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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Dear my Darling

[DMD] 제 4장 [트로웰x엘] 둘만의 여행기 下

 

 

트로웰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엘을 찾은 순간 해사해진 얼굴에 순간 어두운 기운(?)이 깔렸다. 사납게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의 트로웰을 엘뤼엔이 본다면 단번에 그가 나중에 무조건 마신이 될 거라 판단하리라.

 

순식간에 도로 날카로워진(오히려 더 사나워진) 정령왕의 기색에 눈치 빠른 정령들이 슬금슬금 몸을 숨겼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태평한 이가 있으니, 바로 땅의 정령왕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위대하신 물의 정령왕이었다.

어쩐지 따끔따끔한 기척에 시선을 든 남자를 따라 엘 역시 고개를 들었다.

 

“트로웰!”

 

순간 너무나 반갑게 뛰어들어 뺨을 부빗대는 행동에 날이 서 있던 트로웰의 성질이 가라앉았다.

 

“걱정했잖아. 바로 찾지, 놀고 있었어?”

 

짐짓 화난 목소리로 트로웰이 타박했다. 엘은 찔끔한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구경 하느라… 화났어?”

 

그 모습에 트로웰은 조금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결국 따끔히 혼내주려던 생각은 눈을 말갛게 뜨고 빤히 보는 엘로 인해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엘과 같이 있던(그것도 수줍게 바라보던) 이에 대해서도 그리 된 것은 아닌지라, 트로웰은 짐짓 상냥한 목소리를 내었다.

 

“근데 ‘혼자’ 뭐하고 있던 거야? 엘처럼 예쁜 사람들을 ‘이상한’ 태도로 ‘보는’ 사람들이 ‘나쁜 짓’이라도 하면 어쩌라고.”

 

어쩐지 남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그리고 말 군데군데에 뼈가 들어있는 듯한 트로웰의 말에 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분이랑 같이 있었어. 그런데 트로웰, 아직 화 안 풀린 거야?”

 

옆에 서있던 그 남자를 살짝 당겨 소개시키며 물어오는 엘에게 트로웰은 인내의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이 인간… 이 분도 장사해야 하는데 그만 가자, 엘.”

 

“에… 나 이야기 더 듣고 싶은데…….”

 

남자가 뭔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해주고 있었던 듯, 엘은 아쉬운 표정으로 뒤의 남자를 돌아봤다.

그 모습에 트로웰은 정말 부글부글 끓는 듯한 속을 달래기 위해 미소 지은 채 잠시 가만히 기다렸다.

엘은 그 사이 저 빌어먹을 인간과 정이라도 든 건지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사실 그 ‘빌어먹을 인간’은 찌르는 듯한 트로웰의 기운과, 사나운 눈짓, 얼음장 같은 미소에 엘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물러서고 있었지만 트로웰은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그래도 뇌는 있군, 하며 비틀린 생각을 할 뿐이었다.

 

금방 헤어짐에 엘은 트로웰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정도 멀리 걸어왔을 때, 트로웰은 계속 끓기만 하고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화 풀렸다면서… 영 아닌 분위기에 엘이 저도 모르게 따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침울해진 둘 사이로 주변의 시끄러운 활기어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새어들어 왔지만 둘의 분위기는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

한숨을 폭 내쉬곤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엘의 기색에 트로웰은 결국 심란해져 있던 마음을 풀었다.

 

“나랑 떨어지고 그냥 논 거야? 엘, 너무해.”

 

평소와 같이 웃으며 장난스런 말을 해오는 트로웰에 엘 역시 곧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거 아냐, 케이크 이야기만 듣고 바로 찾으려고 했어!”

 

엘의 외침에 트로웰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케이크 이야기?”

 

“응. 예전에 이 마을에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가 있었대. 근데 여자는 가난한 장인인 남자를 봐주지 않았다는 거야. 나중에 여자가 어떤 부자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남자는 여자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달콤한 체리 케이크를 만들어 주었대.”

 

로맨틱한 이야기라며 흥분해 말하는 엘의 이야기에 트로웰은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마음을 접은 거야?”

 

“어? 어, 응. 그래서 남자가 젊은 나이에 죽고 난 뒤 마을 축제에 체리 케이크를 서로에게 행복이 깃들길 바라며 주는 이벤트가 생겼대.”

 

그것은 트로웰도 축제 소개지에서 유심히 봐둔 것이라 흐음- 고개만 끄덕였다.

 

“근데 그 형이 체리 이벤트엔 행복을 빌어주는 것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그건 못 들었어.”

 

뒷이야기가 궁금했던 듯 엘은 아쉬움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트로웰은 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밤인데, 우리도 가서 겪어보면 돼지. 그렇게 침울해 하지 말고, 저쪽에 특이한 사탕가게 있던데 가보자.”

 

엘은 웃으며 트로웰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웃음소리가 잘 어울리는 오후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것도 커플들이 특히. 엘은 뒷말을 삼켰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나자 모든 관광객들과 마을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렸다.

상당히 큰 광장이건만 꽉꽉 찬 모양새에 엘은 반사적으로 트로웰의 손을 꼭 잡았다.

 

“또 나 잃어버리지 말고, 손 놓지 마.”

 

트로웰은 엘이 사람들 사이에 휩쓸릴까 어깨를 껴안다시피 안고 움직였다.

여기저기서 체리향이 물씬 풍겼다. 가족단위의 사람들도 많았지만,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 내지는 젊은 연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9시에 광장 옆 탑의 종이 울리면 서로 체리를 나눠먹고 5분 넘게 불꽃놀이가 있을 거래.”

 

엘이 말했다. 트로웰은 낮게 웃었다.

 

“우린 첫 불꽃이 터질 때야.”

 

“응?”

 

제대로 듣지 못한 엘이 의아함에 되묻자 트로웰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곧 한가득 모인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꼭 새해를 맞는 것 같은 기분에 엘은 덩달아 신이 나 같이 외쳤다.

 

“이, 일!”

 

 

 

     뎅 데엥 ―――――

 

 

 

육중한 소리의 큰 종이 울렸다. 아홉시를 알리는 소리에 주변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외치며 저마다 체리를 입에 물었다.

먹을 용기는 나지 않아 엘은 그냥 트로웰에게 폴짝 뛰어들어 그를 끌어안았다.

곧이어 불꽃놀이의 첫 불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와아!”

 

엘은 트로웰을 껴안은 채 하늘을 쳐다봤다. 선연한 불꽃이 예뻤다.

 

“으응?”

 

갑자기 누군가가 확 끌어당기는 느낌과 함께 따뜻한 것이 입술에 닿았다.

 

꿈결 같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입맞춤에, 엘은 눈만 크게 떴다.

 

불꽃 터지는 소리와, (어째서인지) 조용한 주변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은 채, 엘은 조심스러운 키스에 멍하니 응했다.

 

짧은 입맞춤을 한 트로웰이 짓궂게 웃어 보였다.

 

“첫 불꽃이 터졌을 때 하는 키스는 고백이래.”

 

이름 모를 점원이 못 해준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트로웰에, 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트로웰…!”

 

엘의 머리를 토닥이며 트로웰은 장난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엘은 언제 답을 주려나…”

 

밤하늘에 불꽃이 선연한, 달콤한 체리 키스를 나눈 날이었다.

 

 

 


# 4 둘만의 여행기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