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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너의 곁에서

너의 곁에서 《3》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근방에 인가라고는 보이지 않는 야산.

치토세가 옆에 걸터앉아 부채질이나 하고, 감독이 모자를 덮은 채 드러누워 있는 바위.

그 아래 계곡물은

 

으악! 차가워, 차갑다고-!!!”

 

시라이시, 죽어라-!”

 

얌마, 킨짱- 으아악!”

 

한 마리 야생동물과 한 마리 부장님으로 인해 쓰나미를 맞고 있다, 일까.

계곡 곳곳에 흩어져서 더위 식히기에 바쁜 한낮.

내일이면 합숙이 끝난단 점에 다들 라켓을 버리고 피서 기분을 내는 중이다.

 

킨짱, 나 죽어, 킨짱!? 푸아.”

 

수고해라 시라이시. 우리 부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네 덕분에 감독님도, 치토세도, 나도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좀만 수고해라.

 

두 사람이 난동을 부리고, 애꿎은 켄지로가 코하루와 유지에게 붙들려 있는 아래쪽을 등지고 앉았다. 조용한 바위 상류에 유유히 바닥에 앉은 새까만 머리의 녀석.

 

……재밌나?”

 

따끈따끈한 바위에 앉아 녀석을 쳐다보고 있으니, 녀석도 물만 보던 시선을 들어 나를 봤다. 계곡 바닥에 앉은 녀석은 어깨까지 물에 잠긴 채 가만-히 불필요한 체력 소비는 전혀 않고 있다. 오늘 아침부터.

 

니 배 안 고프나? 밥 차려 주께, 좀 나와 봐라.”

 

아침에 빵 하나 우물거리더니 그때부터 물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않는다.

밥 먹자, , 밥 몇 번을 물어도 싫은데예’ ‘배 안 고픈데예할 뿐 도통 물에서 나오질 않던 녀석이 지금은 좀 고민되는지 대답은 않고 빤히 쳐다본다.

 

흔들릴 때 밀어붙여야지. 난 못 박듯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고 새 그거 먹는다고 계곡이 없어지진 않는데이. 점심도 굶고 뭐 하는 짓이가.”

 

슬리퍼를 신고, 얕은 쪽에 있는 녀석 앞에 가서 손을 내민다. 니가 애냐고.

일부러 밥 많이 해놓길 잘 했네. 카레도 숨겨놓은 거 있으니까 해주면 되겠지.

 

? 둘이 어디 가?”

 

밥 먹으러.”

 

!”

 

없어, 없어. 컵라면이나 끓여 먹으래이, 킨짱.”

 

그런 게 어딨어-! 하고 소리치는 킨짱을 뒤로 하고 물 먹은 셔츠를 꾹꾹 짜는 녀석과 산장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물에 있으니까 좋냐. 너 그러다 배탈 난다.

 

밥 없는데 밥 준다고 뻥 친 거지예, 선배.”

 

아이그든. 니 줄 꺼 남겨놨그든.”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에게 부채질을 해주며 산장에 들어섰다. - 개판.

그나마 시라이시나 녀석이 깔끔한 편인데 소수민족이니 산장 안은 옷가지나 과자봉지가 널려 있었다.

 

물에 젖은 녀석에게 옷걸이에 말려놓은 수건을 던져주고 부엌으로 향했다. . 밥솥에 밥 있고, 카레는 인스턴트니까 데우기만 하면 되고.

 

카레 데우지 말까.”

 

대답을 해. 끄덕끄덕하지 말고. 쟨 왜 계절만 바뀌면 애가 영혼이 위태롭지.

전에도 갑자기 책상에 머릴 박지를 않나.

 

느릿느릿 밥그릇을 받아든 녀석 앞에 냉장고에 넣어놨던 오이절임이니 하는 걸 꺼내두고 맞은편에 앉았다.

 

선배. 창문 좀 열어보이소.”

 

금방 일어나서 창문 열고, 부채를 찾아 왔지만.

여전히 투명한 표정으로 우물우물 밥을 먹는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끝이 살짝 말려 있는 속눈썹에, 새카만 눈. 어떻게든 해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덕에 합숙에도 별반 타지 않은 피부. 애가 흐물흐물 해지니까 가뜩이나 없던 말이 더 없어지고, 주특기인 정곡 찌르기는 임시 휴업.

 

지금도, 이렇게 대놓고 쳐다보는데 가만히 있고.

 

더 줄까?”

 

금세 한 그릇을 비워내는 모습에 다시 밥을 퍼서, 카레를 부어 주었다.

그러게 진즉 밥 먹지 왜 고집을 부려.

