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uble Glass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지금 시각 새벽 2시.
전여친…… 에게서 문자가 왔을 때 바람직한 반응은 무엇일까.
그것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깨졌던 여자 친구한테서 온 문자에 대한 맞는 태도는.
「타이치나전 화 한번만 해봐도 돼??」
이건 아무리 봐도 술을 마신 것 같은데.
야심한 새벽 2시.
예전에 깨진 애인.
술 먹은 것 같은 문자.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이게 뭔지는 안다. 근데 보통 구남친… 이 하는 것 아닌가…?
그, 왜, 2시 남친이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떡해야 하는 거지…?”
금요일 저녁을 일찍 잠드는 것 따위로 보낼 수 없다고 소파에 앉아 영화를 내리 보던 터라, 잠시 정지시킨 브라운관에선 빌런이 건물을 부수는 장면이 퍼렇게 방 안을 물들이고 있다.
그냥 자는 척 할까. 라인 메시지도 아니라서 읽었다는 표시도 안 뜨잖아.
사실 평상시였다면 이미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이 맞고.
Rrrrrrr…
이도저도 못하고 키 화면만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결국 무시하자고 마음먹던 찰나에 손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손에 쥔 핸드폰에서.
문자 화면은 진동보단 조금 늦게 전화 수신 화면으로 변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허둥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려봤자, 문자 하나 보낼지 말지도 결정 못하던 머리가 새삼 사고를 할 리 없는데.
침을 꿀꺽 삼키며 전화기 모양을 터치하고 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타이치이이? 타이치야? 받았어? 여보세요?]
“치하야?”
[타이치 잘 지냈어? 감기 안 걸렸어? 요즘 잘 지내?]
역시 술 취했구나.
그 질문들 내가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데.
“잘 지냈지. 너는? 잠깐만 치하야. 너 근데 지금 밖이야? 매니저는?”
[응 밖에 있어. 매니저도 밖에 있어. 나 화장실 왔다가… 토했어.]
“술을 얼마나 먹은 거야…. 그래서 내일 일어날 수 있겠어? 내일도 스케줄 있지 않아?”
내 말이 제대로 들리기는 하는 건지. 답도 하지 않고 치하야가 히끅히끅 웃었다.
얘가 지금 제정신 아닌 것 같은데…. 다 큰 애가 오밤중에 술집 화장실에서 웃고 있으면… 대체 매니저는 어디서 혼자 있는 거야?
“치하야 매니저 불러서 집 들어가. 숙취 음료 사가고. 응?”
[타이치 내일 뭐 해?]
“내일?”
멋들어진 동문서답이 이어졌다. 앞 주제와 완전히 관련 없는 화제 전환에도 침착하게 대답하는 건, 이게 하루 이틀이 아닌 습관인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 일 것이다.
새벽 2시에 묻는 ‘내일’이 일요일인지 월요일이 애매한데….
천천히 되짚어보면, 술 먹고 필름 끊긴 치하야가 생각하는 ‘내일’이란 일요일이겠지.
암만 봐도 초저녁에 제정신이 도망간 것 같은데.
“응. 왜? 무슨 일 있어?”
대답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이렇게 묻는 건 뻔하지 않나.
안 된다고 했어야 했는데.
난 또 뭘 그렇게 열심히 생각해서.
홀로 혀를 차든 말든, 치하야가 전화기 너머로 웅얼거렸다.
[우리 다시 만나면 안 돼? 타이치. 한 번만 더 만나면 안 돼?]
“치하야 많이 취한 것 같아. 응?”
[아니야. 안 취했어. 기억 다 한다구. 타이치 내일 된다고 했잖아. 응? 나랑 잠깐만 만나면 안 돼? 자꾸. 자꾸 타이치가 보고 싶어.]
맺는말은 울음까지 섞여 있었다.
어쩐지 나까지 울 것 같아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아니면 전화를 끊든가.
“그래.”
[볼 거야?]
“응.”
[알았어. 내일, 내가 갈까? 타이치 집으로?]
“아니야. 나중에 문자 보내줘.”
그리고 이제 전화 끊고, 바로 매니저 불러서 집 들어가. 자기 전에 숙취해소음료도 먹고.
치하야는 연신 응, 응, 대꾸했다.
눈앞에 있었다면 대답마다 고개를 끄덕끄덕 했을 것 같았다.
먼저 전화를 끊고, 제대로 집 들어가야 할 텐데, 이따 전화라도 걸어봐야 하나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바닥에 내렸다.
마음 같아선 매니저 불러서 애 좀 데려가라고 하고 싶은데, 그쪽 번호는 없으니 뭘 하지도 못하고. 얘는 무슨 술을 이렇게 늦게까지 마셔서.
그리고 왜 보고 싶다고 해서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지.
나도 네가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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