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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Dear my Darling

[DMD] 제 9장 [라피스x엘] 너에게 쓰는 편지 下

 

 

 

 

춥다…….”

 

추워, 춥다고.

 

덜덜 떠는 엘이 라피스를 바람 앞에 세우고 뒤에 섰다.

 

야 너…….”

 

그런다고 그리 따뜻해지지도 않겠건만 숨는 엘을 라피스는 결국 그냥 두었다.

 

차라리 혼자 총대 매는 게 낫지, 라피스는 싱글싱글 웃으며 서 있는 형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야?”

 

어머니께서 너희 점심 사주고 들여보내라고 날 내쫓았거든.”

 

어머니, 이딴 거(눈앞의 형)는 필요 없는데요.

 

대접 받은 걸로 칠 테니까 그냥 꺼져.”

 

나온 김에 제수씨 보고 가려고.”

 

. 순간 라피스의 눈에 불이 일자 메테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라피스가 거친 기운을 뿜어내고, 메테가 큭큭 웃어대는 소리가 들리자 궁금증이 인 엘이 고개를 내민다.

 

여어 제수씨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메테가 엘의 손을 콱 잡아 앞으로 끌어냈다. 순식간에 능글능글 웃는 메테에게 손이 잡혀 선 엘이 에에?!’ 말을 더듬었다.

 

라피스가 바로 엘을 빼냈지만 이미 엘은 충격에 휩싸인 채였다.

 

죽을래? 확 그냥어이, . 신경 쓰지 마.”

 

, 제수씨래나보고제수씨? ?

 

라피스는 쯧, 혀를 차며 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 순간, 엘의 얼굴이 붉은 색으로 확 달아올랐다.

 

메테 형 장난치지 마요!”

 

호오얼굴 빨개졌다.”

 

?”

 

으아당황해서

 

라피스의 의아한 물음에 엘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놨다. 라피스가 더욱 캐물으려던 난감한(엘에겐) 순간, 누군가 라피스를 불렀다.

 

, 라피스 선배!”

 

성의 없이 고개를 돌린 라피스와, 일행의 눈에 뒤에 친구들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을 둔 여학생이 보였다.

 

…….

 

수줍은 듯 내리깐 눈이랑 그와는 반대로 꼭 쥔 손이나직감적으로 눈치 챈 엘이 뒤로 물러섰다.

 

메테 형, 저 잠깐 교실에 다녀올 건데 같이 가요.”

 

? 그래.”

 

, 엘 어디 가!”

 

성큼성큼 뒤돌아 메테와 걸어가는 엘에, 라피스가 외쳤다. 당황한 라피스의 목소리에 엘은 손만 흔들었다.

 

잠깐 교실에.”

 

따라가기엔 조금 차가운 엘의(그리고 그 옆에서 떠드는 메테)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라피스는 싸늘해진 목소리를 냈다.

 

왜 불렀어?”

 

 

 

 

 

 

 

 

 

 

얼굴색이 가라앉았네, 제수씨.”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형, 제수씨가 뭐에요.”

 

엘이 투덜대는 말에 메테가 더욱 목소리를 키운다.

 

, 좋으면서.”

 

전혀 아니거든요!”

 

빼액 소리를 지르자,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여학생 두 명이 깜짝 놀라 엘을 쳐다봤다.

 

으으으민망함에 엘은 어설피 웃어 보이고 빨리 걸었다.

 

? 제수씨 같이 가!”

 

안 들려 안 들려 종종걸음으로 빨리 걷던 엘은 그러나 확연한 신장차이로 인해 금세 메테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빨리 걷느라 발그레 진 뺨의 엘이 다시 걸음을 늦췄다.

 

좋으면서 빼는 건 제수씨도 만만찮다니까, 엘군, 어른의 눈엔 딱 보이거든요? 둔탱이 라피스랑 같이 보면 곤란해-”

 

능글맞게 웃으며, 메테가 쯧쯧 기세 좋게 말했다.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는 듯 아예 엘과 라피스는~ 이란 전제를 깔고 말하는 메테의 그, 어떠한 말도 안 통할 분위기에 엘은 결국 하아아- 한숨을 내쉬었다.

