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미소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01
“나야, 여기서 뭐해?”
회색 머리, 잿빛 머리, 소녀는 뒤를 돌아본다. 환한 미소를 품은 그가 서 있다.
동료, 보호자, 동행인, 수식어는 여러 가지.
.
.
.
.
고양이가 없어졌다.
그녀가 어릴 때 주워와 기르는 고양이 새끼는 아직 고만고만한 크기로, 그녀를 꽤나 잘 따랐다.
사라진 걸 알아챈 건 마을에 도착해서였다. 워낙 조용히 다니고, 항상 주변으로 떨어져서 오기 때문에 그녀는 같이 이동하는 용병 무리의 싸가지 없는 남자에게 이목을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
사라진 고양이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한 기분에 그녀는 일단 무리를 이탈했다.
이탈이랄 것도 없었다. 마을에 도착한 지금은 잠시 그녀에게 자유가 주어진 상태이니까.
걷는다.
그녀를 잘 따르던 고양이다. 가족 없이 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는 그녀의 길동무이자 말동무고, 친구이자 가족이다.
서로에게 몸을 부비며 애정을 표시하는 그들만의 행동은 서로 의지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한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은 고양이가 그녀보다 훨씬 작지만, 다 크고 나면 그래도 묵직한 느낌은 생길 거다.
그렇게 되면 가끔씩 안더라도 무겁겠지? 물론 따뜻하겠지만.
마을 주변을 걷지만 보이지 않음에 그녀는 마을 옆 숲을 쳐다봤다. 음울하고, 어둡고, 습해 보이는 숲이 영 기분이 좋진 않지만,
고양이가 그리로 갔을지 모르니 걸음을 당겼다.
02
“나야 어디 갔어?”
주홍, 혹은 갈색 장발- 을 묶은 건장한 남자가 묻는 말에 술병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가 되레 흠칫해서 머리를 들어올렸다.
“어, 모, 몰라.”
그런 그를 유심히 보곤 씩 웃으며 그는 한쪽 손을 올려 보이며 모른 척 사라져준다.
회색 소녀는 파란 터번을 다시 묶으며 숲에 서 있었고, 그녀를 찾는 남자는 마을 주변을 돌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한 소녀가 자신의 패밀리어를 찾기 위해 숲을 바라봤듯 마을에서 소녀를 발견하지 못한 남자는 이내 숲으로 걸음을 향했다.
어두침침한 숲은 나무 하나하나가 옹기종기 모여 빽빽했다. 햇빛이 드문드문 들어와 낮임에도 캄캄한 숲에 남자는 한기를 느끼며 걸음을 빨리한다.
갑자기 바스락, 하는 소리에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예리한 눈으로 사방을 훑었다. 숲에 뱀이 있을지, 커다란 짐승이 살지 모를 일이다.
다만 위안이 되는 건 바로 옆에 이런 숲이 있는데도 마을이 있으니, 그리 위협이 될 만한 짐승이 없으리란 것이다.
다시 한 번 가볍게 바스락, 하는 소리가 나고 짐승이 웅웅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뜻, 그의 창을 빼든다.
빽빽한 나무에 시야가 확보되지 못한 게 걸렸다. 발자국 소리를 죽여 이동하는 찰나에 북실북실하고 둥글둥글한 무언가가 그의 머리위로
뚝,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긴장한 상태에서 괴생명체를 머리에 받은 그가 바로 털복숭이를 집어 들어 던진다.
03
캬앙, 하며 날아간 괴생명체, 고양이 새끼는 공중에서 반 바퀴 돌아 고양잇과 특유의 균형감각으로 사뿐히 착지했다.
그 말똥말똥한 눈을 보며 시벨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돌아봤다.
역시나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그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어두운 숲속에서도 영롱한 자색 눈동자.
.
.
.
“그래서 호랑이 찾으러 갔구나.”
시벨린은 어깨를 툭툭 털어 묻은 나뭇잎을 떨궈냈다. 회색 소녀 나야트레이는 호랑이를 껴안고 담요를 두른 채 그를 빤히 바라봤다.
한 바탕 걱정의 말을 쏟아낸 뒤에 상황파악을 끝낸 시벨린을 보며 나야는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벨린은 그런 그녀를 보고, 자신보다 한참 작은 작은 소녀의 머리에 손을 올려 툭툭 쳤다.
“……?”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에게 피식 웃어주며 툭툭 두들기던 손을 펴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는다.
“놀랐잖냐.”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건지, 붕 띄워놓은 건지 모를 상황에 나야는 기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온통 헤집어진 머리카락에 손을 올렸다.
시벨린은 그녀를 놔두고 먼저 걸음을 나섰다. 뒤에 남은 나야는 뜬 머리카락을 꾹꾹 눌러 내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같이 가, 라고 말하진 않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시벨린이 걸음을 늦추고, 이내 보조를 맞춰 사람 둘과 고양이 하나는 마을로 들어섰다. 별이 총총한 여름의 초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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