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의 베드엔딩.. 데드엔딩입니다
캐붕이 심하므로 되도록 안 보시길 권합니다
Say No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말하지 않은 사랑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제는 꺼내보지 않는 카루타를 쥔 채 혼자 우는 나만,
전해지지 못한 채 내 사랑과 남아있을 뿐.
⁂
“아들. 밥 안 먹고 나가니?”
“괜찮아요.”
거울을 들여다보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지체된 탓에 바로 집을 나섰다. 사실 그것 뿐은 아니지만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못났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아침마다 밥을 차리고, 내 한마디 한마디를 살피는 어머니에게 야멸차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이제는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게임으로 치면, 텍스트를 읽지도 않은 채 선택지를 누르고 있는 중인 셈이다. 빠른 속도로 누르고 있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나는 어머니에게 순응하는 착한 아들이지만 사실 착한 아들이 되지도, 그렇다고 반항하는 아들이 되지도 못했다.
어제 새벽에, 메일이 와 있었다.
「타이치」
광고 문자는, 아니었다.
주소록에 없는 주소이고, 혹시나 검색 해봐도 뜨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연락이지만 가슴이 무섭도록 뛰기 시작해 잠을 못 이루고 폰을 만지작거렸다.
시험 전날에도, 면접 당일에도 이렇게 불안해본 적이 없었다.
불안의 이유도 모르면서 초조함에 휩싸여 밤을 지새웠다.
사무소까지는 세 정거장.
도쿄의 출근시간 전철은 그야말로 죽기 딱 좋은 인구밀도다.
정장만 아니면 자전거로 출근하고 싶다…….
“죄송합니다.”
등을 떠민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밀린 건 불쾌하지만 이쯤은 해프닝 축에도 못 낀다. 사람에 끼여 날 쳐다보지도 못하는 여자의 옆쪽으로 팔을 뻗어 어설픈 바리케이트를 쳤다. 이러다 압사사고 나지, 정말.
세 정거장도 죽을 맛인데 여기서 더 먼 직장이었다면 진지하게 사표를 고민했을 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일터가 일터인지라, 나보다 일찍 출근하면 했지, 지각은 볼 수 없는 도내 법률사무소. 국립대 법학부를 거쳐서 도내 변호사 일을 잡았으니 어디 말해도 남부끄럽지 않을 인생이었다.
내가 목표했던 인생이기도 하고, 내 어머니가 응원한 인생이기도 한.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을 잘 못 잤어?”
“아. 그래 보이나요? 아침을 거르긴 했습니다.”
“배고프겠다.”
「타이치」
갑자기 참을 수 없이 가슴이 아파서 하하 웃다가 화장실로 도망쳤다.
일단 칸막이 안에 들어갔는데, 토하고 싶은 건지 울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이마를 짚었다.
‘치하야. 좋아해.’
다다미가 깔린 부실 안에서 내뱉었던 고백.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 방과 후 햇볕에 물들던 긴 머리카락.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던 오후의 바람. 다 기억 속에서 미화되고 깎여나간 잔재들.
그때의 나는 싫다고 기겁하면서도 결국 치하야와 카루타를 했고, 어느 새 주장이 되어 부를 이끌었고, 진심으로 분해하며 도전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아.”
벌써 업무 시각이 다 됐다. 울지도 토하지도 못한 상태로 옷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타이치」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내용도 없는 메시지가 제멋대로 살아나 머릿속을 꽉 채웠다.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는, 어느 방과 후 다다미 위에 앉아 있던 그 애였다.
⁂
“저기, 저기요!”
종일 토할 것 같은 불안함에 시달리다 겨우 퇴근하는 길.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를, 나는 아니겠거니 무시하고 걷는 데 옷이 붙잡혔다.
“네.”
뭔가 흘렸나? 손에 쥔 핸드폰은 그대로여서 다시 나를 부른 여자를 쳐다봤다.
소매를 붙잡은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저, 아침에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이미 몸과 같이 퇴근해버린 생각 기능이 천천히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말을 건 여자가 주춤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하철에서 제가, 그쪽을 밀었었는데요…….”
“아. 네. 아니요, 괜찮은데요.”
해프닝 축에도 못 끼는 사소한 일이라고 넘겼는데, 이렇게 당사자와 또 만날 줄은 몰랐다. 눈을 깜박거리며 겸양의 말을 하자 여자분이 우물쭈물 가방 끈을 잡았다.
“그때, 넘어지지 않게 옆에 팔 둘러주셔서… 저, 괜찮으시면 답례라도…….”
아, 그러니까 이건, 그렇구나.
진짜 생각이 멀리도 퇴근했네. 괜히 상대에게 무안 주는 모습이 되었다.
나는 그때서야 눈치 채고 웃어보였다.
“정말 괜찮습니다. 복잡한 시간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데요.”
더 붙잡지 않는 사람에게 정중히 목례하자 상대도 허둥지둥 인사하고, 그 틈을 타 나는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성년은 한참 지난 이십대 후반. 만나는 사람은 없고, 직장 번듯하고, 한 번쯤 따로 만나보는 정도야 좋을 일이겠지만 나는 도무지, 그러지를 못해 이런 기류가 되면 도망가기 바빴다.
나는 겁쟁이다.