 

메테 형…….”

 

부인을 포기한 엘이 힘없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

 

저 사실은요……. 라피랑 친구보단 다른 거 하고 싶었어요.”

 

엘의 말에 메테가 표정 위에 드리운 미소를 더욱 진하게 했다.

 

. 하면 되잖아?”

 

.”

 

? 메테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었다. 아우우- 아니에요. 엘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제수씨. 제수씨 바라는 대로 해.”

 

?”

 

제대로 듣지 못한 엘이 되물었다. 그러자 메테는 피식 웃으며 엘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섰다.

 

가자. 그 여자애들 다 갔을 거야. 눈물 좀 빼고서.”

 

우와앗!”

 

 

 

 

 

 

 

 

 

 

라피스! 사랑하는 내 동생!”

 

!”

 

먼저 손을 들어 붕붕 흔든 메테를 싸그리 무시하고 라피스는 뛰어오느라 숨을 몰아쉬는 엘부터 찾았다.

 

. 저 팔불출 같으니라고. 메테는 둘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상큼한 여고생들이나 보며 마음을 달래야지.

 

여자애들은?”

 

갔어. 물어볼 게 있다고 왔던 거였어.”

 

라피스의 말에 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뻔히 다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저의는 뭐야, 설마 내가 그 정도 둘러댐에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뭘 변명하고 그러냐, 사귀기로 했어?”

 

그럴 리가 없잖…… ?”

 

너 날 그렇게 멍청한 애로 보고 있었냐, 가자.”

 

잠깐만 엘!”

 

같이 가! 먼저 뒤돌아서 운동장을 가로 지르는 엘에게 라피스가 뛰어 갔다. 먼저 가지 마. 갑자기 어제 넋놓고 있다가 깨진 컵조각에 베인 손목의 상처가 따끔따끔 쑤셨다.

 

그 기분 나쁜 감각을 떨쳐 내려 라피스는 손목을 다른 손으로 꾹 누른 채, 방금 전 교문 밖으로 휙 나간 엘의 뒤를 쫓았다.

 

교문엔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로 엘이 눈에 띄지 않자 또다시 요 며칠 간 그를 기분 나쁘게 했던 불안감이 치밀었다.

 

! 라피! 엘 어딨어?”

 

뛰어나가는 둘을 황급히 쫓아 나온 메테가 라피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몰라안 보여…….”

 

야 너 왜 그래? 얼굴이 창백해.”

 

평소와 같지 않은 라피스의 목소리에 그를 마주본 메테가 라피스의 어깨를 흔들었다.

 

어디 간 거야…….”

 

불안하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창백한 얼굴을 한 채 한쪽 손목을 꽉 붙잡고 있는 라피스의 모습에 메테는 그를 가볍게 때렸다.

 

너 갑자기 왜 그러냐니까?”

 

나도 몰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주변을 둘러보며 엘을 찾고 있는 라피스의 눈은 흐려져 있었다.

 

정작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라피스의 모습에 메테가 정신 차리라고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타이어가 바닥에 강하게 마찰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 뒤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터진 것이.

 

 

 

 

 

 

 

 

 

 

 

 

꺄아아아악!”

 

사람이 치였어!”

 

 

 

번쩍 고개를 치켜든 라피스의 눈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AFTER

.

.

.

 

- 우리는 친구라기엔 너무 가까운 사이가 돼 있었다.

 

 

 

나한텐 평소에 어떤 신기도 뭣도 없었다. 영화에서 소심한 주인공이 그렇듯 어설픈 예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친구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주인공을 살리거나 도와주는 그런 능력도 없었다.

 

내가 계속 불안해했던 이유는 너 때문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에 몸을 떤 건 너 때문이었다.

 

말하기를 망설이며 눈치 보았던 것 역시 네가 처음이었고 누군가만 계속 생각해 하룻밤을 샌 것도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인생이 길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내 삶을 멋대로 끝내 버린 사람은,

 

너였다.

 

 

나도 이제 차 못 탈 것 같아. 어떡하지 엘?”

 

너는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었어.

 

 

 

 

# 9 너에게 쓰는 편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