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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短篇]/테니스의 왕자

[토리시시] 31일과 30일 上

  Someone love you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해저 동굴의 유골에 대한 기사와 고화질의 사진을 꼼꼼히 보고, 광고가 수록된 뒤의 몇 장을 넘긴다. 36분 지났다. 잡지는 다 읽어버렸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뭘 할까.

바로 이전에 들었던 수업이라도 복습할까.

 

그를 살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잡은 자리는 햇빛이 머리에 닿는 위치다. 덕분에 정수리 부분이 따끈따끈한 게, 손 대보지 않아도 알겠다.

소리 나지 않게 일어서면서 지나치는 시선인 것처럼 위장해 슥 쳐다본 그는, 여전히 펼친 책에 몰입해 있는 채였다.

그의 주변엔 포스트잇 두어 개가 붙어 있는 노트 한 권, 헝겊 필통, 샤프, 형광펜, 읽고 있는 서적과, 참고 자료인 듯 펼쳐져 있는 책 한 권이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잡지를 도로 가져다두고, 그는 자리로 돌아왔다.

 

가방에서 필기구와 책을 꺼내든다.

첫 장 하단에 단정한 필체로 적혀 있는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문화경영학과 오오토리 쵸타로

 

교양 과목의 교재를 꺼내 펼치고,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본다.

부드러운 은발과 부드러운 인상, 부드러운 성격의 온유함을 외적 및 내적으로 갖춘 그, 오오토리는 도서관과 친하기는 했지만 도서관에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평균의 대학생들보다 도서관을 가까이 하는 학생에 불과했다.

이렇게 꼬박꼬박, 매일 출석하다시피 들리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를 붙들어놓은 건 단 한 번의 시선이 훑은 좌석에 앉아있던 한 남자였다.

 

갈색 머리카락이 삐죽삐죽한, 눈매가 단단한 한 사람을 보고, 오오토리는 그에게 가는 호기심, 혹은 호감, 어쨌든 망라하자면 관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가 뭘 하는지 관찰하고, 그의 도서관 패턴을 알아내고, 그의 패턴에 맞춰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찾아드는 것.

그것이 오오토리의 이 한 달간의 시간이었다.

 

5일 중 4일간, 도서관에 들어오는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그는 언제든 오후 10시까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 한 번 나누어보지 않은 사이지만 오오토리는 그의 이름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저보다 한 살 많은 선배라는 것도 알고, 어느 학부 학생인지도 알고 있었다.

찾고자 마음먹은 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던 그는 인문대학의 인기남이었다.

 

역사학과 시시도 료

 

또한, 교내 테니스부의 주전 멤버라고도 했다.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교내에서 활발히 신입생들을 부서로 끌어들이기 위해 홍보 활동을 할 때 지나친 테니스부는 그들의 수상실적을 증명하는 트로피로 부스를 도배하다시피 한 모양새였다.

듣기로는 체육 관련 학과도 없는 주제에 테니스부가 유난히 강세라는 모양이었다.

 

그의 질문에 열을 올리며 시시도에 대해 온갖 인적사항을 읊던 여자애는 시시도 료가 테니스부의 웬만한 경기엔 우선 출전하는 레귤러 멤버라는 사실도 토해내다시피 줄줄 읊어주었기에 오오토리는 그의 사내다운 손마디나 녹록지 않은 체형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 말 걸어보고 싶다.

또 다시 조용하니 서서 그를 응시한다. 생수병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넘기는 그의 눈은 그 와중에도 책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의 집중력은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어지간한 메시지는 무음 처리 해놓았는지 그를 지켜보는 동안 그가 핸드폰을 확인하는 걸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이해를 못 하겠는지 잠시 허공을 응시하거나 고개를 기울일 때는 있어도 넋 놓고 다른 생각에 빠지는 건 본 적이 없다.

 

,”

 

, 죄송합니다.”

 

부딪혔다.

그를 보다가 무의식중에 한 걸음 뒤로 움직이며 지나가던 학생을 본의 아니게 쳐버린 오오토리는 금세 당황해 여학생에게 사과했다.

그저 지나가는 길이던 여학생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 갈 길로 돌아섰다.

오오토리는 머쓱하게 도로 돌아섰다.

 

…….”

 

…….”

 

방금 전까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사람과, 그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쳐버렸다.

정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오오토리는 시선을 돌리지도 못 하고 우뚝 멈춰 섰다.

