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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Dear my Darling

[DMD] 제 15장 [카노스x엘뤼엔] 너란 남자 下 “밤이 깊었습니다. 엘뤼엔님.” “신경 쓰지 마라.” 지옥의 신이 다녀가고 나서는, 일사천리인 그의 성격답게 일이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구금된 마족의 처우를 결정지었고,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 현황에 대해 당장 보고서를 올릴 것을 지시한 엘뤼엔은 이내 이 사건에 얽힌 사제들 탓에, 신계 입성 후 처음으로 다른 신들을 보게 되었다. 뭐, 그들과 보게 된 이유는 언쟁 때문이었지만. 화기애애한 친목이라든가 앞으로의 신계 생활을 염려한 양보라든가 그러한 것 따위가 엘뤼엔에게 고려 대상이 될 리가 없었다. 자신들의 피해를 들먹이는 신들을 단칼에 즉답으로 되돌려 보낸 엘뤼엔은 슬금슬금, 혹은 열이 뻗친 채의 신들이 전부 나가고 나서야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아침부터 짜증으로 가득차 돌아다녔더니 이젠 머리가 .. 더보기
[DMD] 제 15장 [카노스x엘뤼엔] 너란 남자 上 Such a man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너란 놈은 정말……. 눈을 몇 번 깜박이자 신계 특유의 이상하리만치 환한 아침 햇살이 창을 통과해 선명히 방 안 모습을 보여준다. 엘뤼엔 그의 취향을 반영한 방 안은 매우 담백한 디자인 그 자체였다. 중앙을 기점으로 바닥을 포근하게 덮은 양탄자, 그리고 침대. 평소라면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없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여기가 엘뤼엔 방 맞아? 라고 물을 정도로 난장판. 이라고 하면 될까. 양탄자 위에 한가득 널린 것은 그림과 숫자가 그려진 온갖 카드들, 기괴한 모양새의 인형들. 한가득 제멋대로 어질러진 방 안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러나 힘이 들어간 손을 들어 제 옆에 퍼져 있는 사람을 사심을 담아 내리친.. 더보기
[DMD] 제 14장 [카노스x엘뤼엔] 옥루 下 한겨울. 1월. 옆구리 시린 이들이 온기를 찾아와 그냥저냥 매상을 올려주는 평범한 평일 저녁. “얜 어디 가서 안 와….” 여전히 직원과 손님이지만, 나는 여태와 같이 바지런히 그를 챙겼다. 일주일 만에 와서 바에 앉은 그가 삼십 분이 되도록 돌아오질 않음에, 나는 결국 그를 찾아 나섰다. 뻔히 바에 앉은 녀석이 잠깐 한눈 판 사이 사라졌다. 어디선가 갑자기 동행이 생겨 테이블로 이동했나?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내부를 훑어 봤다. 깊숙이 있는 테이블은 장식용 관목이나 각도로 잘 안 보여 정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일단 안엔 없는 것 같았다. 잠깐 나갔나…? 엄연히 그도 성인이고, 사정에 따라 돌아다닐 수도 있는 거 안다. 하지만 파악되지 않는 그의 소재가 나는 신경 쓰였다. 그렇다 해도 ‘손님 안 보여서.. 더보기
[DMD] 제 14장 [카노스x엘뤼엔] 옥루 上 I'm into you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네가 우는 모습이 예뻤던 나는 미친놈인 걸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울던 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울음이 사랑스럽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는 네가 안타까웠지만, 다신 눈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지만, 버림받은 널 보고 나는 참을 수 없이 기뻤었다. 내게도 기회가 오는가, 싶어서. ⁂ “가서 좀 말려 봐, 취한 것 같아.” 동료 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똑같은 안색, 멀쩡해 보이는 모습. 아, 이런 진짜 취했네. 그는 클럽의 낮은 조명 아래에서 우아한 자세 그대로 새 술병에 손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연신 힐끔대는 사람들. 좀 아는 사람들은 별 신경 안 쓰거나 ‘저런, 상태가 영 아닌데?’ 하지만 새.. 더보기
