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Troubl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부루퉁.
불만스럽다는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낸 채 볼을 퉁퉁 불리고 앉아있는 아스모델의 모습에 라피스는 목소리를 줄일 생각은 전혀 안 한 채 말했다.
“쟨 또 왜 저래?”
심드렁하게 지나가다 물어보는 것처럼 툭 내뱉은 라피스의 말에 조용히 숨 죽이고 아스를 지켜보고 있던 이사나와 알리사, 데르온이 기겁한다.
“라피스님!”
이리 오라며 손짓 하는 이사나의 행동에 라피스는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마치 왜 오라가라야, 라고 하는 듯한 삐딱한 모습에 이사나는 소곤소곤 설명했다.
“아스 사춘기에요, 날카롭다니까요.”
그 말에 라피스는 흥 코웃음 쳤다.
“성장도 끝난 게 사춘기는 무슨.”
“아니에요. 데르온 말도 안 듣고, 어젠 엘한테 ‘어린애 취급 하지 마’라고 소리도 질렀다니까요.”
손사래 치며 부연설명 하는 이사나의 말에 라피스는 오히려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너희 그러고 있으면 아스가 모를 거라 생각 하냐?”
라피스의 말이 끝나자 셋은 소파 뒤에 눈만 내밀고 있던 자세에서 화들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헉! 그, 그런 가…….”
“다, 당연히 알겠지…….”
똑같이 잘 노는 구나, 라피스는 셋의 모습에서 눈을 돌려 이 상황의 주인공, 영 밝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스를 응시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도 아스는 뾰로통한 표정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있다.
결국 뭐라도 일어나길 바랐던 라피스는 흥미가 떨어져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얏!”
그때 하필 방문 앞에 누가 서 있었던 건지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라피스와 부딪혔다.
반사적으로 내려다본 라피스는 삐딱히 말했다.
“뭐야, 너 왜 여기 서 있어? 한 번에 들어올 것이지.”
그 말에 엘은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엘의 모습에 라피스는 혀를 차며 그를 방 안에 밀고 문 밖으로 나왔다.
하… 하하…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지? 이사나는 라피스가 문을 닫고 나간 시점부터 방 안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어색한 기류에 머리만 긁적였다.
데르온 역시 눈치만 살피고 있는 모습인 걸 보니 그 역시도 이 상황이 적응이 안 되는 듯 했다.
하기야 사흘 전만 해도 서로 껴안고 토닥이는 부자(혈연은 아니지만)사이였던 이들이 갑자기 냉기를 풀풀 날리고 다니니 주변 사람들로선 당연히 적응이 안 되는 터다.
수많은 생각이 지나쳐간 잠시, 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스, 나랑 얘기 좀 해.”
엘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제멋대로 앉아 있던 아스가 짧게 말했다.
“난 할 말 없어.”
“말을 해줘야지,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엘의 답답한 듯 낸 큰 목소리에 아스는 심술 난 표정으로 거절했다.
“엘이 알 거 없어.”
헉. ‘엘’ 이라는 아스의 지칭에 이사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얼른 엘에게 고개를 돌리자, …히익.
아스의 차가운 말만 해도 기가 죽어 시무룩했던 엘인데, 늘상 아스가 부르던 ‘대부’ 대신 ‘엘’ 이라 지칭함에 엘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아무리 반항기라 해도(마족에게 있는지 없는진 이사나도 몰랐지만 주변인들은 그렇게 진단했다) 마음 약한 엘한테 대못 하나 거하게 박아놓겠다 싶어 이사나는 중재에 나섰다.
“아스, 엘한테 왜 그래? 엘, 울지 마.”
아스를 혼내며 이사나는 정말 서운한 듯 금방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엘을 토닥였다.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니 꼭 쥔 채 파르르 떤다.
“아스, 다음에 얘기하자…….”
처음 있는 아스의 차가운 태도에 엘은 충격이 큰 듯 작게 말하곤 힘없이 방을 나갔다.
엘의 긴 물빛 머리칼이 사라지자마자 알리사가 분개한 듯 소리쳤다.
“아스 너 왜 그래? 엘님이 뭘 잘못 했다고 그런 말버릇이야! 엘님 표정 얼마나 어두웠는지 알아!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는 건 누구 앞에서 예의야?!”
어이쿠. 이사나는 일단락 된 듯 했던 상황이 알리사의 분노로 다시 험악하게 돌아가자 삐질 보이지 않는 땀을 흘렸다.
하긴, 아스가 엘에게 보인 태도는 이사나로서도 혼내주고 싶은 모습이었으니 다혈질 알리사가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소리 지르는 알리사를 무시하며 아스는 일어서서 그들을 지나쳐 나갔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에 이사나는 몸을 부르르 떠는 알리사를 토닥였다.
“알리사, 진정해.”
“아무리 반항기라고 해도 그렇지 아스가 어떻게 저럴 수 있어? 엘님이 언제 아스한테 못할 짓 한 적 있어?”