 

놀란 얼굴 그대로, 당황한 태도 그대로, 오오토리는 눈을 빤히 마주해오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불퉁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시선을 먼저 돌려야하나, 가볍게 목례하고 넘어갈까, 그렇게 혼자 입술을 달싹이던 그에게 상대방이 먼저 제스처를 취해왔다.

그러니까,

 

나와?”

 

이런.

아무래도 그냥 마주친 시선이 아닌가 보다.

 

 

 

 

역사학과 2학년 시시도 료다.”

 

. 문화경영학과 1학년 오오토리 쵸타로입니다.”

 

도서관을 벗어나 로비에 선 두 사람이 통성명을 했다.

오오토리는 여전히 곱지 않은 표정인 바로 그 사람을 앞에 두고 제 이름을 밝혔다.

먼저 오오토리를 불러낸 당사자는 이름을 밝힌 후, 뺨을 긁적였다.

스트라이트 무늬의 셔츠와 면바지 차림.

밖에서도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밖에서는 늘상 쓰는 모자를 실내에서 쓴 적은 없는 그의 갈색 머리.

 

, 그러니까.”

 

뭐라 말을 못 찾는 듯 주저하는 그에게 오오토리는 전매특허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 선배.”

 

, 너 왜 맨날 나 쳐다보냐?”

 

질문하는 자신조차 질문이 쑥스러운지 내뱉어놓고 한숨을 내쉰다.

혹시 오해라도 할까 싶었는지 시시도가 중얼중얼 부연 설명을 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시선이 자꾸 느껴지는데 꼭 너란 말이야. 처음엔 우연이겠거니, 착각인가, 하다가 아는 사람인가? 생각도 해봤는데 전혀 모르겠고. 근데 꾸준히 보고 있잖아, .”

 

이점만은 확신한다는 듯 그가 단호하게 말을 끝맺었다.

오오토리는 미소 그대로 조금 굳었다.

 

그래서 뭐, 진짜, 나 아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니까 좀 묻고 싶어서…….”

 

무안한지 그가 말없는 오오토리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전혀 입 뗄 생각을 않고 있는 그를 보곤 무뚝뚝하게 말한다.

 

, 뭐라고 말 좀 해…….”

 

. 그의 말에 놀라 잠시 생각을 정지한 채로 있던 오오토리는 자신이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얼른 입을 열었다.

 

, 알고 계셨네요.”

 

태연한 목소리로 그의 짐작이 착각이 아님을 확인해주는 말에 시시도의 표정이 또 변했다.

이번엔 조금 황당하고,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 , 아는 사이라면 미안. 난 전혀 기억이 안 나서.”

 

아뇨, 아는 사이 아니에요. 초면에 죄송합니다, 시시도 선배.”

 

그럼 왜…….”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시시도가 더없이 정중하게 대답하는 오오토리를 바라보았다.

오오토리는 이 상황에도, 그와 말을 나누게 되었다는 게 더 즐거운 듯 부드러운 표정인 채였다.

 

한 달 전에 도서관에서 처음 뵙고 계속 출입하며 지켜본 게 맞습니다. 이유는, 처음엔 선배가 눈에 띄어서 자꾸 찾은 것입니다만 후엔 안면을 트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정리하자면 아는 사이 하고 싶은 마음에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되나.

시시도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직구로 대답하는 키 큰 후배를 올려다보며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다시 한 번 뺨을 긁적였다. 간지러워서 행하는 행동이 아니라 멋쩍음을 표출하는 행동이었다.

 

그럼 따로 본 적은 없는 건가?”

 

. 도서관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시시도 선배 얘기는 주변에서 많이 들었습니다만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은 욕심에 따로 찾아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그렇다는데 뭐라 하랴. 시시도는 으음,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 난 사교성이 좋은 편도 아니고, 주변에 많이 신경 쓰는 편도 아니라서. 나 때문에 도서관에 있었던 거냐?”

 

.”

 

그럼 진즉 말이라도 걸지…….”

 

거의 한 달은 본 오오토리를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오오토리는 빙그레 웃었다.

눈이 반짝반짝한 모습이었다.

 

아니요. 시시도 선배 덕분에 도서관에도 성실히 출입했으니까요.”

 

그렇다면야 그런데……. , 그래. 여튼 오오토리라고?”

 

쵸타로라고 불러주세요.”

 

어이, 빠르다?”

 

, 죄송해요. 제 쪽에서만 너무 친숙하게 생각하고 있네요.”