다시 숟가락을 들어 우물거리는 녀석 맞은편에 앉아 지그시 쳐다본다.

 

바깥에선 간간히 비명소리(시라이시로 추정되는)가 들리고, 더운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이따금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쓸고 간다. 방학하고 내도록 테니스만, 아주 원 없게 쳤다.

더블스는 물론이고 단식까지.

 

녀석도 실력이 많이 늘어서, 시라이시랑 어느 정도 호각으로 붙을 정도는 됐다.

하긴, 쟨 처음부터 장난 아니었지. 애가 워낙 조용해서 티가 안 나니, 깜박깜박 한다.

내년이면 저 녀석이 부장이고, 천방지축 킨짱도 저 녀석 말은 잘 들으니 내년에도 시텐호지 테니스부 이상 무- 인가.

 

야아, 지금 물 들가면 안 된데이. 소화는 시켜야제.”

 

소리도 없이 일어선 녀석을 붙들었다. 너 그러다 탈 난다고.

아프면 얼마나 서러운데 없는 병을 만들려고 노력이야. 도로 눌러 앉히고 그릇을 싱크대로 가져가 수세미를 들었다.

 

니 자꾸 차게 하면 탈 난데이. 남들 다 놀 때 끙끙 앓을라카나. 니 병 나믄 내캉 걱정 나서 병 난데이.”

 

병 나믄 선배가 고생하믄 되겠네예.”

 

안 아파야지 내 고생시킬 생각부터 하나.”

 

내 아프믄 선배가 고생한다카니 맘 놓고 아파도 되겠네예.”

 

내가 걱정 나서 안 된데이. 닌 절대 아프지 마래이.”

 

생각해 보고.”

 

좀 순순해졌나 싶었더니 착각이었나. 잘만 대답하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돌아보자 녀석은 곳곳에 널린 옷가지들을 전부 쓸어 모아 화장실에 내던지고, 과자봉지를 주워 버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핸드폰 등을 올려놓는 등 잠깐 사이에 손을 놀리고 있었다.

 

어차피 내일 떠날낀데 뭘 치우노.”

 

드럽지도 않습니꺼. 예가 돼지우리도 아이고.”

 

뭘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제깍 대답한다. , 뭔가 방금 우리 엄마가 생각났는데.

녀석이 사용한 식기와 플라스틱 컵 몇 개를 씻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의 물기를 대충 티셔츠에 문지르며 돌아서자 그 새 너저분하던 것들이 사라진 게 보였다.

 

머시마 손 빠르네. ? ?”

 

대충 치워놓은 바닥. 창가 쪽에 주저앉은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평소의 눈이 아니고, 저건- 뭔가 바라는 게 있을 때인데.

 

와서 부채질 좀 해주이소.”

 

니는 손이 없나물 먹은 바지로 수건도 안 깔고 기냥 앉으면 우야노. 바닥 먼지 죄 붙이고 물 뿌리고 갈라카나.”

 

다시 계곡 들어가면 먼지 다 떼지고, 물이야 마르겠지예.”

 

그 먼지 물은 아래 애들이 놀고?”

 

먹는 것도 아인데.”

 

땡볕의 찌는 듯한 더위.

햇볕이야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뜨거운 바람은 간간히 들어오고 있다.

녀석의 앞에 앉아 미리 챙겨왔던 둥근 부채로 부채질을 해준다.

살랑살랑 녀석의 머리칼이 움직인다.

 

한동안 그저 가만히 있었다.

녀석도, 나도.

 

정적을 깬 것은 녀석이었다. 높낮이 없는, 평소 같이 담담한 목소리.

창밖을 보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감정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새카만 눈동자.

그래도 이젠 제법 알겠단 말이지.

 

선배는 와 안 노시는교.”

 

?”

 

선배가 제일 신나서 놀 줄 알았는데, 아저씨처럼 볕이나 쬐고.”

 

그거야너 밥 먹여야 마음이 놓여서 대기타고 있었지. 그리고 너 혼자 놔두고 놀러 내려가냐, 어떻게. 너랑 놀아야 재밌는데.

 

시라이시 금마가 킨짱 잘 놀아주고 있고니 밥 멕일라고 지켜보고 있었제.”

 

밥에 원수 졌는교. 뭘 그리 못 멕여 안달이고.”

 

너 같음 네가 좋아죽는 놈이 아침 굶고 점심 굶고 있는데 놀고 싶을 것 같냐!?

너랑 내 마음은 같지 않으니까.

 

니는 내가 사흘 밤낮을 굶어도 그랬었나?’ 할 거제? 후배는 거둬봐야 소용없다더니.”

