정할 바가 아이고. 와 말을 돌리고 그라노? 그렇게 좋냐니까-]

 

그렇게 방심하고 전국 떨어지고 나선 울어도 늦는데이.”

 

[말 돌리지 말라니까. , 부끄러버서 말도 못 하겠나?]

 

눈앞에 있었으면 당장 훅을 먹였다, 내가.

좋다고 낄낄대는 녀석이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이 머시마는 도쿄 생활 3년 차에 어째 더 아저씨스러워졌노.

 

좋데이. 윽시로 좋데이. , 부럽나?”

 

[부럽긴웃겨서 그라지.]

 

. 됐고, 하여튼 아 오늘 이상타 안 카나. 평소랑 전혀 다르데이.”

 

오늘, 말 끊는 빈도라거나 일침이 적었다고.

 

[계절 타나 보제, 며칠 지나면 돌아올 거 아이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제. 신경 쓰여서 뭘 하질 못 하긋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던, 녀석. 자이젠 히카루.

, 지금도 내가 더 크긴 하지만. 녀석을 견학이랍시고 처음 데려왔던 코트에서, 즉흥적으로 벌인 시합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살살 가볼까- 하자마자 당한 서비스 에이스.

 

뭐냐고 저런 매끈한 샷.

 

한 번 쳐봤던 게 진짜라면, 넌 어떤 의미론 천재다.

아무리 반쯤 풀어졌다지만 시라이시의 플레이와, 나의 스피드를 물 먹이다니.

우릴 한 번 경악시킨 넌, 또 우리에게 한 가지 충격을 주었다.

 

선배들이나 동기들이나- 대체 왜 웃는지 바보 같아요.

의 태클.

 

웃음이 지상목표인 곳에서, 웃음 따위 하나도 없는 뚱한 표정으로, 너는 조곤조곤, 입학하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을 속내를 털어놓았다.

 

시선을 비스듬히 피한 채.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빠져들고 만 날이다. 이렇게나 또렷이 기억나는.

말하자면,

 

좋은데 어쩌겠노…….”

 

애들과 웃다가도, 여자를 만나도, 그 녀석이 파고든단 말이다.

 

[, 짝사랑이라 니도 참 어려운 길 간데이.]

 

혀를 차는 유시의 목소리에 으윽, 하고 입가를 손으로 덮었다.

 

[하여튼 와 우리 집안은 짝사랑만 하면 쑥맥이 되노.]

 

……그러게 말이다. 더불어 바보짓도.

 

 

 

 

 

# Prologue,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