[DMD] 제 13장 [라피스x엘] 꽃과 나비 下 “엘∼ 왔구나!” 문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형체를 받아 안으며 엘은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았다. “트로웰, 여기서 뭐 해?” 검은 머리칼에 늘씬한 소년의 몸으로 해사하게 웃는 이는 라피스의 대부 트로웰. “라피가 엘 오면 밥 챙겨 먹이라고 앉혀 놨어-!” 생긋 웃으며 엘의 손을 잡아끈 트로웰은 식탁에 그를 데려다 놨다. 물수건으로 손을 문지르며 엘이 물었다. “라피는 어딨는데?” “나도 모르겠는데? 어디론가 가버렸어. 늦지 않게 들어올 거야.” 그게 뭐야. 진짜 찾지도 않은 거야? “엘은 잘 놀고 왔어?” 한 술 더 떠 트로웰이 하는 말에 엘은 침울한 얼굴을 했다.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왔어.” 사실 뻥이고 우울하게 웅크리고 있다가 결국 갈 곳 없어서 돌아온 거지만, 엘은 사족을 붙이지는 않았다.. 더보기
[DMD] 제 13장 [라피스x엘] 꽃과 나비 上 Merry me, El ?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솔트레테 제국력 118년. 물의 나라로 유명한 제국은 오십 년만에 내려온 신탁에 술렁였다. 물의 나라지만 너무 강한 물의 기운을 완화하기 위해 불의 용족으로서 제국을 다스리게 한 주신의 뜻에 따라 화룡족을 모시고 있는 국가 솔트레테. 그 나라엔 온 제국민으로부터 사랑 받고 찬양 받는 왕자, 푸른 머리칼의 엘퀴네스가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홀리고, 향기에 취하며, 마음씨에 반한다는 그는 비단 솔트레테 뿐이 아닌 대륙의 인사였다. 그 엘퀴네스의 궁은 지금, 굉장한 마이너스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왕자님… 우리들의 여신이…….” “어흑. 여신님이 가시면 누굴 보고 살라고…….” 눈물을 쏟는 이들은 궁의 시종과 병사들. 그들은 .. 더보기
[DMD] 제 12장 [데르온x아스] 못난이 200살 Come on, Honey !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주군! 이거 서류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도화지가 아니란 말입니다!” 벌써 15분 째인 실랑이. 마계 공작 중 하나이자 현재 마왕인 아스모델의 심복인 데르오느빌은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혹은 주름살이 는다거나. 물론 한창 나이인 마족이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니고, 말하자면 체감하길 이대로 폭삭 늙어버릴 것 같다, 라고나 할까. 그런 데르온에게 수명의 위협을 주는 이는 바로 그의 주군이자, 정령왕을 대부로 두고 있고, 마신이 내린 왕으로서 무시 못 할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 아스모델이었다. 겉보기엔 그저 한없이 예쁘신 마왕 전하께서는 숨넘어갈 듯한 데르온에게 그 달콤한 미소 한 번 건네고는 또다시 서.. 더보기
[DMD] 제 11장 [엘뤼엔x엘] 부자유친 下 “아… 망했어, 망했어, 너 시험 잘 봤냐? 아 왜 답이 3번이냐고.” 주변에서 애들이 좋아하거나 절망하거나 어쩌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엎드렸다. “엘~ 왜 그래? 시험 못 봤어?” “아니… 졸려…….” 졸립기도 졸립지만, 그보단 온통 그에 대한 생각으로 어지러웠다. 방금 본 과목이 쉬웠는지 어려웠는지도 생각이 안 났다. 3교시 간의 시험을 어떻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문득 정신 차리니까 오늘 시험이 끝나 있었다. 안 돼, 첫 날 시험부터 이러면 어떡해! 늦게 오는 담임 탓에 종례를 늦게 마치고 집으로 갔다. 현관문 도어락을 열려다 드는 생각에 손을 물렸다. 설마, 이 시간에 집에 있진 않겠지? 혹시 그렇다면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벌컥 강하게 연 집 안에서 정적이 흘러 나왔다. .. 더보기
