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 [短篇]/단편

[룬의아이들] 도토리 빌라 케이크 소동

도토리 빌라 케이크 소동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01.

 

조슈아 아르님.

 

신분 높고, 권력 있고, 외모 좋고, 머리도 좋은 완벽한 여자들의 백마 탄 왕자님일 그는 오늘 아침도 상쾌하게 시작하고 있다.

 

 

오늘이 휴일이라면 참 좋을 텐데, 막시민은 일어났을까, 아침이 뭐였더라…….

 

 

실상 휴일과 평일 관계없이 과제에 밀리는 일은 없는 그지만 그래도 엄연히 기분이 다른 거다. 대충 씻고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에 내려간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확실히 수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식당에 복작복작하다.

 

조슈아!”

 

오늘 아침은 야채수프에 마카로니 콘샐러드랑 양배추랑 버섯을 넣은 찜. 베이컨 감자조림과 귀리 빵이던가. 다 풀이구만.

바로바로 떠오른 오늘 아침 식단을 평가하며 멍하니 서 있을 무렵 뒤에서 그를 부르는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 루시안?”

 

도토리 빌라- 일행들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보리스가 루시안을 깨우고 그에 막시민까지 어쩌다 어쩌다 깨어버려 다 같이 나온 모양인지뻔한 전개에 조슈아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살짝 미소를 띠우는 걸로 대신했다. 보리스와 고개를 까딱하고, 활기찬 루시안과 인사를 나누고 짜증에 절은 표정인 막시민의 어깨를 툭툭 치며 하하, 인사를 건넸다.

 

막군, 표정이 영 아니네, 여전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들여 봐.”

 

시끄러워 이 빌어먹을 데모닉아. 네 녀석이 한 번 저놈들과 시달리다 새벽녘에 잠들고 다시 일어나봐, 아침에 일어나지나.”

 

말 한마디 한 마디 문장 하나에 짜증이 깃든 막시민의 주위로 저기압 오오라가 무성히 깔려있다.

 

뭔가 이상한데…….

 

조슈아는 뭔가가 빠진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앞에서는 신나게 먹고 있는 루시안을 말리며 보리스가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런 루시안의 옆에서는 게눈 감추 듯 여전히 막시민이 밥 하나는 제대로 먹고 있었다.

 

얘들아!”

 

, 티치엘.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다 했더니 역시 티치엘의 저 목소리를 못 들었다.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아침나절의 티치엘 목소리. 저렇게 환히 부르며 달려오다가-……

 

, 죄송합니다!”

 

-역시나 식당 입구에 웅성웅성한 사람들과 부딪히고 만다. 울상으로 정말 죄송하다는 듯이 인사하는 티치엘에게 괜찮다는 듯 부딪힌 남학생이 손을 젓고는 밖으로 나간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죄송해요- 한 티치엘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막시민, 과제는 다 했지?”

 

…….”

 

막시민은 말없이 일어나 다 먹은 식기그릇을 반납하러 몸을 돌렸다.

 

 

02.

 

있지 보리스, 우리도 이거 만들자. ? ? ?”

 

루시안, 과제는 어쩌고?”

 

그건 내일모레까지니까, 오늘 하루 놀고 내일 열심히 하면 되잖아. ? 우리도 이거 만들자. 나 여태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케이크 만들어 본 적 없단 말이야. 애들 다 불러서 이 기회에 만들어보자. ? 보리스도 만들고 싶지?”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며 애원해대는 루시안을 보며 보리스는 살짝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사실 루시안과 붙어 다니면서 안 난감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엄연히 숙제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저걸 만들고 싶을까.

 

한숨부터 나온다. 게다가 오늘 하루 놀고 내일 열심히는 분명 불가능이다. 루시안이 하루 종일 방에 앉아서 저 머리 썩히는 과제를 할 인내심 있는 인간이 못 된다는 건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분명 징징대겠지. 그러나…….

 

? 보리스, 우리도 만들자!”

 

이미 결정내리고 좋아- 우리도 만드는 거다! 하고 돌아다니는 루시안을 말리기엔…….

 

하아…….”

 

보리스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루시안이 저걸 보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설마 그대로 정말 하자고 할 줄이야. 루시안이 갑자기 케이크 만들기에 버닝하게 만들고 부가적으로 보리스를 곤란하게 만든 것은 바로, 네냐플 내의 여학생 몇몇이 만든 케이크였다. 일반적인 케이크와는 달리 크기도 거대해 둥근 원목 식탁을 가득 채우는 대형이고 생크림이나 장식들도 고급이다.

 

물론 네냐플에 다니는 학생이 심심해서 저걸 만들었을 리는 없고 과제의 일종으로 만든 것이다. 어디까지나- 마법 케이크인 것이다.

그러나 그건 루시안의 관심사가 아니고, 단지 그는 거대한 케이크에 필이 꽂힌 것뿐.

하는 수 없이 그는 좋다고 뛰어나간 루시안을 따라 마을로 재료를 사러 향할 수밖에 없었다.

 

 

03.

