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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短篇]/단편

[월야환담] [린건] 제과제빵 동아리

Eat 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사람이 우글거리는 것 따위 질색이다의 푸념 섞인 생각을 하며 세건은 가방에 책을 집어넣었다.

학교에 나오기 시작한지, 고등학교 1학년 새내기 생활을 시작한지 두 주 남짓이다.

공부엔 흥미도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고등학생씩이나 되었으니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교과서를 집어넣고 교실을 나가려던 세건은 자신을 부르는 외침에 이를 악 물었다.

 

세건, 어디 가!”

 

저 똥개 자식. 세건은 다시 빠르게 걸음을 내딛다가 뒤에서 무식하게 누르는 힘에 발을 멈췄다.

 

개자식, 안 내려 와?!”

 

등 위에서 헤실헤실 웃으며 신체무게를 세건에게 퍼붓고 있는 갈색 머리의 소년은 흥 하며 코웃음 쳤다.

 

비켜주면 가버릴 거잖아.”

 

그걸 말이라고세건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갈색 소년, 서린은 웃는다.

 

뭐 어때서 그래어차피 집에 가서 공부 할 것도 아니잖아, 새침하게 부끄러워 하기는.”

 

뭐가 어째? 공부 아니어도 할 것 많거든? 비켜 멍청아!”

 

에이멍청이라니 역시 새침데기! 으악, 무슨 짓이야 세건!”

 

말 한 마디하고 황천길 갈 뻔한 서린이 서슬 퍼런 세건에게 투덜거렸다.

 

동아리 가입이 그렇게 욕 먹을 짓인가? 저러니까 친구를 못 사귀지, 정 못 하겠음 내년에 다시 편성 할 때 탈퇴하라고 했잖아. 이미 가입한 걸 땡땡이치려 하다니세건 무책임 해.”

 

청산유수로 줄줄 읊는 서린의 말에 세건이 폭발하듯 외쳤다.

 

아 그 좋은 부활 너나 하라고! 책임? 지금 나한테 책임의식을 물었냐? 네 멋대로 가입시킨 거잖아! 그리고 활동 안 해서 잘리겠다는데 네 녀석이 무슨 상관이야!”

 

이야, 세건 오늘 말발 좀 산다~”

 

한 귀로 흘려들은 서린의 대답에 봄기운이 넘실거리는 5반 교실은 세건의 큰 소리와 함께 강렬한 스파크가 터졌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학기 초. 많은 선배들이 반마다 들어와 동아리를 홍보할 때 초록소년은 심드렁히 잠을 잤고 갈색 소년은 반짝반짝한 눈으로 열심히 경청했다.

 

그리고 그 갈색 소년은 필이 팍 꽂히는 동아리를 발견했는데, 그건 여러 예쁜 과자와 케이크를 만든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한 제과제빵 동아리였다.

동아리 가입을 하면서 친구가 떠오른 갈색은 제멋대로 이름을 기재해 버렸다.

 

이러고 나한테 적극적인 동아리 활동을 요구해? 너 미쳤지?”

 

내가 안 죽이고 넘어간 것도 많이 봐 준 건데 한 술 더 떠? 날카로운 세건의 눈초리에도 서린은 마냥 싱글벙글 이다.

 

일단 한 번 가 봐, ? 이미 가입된 걸 어떡해~”

 

더없이 즐거운 얼굴색에 그다지 바른 학생이 아닌 세건의 심기가 꼬였다.

 

웃기지 마, 동아리 따위 관심도 없고 그런 거 할 생각도 뭣도 없어. 그딴 빵 만들기나 하고 있을 시간 없다고.”

 

뭔 일이 그렇게 바쁘다고 튕겨, 세건.”

 

세건에게 그새 한 대 맞은 서린이 입을 부루퉁히 하며 대꾸했다.

? 튕겨?

 

오늘 죽여 버린다, 이 빌어먹을 멍멍이!”

 

세건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자아, 거품기를 들었을 때 조금 뾰족한 크림이 될 정도로만 하는 거야.”

 

동아리 강사라는 여자가 자신의 볼을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확 엎고 싶지만 그래도 음식엔 죄가 없음을 새기며 세건은 계란을 꾹꾹 눌렀다.

 

옆에선 서린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하얀 앞치마에 얼룩까지 묻혀가며 그새 안면 튼 부원들과 떠들고 있었다.

조리실 안에는 과자 반죽의 달콤한 향이 떠돌아 절로 코를 킁킁거리게 만들었다.

 

그 달콤함 가운데 혼자 음침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세건을 조리실로 끌고 온 장본인인 부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바라봤다.

그래도 손재주는 있는지 용케도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제과기 망정이지 원예부라도 들었으면 가엾은 식물은 저 살기에 당장 죽을 것처럼 보이게 사납다.

 

서린 역시 흘끔흘끔 세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죽고 싶으면 지금 나 건드려라하는 저 분위기. 정말 음침하다.

도대체가 인상 펼 생각은 전혀 없는 건가……. 서린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물론 세건이 생긋 웃으며 즐겁게 참여 할 거란 미친 생각은 절대 하지도 않았지만,

이사카도 이젠 그냥 집중하고 있는데(서린에 의해 가입 당하고 서린에 의해 잡혀 왔다) 하여간, 편하게 살 줄 모르는 사람이다.

