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1R는 유시네 경기나 보러가서 있다가, 적당히 돌아와 2R는 오카쿠라나 쿠시마키히가시랑 경기ㅡ
라고 대충 계획 했던 게 오늘 아침인데 난 지금 네트 너머의 상대와 악수를 하고 있다.
스트레이트 3연승으로 끝난 경기.
내 신경이라고는 오늘 복식을 같이 한 내 파트너. 그 녀석, 자이젠 히카루에게 쏠려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세이슌 아직 경기 안 끝났댄다, 소년들.”
“세이슌?! 로마?!”
킨타로가 감독 쌤의 말에 라켓을 든 채로 만세를 했다.
어지간히도 좀이 쑤시나 보네. 하여간 호승심 하나는 제일이라니까.
“구경이나 가볼까?”
감독님은 됐다는 듯 한 손으론 모자를 누르고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갈림길에서 돌아섰다. 당장이라도 온 테니스 경기장을 들쑤실 것 같은 킨짱을 쓰다듬는 시라이시의 옆으로 켄지로가 걷고, 그 뒤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치토세와, ‘오늘도 퍼-펙트♡’ 하고 좋아라하는 코하루와 유지가 따른다.
긴상과 그 뒤를 따르려던 나는, 홱 돌아서서 반대 갈림길로 빠지는 녀석을 발견하고 덥썩 잡아챘다.
“니 어디 가는데?”
“쉴 건데예.”
준비라도 한 것처럼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에 미처 반응을 못 했다. 제 소매를 비틀어 빼낸 녀석이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물러선다.
“와 이리 쌩하노. 내 뭐 잘못한 기 있나.”
아침에도, 시합 전에도, 경기 중에도, 지금도.
단 한 번 쳐다보질 않는다. 그 상태가 꼭… 그, 올 해 초에 뜬금없이 멍해졌을 때랑 똑같단 말이지.
멍하고, 표정 없고, 온통 어딘가에 마음이 뺏긴 듯 공허한 시선.
그때와 다른 건, 경기는 잘 끝냈다는 거?
내 쪽을 보지도, 말 한 마디 나누지도 않았지만 페어는 그럭저럭이었다. 물론 상대가 쉬운 적이었던 덕도 있지만.
내 말에도 전혀 쳐다볼 기색이 없다.
…무시한다 이거지?
“선……!”
“와 삐쳤는데?”
대답을 듣고 말테다. 녀석의 눈이 사납게 일그러지고, 내 발을 밟으려는 듯 불시의 기습이.
하하. 피했지롱.
양 손으로 녀석의 뺨을 붙든 채 고개를 들렸다. 이제야 쳐다보는구만.
얼굴 한 번 보기 힘드네.
“정신을 어데 팔고 있노. 와 피하는데?”
눈을 돌리고, 시선을 피한 채로, 입을 꾹 다문다.
대답해 줄 생각이라고는 전-혀. 아니, 아예 날 볼 생각도 없나 보네.
갑자기 왜 이렇게 쌩해진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녀석을 잡은 손을 떼고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와 피하냐니까.”
“피한 적 없는데예.”
“거짓말 하지 말고. 온종일 멍-해서 눈도 안 마주치는 기 빤히 뵈는데 뭘 안 피했다 뻥을 치나.”
도망갈 것 같지는 않아서 잡지는 않고 한숨을 쉬었다. 이 순간에도 녀석의 시선은 나를 보지 않은 채 비스듬히 내리깔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녀석의 흰 얼굴을 응시한다.
고집스럽게 다물고 있던 입술이 움칫 조심스럽게, 조그맣게 말을 뱉어냈다.
“…면 …게 되니까.”
“……안 들렸는데.”
뭔 목소리를 입 안에서 웅얼거리기만 하냐.
이제야 이유를 털어놓나 했더니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 데도 어찌나 목소리가 작은지 들리지가 않는다.
눈을 돌리고, 머뭇거리던 녀석이 홱 뒤돌아섰다.
붉기는 온데간데없이 냅다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을 이번엔 내가 멍하니 보고 있자니-
“어-이, 켄짱!”
켄지로와 앞선 녀석들이 꽤 떨어져선 얼른 오라며 팔을 흔든다.
