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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너의 곁에서

너의 곁에서 《2》

 

Say you love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점심시간은 대개 부실에서 보낸다.

부실이라고 해봐야 테니스장 가장자리에 있는 재미없게 생긴 건물이지만.

원래 부원이 적은 부의 특성이라고나 할까(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지금은 졸업한 정신 나간 선배들의 자리는, 1학년 들짐승과 치토세가 차지해서 넓어져 있었다.

 

, 켄야. 니 이기 원래 안 하지 않았나?”

 

켄지로가 내 오른손 팔목을 보고 한 마디 했다.

 

. 너 이제야 발견한 거냐. 이게 말이야…….

 

괜히 밴드를 내려다보고 속으로 으흐흐 웃었다.

 

끼고 살 기다.”

 

자이젠은 킨타로를 적당히 제어하는 치토세 옆에 앉아 무덤덤하게 제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다. 매일 들락거리는 부실은 주변에 시라이시가 가져다 놓은 화분들로 인해 흙냄새, 꽃냄새가 적당히 싱긋했다.

 

켄짱, 켄짱! 밥 묵고 내랑 한 판 치재이!”

 

치토세랑 치면 될 거 아이가.”

 

눈앞에 레귤러가 널렸는데 왜 또 나한테…….

 

치토세!”

 

꼭 나랑 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킨짱은 금세 관심을 돌렸다.

그러다 녀석이랑 눈이 마주쳤다.

 

?”

 

아입니데이. 상당히감독쌔임 닮아가는 것 같으시네예.”

 

너 그거 욕이지.

 

- 굳은 나는 안중에도 없이 도시락 뚜껑을 덮으며 시텐호지 유일의 2학년 레귤러이자 차기 부장님인 녀석은 몸을 일으켰다.

 

벌써 다 먹은 기고.”

 

아침이든, 점심이든 멈추지 않고 패턴을 유지하던 유지가 어? 하고 묻는다.

 

예에-.”

 

도시락통을 정리해 테이블 위에 놓은 녀석의 모습에 나는 서둘러 입에 넣은 연근과 밥을 삼켰다. . . .

 

? 켄짱도 다 먹었네. 오늘은 다들 하이텐션- 이라는 걸까.”

 

코하루의 말을 뒤로 하고 아예 부실에 가져다놓은 칫솔에 치약을 묻혀 들고, 이미 부실을 나간 녀석을 쫓았다.

 

? 켄야 선배, 안녕하십니꺼!”

 

, 좋은 오후-”

 

하나 둘 점심시간을 보내려고 코트로 들어오는 녀석들과 인사를 나누며 잰걸음으로 다가가 녀석의 어깨를 잡고 옆에 섰다.

 

와 먼저 가고 그라노.”

 

다 먹었으니께뭐 맡겨 두셨습니꺼, 뭘 그리 뛰 오시고.”

 

그야 너랑 같이 가려고. 라고 말할 수는 없고.

 

혼자 가믄 심심치 않긋나.”

 

어차피 목적지는 같잖아?

여기저기 도시락 들고 나온 아이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양치실로 들어선다.

딱히 별다른 말이 있는 건 아니다. 치약을 묻혀 온 칫솔로 양치질에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나는 툭 내뱉듯 물었다.

 

, 좋아하는 여자 없제?”

 

……?”

 

막 물로 입 안을 헹구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 거울로 날 응시한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에도 재차 물었다.

 

사귀고 싶은 사람 없는 거제.”

 

뭘 묻고 그러시는교.”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다시 물을 손에 적시는 녀석의 모습에 심장이 얄궂게 요동쳤다.

너 이거 내가 물어보고 싶은데 바보 같아서 얼마나 고민하다 묻는 건지 아냐.

단칼에 대답해줘서 고맙긴 하다만.

 

갑자기 왜? 아니 보통 물어보고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생뚱맞게 무슨. 이상하잖아. 근데 궁금해! 궁금해 미치겠다고! 너 그렇게 소심한 남자였냐. 나 안 소심해! 단지궁금하다고! 걱정 된단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 있을 까봐? 오시타리 켄야 치졸하네. 그게 아니야! 그럼 뭔데. 그냥그냥. 헛된 희망이라도 갖고 싶었다 왜!?!!

