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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히카

너의 곁에서 《9》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대회가 끝나니 개학이 코앞이었다. 이것도 3년째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1학년 때는 없어진 방학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과거의 내가 웃겨서 큭큭대자 옆에서 뾰로통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미친 거 아이다.” 선수 치며 쳐다보니 그러시냔 표정이었다. 이 녀석 분명 방금까지 엄청 수줍어했던 것 같은데. 녀석이 내 표정을 읽었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알고 있었으니까예.” 와 아이스크림이 목에 걸릴 뻔했다. 켁켁대며 목을 붙들자 서늘한 손이 등을 두드려줬다. “알았다고?” 괜찮아 보이는지 다시 물러나 끄덕끄덕. 나로 말하자면, 놀라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심정이었다. “모를 수가 없는데예. 아니라 생각할래도…….. 더보기
너의 곁에서 《8》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엉망진창 난장판이 따로 없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묻는다면 테니스를 쳤을 뿐입니다 대답할밖에…. 1승 1패 시점에서 세이슌 제법이라며 요상하게 웃음 짓는 감독을 볼 때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본인도 모르는 출전 명단이라니 이것만큼은 치토세 센리 할아버지가 와도 어리둥절일 거다. 평소에도 신기했지만 오늘은 더욱 난리통인 경기의 연속이었다. 시라이시는 지 소꿉친구랑 한바탕 치러내질 않나 만담콤비는 웬 마스크로 설치질 않나 사범은 사람을 날리질 않나……. 오늘 같은 날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가운을 껴입고 온 감독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본 나는, 우습게도 한 경기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수습에 나서야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더보기
[켄히카] 여름바람 Wind of summer storm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푸른 것이 우수수 흔들렸다. 잎에 맺혀있었을 빗방울이 속눈썹으로 날아와 맺혔다. 파도타기 하듯 여기서 저기로 온 잎이 푸스스 흔들린다. “선배, 읍.” 으, 하는 낮은 신음소리가 목을 울렸다. 켄야는 단비라도 만난 것처럼 연신 그의 숨과 입술을 삼킨다. 풍경이 있다면 정신없이 흔들릴 바람. 바람 밖에, 수풀 밖에, 그밖에 없는 곳에서 켄야는, 제 손 안에 쥐어지는 손목을 강하게 잡은 채로 풀지 않았다. 연일 높게 달라붙던 공기 중의 물기가 온몸에 달라붙어 괴롭혔다. 하필 여행 떠나는 때에 비 소식이 이어질 것은 뭐냐고 투덜대던 켄야는 솟아오르는 불쾌감을 주체할 수 없는지 평소보다 시끄럽게 굴러다니다 별안간 조용해.. 더보기
[켄히카] 불어라 봄바람 Spring has Co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저거저거 대체 얼마를 파는 거야?지금 손에 쥔 지폐만 봐도 두툼한데 나도 경찰 접고 저거나 할까?아니아니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다시 집중하자.자자 심호흡 심호흡. 점심시간을 이용한 반짝 장사는 1분 만에 완판.무덤덤하게 간이 테이블을 접는 어린 남자 뒤로 우수수 멀어지는 양복쟁이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분홍색 아이스크림이 쥐여있었다.근엄한 금융권 종사자인 햄스터 샐러리맨들이 모퉁이를 돌아 멀어지고, 가판을 접은 남자는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막힘이라고는 없는 깔끔한 일처리였다. “거기 잘생긴 형님.” 트렁크 문을 닫은 남자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햇볕이 강한 날이라 그런지 남자의 피어스 가득한 귀가 더욱 화.. 더보기
너의 곁에서 《7》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어떻게 선배는.” “어?” “매번 색다른지 모르겠습니더. 뒤돌아서면 짜증나네예.” “…하하…….” “아이다, 볼 때마다 짜증나는 긴가.” 고운 미간을 아주 얕게 찌푸리고 내 옆에 서있는 사람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리저리 삐죽삐죽한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항시 차분한 말을 내뱉는 입술에, 대놓고 짜증을 내비치는 표정이라든가. “임마… 니 또 뭐가 불만인데?” “별로요.” 소속은 시텐호지 중학교. 오사카의 오랜 강호로, 우리 기수에는 없지만 선배들 대에선 전국 우승도 한 적 있고, 매년 전국 출장에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학교다. 이랬든 저랬든 전국 순위를 매길 때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년.. 더보기