이미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진 자이젠에 두리번거리다가 이번엔 킨짱이 닦달을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예, 갑니다. 간다고요ㅡ
뒷머리를 괜히 긁적이면서 걸음을 옮기면서, 녀석이 뭐라 말하려 했는지 짐작해 보려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봐도 반 이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목소리와 답지 않게 푹 숙인 흰 얼굴, 돌아설 땐 사라져 있었지만 언뜻 보였던 홍조, 라거나 이런 것 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면 …게 되니까…… 라.
설마.
“말 걸면 때리게 되니까?”
…에이 설마.
“대화하면 열 받게 되니까?”
아무리 내가 좀 귀찮게 한다 해도,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
요즘은 나도 제법 조용할 때도 있었으니까. 그런 건 아닐 거야.
…응? 그럼 설마?
“얼굴 보면 짜증나게 되니까?!!”
“켄-짱! 아까부터 와 머릴 쥐 뜯는데?”
“우왓! 소리는 와 지르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리고, 같이 움직이던 녀석들이 그 소리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돌아봤다. 점잖은 긴까지 살짝 미친놈 보는 것 같은 눈에 나는 내가 길바닥에 서 있음을 자각하고 정신을 차렸다.
가만 보니 녀석들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내 쪽을 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아닌 척 부산스럽게 뭔가 하는 척 돌아서는데… 그래, 만인의 앞에서 지랄을 한 거지 내가.
킨짱이 앞에서 알짱대며 왜 그러냐고 묻는 것을, 손을 휙휙 내저어 무시하고 한숨을 쉬었다. 설마 그렇게 말했겠어? 싶기도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평소 자이젠이 날 대하는 태도나 내가 자이젠에게 시도한 온갖 매를 버는 행위를 생각한다면 진짜 저랬을 수도 있는 게…….
그러게 너 오늘 왜 이렇게 신경 쓰이냐고!!!
답지 않게 자기반성과 행실 되짚어보기에 우울함까지 3배속으로 몰려와 이젠 ‘어쩌면 이 모든 게 잘못일지 몰라’ 하며 비척비척 걸었다.
연신 켄짱 이상해. 와 저러는데. 하고 종종거리던 킨타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시라이시를 선두로 세이슌의 첫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코트에 도착했다.
“오오!”
마침 시합하고 있는 이는 세이슌 중에서도 데즈카.
히가라. 올 해 큐슈 제패 신진 강호지 아마.
옆에는 릿카이에, 효테이에, 앞에는 세이슌이고. 뭔가 저릿한 긴장감이 든다.
스산하면서 전신을 오싹하게 하는 감각. ‘오사카 시텐호지!’ 라며 호들갑 떠는 그 외의 다른 선수들의 소리는 이미 권외.
전국대회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경기를 하면서도 어딘가 심심해서, 전국대회나 예선이나 다를 바 없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까먹고 있었지. 전국이란 걸.
“이제야 정신 들었나.”
고양감에 휩싸여 흥분한 심장 박동을 꾹 삼킨 채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내 변화를 알아챈 시라이시가 말했다.
다들 기분 좋은 호승심에 휩싸인 때, 시라이시는 저 혼자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날뛰기 직전인 킨짱을 쓰다듬고 있었다.
치토세조차도 흥분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와중에 눈빛으로만 감추다니,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여태 멍-해선 쌍으로 딴 생각만 하고 있드만.”
시라이시가 낮게 웃었다. 그렇게 티 나게 넋 놓고 있었나.
“서로 뭔 생각을 그리 하는지, 상대한텐 손톱만큼도 관심 없고 온통 지들끼리 전전긍긍하고 앉았으니. 기가 차서.”
상큼한 얼굴로 상큼하게 하는 말이 죄다 찔릴 만한 것뿐이다.
윽 윽 주춤거리는 나를 보며 시라이시는 연신 웃음을 흘렸다.
도로 자이젠 생각이가. 그렇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뭐 때문에 그리 찔려서 내외하는 진 모르겠지만 켄짱. 자이젠은 섬세하니까 혼자 두지 말고 같이 푸는 게 좋을 끼다.”