 

내 말에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비웃음에 어울리게.

 

선배, 배 고프믄 밥 찾아 드시지 와 저까지 끌어들이는교.”

 

이바라! 니가 내사 니 위하는 애정 반만 해도 이리 찬 대답이 나오진 않는데이!”

 

녀석은 정말로 어이없다는 표정이 됐다.

 

낯짝 간지럽게 애정은 뭔 애정. 그리고, 어쨌든 지도 걱정은 할 꺼든예.”

 

……!”

 

. 말을 끊는 상큼한 벨소리. 내 얼굴은 상큼해지려다 말았고, 자이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녀석이 방정맞다고 했는데.

내가 핸드폰을 어디 뒀더라.

 

핸드폰을 찾아 다시 앉는 사이에 전화는 끊겨 있었다. 엄마인가?

 

 

켄야, 왜 요즘 연락이 없어. 하리는 켄야 보고 싶은데 켄야는 그것도 모르고 치>_<!!! 문자 보면 연락해♡♡♡」

 

 

뭐꼬 이 가스나는. 하리하리하리, 개인가.

. 화장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던. 키가 꽤 컸었는데. 잠시 액정을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사이, 녀석도 문자를 읽고는 픽, 시큰둥하게 말했다.

 

선배가 여자를 안 만날 리가. 그리 좋으십니꺼. 다 아는 사이에 와 거짓말까지 하고 만나시는교. 새삼스럽게.”

 

, 내 진짜 요즘 아무도 안 만났거든. 끽해야 니랑 논 게 전부데이.”

 

와 아닌 척 하시는교. 보기 흉합니더.”

 

아이라니까! 니 와 이리 또 삐죽삐죽하노.”

 

어째 갑자기 쌩해진 것 같은데. 말이고 표정이고 가시가 돋쳐서는.

방금 전까지의 평화로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나운 기세의 녀석만 남았다.

 

닌 뭐 내를 몰아가노!”

 

평소에 좀 잘 하셔서예.”

 

뭐 임마?!!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녀석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일어서 현관으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설렜었던 내가 빙시지…….”

 

? 뭐라 캤! 같이 가재이, 히카루!”

 

그기 아이라니까-!!!!!

뭐라 중얼거리는 녀석의 뒤를 황급히 따라나섰다.

 

 

.

.

.

 

[고마 좀 징징대그라.]

 

완전 카사 취급한 거데이, 변태 보는 눈이었다꼬…….”

 

[그래, 그래. 켄짱이 카사긴 하제. .]

 

여자 안 만난다 캐놓고 연락 와서 속았다고 생각한 걸기다. 엄청 한심하단 눈빛 받았다고. 타이밍이 와 그라노! 내 진짜 결백하데이!”

 

[그래, 그래. 켄짱이 거짓말쟁이긴 하제.]

 

귀가할 때까지 쌩했다고!!! 내사 진짜 억울해 디지겠네…….”

 

[그래, 그래. 켄짱 눈치가 그지 같긴 하제.]

 

임마 유시 닌 왜 아까부터 지랄이고!”

 

[? 정신 남아 있었드나.]

 

이 자식아난 심각한데 닌 아주 대놓고 불성실이냐.

어흐흑, 다시 한탄하자 유시가 뭘 하는지 비닐봉투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짧게 웃었다.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마. 켄짱.]

 

뭐가!!!”

 

[잘 풀릴 것 같은디 말이제. , 재밌으니 닌 그냥 삽질만 열심히 계속 하래이.]

 

됐그든?!!”

 

한숨을 푹푹 쉬어대고 있자니 유시가 가만히 내 이름을 부른다.

켄짱.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담뿍 담겨 있었다.

 

[전국대회, 나가게 됐데이.]

 

?! 그기 뭔 소리고, 진짜?!”

 

[개최지 특전이라카던데.]

 

이 자식, 그런 건 바로바로 말을 해야지! 니 혼자 희희낙락하고 있던 이유가 그거였냐!

자연히 내 목소리는 커졌다. 핸드폰을 쥔 손은 자연히 힘이 들어간다.

 

진짜제, 전국에서 보는 거제?!”

 

[진짜래도. 켄짱, 정점에서 보재이.]

 

하하하. 이거 미리 미안해지는구마.”

 

[김칫국 마시기는.]

 

한동안 유시 녀석도, 나도 연신 웃어댔다. 전국대회까지 6.

6일 중 반이 얼마나 가시방석일지 모를 때의 여유였다.

 

 

 

 

 

# 3,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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