 

뭐 하나 되는 게 없냐.

 

 

막시민 리프크네는 이마에 솟아나오는 혈관마크를 느끼며 빠직, 이성이 끊겨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제 새벽까지 과제 못 했다고 징징대는 루시안 때문에 거실에 붙들려서 불편한 자세로 졸다가 드디어 동틀 무렵 다 되서 잠이 들었는데 보리스 자식이 꼬박꼬박 루시안을 제 시간에 깨운 여파로 루시안이 자신까지 깨웠고 그대로 붙들려 식당으로 끌려갔다가 티치엘에게서 잔소리 한 번 듣고 수업 들어가서는 졸다가(자다가) 깐깐한 마법 선생한테 분필로 한 대 맞았고 덕분에 과제가 보통 학생들에게 나온 것보다 하나 더 추가됐고좀 쉬겠다고 티치엘을 피해 도토리 빌라로 느지막이 들어와서 보이는 건…….

 

, 막시민 너도 만들자!”

 

밀가루인지 빵가루인지 허연 가루를 풀풀 날리며 팔을 덥썩 잡고 얼굴 군데군데에 가루를 묻힌 채 끌고 들어가는 루시안과 한숨을 내쉬며 이미 익숙하다는 듯 체념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젓고 있는 보리스. 언제 왔는지 한 자리 꿰차고 딸기로 이상한 걸 조각하고 있는 조슈아놈.

 

그래서지금 케이크를 만들자고?”

 

! 아까 점심때, 여자애들 몇 명이 엄청 크고 예쁜 케이크 만들었거든. 나도 그렇게 거대한 케이크 만들고 싶어! 만들어서 다 같이 나눠먹을 꺼야!”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는 듯이 루시안이 눈을 빛내며 말한다.

 

아 그러세요?

 

그런 그를 보며 막시민은 이성이 한 가닥 더 끊기는 걸 느꼈다.

 

, 그러셔. 근데 그거 아냐 루시안. 그런 케이크는 만들어서 나눠먹는 것보다 볼 때 더 즐거운 법이고 그런 건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며 무엇보다 내가 왜 너희들의 그 계획에 당연스레 참여해서 거대한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무엇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기색인 것 같은데, 그런 건 생각으로 끝날 때 바로 행복한 걸 아냐.”

 

에에- 그런 게 어딨어. 막시민도 만들자! ? 만들 거지?”

 

전혀 주눅 든 기색이 없다. 내가 귀찮게 설명까지 해줬는데 아직도 매달리다니역시 만만치 않은 놈. 설전이고 뭐고 그냥 무시하고 술이나 푸고 올까.

 

막군도 같이 만들자.”

 

생긋,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턱 잡는 건 아마도 조슈아이리라.

 

 

04.

 

세상에, 그래서 이걸 만들고 있는 거라고?”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빌라의 좁은 거실 안은 하얀 가루가 풀풀 날리고 달콤한 향이 진동하는 중이었다.

 

. 가사실에서 만들고 싶었는데, 마법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셔서. 하는 수 없지 뭐.”

 

베이스는 어디서 구우려고?”

 

그래서 말인데티치엘이 구워줘!”

 

?”

 

그 여자애들도 마법으로 구웠다고 했단 말이야. ? 티치엘이 좀 도와줘. 그럼 내가 티치엘은 케이크 더 많이 줄게!”

 

아니그 선배들은 불을 다루는 게 과제의 주요내용이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케이크를 만든 거고더 많이 준다는 건 고마운데…….”

 

이도저도 못하는 난처한 기색의 티치엘이 말을 흐렸다.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괜히 불냈다가 컨트롤이 잘못되면 이 낡은 빌라는 건조한 날씨에 산에 불붙듯 잘 타오를 거다. 그랬다간…….

그런 생각에 거절하려던 티치엘, 그러나 그런 티치엘을 그냥 넘어가줄 루시안이 아니다.

 

티치엘, 도와줄 거지? ? 우리 케잌 만들어서 선생님들도 주고 그러자!”

 

 

 

어쩌다 어쩌다 루시안의 초롱초롱 눈빛과 조슈아의 부탁에 넘어가 같이 거대한 케이크를 만들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신도 신나게 케이크를 굽고 난 뒤. 빌라 밖에서 구운 케이크를 보며 다른 빌라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과제를 잠시 놓고 구경을 나왔다. 다들 도토리 빌라 학생들의 갑작스런 요행케이크 굽기에 놀란 기색이었다.

 

무사히 구워진 케이크. 구워지긴 무사히 됐으나, 맛은 어떨지 아무도 보장 못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조슈아가 만든 맨 윗부분 딸기조각품들은 학생들에게서 먹고 싶다, 라는 욕망을 이끌어냈지만 정작 케이크의 맛을 담당한 건 루시안과 막시민이라는 점. 한가롭게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는 조슈아와 그 옆에서 투덜투덜 뭐라고 하며 코에 붙은 가루를 털어내고 있는 막시민. 폴짝폴짝 뛰며 보리스를 붙잡고 좋아라 하고 있는 루시안을 보며 티치엘은 조금 뒤로 떨어져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일단 먼저 해보였던 선배들처럼 케이크에 간단한 마법을 걸긴 했지만과연 어떨지.