 

 

……이런 과정 끝에 들은 대답은 쿨했다.

 

. 왜 아무 것도 아닌데 나만 화끈거리냐고.

 

들이닥친 다른 녀석들하고 섞여 코트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은 아직 이십여 분은 남았고, 한 판 칠까 싶었다. 이 바보들은 이미 우르르 코트를 차지했고.

오늘도 훌륭하게 난장판인 코트는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감독의 난데없는 목소리로 흥이 식었다.

 

선발 집합-!”

 

. 이제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마주 소리친 건 킨타로. 감독은 모자를 한 손으로 누르고 부실 문을 열고 섰다.

 

더 재밌는 얘기 할 거니까.”

 

나야 아직 라켓도 쥐지 않았으니까. 부실에 몰려 들어가고 보니,

 

긴상 없는데예, .”

 

나중에 따로 얘기하면 돼. 어디- 시라이시, 켄지로, 켄야, 이시다, 치토세, 코하루랑 유지, 자이젠, 킨타로. 이상 전국 선발 8명 외 부부장은 여름방학 다음 날 합숙 갈 거니까 스케줄 비워 놔라.”

 

. 이번엔 제발.

 

또 산은 아니지예?”

 

작년, 계곡에서 구르고 벌레에 뜯기고 생채기 나고…… 그 야산 말입니다.

그 산의 추억이 떠오른 건 나뿐만이 아닌지 코하루와 유지는 핼쓱한 표정으로 싫다아~ 하고, 시라이시는 흐린 표정을, 자이젠 녀석은 고개를 돌렸다. 모두에게 외면당한 가운데 영문을 모르는 치토세와 킨타로만 멀뚱하다.

 

산이야 가고 싶지만- 이번엔 아니다.”

 

그리고는 씨익.

 

그 옆 산으로 갈 건까. 너희가 말하는 그 산은 아니지.”

 

, 저희 부 그렇게 돈 없으요?”

 

우리 그래도 나름 전국구 아닌가? 꼭 상금 같이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부 활동 지원금이라든가그런 거 없나? 그래도 요 몇 년 간 계속 전국 출장이었는데.

 

우리 원래 서민 동아리 아니냐. 알아서 살아남아야지. 그래도 이번엔 산장 빌렸다.”

 

또 산과 싸우나. 이제 물고기 잘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엔 새도 잡아볼까.

 

둘 빼고 최소 1년 차니까. 대강 감은 잡히지? 알아서들 준비해라.”

 

그러곤 손을 설렁설렁 흔들며 부실을 나선다. 이 더운 부실 안에 전원이 침울해져서 나갈 생각을 않는다.

 

시라이시, 니는 감독님 안 말리고 뭐 했노?!”

 

이 허당아!!!

 

내도 몰랐다고아 이런…….”

 

뭔데? 뭔데 그라는데?”

 

킨짱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묻는다. 그래. 너 치고 조용하더라, 요 들짐승.

 

야산 가서 생존기 찍는 기다. 준비물 나눠야겠는데. 텐트는 창고에 있, 산장.”

 

과연 합숙 3년차 레귤러.

시라이시가 킨타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척척 요점을 짚었다.

 

식재료는 전날 사게 될 거고옷이랑, 세안용품, 아 수건도 챙기고…….”

 

오른편에 위치한 녀석을 빤히 쳐다봤다. 내 시선에 눈을 맞추면서 물음표를 띄우듯 고개를 움직인다. 나는 심각하게 말했다.

 

패치 사러 가재이. 약도 새로 사고, 반창고도.”

 

제가 준비할 수 있는데예.”

 

됐다. 니 의견 기각이데이. 또 여기저기 붉어져서 죄 뜯길라고.”

 

녀석에겐 꿀이라도 발려 있는 건지. 작년, 그 흔한 모기 외에도 온갖 벌레에 시달려 짜증을 낸 녀석이 기억나 제일 먼저 약부터 챙기자 마음먹었다.

