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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너의 곁에서

너의 곁에서 《9》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대회가 끝나니 개학이 코앞이었다.

이것도 3년째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1학년 때는 없어진 방학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과거의 내가 웃겨서 큭큭대자 옆에서 뾰로통한 목소리가 들렸다.

 

…….”

 

미친 거 아이다.”

 

선수 치며 쳐다보니 그러시냔 표정이었다.

이 녀석 분명 방금까지 엄청 수줍어했던 것 같은데.

녀석이 내 표정을 읽었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알고 있었으니까예.”

 

와 아이스크림이 목에 걸릴 뻔했다.

켁켁대며 목을 붙들자 서늘한 손이 등을 두드려줬다.

 

알았다고?”

 

괜찮아 보이는지 다시 물러나 끄덕끄덕.

나로 말하자면, 놀라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심정이었다.

 

모를 수가 없는데예. 아니라 생각할래도…….”

 

오히려 모르는 척 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녀석이 손에 든 막대를 휴지통에 던졌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넣고 따라 막대를 던졌다.

. 손 끈적해.

 

내도 티 많이 났지예. 휩쓸려갖고.”

 

당신이 너무 드러내서 때때로 나까지 마음을 놓았다고 말하며, 녀석은 손수건을 꺼내 내 손을 붙잡았다. 애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이럴 줄 알았다고 타박한다.

녀석에게 손을 붙잡힌 채 눈만 휘둥그레 떴다.

 

물이 없어가 다 안 닦이네예.”

 

어쩔 수 없다고 어깨를 으쓱하는 걸 붙들어 껴안았다.

 

첨부터 알았다고!?”

 

대회가 끝나고 개학이 코앞이 3학년 여름.

얼마 전 뜬금없는 쌍방향 고백에 대한 정리는 후배의 반전 고해성사로 끝났다.

 

지는 불안한 게 싫습니더.”

 

녀석이 내 큰 목소리에도 침착하게 떼어내며 말했다.

까만 눈동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근데 선배는,”

 

항상 제게 확신을 주니까…….

말을 흐리며 시선을 비낀다.

다시 껴안으려고 다가서자 어떻게 알았는지 이번엔 뒤로 물러선다.

 

아 왜 피하는데!”

 

길바닥에서 자꾸.”

 

길 아니면 되나?”

 

생각해보고…….”

 

크흑. 아쉽지만 일보후퇴.

것보다,

 

내 땅 파고 히죽대고 별 지랄을 다 떨었는데 이미 알고 있었다니…….”

 

덕분에 나에 대해 생각해준 건 좋지만, 별개로 아득하다.

1년 반을나만 모르고…….

 

뭐어원래 이상했으니 너무 개의치마이소.”

 

진짜 너무하네 히카루!!”

 

꼭 그렇게 진심으로 확인사살 해야겠어?!

손에 얼굴을 묻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지금 내 모습을 그린다면 조그맣게 엉엉이런 의성어가 붙을 거야.

 

근데 글케 티났나. 설마 딴놈들도 다 아나.”

 

히카루와 많이 붙어있긴 했지만 그것도 둘 다 테니스부인 덕이다.

결국 많이 붙어있는 사람들엔 테니스부 전체가 해당되는 거고, 녀석이 모른 척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는 건…….

 

잘 모르겠지만아니지 않을까예.”

 

뜻밖의 깨달음에 속이 타는 가운데 녀석이 답했다.

 

뭐가왜 아니야.”

 

사실 나 빼고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냐, 내 짝사랑?

음울해하는 귓가에 녀석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모를겁니더. 유난히 의식해서 그런기고.”

 

저번 고백일부터 이게 무슨 충격일까.

유난히 의식해서유난히 의식해서저는 유난히 의식해서……

 

히카루우우우우!”

 

틈을 주지 않고 달려들어 껴안았다.

힘주어 껴안고 마구 치대자 질색하며 밀어낸다.

 

!”

 

미친 거 아이다!!”

 

어라. 아까도 이 말 했던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선 껴안고 한 바퀴 구르고 싶지만 그랬다간 미친놈 취급을 면치 못할 테니 겨우 이성을 붙들었다. 당황했는지 암만 더워도 혼자 멀쩡한 놈이 땀을 훔쳐내고 있었다.

 

많이 덥나?”

 

예에.”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듯한 눈빛이 돌아왔다.

허둥대며 주변을 살폈다.

 

빙수! 빙수라도 먹으러갈까!”

 

평생 산 동네에서 허둥지둥하고 있자 녀석이 강하게 손을 붙들어 당겼다.

 

누가 보믄 사고라도 난 줄 알겠네예. 일단 좀 갑시데이.”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쥐 죽은 듯 뒤따랐다.

괜히 입을 놀려 붙잡은 손이 떨어지게 하고 싶지 않은 꿍꿍이였다.