너의 곁에서 《6》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1R는 유시네 경기나 보러가서 있다가, 적당히 돌아와 2R는 오카쿠라나 쿠시마키히가시랑 경기ㅡ 라고 대충 계획 했던 게 오늘 아침인데 난 지금 네트 너머의 상대와 악수를 하고 있다. 스트레이트 3연승으로 끝난 경기. 내 신경이라고는 오늘 복식을 같이 한 내 파트너. 그 녀석, 자이젠 히카루에게 쏠려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세이슌 아직 경기 안 끝났댄다, 소년들.” “세이슌?! 로마?!” 킨타로가 감독 쌤의 말에 라켓을 든 채로 만세를 했다. 어지간히도 좀이 쑤시나 보네. 하여간 호승심 하나는 제일이라니까. “구경이나 가볼까?” 감독님은 됐다는 듯 한 손으론 모자를 누르고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갈림길에서.. 더보기
[켄히카] 네가 좋아 Love Mor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내린 곳은 창밖으로 들판만 보이기를 여러 번 반복한 어느 역이다. 열차 문이 열리고 걸음을 내딛은 순간 보인 건 느릿느릿 걸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 그리로 시선을 한 번 던진 자이젠은 이내 배낭을 고쳐 멨다. 시골의 한산한 기차역. 개찰구 옆에 선 역무원은 눈이 마주 닿자 사람 좋게 웃었다. 막 옆을 지나치다 부딪친 늙은 여인은 즉각 사과를 했다. 역사 주변은 인적 없는 2차선 도로를 빼면 멀리 주택이 드문드문 보일뿐. 가만히 선 채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본 자이젠의 옆으로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그는 철길 옆으로 난 야트막한 풀밭을 걸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산과 들과 철길 밖에 없었다. 내린 역에서도 얼추 멀어진 뙤약볕이 .. 더보기
[켄히카] 순간의 커피 Sugar Lips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우엑, 커피가 뭐 이리 쓴 기고. 설탕 없나?” “케잌하고 설탕을 우예 먹는다꼬. 원래 단 음식엔 쓴 거 먹는 겁니더.” “색깔은 지 머리색만치 까맨기.” “나잇살 먹고 음식투정이고.” “뭐! 이긴 취향이데이!” “먹기 싫음 내놓으시든가예.” 평범한 이층집. 곳곳에 사람 사는 기척이 남아있는 아늑한 집 안. 향긋한 커피내음이 풍기는 식탁에, 두 선후배는 마주 앉아 있다. 아기자기한 모양새의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머그잔을 쥔 채 늘 그랬듯 티격태격 하고 있다. 자이젠이 금방이라도 케이크를 가져갈 것이라 생각했는지 켄야는 포크를 들고 우물거리며 접시를 왼손으로 가렸다. 그 모습을 맞은편에서 고스란히 보고 있는 자이젠의 .. 더보기
너의 곁에서 《5》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킨짱은 대체 언제 오는 긴데~” 코하루가 제 몫의 음료수를 쥐고 한 마디 했다. 개막 3일 전. 킨타로가 합류하기로 한 기한이었다. 토너먼트 추첨을 위해 시라이시와 켄지로는 릿카이대 부속으로 갔고, 감독님은 숙소에 뻗으셨고, 우린 준결선급 경기가 열릴 경기장 밖에 있는 야외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 오는 버스는 다 여기서 멈추니까.” 오면 금방 보일 끼다. 탄산이 가득한 사과맛 음료를 꿀꺽 삼켰다. 그래도 그늘이 겹쳐서 태양에 홀랑 노출되지 않은 게 다행인가. 더워. “저 민머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유지가 고개를 튼 채 중얼거렸다. 큰 체구에, 이목구비하며… 그러게.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테츠.. 더보기
너의 곁에서 《4》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올 해 전국대회 출전 학교가 확정됐다. 대회 개막까지 앞으로 4일. 개최지가 도쿄인 탓에 기간 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했다. 뭐어, 얘기를 꺼낸 뒤 집에선 얼른 가버리라며 전혀 걱정 같은 거, 하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평소였다면 ‘이야 도쿄. 도쿄까지 가고.’ 하며 오랜만에 유시 녀석도 만나고 좋네라고 생각했겠지만, 한창 도쿄를 향해 달리는 열차의 우리들 쪽 칸은 그다지 밝은 기색이 아니었다. “…응. 역시 전국엔 귀여운 애가 많겠… 제…….” “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회를 치르기 위해, 전국에서 강호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는 와중에 우릴 긴장 타게 하는 건, 감독도 부장도 아닌 2학년, .. 더보기
