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erry cak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과거에서 돌아온 엘이 앞으로 있을 노엘이란 이름의 전직 신을 만나기 전의 한가로운 정령계에서 너무나 따분한 일상에 축 늘어져 있을 때였다.
오늘도 여전히 할 일을 찾지 못한 엘은 물을 가지고 혼자만의 예술 활동을 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근래 유희를 다닌다고 바빠 가끔 정령계로 돌아왔을 때만 짧게 이야기 하던 트로웰이 물의 영역에 찾아온 것이다.
반가움에 엘은 소년의 모습을 한 트로웰에게 달려가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트로웰!”
“우와 굉장한 환영이네. 심심했구나, 엘?”
트로웰은 고개 숙인 채 뺨을 부빗거리는 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요즘 엘이 너무 심심해 하는 것 같아 엘과 시간을 보내려고 유희를 정리하고 왔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잘 한 것 같았다.
사람 좋아하고 대화 좋아하는 엘이 정령계에만 있는 건 큰 곤욕이었을 것이었다.
미네가 함께 있긴 하지만 좀 조숙한(?) 편인 미네는 엘에게 좋은 상담상대가 되어줄 수는 있어도 시간 때우기 수다를 나누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상대니 말이다.
여간 심심한 게 아니었던 듯 엘은 트로웰을 정말 반갑게 맞았다.
미네는 잠시 어디론가 간 모양인 듯, 보이지 않았다.
엘은 붕붕 뜬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어쩐 일이야?”
“엘 보려고 왔지. 뭐하고 있었어?”
“그냥 놀고 있었어. 나도 그냥 인간계에 돌아다니기라도 할까 봐. 너무 할 일이 없어.”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엘을 보며 트로웰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깜짝 제안을 했다.
“나 어제부로 유희 정리 했거든. 엘 나랑 인간계 여행이라도 할래?”
그 말에 엘의 안색이 밝아졌다. 반짝반짝 흥미로움으로 빛나는 엘의 시선에 트로웰은 설명을 덧붙였다.
“정령계에만 있으면 재미없잖아. 앞으로 계속 가게 될 아크아돈인데 이 기회에 여행하는 기분 내보자고.”
트로웰의 매력적인 제안에 엘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관광여행 같은 것 가본 적 없어! 엘이 하는 말에 트로웰은 고개만 갸웃했다.
⁂
그렇게 갑작스런 둘만의 여행계획이 잡혔다.
“이거 봐, 엘. 신기하게 생겼지?”
“정말! 트로… 매튜, 이거 모양이 왜 이래!”
까르륵 웃던 엘은 이국적인 디자인의 여러 생필품들을 계속 해서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사나와의 추억을, 마음 정리를 위해 대륙을 돌아다니던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여행은 연일 웃음으로 가득했다.
여러 나라를 세세하게 돌던 그들은 일명 ‘과자마을’로 유명한 한 마을에 대해 듣고 숲을 지나 찾아온 터였다.
과연 과자와 케이크, 여러 빵과 파이 등의 다양한 디저트의 달콤한 향기가 마을 근처에 가까이 갈수록 강해져 감에 엘의 얼굴은 홍조로 물들었다.
디저트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소품을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 전시한 것이나, 광장 한가운데 위치한 과자 탑 등 모든 것이 엘의 흥미를 잡아끌었다.
비록 냄새만 맡고, 예쁜 모양을 볼 수 있을 뿐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조금(사실은 많이) 서운했지만 말이다.
마침 그들이 마을을 찾은 시기가 그 마을에서 반년에 한 번씩 있는 관광객들을 위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위한 축제가 있을 때가 얼마 남지 않은 때라,
급할 일 없는 둘은 축제의 마지막 날까지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내일부터가 본격적인 축제의 날인지라 마을 안은 어수선했다.
대부분이 가업을 잇는 장인들인 마을 사람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며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축제 기간 동안 각 상점의 과자를 할인 판매하거나, 체험코너 등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았다.
“매튜! 이거 봐! 둘째 날 오후에 광장에서 마술사가 공연을 한대!”
덩달아 들뜬 목소리의 엘이 신난 기색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벌 모양의 꿀단지를 흥미롭게 보고 있던 트로웰은 엘에게 고개를 돌렸다.
엘 옆에 서서 공연 일정이 소개되어 있는 홍보지를 유심히 본 트로웰은 엘과는 다른 이유로 기대 섞인 표정을 지었다.
트로웰이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엘은 이제 홍보지에서 눈을 돌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지훈이었을 때 읽은 동화책들에 나오는 것처럼 마을은 꾸며져 있었다. 혹은 TV에서 나오는 광고 속 놀이공원들처럼.
어쨌든 건물 하나하나가 아기자기하고 사람들의 옷차림이며 모두 옛날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것들이라 엘은 먹지 못하는 슬픔 따위는 묻고 마을 축제를 즐기기로 했다.
그런 엘의 머리를 트로웰은 쓱쓱 쓰다듬어 주며(엘과 아이 모습인 자신이 같이 다니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겨 트로웰은 어른의 모습으로 동행하고 있다) 미소 지었다.
여행 하는 동안 엘이 계속 즐거워 해줘서 트로웰 역시 덩달아 요즘 기분이 좋았다.
둘은 내일부터 열릴 마을 축제를 기대하며 거리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활기가 가득 찬, 조금은 서늘한 계절이었다.
⁂
하아아아……. 준수한 외모에 훤칠한 키의 한 남성이 작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축제가 한창인 사람들로 가득한 마을 광장에서 별로 큰 동작도, 눈에 띌 만한 짓도 아니었지만 아까부터 청년을 보고 있던 꽤 많은 여성들은 그에게 곧바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순간 피식 미소 짓더니 곧 표정을 굳혔다.
주변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며 서있는 남자는 바로 얼결에 엘과 헤어진 트로웰이었다.
엘이 기대하던 마술 공연을 보고 난 뒤 사람들이 한 번에 이동하는 사이, 둘은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둘 다 정령왕인 이상 그걸로 발을 구를 것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또다시 순식간에 거리에 정신을 빼앗긴 건 엘 뿐, 트로웰은 그의 행방을 짚어내는 중이었다.
광장 건너편 거리에서 느껴지는 물의 기운에 트로웰은 건물 벽에 기대있던 몸을 떼어 걸음을 옮겼다.
또 어디론가 가버리기 전에 얼른 찾아야 할 듯 싶었다.
자신은 이렇게 떨어져 버려서 금세 걱정하고 안절부절(그렇게 심하진 않지만)하고 있건만, 하급 정령이 읽어준 그의 기색은 여전히 들뜨고 신나 있었다.
크게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서운했다.
평소엔 그리 신경 쓰는 편이 아니건만, 아까부터 자신을 흘낏흘낏 보는 게 어쩐지 더 짜증났다.
주목 받을 만한 외양이란 건 알지만 별로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닌지라, 곱게 생각이 되진 않았다.
그나마 접근해 귀찮게 구는 인간이 없다는 게(트로웰의 날카로운 기운과 차가운 표정 때문) 조금 마음에 들 뿐이랄까.
더욱 걸음을 빨리 했다. 골목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드디어 시야에 그렇게나 좋아하는 물빛 머리칼이 들어오자 트로웰은 반가움에 입을 열었다.
“엘…!”
찾았잖아. 순간 말이 나오지 않은 채 꾹 삼켜졌다. 한 상점의 내놓은 물건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는 엘의 옆에, 어째선지 뺨이 붉게 물든 어린 남자가(소년과 청년의 사이쯤)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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