 

, 그럼 먹자!”

 

루시안이 신난 목소리로 칼을 들고 왔다. ‘루시안 조심해서 칼 다뤄야 해라는 보리스의 당부 어린 목소리를 뒤로 하고 푸욱, 거대한 케이크의 외벽을 찌른 루시안이 곧 나름 크게 케이크 조각을 잘라내는 순간이었다.

 

 

 

퍼엉!

 

 

 

귀가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반짝반짝 빛나는 구체들이 케이크의 테두리 윗부분에서 튀어나와 하늘로 솟아 폭죽처럼 터졌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저녁하늘, 네냐플 도토리 빌라 위로 빨강파랑 구체들이 수를 놓는다.

 

와앗! 저게 뭐야? 티치엘이 한 거야?”

 

루시안이 갑작스런 거대한 소리에 귀를 막았다가 케이크에서 폭죽이 터지자 마냥 좋다는 듯 티치엘에게 다가와 묻는다. 그런 그를 보며 티치엘이 머쓱하게 답했다.

 

일단 마법 케이크니까간단한 주문 몇 개를 부가적으로 걸어봤어. 독자적으로 큰 걸 케이크에 걸기엔 내 실력이 아직…….”

 

티치엘의 뒷말을 묻으며 이번엔 불길이 솟아오른다.

 

불이다!”

 

화르륵, 케이크 정중앙에서 솟아 이미 케이크가 아닌 서커스를 보여주는 거대한 케이크와 마냥 좋아하는 루시안을 보는 티치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마치 큰 실수를 깨달은 듯한 기색에 조슈아가 살짝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어쩌지, 연쇄반응을 생각지 못하고 마법을 걸었어. 그러니까그냥 예쁘게 즐길 만한 마법 몇 개를 했는데만약 마법이 겹치면…….”

 

창백한 안색으로 중얼거리는 티치엘의 띄엄띄엄 말을 머릿속에서 해석한 조슈아가 간단하게 다시 물었다.

 

폭발한다는 거야?”

 

……그렇겠지?”

 

 

우르릉- 콰앙!

 

 

둘의 말을 잇듯, 다들 감탄하며 구경하고 있던 케이크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파편이 튀기 시작했다.

 

 

 

05.

 

이게 뭔 소란이래니. 정말 미안해 얘들아.”

 

하하난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이 이렇게 끝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하더라.”

 

…….”

 

히잉이게 뭐야, 거대한 케이크가…….”

 

젠장맞을.”

 

각자 한 마디씩을 내뱉으며 모인 그들은 한창 뒷수습을 하고 선생님들께 불려가 혼나고 온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티치엘과 해탈한 듯한 조슈아,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는 보리스, 케이크가 사라진 것만 아쉬워하는 루시안과 낮게 빌어먹을, 젠장, 중얼거리는 막시민. 사건사고의 주범이며 교수들도 다 안다는 유명인사 자리를 입학서부터 꿰찬 이들이다.

 

된통 혼나고, 뒷수습 하고, 앞으로 다른 학생들의 웃음어린 시선을 받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건 다들 마찬가지인지 조슈아의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다섯의 안색이 영 아니다. 한숨만 쉬고 있는 사이에 조슈아가 아, 하며 처음 빌라에 들어올 때 가져온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뭐야?”

 

로글랑탱씨네 파이. -까 오전에 잠깐 마을로 다녀왔을 때 사왔어.”

 

배고픈데 잘 됐다!”

 

언제 우울했냐는 듯, 루시안이 제일 먼저 파이를 집어간다. 그런 루시안의 모습에 적개심을 느낀 건지 막시민이 잽싸게 다른 파이를 하나 집어갔다. 곧 다들 너도나도 파이를 입에 우물거리며 개운하게 입 안을 물들이는 레몬향을 음미했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어.”

 

참 색다른 경험이었지.”

 

나도 재밌었어.”

 

…….”

 

루시안을 제외한 네 명이 각자 우물거리며 한 마디씩 했다.

 

, 나름 재밌었지. 맞아 색다른 경험이었어. 역시 음식가지고 장난 하면 안 돼. 난 나중에 케이크는 만들고 싶지 않아. 다음엔 좀 더 제대로 된 케이크 요리법을 읽어올게.

 

각자 한 마디씩 소감을 나누는 가운데 침묵만 지키며 파이를 우물거리는 루시안을 보며 보리스가 낮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루시안?”

 

분명 제일 재밌었다느니, 아쉽다느니, 그래도 좋다느니, 제일 폴짝거릴 녀석이 침묵만 지키며 가만히 있자 조슈아와 막시민도 의아한 듯 했다. 고개를 갸웃한 티치엘도 살며시 루시안에게 말을 건넸다.

 

루시안저기, 왜 그래?”

 

…….”

 

어느새 좌중이 루시안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가운데, 루시안이 해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엔 우리 파이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