[DMD] 제 11장 [엘뤼엔x엘] 부자유친 上 Be happy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미안, 오늘은 학원 때문에 안 되겠다.” 곤란한 듯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말하는 친구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내일 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하교시간. 닷새 전만 해도 나도 저렇게 웃으며 돌아다녔는데.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아…….” 아직 다섯 시 밖에 안 됐다. 쓸데없이 왜 오늘 같은 날 단축은 하고 난리야. 개학식에도 안 하는 걸. 벌써부터 집에 들어가고 싶진 않지만 딱히 갈 데가 없다. PC방? 아니, 게임 안 한다. 노래방 혼자 가긴 그렇고 오락실도…. 카페도 가기 그렇고…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도서실에서 잡지나 읽고 가자. 그렇게 마음 먹고 대충 아무거나 꺼내 그.. 더보기
[DMD] 제 10장 [트로웰x엘] 흑기사 下 “엘~ 내 소원 들어줘야 하는 거 기억하고 있지?” 사대 정령왕 배 제 1회 시식대회가 웃음과 난동으로 마무리되고 그 후 며칠간은 계속되는 벌칙 이행으로 여러 모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나 대신 이프리트의 벌칙을 받아 수행해준 트로웰은 생글생글 웃으며 가감 없이 이프리트에게 ‘제일 예쁘고 멋있고 강하고 아름다운 불의 정령왕님’ 이라 불러 이프리트에게 ‘역시 이상한 놈’ 소리를 들었다. 나? 난 차곡차곡 누적되어 있던 벌칙 수행하느라 바빴고. 정말 누가 시킨 건지(그 대부분이 이프리트이긴 하지만) 손끝이 절로 덜덜 떨리게 부끄러운 짓들이라 정신적 데미지가 꽤 강했다. 이프리트, 이 사악한 자식! 그렇게 할 일을 모두 끝마친 나는 내 영역에서 잊자, 잊어 버리자를 중얼거리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더보기
[DMD] 제 10장 [트로웰x엘] 흑기사 上 Creamy Gam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어느 무료한 날, 때는 과거에서 돌아와 노엘을 만나기 전 어느 한가한 날. 우리는 에바스 에덴에 모여 앉아 ‘사대 정령왕 배 제 1회 시식대회(?)’를 개최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먹기대회랄까. 아, 먹기대회라고 미친 듯이 먹는 그런 게 아니라 랜덤으로 선택한 상자에서 나온 음식을 먹는 거다. 상자 안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아크아돈을 다니며 맛집이라 불리는 곳들에서 사온 거지만 우리에겐 거북한 지뢰일 뿐이었다. “으으… 아자!” 상자를 열며 긴장한 이프리트의 얼굴이 환해졌다. 잘하면 그나마 무난한 게 나오기도 하는데, 이프리트처럼 액체인 경우 말이다. “이건 먹을 수 있지, 흥.” 벌컥벌컥 마셔버리는 이프리트. 참고로 못 .. 더보기
[DMD] 제 9장 [라피스x엘] 너에게 쓰는 편지 下 “춥다…….” 추워, 춥다고. 덜덜 떠는 엘이 라피스를 바람 앞에 세우고 뒤에 섰다. “야 너…….” 그런다고 그리 따뜻해지지도 않겠건만 숨는 엘을 라피스는 결국 그냥 두었다. 차라리 혼자 총대 매는 게 낫지, 라피스는 싱글싱글 웃으며 서 있는 형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야?” “어머니께서 너희 점심 사주고 들여보내라고 날 내쫓았거든.” 어머니, 이딴 거(눈앞의 형)는 필요 없는데요. “대접 받은 걸로 칠 테니까 그냥 꺼져.” “나온 김에 제수씨 보고 가려고.” 큭. 순간 라피스의 눈에 불이 일자 메테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라피스가 거친 기운을 뿜어내고, 메테가 큭큭 웃어대는 소리가 들리자 궁금증이 인 엘이 고개를 내민다. “여어 제수씨∼”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메테가 엘의 손을 콱 잡아 앞으로 끌어냈.. 더보기