이사나는 하하- 난감한 웃음만 흘렸다. 데르온은 볼을 긁적이며 심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군요. 성장 끝난 마족이 반항기라니. 그것도 유독 엘님께만 저러시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엘님께만 붙어 있으셨는데.”
데르온의 말에 알리사는 어휴 한숨을 쉬고 발을 쿵쿵거리며 나갔다. 남은 두 남자는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
쾅. 제멋대로 밀어버린 문이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항의하듯 닫혔다.
뭐하는 짓인지.
아스는 통제가 안 되는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요근래, 엘 보는 것이 마냥 좋았던 감정과는 달라 혼란스러웠던 터였다.
그리고 한순간 확 열이 받쳐 엘한테 큰소리 낸 게 바로 며칠 전.
전에도 라피스가 엘에게 치근덕대며 장난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도 어쩐지 그 날 따라 짜증이 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히 소리를 질러버린 것.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는지 생각해 보면 별다른 이유가 없건만 다시 엘에게 사과하자니 심술이 나는 것 때문에 아스는 싸늘한 무표정만 고수하고 있었다.
아우 머리 아파. 바닥에 주저앉아 긴 머리채를 아스는 괜히 잡아 당겼다. 데르온이 그의 기색을 살피고 불편하면 마계로 가자고 했으나 아스는 거절했다.
“아 도대체 뭐야…….”
아스는 한동안 바닥에 앉아 있었다.
⁂
아스모델이라는 이름의 어린 마왕님이 멋모르고 혼자 끙끙대고 있을 무렵, 그를 애지중지하는 한 존재 역시 방구석에서 음울한 분위기를 가득 풍겨내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서 엘은 계속 한숨만 쉬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스가 화를 낸 날 이후로 계속 대화를 해보려했지만 아스는 찬바람 풀풀 날리면서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언제나 대부~하며 잘 따라준 아인데 저렇게 쌀쌀맞게 구니 정말 서운해서 눈물이 솟을 것 같다.
갑자기 없는 사람 취급하는 아스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보단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아스가 처음인지라 어색하기만 하다.
“축 늘어졌네, 엘.”
별안간 들리는 유쾌한 목소리에 엘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트로웰!”
“삼 일 만이지? 영 기운이 없다, 엘.”
눈을 찡긋하며 웃은 트로웰이 소파에 앉아 있는 엘의 머리를 토닥였다.
형과 같은, 어른과 같은 그의 모습에 엘은 눈물을 글썽였다.
“트로웰…….”
눈물을 가득 담은 채 나 지금 슬퍼, 위로가 필요해, 라고 말하는 올려다보는 엘의 모습에 트로웰은 어깨를 토닥였다.
“진정하고, 엘, 응?”
⁂
결국 눈물을 훌쩍이며 이야기를 끝낸 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트로웰은 말했다.
“반항기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스가 뭔가를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긴 하다. 음… 뭔가 아스에게 자극이 될 만한 일이라던가, 없었어?”
트로웰의 말에 잠시 기억을 더듬던 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
“이건 정말 얘기를 나눠보는 수밖에 없겠다, 내가 아스하고 이야기 해 볼까?”
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엘을 토닥이며 트로웰이 조언했다.
“라피 녀석도 어릴 때 갑자기 삐지고, 화내고 그런 일 많았어. 근데 그게 다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더라고. 엘, 아스 본인도 잘 모를 수 있으니까 토닥여줘. 뭐, 아스는 라피스가 아니니까 좀 제대로 된 이유가 있겠지.”
한결 풀어진 엘이 미소 지었다.
엘은 일부러 찾아와 달래준 트로웰이 고마워 일어섰다. 용기를 얻은 김에 가볼 요량이었다.
“말 나온 김에 가볼래. 트로웰 고마워.”
꼭 끌어안고 고맙다 하는 엘이 귀여워 트로웰은 큭큭 웃었다.
“다짜고짜 아스 껴안지는 말고.”
“안 그래!”
그렇게 트로웰에게 조언과 용기를 얻고 오는 길.
엘은 노크를 했음에도 답이 없는 아스의 방(정확히는 솔트레테 황성에 올 때 아스가 머무는)문을 열었다.
“아스. 자?”
방의 창가에 있는 소파. 그 위에 붉은 눈을 감은 채 쭉 누워 있는 아스가 보였다.
말에 대답도, 누운 자세에 미동도 없는 아스에게 엘이 조심히 다가갔다.
“정말 자?”
기척에 일어났을 앤데, 혹시 나 보기 싫어서 그냥 있는 걸까……. 갑자기 드는 우울한 생각에 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스…….”
“왜.”
잘 자, 말을 뱉으려던 엘은 깜짝 놀라 그대로 멈췄다. 아스는 눈을 반짝 뜬 채 엘에게 눈을 굴렸다.
“나랑, 얘기 좀 하자.”
단단히 벼른 듯한 엘의 말에 아스는 다시 천장으로 도르르 시선을 옮기고 잠시 뒤 일어났다.
몸을 일으킨 아스에게, 엘이 또박또박 말했다.