뜨거운 햇볕을 지나, 학교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암도 없네예.”

 

그러게.”

 

대회도 끝났고 연습도 없는 날이니 굳이 여름 더위를 뚫고 여기 올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다. 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는 시원하네.”

 

코트는 뒤로 하고 부실로 기어들어와 엎어졌다.

우리 부실의 유일한 장점은 여름에 볕이 안 드는 그늘이라는 점.

콘크리트 바닥은 모든 걸 잊게 만들만큼 시원했다.

벽에 기대 앉는 녀석 쪽으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내 할 말 있다.”

 

하세예.”

 

걸어오는 동안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 녀석이 답했다.

자리 깔아주니까 부끄럽네.

괜히 머리칼을 뒤집었다.

 

니를혼자 좋아해온 동안.”

 

연습도 없는 날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자고 불러내는 선배를 따라 나오는 녀석.

 

좋아한다고 말할까봐 무서웠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녀석의 시시콜콜한 잡기에 파고드는 사이로 남으려는 욕심으로 만족하려고 노력해왔다. 정작 당사자인 녀석은 다 알고 있었다지만.

 

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 했지만.”

 

입이 마르는 기분이라 입가를 한 번 쓸었다.

열이 오르는 것 같다. 창밖은 무덥고, 더위를 피해 앉은 좁은 공간의 우리 둘.

 

계속나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내 사촌이 진지하게 물었었지. 진짜 짝사랑으로 끝낼 수 있겠냐고.

난 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아니, 할 수밖에 없단 의미였어.

너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우리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내심은, 한편에는 줄곧 말하고 싶고, 꿈꾸게 되고, 그게 무섭고…….

 

좋아한데이, 다신 없을 맨키로.”

 

머리를 긁고 입가를 긁고 가만 두질 못하던 손을 펼쳐 입을 가렸다. 잔뜩 엉망이 되어있을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말한 순간부터 공기를 뺏긴 것 같았다. 이러다 숨넘어가는 건가 정신없는 머리로 생각하는데, 내게 숨을 돌려주듯이 녀석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고맙습니더.”

 

한발짝 다가와서 슬쩍 웃고는,

 

선배가 말하지 않았다면 제가 참지 못했을 겁니더.”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그렇게 말을 흐리는 뒤로 또 그 다짜고짜 내뱉던 사귑시더가 떠올랐다.

단호하고 막힘없던.

그 뒤를 이은 건 거짓말하지 말란 외침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건 무슨 소리였을까?

내 마음을 읽은 듯 히카루가 내 손을 잡고 제 할 말을 털어놨다.

 

그때, 반쯤 헛소리라고 생각했었습니더.”

 

?

그쯤 오히려 더 신경 쓰고 있던 건 저였을겁니더. 선배가 말을 하려나, 말 꺼낼 타이밍인가, 아니면 내가 고백해버릴까, 그럴 타이밍인가.”

 

선배는 선배 생각으로 꽉 차서 암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제 고백이야말로 뜬금없는 일이지예. 말하지 않으면 모를 짝사랑인데, 말할 생각뿐이었으니 빤-하고.

 

여튼 마복합적입니데이.”

 

그때 녀석이 어땠더라. 손 잡은 채 굳어서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었지. 짜증이라도 부리듯이.

그때마냥 녀석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와 또…….”

 

그럼 이제 사귀는 거지예. 눈치 안 재도 되는 거제.”

 

보던 중 가장 초롱초롱한 눈으로 응시하는 모습에 수줍어 뒷목에 얹어뒀던 손을 내려 달려들었다.

 

히카루!!”

 

아이고…….”

 

달려드는 힘에 밀려 뒤로 자빠진 녀석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얼결에 드러누운 녀석의 위에서 눈을 깜박였다.

지금 약간 그 타이밍이지?

 

, 선배!

 

 

.

.

.

 

그래가, ,”

 

[하이고 조-앗것다. 진정해라.]

 

낸 오늘을 위해 살아온기다!”

 

[참나, 초딩 때부터 여자친구 잘만 만난 사람 누구신데.]

 

말은 바로 해라, 여자사람친구데이.”

 

[우와 여론 관리 들어가나? 과거 세탁?]

 

뭔 헛소리야 디진데이.”

 

삐뚜름하게 놀리는 유시와 악악 말을 끊는 나의 대화가 이어졌다.

 

[완전 살맛났네. 얼른 잠이나 자래이.]

 

얼마 떠들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받아주던 유시가 지쳤다며 끊어버리고, 헤죽대던 내 모습이 액정에 비쳤다.

 

.”

 

또 터져 나오는 웃음에 입을 턱 막고 몸을 수그렸다.

으아, 보고 싶어.

 

 

 

 

 

# 9,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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