놔뒀다가 까딱하믄, 니 영원히 무시하자는 결론 내릴 수도ㅡ
평소만큼 산뜻한 표정으로, 심장 떨어지는 소리를… 가만 보면 흑막이란 말이지, 시라이시.
어느새 끝난 세이슌의 경기에 몰려들었던 인파는 제각각 흩어지고 있었다.
복잡하게 사람이 몰린 도보로 끼어들며, 시라이시에게 소리쳤다.
“내 먼저 간데이!”
뒤늦게 내 소리에 돌아보며 다른 녀석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게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달렸다. 최대 자랑거리인 스피드를 한껏 올려 달리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선배?]
“니, 지금 어디 있노?!”
[숙소 돌아가려고 버스 기다리는 데예. 와, 뭔 일 있습니꺼?]
“타지 말고 그대로 정류장서 기다리고 있으래이. 금방 갈 테니까!”
계속 받고 있으면 또 득달 같이 싫다, 왜, 됐다, 이런 말이 나올 게 뻔해서 자이젠이 뭐라 말 하기도 전에 플립을 닫았다.
버스 정류장이라면 여기 올 때 내린 곳 주변이겠지. 으아아 제발 그대로 있어라 히카루-!!!
“히-카-루-!”
부름에, 인상을 확 찡그리는 녀석을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다행이다. 안 갔구나.
제 앞에 당도해선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자이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맡기셨습니꺼. 와 뛰오시는데예.”
데자뷰가…….
뛰어오느라 쿵쿵 울리는 심장박동이 갑자기 더 크게 울린다.
여느 날처럼, 나는 반사적으로 웃었다.
“같이 가재이, 히카루.”
하핫, 하고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조금 아래에 위치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물론 성공하지 못 했지만.
내 손을 가볍게 밀어내는 녀석의 손은 늘 그랬듯이, 평소와 같은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뙤약볕에 찡그린 눈가. 검은 눈동자에 내가 담긴다. 나는 웃는 채로 녀석의 손을 잡았다.
“내한테 아까 했던 말, 뭐였는데.”
“못 들은 선배 잘못인데예.”
후다닥 손을 털어내면서도, 대답은 해준다.
무시는 안 하는 모습에 씨익 웃었다.
“못 들었다니까.”
“그기 궁금해서 오신 긴교.”
“그렇기도 하고, 니 혼자 보냈다 못 찾아가믄 어쩌나 걱정 돼서.”
그 말에 녀석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박하려는 듯한 모습에 뭐라 변명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 데, 뭔가 말을 삼키며 녀석이 얕게 한숨을 쉬었다.
“선배.”
“내 니 바보 취급한 기 아이라, 낯선 데고 하니 걱정이 돼서, 그런 기다!”
“선배.”
“어? 와.”
시선을 피하고, 못 본 척 안 본 척 하던 오늘 하루의 모습은 어디로 내다 버렸는지, 올곧이 올려다보는 검은 눈은 여전한 그대로.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왼쪽 가슴께를 눌렀다.
자이젠이 짐작해낼 수 없는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동자에 피할 생각도 못 하고 쳐다보고. 자칫 놓칠 만큼 눈치 채지 못한 틈에, 녀석이 말했다.
“쳐다보면.”
“……어?”
“착각하게 되니까. 라고 했는데예.”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조그맣게 웃었다.
아주 작게.
.
.
.
[그래그래.]
“이상탄 말이제. 신랄하게 쏘아붙였어야 했다고. 아스팔트의 껌 보듯이 쳐다봤어야 하는데.”
[자학? 하여튼 내 낮에 금마 봤는데.]
“언제?!”
[니랑 갈라섰을 때겠구마. 혼자 있었으니까. 인상 쓰고 있어가 말 걸라다 말았데이.]
“역시 이건…….”
욕도 안 하고, 순순히 다시 말 해주고, 무시하다 말고, 내가 귀찮게… 따라갔는데 타박도 안 하고, 심지어 조금 웃고. 귀찮게 했다고 더 기분 나빠져야 했는데 말이지?
말하자면 이건.
“단단히 화가 난 기 틀림없데이.”
[지랄이 풍작이다, 니도.]
확실해. 신종 스트레스 표출 방법이 틀림없다.
# 6,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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