[DMD] 제 9장 [라피스x엘] 너에게 쓰는 편지 上 Wish Right Now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내일모레가 수학여행인 거 알지? 시간 까먹지 마라, 다들.” 고 2씩이나 돼서 수학여행지가 경주라니… 흥. 처음에는 다 기겁하던 반의 녀석들은 그 아메바와 같은 뇌수준으로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술 마시자고? 난 별론데.” 옆에 모여 있는 녀석들 중 유난히 귀에 와 닿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닿은 곳엔 계집애처럼 긴 머리칼에, 얼굴 가득 난감하다는 기색을 담은 녀석이 있었다. 뭐더라 쟤 이름이… 아 그래, 엘. 2학년 올라와 아직 한 달이 채 못 된 터라 이 반에서 이름을 알고 지내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러나 저 바람 불면 날아가게 생긴 녀석은 첫날부터 유난히 귀에 박히는 목소리에 일부러 이름을 .. 더보기
[DMD] 제 8 장 [아스모델x엘] 반항기 下 트로웰은 지혜로운 친구다. 이번에도 그의 조언이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이탈하게 만드는 이유라 엘은 사실이 아니길 혼자 바랄 뿐. “아스모델…….” 엘은 아스에게 스륵 고개를 올렸다. 자신이 말해놓고 놀란 아스가 뒤로 물러난다. 그래. 원인이 있긴 있군. “네가 지금 뭐라고 한 건지 알아!!!” 이판사판. 자신의 말에서 현실도피 하려는 듯 큰 소리를 내는 엘의 모습에 아스는 같이 소리쳤다. “왜 못 알아들은 척 해? 엘 좋아한다고. 가족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애인으로 본다고!”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어디가 어떻게 말이 안 되는데!” 아스는 엘을 벽 쪽으로 밀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자신의 앞에서 음영을 드리우고 있는 아스를 엘은 툭 밀쳤다. 전에, 갑자기 성장해 커져버린 아스가.. 더보기
[DMD] 제 8 장 [아스모델x엘] 반항기 上 Love Troubl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부루퉁. 불만스럽다는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낸 채 볼을 퉁퉁 불리고 앉아있는 아스모델의 모습에 라피스는 목소리를 줄일 생각은 전혀 안 한 채 말했다. “쟨 또 왜 저래?” 심드렁하게 지나가다 물어보는 것처럼 툭 내뱉은 라피스의 말에 조용히 숨 죽이고 아스를 지켜보고 있던 이사나와 알리사, 데르온이 기겁한다. “라피스님!” 이리 오라며 손짓 하는 이사나의 행동에 라피스는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마치 왜 오라가라야, 라고 하는 듯한 삐딱한 모습에 이사나는 소곤소곤 설명했다. “아스 사춘기에요, 날카롭다니까요.” 그 말에 라피스는 흥 코웃음 쳤다. “성장도 끝난 게 사춘기는 무슨.” “아니에요. 데르온 말도 안 듣고, 어젠 엘한테 ‘어.. 더보기
[DMD] 제 7장 [카노스x엘뤼엔] 웃어주세요 下 엉성한 모습의 신전은 현존하는 최고령 신이자 정신연령에선 최하, 잔머리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카노스의 것이었다. 자신의 신전 방들 중 하나에 틀어박힌 카노스는 서류를 대충 보며 훌쩍였다. “엘뤼에엔…….” 그때의 충격적인 광경은 카노스의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리플레이 되어 그의 심장을 괴롭혔다. 가만히 이틀 정도 생각해 본 결과 카노스는 그를 안 이래 한 번도 엘뤼엔이 웃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미소조차, 아니. 비웃음조차도. 자신을 볼 때의 엘뤼엔의 표정은 귀찮음이 가득하거나, 냉담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덤덤하거나……. 카노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저기서 들은 상대를 웃게 하는 방법들이 전혀 통하질 않았으니(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 더보기
[DMD] 제 7장 [카노스x엘뤼엔] 웃어주세요 上 Smile, smile please !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신계에서 제일 유명한 신(말 그대로 유명했다), 신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신(그를 말릴 자 세 손가락에 꼽히니), 검은 머리의 마족의 아버지 카노스는 며칠간의 마계 나들이를 접고 신계로 돌아와 있었다. 유쾌하게 길거리를 활보하는 그를 먼발치서라도 본 신계의 여타 정상적이고 평범한 이들은 행여나 그가 자신을 부를까 왔던 길을 전부 뒤돌아 가기 바빴다. 한 편 간만에 마왕 녀석을 골려주고 유쾌 지수가 업 되어 있던 카노스는 그런 다른 신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고 기겁을 하는 드래곤의 신의 어깨를 다정히 토닥여주고 그가 도착한 곳은 카노스 자신과 함께, 멀리 해.. 더보기