모기 방지 패치랑, 분사형 모기약, , 벌레에게 물리면 바를 약. , 부채도 두 개 챙겨야지. 저 녀석 습한 공기 싫어해서 늘어지니까, 부채질이라도 해주게.

아니 왜 또 야산주둔인데. 얜 에어컨, 못 해도 선풍기는 있어야 한다고.

 

작년까지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감독님과 친분이 있는 어느 인간의 야산 속에 있는 속세와 인연이 닿지 않는 덩그러니 놓인 테니스 코트가 목적지일 것이다. 원래는 멀쩡한(어째서인지 잠겨 있는) 산장 앞마당에서 텐트 치고 살아남지만, 그래도 올 해는 지붕은 있구나.

 

정신 나간 선배들과 지나치게 긍정적인, 덧붙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선생님이 만나면 이런 참사가. 아니 매우 곤란한 전통이 생긴다는 안타까운 현실.

 

제가 할 수 있다니…….”

 

오늘은 안 되고. 시라이시, 장 보러 언제 가노?”

 

부비 챙겨서방학 사흘 전에 갈까, .”

 

시라이시가 빠지려는 기고, 켄짱하며 날 쳐다봤다.

 

식재료 사다가 날 새겠제. 내랑 히카루는 빼도. 대신 그 외 물건은 심부름 하께.”

 

치토세가 멍 때리고 있는 쪽을 턱짓 했다.

 

킨짱은 아니어도 치토세가 있으니 괘안찮것나.”

 

와 선배랑 돌아다녀야 하는 데예.”

 

자이젠이 끼어들었다. 그야 나 혼자 다니면 심심하니까.

라고 대답하면 난 연습 중에 어디선가 날아온 의문의 공에 맞을 지도.

 

움직이는 건 같이 움직이고?”

 

예산 확인 해 봐야 하니께.”

 

즉석 계산은 저 녀석이 있으니까. 코하루를 고갯짓 하자 시라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켄짱은 자이젠이랑만 다니는데? 내랑도 놀아!”

 

킨타로가 어린애처럼 물었다. ‘논다는 달콤한 의미가 아님이 유감이다.

 

. 그래도 선밴데 챙겨야제. 킨짱도 좋지만 일단 히카루부터 싸놔야카지 않것나.‘

 

헤에- 켄짱한테 일 순위는 자이젠이란 기가?”

 

? 말이 그렇게 되냐?

 

킨짱의 기습공격에 당황해 있자 코하루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 기름을 부었다.

 

킨짱, 몰랐노? 둘 방해하믄 안 된데이. 켄짱이 꼬시는 중이라 안 카나.”

 

자이젠이 아깝제. 켄짱, 분발하래이. 모시고 살아야제.”

 

어이 임마 시라이시?!

 

단체로 비식비식 웃으며 작당이나 한 듯 몰아간다. 난 녀석의 눈치를 살피며 버럭 소리 질렀다.

 

뭔 소리고. 꼬시긴 뭘 꼬신다꼬!”

 

과연.”

 

치토세 닌 왜 갑자기 현실에 끼어드는데! 다시 멍 때려 임마!

니들은 장난이래도 난 심장이 쿵쿵댄단 말이다! 그리고 쟤 지금 표정 굳은 거 안 보이냐고!

 

자이젠이 고생이제. 이런 바람둥이 델꼬 살라믄. 역시 아까워.”

 

음음. 유지가 저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니 왜 히카루가 아깝다는 쪽으로 가는데! 니들 친구 맞나!?”

 

내 외침에 유지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켄짱. 양심에 물어보래이. 켄짱만한 카사노바가 어딨다고.”

 

내 여자 안 만난 지 꽤 됐그든?!”

 

그기 우예 믿노.”

 

진짜로! 요 근래는 히카루랑만 놀았다고!”

 

내 말은 삽질이었다. 내 무덤을 판 삽질.

곧바로 킨짱까지 신이 나서 더욱 몰아가기 시작했으니까.

 

진짜 꼬시는 기가!”

 

설마 켄짱이 여자를 안 만날 리가…….”