“눈 피하지 말고 나 봐, 아스. 정말 너랑 한 시간 이상 말하기 전엔 안 나갈 거니까.”
엘의 말에 아스는 속으로 난감함에 고민했다. 엘을 보니 정말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폭발할 기세다.
그렇다고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는 걸 말할 수도 없고, 여태 있는 폼은 다 잡아왔으면서 털어놓을 수도 없고.
“너 나 정말 우는 꼴 보고 싶으면 방을 나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협박하는 듯 정말 진심인 눈으로 말하는 엘의 모습에 아스는 얌전히 앉았다. 제가 아무리 요즘 간이 부었다 해도 엘 정말 아프게 할 마음은 없었다.
그런 얌전한 아스의 말에 엘은 속으로 안도 했다. 내심 자신의 말을 그냥 무시해버리면 어떡하지 했는데 아스는 아직 그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도대체 뭐가 싫었던 거야? 엘이 이 냉전사태의 시작이 된 날의 상황을 들어 차근히 물어왔다.
그 날, 평소랑 다를 것 없었잖아. 너랑 나랑 라피스랑 이사나. 날씨가 좋다고 네가 나가 보자고 해서, 황궁 정원으로 나와서 차 마시고 있었잖아.
그랬지. 어렴풋이 그때 상황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리고 평소처럼 얘기하고 웃고. 아, 네가 이사나한테 알리사 얘기로 놀려서 다들 웃고, 기억 나?
응. 그렇게 평소처럼 놀았었다.
그러다가…….
“라피스가 또 나 놀려서 내가 화내고. 네가 라피스한테 소리 질렀는데 갑자기…….”
네가 웃지도 않고, 평소처럼 부루퉁한 것도 아니고 화냈잖아. 정말 무섭게.
그랬어. 아스는 입을 꾸욱 다문 채 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스가 무슨 말이라도 하길,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 모습에 아스는 괜히 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엘이 그랬잖아! 나 어린애 아니야, 다 큰지 벌써 오래라고! 은인이랑 붙어 있는 거 싫다고 했잖아!”
또, 그때처럼 갑자기 울컥 소리 지르는 아스의 모습에 엘은 난색을 표했다. 감정기복이 심한 아스의 스위치를 눌러버린 듯 하다.
아스는 깜짝 놀란 엘의 어깨를 확 틀어잡고 계속 소리쳤다.
“전에도 말했잖아, 은인이랑 대부랑 그렇게 붙어 있는 거 싫다고! 나한텐 안 그러면서 왜 은인이랑은 그러고 있는데! 싫다고!”
깜짝 놀란 채 아스가 외치는 소리를 눈만 깜박이며 굳어 듣던 엘은 무언가 굉장히 어린애 같은 이유로 너무나 심각하게 따지고 드는 아스에게 대답도 해주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그런데 아스, 네가 하는 말은 마치…….
정말 사랑받는 형 질투하는 것 같아, 그렇게 밖에 안 들려.
엘의 표정에 웃음기가 드러난 것을 알아챈 아스가 으르렁거렸다.
또 화를 내려는 것처럼 구는 아스의 모습에 엘은 얼른 입을 열었다.
“아스, 그러니까… 내가 라피한테 하는 것처럼 껴안아 주지 않는다고 그러는 거야?”
멍. 엘의 말에 아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폭풍전야와 같은 침묵.
아스의 얼굴은 점점 붉은 색으로 달아오르고, 반대로 엘의 얼굴엔 조금씩 미소가 떠올랐다.
엘이 마침내 어머니의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 아스는 외쳤다.
“그런 거 아니라고!!!”
방 안을 크게 울리는 고함에 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이었다면 귀가 한동안 멍했을 거라 생각하며 엘은 아스를 타박했다.
“그렇게 크게 소리 지르면 실례잖아, 아스.”
어느새 엘이 아스의 눈치를 살피던 상황은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씩씩 숨을 고르는 아스에게 엘이 다가갔다.
“아스한테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해. 많이 서운 했어?”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아스 앞에서 까치발을 한 엘이 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게 아닌데.
뭐라고 정의해야 할진 모르지만 아니다. 아스는 엘의 손을 쳐냈다. 애 같은 행동으로 보인다는 거 알지만 그 이유가 아니다.
“엘 좋아하는 거란 말이야!”
“어, 나도 아스 좋아해.”
깔끔하게 돌아오는 엘의 대답.
단 1초의 망설임도 없는 엘의 말에 아스의 낯이 죽을 상을 했다.
“그 좋아해가 아니고!”
정말 왜 이래 얘가. 애정이 필요한 건가.
엘은 트로웰의 충고를 떠올리며 아스에게서 이 기이한 행동의 원인을 찾아내려 했다.
“난 엘을…….”
아스가 잠시 말을 멈춘다. 그래, 뭐든지 말하렴. 엘이 미소를 지었다. 아스는 잠시 움찔한 뒤, 눈을 감고 외쳤다.
“사귀고 싶은 대상으로 보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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