 

서린이 그렇게 자신을 열심히 되새김질 하고 있다는 건 전혀 모르는 세건은 이 상황을 만든 서린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를 담아 섬세하게 반죽을 했다.

과정 하나하나 세건의 분노의 정성이 들어간 저주받은 과자는 동아리 선배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예쁘게 잘 구워져 나왔다.

 

곧 세건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과자를 맛있게 구워 낸 이사카와 세건은 동아리 강사와 선배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둘은 아랑곳 않고 걸음을 옮겼다.

영 부드럽지 않은 자신의 과자를 먹고 떫은 표정을 짓고 있던 서린은 둘을 반겼다.

 

와아! 둘 다 잘 만들었다~ 냄새도 좋고~ 하나씩 먹어 봐도 돼?”

 

하나 뿐인 동생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이사카가 다정히 권했다.

 

집에 가서 다 줄게, 간식으로 먹을래? 먹어줄 거지, 롯시니?”

 

자신과는 다르게 러시아의 외가 쪽에서 더 오래 머물었던 이사카는 롯시니라 부르는 것을 더 편해했다.

 

. 정말 맛있는 냄새 난다. 세건 의외네? 다 망쳐 버릴 줄 알았는데.”

 

서린은 세건이 차분히 포장 유산지에다 자신이 만든 과자를 싸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다 처먹어.”

 

세건은 냉정하게 그의 과자를 서린에게 던졌다. 가까운 거리에서 아이쿠, 하며 받아낸 서린은 정말? 하며 헤실헤실 웃는다.

 

흐흥그럼 이거 다 내가 가진다? 저녁에 게임 하면서 먹어야지.”

 

많이 먹고 쑥쑥 자라야지, 롯시니.”

 

이사카가 옆에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라본다. 조리실을 치우고 집에 가는 길 내내 서린과 이사카, 세건까지 셋은 미소 짓고 있었다.

 

이유는 달랐지만 그 해사함만은 길을 걷던 뭇 여성들의 뺨을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끄아아악! 배 아파!”

 

형제 두 명이 사는 아파트 5층 왼쪽 집에서 소년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가롭게 소파에 누워 이사카의 과자를 다 먹고 온라인 게임을 하며 세건의 과자를 주워 먹던 서린은 벌떡 일어났다가 발이 꼬여 풀썩 엎어졌다.

부글부글 끓는 뱃속이 장이 꼬이는 것처럼 아프다. 라이칸의 소화기관에 이만큼의 타격을 주다니, 어떻게 된…….

 

으우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 상태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서린에게, 욕실에서 세수를 하다 놀라 나온 이사카가 다가갔다.

 

롯시니! 왜 그러는 거야?”

 

몰라아아!”

 

그리고 서린은 다시 바닥을 구르며 나 죽는다며 징징거렸다.

배탈이 난 건가 싶지만 저녁이야 같이 먹었으니 그게 원인인 것 같진 않았다.

이사카는 몸부림치는 서린을 앞에 놔두고 생각에 빠졌다.

 

.”

 

이사카의 눈에 과자봉지가 띄었다. 벌써 포장 한 개는 털려 종이만 굴러다니고 나머지 하나는 먹다 만 과자가 빼꼼 보였다.

 

설마 세건이 과자에 장난이라도…….

 

자신 역시 사념을 부어 정성껏 반죽했음을 잊어버린 이사카는 일단 세건이 준 과자에 혐의를 부여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과자에 쓰인 재료가 문제가 있었을 수도흐음

 

이사카가 그렇게 고민하며 추론하는 동안 서린은 고통에 찬 구르기를 반복했다.

 

 

 

 

, 후아아아죽는 줄 알았네…….”

 

결국 해결책이 보이지 않자 이사카가 주술적인 힘을 씌워주었고, 그 틈에 회복력을 끌어올려 정상의 상태로 돌아온 서린은 마라톤이라도 한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서린에게 물을 가져다 준 이사카는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뭐가 문제지? 식재료가 나빴다 해도 우리한텐 효과가 없었어야 맞는데.”

 

적어도 서린이 이렇게 미쳐 날뛸(?) 정도의 타격은 없었어야 했다. 서린은 의심의 낯을 한 채 말했다.

 

분명히 이건 음모야. 범인은 세건일 거야. 동기가 확실해.”

 

적어도 자신이 세건에게 암살당할 여지가 있음은 인식하고 있는 서린을 보며 이사카는 한숨을 쉬었다.

 

잘못한 건 아나 보지?”

 

, 난 솔직히 그게 왜 잘못인지 인정할 수 없는 걸. 단지 세건이에게 동기가 충분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뿐이야.”

 

서린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아? 이사카는 절로 나오는 비소를 애써 막지 않았다.

 

결국엔 세건이도 잘 했잖아.”

 

나만 죄인 취급을 하다니. 서린이 변호하는 것에 이사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죽어라 싫다고 버티는 애는 왜 가입시키고 그래? 그리고 내내 죽을상이더만 뭘 잘 해.”

 

이사카의 핀잔에 서린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세건은 항상너무 무거워 보여. 마치 자기 자신한테 죄를 부여 하는 것 같아. 힘들고 무거워 보여, 그래서뭔가 좀 성취적인 걸 하면 조금 즐겁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서린은 탁자 위 세건이 준 문제의 과자를 들어보였다.

 

작품은 이거지만.”

 

속없는 미소를 짓는 서린을 이사카는 빤히 바라보았다.

 

바보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