그러고 보니까,
청춘을 다 바친 뒤에 생각하라, 고 하셨었는데…….
카루타는 하지 않게 됐다.
시라나미 회도 나가지 않는다.
미즈사와 카루타 부와도, 만나지 않는다.
나는 치하야와 함께, 내 청춘을 잘라냈다.
“타이치. 밥은 먹고 들어오는 거니?”
“네.”
‘청춘이 없는 어른’이란 나 같은 사람인가. 멍청한 생각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니가 앉아 계시던 소파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점심은 먹었어? 얼굴 색이 안 좋아.”
“잠을 설쳐서 그래요. 오늘은 일찍 자려고요.”
“일이 많니?”
“아니요.”
아니요, 하고 답했다가 입을 열어 ‘그냥’ 하고 덧붙였다.
뭘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문자가 왔어요,
누가 보낸 건진 모르겠는데, 누군지 알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한 사람이 맞는지 궁금해서 밤을 샜어요.
맞는 것 같아서 종일 어지러웠어요.
왜인지는 몰라요.
내가 뭘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무서워서 하루를 억지로 보냈어요.
“회사 힘들어? 엄마가 보양식 좀 해줄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머니는 내가 반대하며 무언가 말할까 걱정하다가, 이제는 뭐라도 말해보라며 붙잡게 되었다. 어머니는 잘못한 게 없다. 잘못한 건 나였다. 이 상황에서 책임은 내게 있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을 거라면 더 확실히 결정해야 했다. 미련을 남길 거라면 말을 듣지 않고 내 멋대로 했어야 했다. 나는 겉으로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척 하면서 끊임없이 반항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앞에서 죄인이 되고, 나는 치하야에게 죄인이 됐다.
“후.”
씻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침대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잡았다.
메시지함에 덩그러니 있는 모르는 번호의 메일.
시간이 12시를 향해 가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제 메일이 왔던 시각은 2시.
그 뒤로 어떤 연락도 없었건만 나는 홀로 기대하고 또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마음의 준비도 상상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액정에 뜬 모르는 번호를 맞닥뜨렸다.
손이 핸드폰의 진동에 따라 요동쳤다.
아니야. 요동치는 건 단지 내 마음뿐이다.
“여보세요.”
[아… 타이치야?]
약간 끝이 올라간 목소리.
내가 귀 기울여 듣던 밝은 목소리가 물어왔다.
“응…… 치하야.”
마른 침을 삼키자, 상대방이 낮게 웃었다.
[바로 알아듣네. 잘 지내?]
“응…….”
[괜히 늦은 시간에 연락해서 미안해. 모르는 번호라 받기 좀 그랬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말투였다.
치하야가 맞는 걸까?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풍화된 기억 속 잔재를 붙잡고 있구나.
“아니야.”
[우와, 완전 단답.]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가슴을 찔러왔다.
허겁지겁 변명을 주워삼키려는 입을 치하야가 선수쳐왔다.
[장난이야. 전화한 내가 미안하지. 잘 지내? 애들이 많이 걱정해서 전화했어.]
“애들?”
[카루타 부 말이야. 그, 나는 잘 안 나가니까 걱정 말고 얼굴 좀 비춰. 전혀 연락하지 않는다고 그러더라고.]
.
.
.
나 때문이지.
치하야는 흰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펑펑 울었다.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아, 타이치.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다.
네 탓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다.
나는 무엇도 걸어보지 않고 도망쳤다.
.
.
.
[그거, 말해주려고.]
머뭇거리는 동안 전화기 너머로 울음이 섞였다.
사실은 치하야도 괜찮은 척을 한 건가. 자기연민에 젖어있던 머릿속이 차게 얼어붙었다.
“치하야 울어?”
[아니 울진 않는데… 울려고 한 거 아닌데…….]
미안해, 울려고 한 게 아닌데.
치하야가 작게 중얼거렸다.
“울지 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무미건조한 말뿐이다.
우리가 만나고 있었다면 지금 내가 할 말은 그 반대였겠지.
[타이치, 우리 다시 만나면 안 돼?]
손때 묻은 채 남은 과거의 기억.
너무 접어 구겨진 우리의 옛날.
[한 번만 만나면 안 돼? 자꾸 네가 보고 싶어. 타이치. 넌 내 친구이기도 했잖아. 타이치…….]
치하야에게 친구를 포기하게 만들고, 애인을 포기하게 만들고, 결국 나란 사람을 포기하게 만든 건 나다.
“치하야.”
[미안해…….]
“미안해.”
그리고 이제 와서도 친구로 돌아가 주지는 못하는 멍청하고 비겁한 사람.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쥔 채 침대에 모로 누워 토하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가슴에 얹힌 걸 모두 뱉듯이.
‘사랑해.’
“나도, 사, 랑,”
마음에 써두었던 글씨.
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남겨둔 글씨가 나를 좀먹고 있다.
“사랑, 했, 어.”
아무도 없는 방에서 쯤은 ‘사랑해’라고 속삭여 봐도 될 텐데, 끝끝내 ‘사랑했다’고 울적해하고 있는 내 목소리.
사랑한다고. 이 속절없는 한마디를. 너는 알고 있을까. 1
-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하는 불타는 듯한, 속절없는 마음을 너는 알고 있을까.」(藤原実方朝臣, ?~998) 백인일수 5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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