 

! 니들은 웬수다, 진짜.

 

여태 한 마디도 않고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있는 녀석을 끌고 마의 소굴을 벗어났다. 이러다 일 커져서 자이젠이 나 죽인다고 쫓아오면 어떡해.

근데 넌 왜 말이 없냐. 아예 관심이 없는 거냐.

 

선배.”

 

?”

 

죽어라 랠리를 한 것처럼 진이 빠져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머리를 들었다. 저를 가지고 한창 장난을 쳤는데 어쩐 일로 녀석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 분명 이때쯤 나한테 독설을 해야 하는데.

 

녀석은 내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뜬금없이. 갑자기.

 

와 요즘 여자 안 만나는 데예?”

 

넌 나한테 뭔 대답을 원하니.

 

 

.

.

.

 

[캐서?]

 

뭐라고 했냐고? 하하 꼭 물어야겠냐 하하하.

 

너랑 만나는 게 더 좋으니까. 라고.”

 

멍하게 날 바라보던 자이젠의 눈길이 또다시 떠오른다. 특유의 틱틱거리는 대답 한 번 없이 굳어서 멍-하니 날 쳐다보다가, 홱 고개를 돌린 녀석의 피어싱들만 눈에 들어왔다.

 

외면이냐?! 외면하는 거냐?!

 

꽤나 내가 창피한지 내려다보이는 녀석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기가…….”

 

[그기 내사 봤어야카는 긴데. 얼빠진 얼굴로 저런 숫총각 같은 대답이라니. 얼마나 빙시 같았을 기고. , 웃겨서 말을 못 하것네.]

 

그래 나 빙시다. 그런 거 같다.

분명 엄-청 어이없었을 거야. 아니, 문장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절대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낯간지러움이 아니지.

 

침대에 드러누운 채, 왼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아으아악! 열 오를 것 같아!

 

[깨가 쏟아지는 구마. 에라이.]

 

깨는 무슨…….”

 

나는 정말로 그 녀석이 좋은데. 매일 보는 뚱한 얼굴이 볼 때마다 좋고 사소하지만 차근차근 알아가는 모습들이 좋고 데이트 아닌 데이트에 설레고. 매 순간순간 좋은데.

 

저번엔 부끄러워서 뾰로통해 졌는디, 키스하고 싶은 거 참느라 혼났다 아이가. 도대체 가는 뭐 이리 맘을 쥐락펴락하는지 내사 하루에도 간이 몇 번씩 떨어진데이.”

 

[켄짱.]

 

유시가 난데없이 목소리를 깔고 날 불렀다. 가끔가다 내는,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니 진짜 짝사랑으로 끝낼 수 있겠나.]

 

테니스는 기본적으로 개인 경기다.

팀웍이 아닌 자기조절 능력이, 패스가 아닌 서비스가 중요하다.

난 지극히 평범한 중학생 선수다. 유시 녀석처럼 전체 코트를 살피며 파트너를 커버해주는 통찰력 같은 건 없는. 내 코트 위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건 미묘하게 날 자극하고, 생전 신경도 안 쓰던 문제가 다가오니 귀찮은.

 

근데 내가 왜 자이젠한테 나랑 페어하자고 그랬겠냐고. 좋아서? 같이 있고 싶어서?

맞지. 그것도 맞는데…….

 

그저 그런 부활 선배로 기억되지 않는단 거. 졸업하고도 시시때때로 찾아갈 핑계가 있단 거. 애인문제에 충고랍시고 껴들 만한 위치라는 거. 그거면 된데이. 여기서 더 욕심내믄, 내 다시는 안 보려 할 지도.”

 

속정은 있는 놈이라 어쩔 줄 몰라 받아줄 지도 모르지. 1%의 가능성으로.

근데 그건 아니다. 그런 무거운 건 싫어. 그러니까 이게 제일이다.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있다는 거. 그거에 만족해야 하는데아는데그래도 내심은…….

 

날 좀 봐줬으믄 좋겠는데…….”

 

정말. 녀석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봐준다면…….

 

 

 

 

 

# 2,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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