[DMD] 제 6장 [라피스x엘] 어느 날, 어느 밤 下 인간에서 정령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나는 몸이 잠을 잘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도 항상 해가 지고 나면 잠을 자는 게 습관화 되어 있었다. 라피스의 이상행동에 뒤이은 헛소리로 나는 급격한 피로감을 느끼고 침대에 누운 뒤 바로 잠들었다. 몽롱한 정신이 잠시 고개를 든다. 뭔가가 몸에 닿는 느낌에 몸을 뒤척이자 나를 귀찮게 하던 것이 떨어져나간 듯 촉감이 멀어졌다. “정말이지… 엘…” 누군가가 부르는 듯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가 그려진다. ‘엘’. 잠결에도 마음 한 켠이 따듯해지는 느낌. 곧 확실치 않은 정신으로 누군가가 한숨을 쉬는 소리와 부드러운 온기가 손을 잡아오 는걸 느꼈다. 작게 웃으며 그걸 꽉 잡는다. 누굴까, 날 이렇게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눈을 뜨기엔 짓누르는 잠이 너무.. 더보기
[DMD] 제 6장 [라피스x엘] 어느 날, 어느 밤 上 One Day Night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후아아아…….” 공기 맑은 마을 특유의 초록 냄새가 향긋한 저녁나절, 나는 한껏 기지개를 피고 있었다. 정령 주제에 피로를 푸냐고 묻는다면야… “음, 습관이니까?” 그래. 이렇게 대답할 거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아까 이사나의 행동을 빌려오자면 저절로 몸이 떨리게 추웠다)에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전혀 ‘춥다’고는 못 느끼고 있으니 정령인 게 맞구나… 새삼 새롭다. 평소라면 혹시라도 이사나가 감기라도 걸릴까 창문 따위 절대 열 리가 없지만 지금 이 방엔 이사나가 없었다. 덧붙이자면 이사나와는 오늘 각방이었다. “너 거기서 뭐 하냐?” 저, 갈아 마셔야 할 빨강 도마뱀 때문에. “머리 풀어헤치고 뭐 하는.. 더보기
[DMD] 제 5장 [태진x지훈] 검은 별 下 “아, 탄산 사오라니까.” “싫다. 주는 대로 먹어.” 사주는 사람은 나야. 녀석이 웃었다. 과일주스 따위 하나도 안 반가운데. 엄밀히 말해 네가 진 건데 왜 내가 양보해야 하는 거야? 태진은 쏘아붙이는 것을 포기하고 캔을 땄다. 탄산 아니니 넘치지도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나저나 지훈이가 없어서 그런가.” 녀석이 옆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건들거리며 말했다. 갑작스런 거론에 태진은 응? 그를 쳐다봤다. “너 되게 외로워 보인다 야.” …외로워 보여? 이놈이 이렇게 감성적인 녀석이었나? 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친구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되는 눈총에 친구가 삐딱하게 외쳤다. “면상 치워! 그냥 그렇다는 거지! 맨날 붙어 있는 놈들이니까!” 걱정마셔, 너랑은 .. 더보기
[DMD] 제 5장 [태진x지훈] 검은 별 上 You really don't know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행렬의 덧셈은 아주 쉬워, 대충 몇 개만 풀어보고 넘어가자.” 올해가 선생 근무 십오년 째라는 까칠한 여자 수학 선생은 학기 초, 나름 안 자고 공부 좀 해보려고 용 쓰는 신입생들로 꽉 찬 교실을 한 번 휙 둘러 보았다. 방금 전 들었던 설명을 기억하며 고개 숙이고 샤프를 갈작이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을 하나 발견한 그녀는 교탁 위에서 그 학생의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는 계속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꾸준히 대상을 관찰한다. 학생은 작은 손을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그 아이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렸을 때, 여교사는 미리 봐 두었던 이름을 불렀다. “유희진. 그거 들고 나와.” .. 더보기