 

미처 생각을 못 했어요. 오오토리가 괜찮다는 듯 다시 한 번 웃었다.

소리 없이 웃는 모양에 시시도가 불퉁한 표정으로 허리에 한 손을 짚었다.

이내 한숨을 내쉰다.

 

그래. 쵸타로.”

 

괜찮아요, 선배.”

 

그래그래, 쵸타로.”

 

감사합니다.”

 

불러주겠다는데 더 사양했다가 그가 접어버릴까 걱정된 오오토리는 더 사양하지 않고 순수하게 웃었다. 잘생긴 얼굴이 활짝 웃는 모양새가 더없이 순해서 시시도는 혀를 찼다.

 

과는 다르지만자주자주 보자. 밥이라도 같이 먹을래?”

 

정말요?!”

 

목소리가 순간 커졌다.

통성명까진 욕심내고 상상해봤어도 밥을 먹는다거나, 대화를 한다거나 그런 구체적인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던 오오토리는 화색이 도는 얼굴로 외쳤다.

시시도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괜찮으면.”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

 

아까 직구로 따박따박 대답하던 모습과는 달리 멍청하게도 보이는 모습에 시시도가 씩 웃었다. 반면 기쁜 마음에 횡설수설한 오오토리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나가자. 여기 더 있지 말고.”

 

도서관 입구 근처의 로비는 사람이 많았다.

시시도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얼른 쫓아나가는 오오토리의 얼굴이 어찌나 환한지 주변 사람들이 한 번 돌아볼 정도였다.

개중 오오토리를 아는 이들은 애인 생겼나?’라고 생각 한 번 할 정도로 평소의 오오토리보다 훨씬 텐션이 높은 게 훤히 보였다.

 

가리는 음식 있냐?”

 

딱히 없어요.”

 

으음…….”

 

적당한 식당을 생각하는지 시시도가 미간을 살짝 좁힌다.

그의 옆으로 선 덕에 바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그를 응시하는 오오토리에게, 시시도가 말했다.

 

또 쳐다보냐.”

 

저도 모르게. 죄송해요.”

 

됐어.”

 

시시도가 풀 죽은 채 대답하는 오오토리에게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닳지 않을 정도로만 봐라.”

 

나름대로 섞인 유머가 의미하는 건 허가다. 오오토리의 표정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시시도를 따라 걸으며 연신 그를 쳐다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 한 마리다.

학교 정문을 나오며 식당 생각을 끝낸 시시도가 물었다.

 

언제부터냐?”

 

?”

 

나 본지 얼마나 됐냐고.”

 

정확하겐 난 모르겠거든. 뒤늦게야 알아채기도 했고,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고.

시시도가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오오토리는 잠시 도서관 출입이 급격히 증가한 최초의 시기를 떠올렸다.

 

오늘로 딱, 31일째네요.”

 

한 달이나 됐잖아.”

 

. 딱 한 달.”

 

징하다 너……. 그냥 말을 걸고 말지. 그걸 계속 쳐다보고 있었냐. , 내가 오늘 안 불러냈으면?”

 

시시도가 묻는다.

오오토리는 해맑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계속 쳐다봤겠죠.”

 

위험해. 너 스토커 경력 있냐.”

 

전혀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해맑다. 전체적으로 오오토리의 분위기는 화사했다.

 

선배.”

 

?”

 

오오토리의 부름에 시시도는 고개를 조금 올렸다.

키가 한 190은 될 것 같네, 이 자식. 가까이에서 보니 더 커.

키는 크지만 인상이 순해 오히려 친근감을 갖게 하는 후배를 보고 있자니 오오토리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이름 다시 한 번만 불러주세요.”

 

……뭐야. 지겹도록 들을 거잖아, 앞으로.”

 

그렇지만, 아직 안 믿겨서.”

 

이렇게 빨리 말 나눌 수 있을지 생각도 못했거든요.

오오토리의 말에 시시도가 에휴, 한숨을 쉬었다. 몇 번째지. 에휴.

 

………쵸타로.”

 

!”

 

……그래, 쵸타로. 가자. 일단 가자고.”

 

, 시시도 선배.”

 

학생들이 오가는 길거리. 푸르게 자란 느티나무를 지나치는 한 선배와 한 후배는 틱틱대는 것과 웃는 것을 주고받고 있었다.

 

 

 

 

오오토리 쵸타로가 시시도 료를 바라본지 31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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