[켄히카] 소리, 속삭임 In the Feeling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때때로 당신이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연습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몇 마디 주고받다가, 혹은 그저 보고 있다가도. 당신의 감정은, 때때로 내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열정적이고, 짚어내지 못할 정도로 다양해서. ⁂ “니 또 뭘 맹하니 있노.” 아…. 언제 왔는지 그늘이 진다. 낯설게 느껴지는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코트에 있었는데……? “어이고.” 라켓을 내 옆에 놓고 그가 미간을 좁혔다. 햇볕에 따스하게 물든 피부색. 인상 좋은 얼굴로 짓는 츳츳 팔짱끼는 표정. “야 임마.” 손이 다가온다. 햇볕에 낙낙히 익은 따뜻한 손끝이 이마에 닿고.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오시타리 선배, 구나. 조금 뒤늦게.. 더보기
너의 곁에서 《3》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근방에 인가라고는 보이지 않는 야산. 치토세가 옆에 걸터앉아 부채질이나 하고, 감독이 모자를 덮은 채 드러누워 있는 바위. 그 아래 계곡물은ㅡ “으악! 차가워, 차갑다고-!!!” “시라이시, 죽어라-!” “얌마, 킨짱- 으아악!” 한 마리 야생동물과 한 마리 부장님으로 인해 쓰나미를 맞고 있다, 일까. 계곡 곳곳에 흩어져서 더위 식히기에 바쁜 한낮. 내일이면 합숙이 끝난단 점에 다들 라켓을 버리고 피서 기분을 내는 중이다. “킨짱, 나 죽어, 킨짱!? …푸아.” 수고해라 시라이시. 우리 부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네 덕분에 감독님도, 치토세도, 나도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좀만 수고해라. 두 사람이 난동을 부리고,.. 더보기
너의 곁에서 《2》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점심시간은 대개 부실에서 보낸다. 부실이라고 해봐야 테니스장 가장자리에 있는 재미없게 생긴 건물이지만. 원래 부원이 적은 부의 특성이라고나 할까(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지금은 졸업한 정신 나간 선배들의 자리는, 1학년 들짐승과 치토세가 차지해서 넓어져 있었다. “어, 켄야. 니 이기 원래 안 하지 않았나?” 켄지로가 내 오른손 팔목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야. 너 이제야 발견한 거냐. 이게 말이야……. 괜히 밴드를 내려다보고 속으로 으흐흐 웃었다. “끼고 살 기다.” 자이젠은 킨타로를 적당히 제어하는 치토세 옆에 앉아 무덤덤하게 제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다. 매일 들락거리는 부실은 주변에 시라이시가 가져다 놓은 화분들로.. 더보기
너의 곁에서 《1》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더없이 화창한 날이다. 하늘은 파랗고, 흰구름은 유유히 흘러가고, 당분간 비 소식이 없다는 일기예보에 딱 알맞은. 완연히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단 둘이 데이트라니. 이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니까 제가 와 선배랑 놀아야 하는데예.” …현실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나름 내일이 준결승인데 와 변덕이고.” 위기의식이라든가, 긴장감 같은 정상적인 건 선배한테 기대하면 안 되는 겁니꺼. 방금 저가 한 말에 켁켁거리는 내 옆에서, 녀석은 담담하게 주스를 들이켰다. “니도 긴장이라곤 쪼매도 안 해놓고 와 내한테 지랄이고.” “아니거든예. 긴장은 안 해도 생각은 하고 살거든예.” 도무지 한 번도.. 더보기
너의 곁에서 《Prologue》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오늘 녀석은 유난히 멍했다. 방과 후의 코트는 평소와 같았다. 하나같이 시시껄렁한 농담에 웃으며, 그러나 라켓을 쥔 눈빛만은 뜨겁게. 한 번씩 돌아가며 개그도 치고. 가장 가까운 놈들부터 짚어보자면, 근래 관서를 들썩이게 만든(실력으로나, 괴짜 기질로나) 1학년 루키는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아저씨 분위기 물씬 풍기는 감독에게 징징 뭐라 매달리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연습시간에 제대로 나온 치토세는 여전히 어딘가 무료한 표정으로 부실 외벽에 기대 서서 넋을 놓고 있었고, 오늘도 변함없이 말끔한 얼굴의 시라이시는 그 옆에 서서 부원들을 쳐다보거나, 치토세와 몇 마디 주고받곤 했다. 코하루와 유지도 착 달라붙어선, 개.. 더보기
[켄히카] 빙빙 돌아 한마음 Rain Cloud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저녁식사를 팥죽으로 때운 후였다. 열여덟 살. 센터시험이 끝나고 사흘간 단팥죽만 먹었다. 센터시험이 끝난 직후 결혼기념일을 맞아 며칠간 여행을 간 부모님과, 부부동반 모임으로 조카까지 데리고 여행 간 형 내외.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나는 음악 감상 중이었다. 벨이 울리기 전까지는. “…….” 센터시험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나타난 그 사람을 나는 어제 본 사람인양 단박에 알았다. “야아, 히카루.” 거의 3년 만에 보는 당신이란 사람을. 정말로 한 눈에. “하루만 재워주잖겠나. 내사 갈 데가 없구마.” 한숨을 쉬며 거의 열린 현관문에서 돌아서며 나는 무심하게 말한다. 애써 무심한 척 속내를 어떻게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