[DMD] 제 4장 [트로웰x엘] 둘만의 여행기 下 트로웰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엘을 찾은 순간 해사해진 얼굴에 순간 어두운 기운(?)이 깔렸다. 사납게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의 트로웰을 엘뤼엔이 본다면 단번에 그가 나중에 무조건 마신이 될 거라 판단하리라. 순식간에 도로 날카로워진(오히려 더 사나워진) 정령왕의 기색에 눈치 빠른 정령들이 슬금슬금 몸을 숨겼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태평한 이가 있으니, 바로 땅의 정령왕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위대하신 물의 정령왕이었다. 어쩐지 따끔따끔한 기척에 시선을 든 남자를 따라 엘 역시 고개를 들었다. “트로웰!” 순간 너무나 반갑게 뛰어들어 뺨을 부빗대는 행동에 날이 서 있던 트로웰의 성질이 가라앉았다. “걱정했잖아. 바로 찾지, 놀고 있었어?” 짐짓 화난 목소리로 트로웰이 타박했다. 엘은 찔끔한 표정으로 그의 .. 더보기
[DMD] 제 4장 [트로웰x엘] 둘만의 여행기 上 A cherry cak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과거에서 돌아온 엘이 앞으로 있을 노엘이란 이름의 전직 신을 만나기 전의 한가로운 정령계에서 너무나 따분한 일상에 축 늘어져 있을 때였다. 오늘도 여전히 할 일을 찾지 못한 엘은 물을 가지고 혼자만의 예술 활동을 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근래 유희를 다닌다고 바빠 가끔 정령계로 돌아왔을 때만 짧게 이야기 하던 트로웰이 물의 영역에 찾아온 것이다. 반가움에 엘은 소년의 모습을 한 트로웰에게 달려가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트로웰!” “우와 굉장한 환영이네. 심심했구나, 엘?” 트로웰은 고개 숙인 채 뺨을 부빗거리는 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요즘 엘이 너무 심심해 하는 것 같아 엘과 시간을 보내려고 유희를 정리하고 왔는데.. 더보기
[DMD] 제 3장 [카노스x엘] 가벼운 만남 下 시계탑 종치는 소리에 시선을 올려 시간을 확인한 소년, 아니 청년에 가까운 이가 무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카노스… 선배!” 그 때 저만치서 종종걸음으로 거의 뛰어오는 소년이 외치는 말에 남자의 입가엔 미소가 떠오른다. 숨차게 달려온 소년, 엘이 카노스 앞에 와선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으아… 선배, 죄송해요, 열차… 가 안, 와서… 조금 늦게 나오기도… 했고… 후아…….” “진정해, 많이 늦은 거 아니니까.” ⁂ “엘, 뭘 그렇게 봐?” “선, 아니 형. 저거 봐요! 풍선!” 뭘 그렇게 보고 있나 궁금해진 카노스가 엘에게 묻자 정신없이 곰의 탈을 쓴 사람이 들고 있는 하트 모양 풍선을 보고 있던 엘이 화들짝 대답했다. 요전에 카노스가 꽤 강력히 주장한 호칭이 떠올라 얼른 선배 소리를 넣.. 더보기
[DMD] 제 3장 [카노스x엘] 가벼운 만남 上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도 점점 강해지는 햇빛과 진해지는 초록의 내음에 자리를 내주는 때였다. 엘이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한 달여가 지난 때이기도 했다. 중학생 때와는 다른 선생님들의 강도 높은 앞날에 대한 잔소리도 이젠 슬슬 흘려들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고 있었다. 두발규정이 자유로운 학교 덕에 중학교 3학년 막바지부터 자르지 않은 엘의 푸른 빛 머리카락은 견갑골 께를 어른거렸다. “엘!” 중학생 때부터 알아온 그의 친구들이 점심시간 종 치자마자 교실로 쳐들어와 엘을 불렀다. 엘은 짝인 미네에게 노트를 빌려 열심히 베끼던 손을 멈췄다. 뚱한 표정의 이프리트와 화사한 미소가 넘치는 트로웰이 둘의 앞자리로 와 앉는다. “미네 안녕. 엘이 또 필기 베끼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