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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Dear my Darling

[DMD] 제 12장 [데르온x아스] 못난이 200살

Come on, Honey !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주군! 이거 서류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도화지가 아니란 말입니다!”

 

벌써 15분 째인 실랑이. 마계 공작 중 하나이자 현재 마왕인 아스모델의 심복인 데르오느빌은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혹은 주름살이 는다거나.

물론 한창 나이인 마족이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니고, 말하자면 체감하길 이대로 폭삭 늙어버릴 것 같다, 라고나 할까.

 

그런 데르온에게 수명의 위협을 주는 이는 바로 그의 주군이자, 정령왕을 대부로 두고 있고, 마신이 내린 왕으로서 무시 못 할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 아스모델이었다.

 

겉보기엔 그저 한없이 예쁘신 마왕 전하께서는 숨넘어갈 듯한 데르온에게 그 달콤한 미소 한 번 건네고는 또다시 서류의 상하를 시원하게 펜으로 먹칠을 했다.

 

전하! 도대체……!”

 

데르온은 제 말은 들은 체도 않고 또다시 장난을 치는 주군의 행동에 인내가 끊어질 듯함을 느꼈다.

 

우리 마왕님, 예쁘고 착했는데.

 

계속해서 딴청을 피우는 아스모델 전하를 겨우겨우 달래 급한 업무를 처리한 데르온은 흐느적거리며 집무실을 나왔다.

 

남들은 믿지 않는다. 대부인 엘퀴네스님도 모를 거다. 유독 그 앞에서만 말 안 듣는 마왕님을.

 

 

엘퀴네스님.

 

 

그래, 대부이신 물의 정령왕께서 그의 친우이신 라피스님을 찾아 떠나신 후다. 정확히는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나서부터.

 

처음 주군은 더없이 의젓한 모습으로 마계 내 위계질서를 잡아가셨다. 가끔씩 유니콘 시벨리우스와 투닥거림이 있었으나 가벼운 사건 정도여서, 문제 될 것은 무엇도 없었다.

 

그러다가 한 삼 개월 전인가정원에서 티타임을 가지던 중(신하로서 주제넘으나 둘 사이에 격은 거의 없었다) 아스의 자신을 어떻게 보느냔 말에 데르온은 당연스레 매사 올바르시고 강한 주군이시지요라는 답을 드렸다.

 

그러자 아스모델의 묘한 미소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니 뭔가 찜찜한데.

 

결국 난 그냥 유능한 마왕이다 이거지.’

 

뒤에 망아지 녀석 말이 맞을 때도 있군등의 혀차는 소리를 혼자 하셨지만 데르온은 신경 쓰지 않고 화제를 넘겼다.

 

정확히 그 이후다. 제 할 일 야무지고 어른스럽게 처신하시던 주군이 덜 자란 인간아이마냥 매사 장난질로 신하 괴롭히기 시작한 게.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어 데르온은 그저 답답이야, 답답이야, 속앓이만 했다.

거기에 더욱 답답함을 부추기는 건 마왕 전하, 다른 이 앞에선 시침을 뚝 떼셔서 누구도 이 인내를 이해해 주지 못 한다는 거다.

 

나 없으면 서류고 뭐고 안 하실 속셈이시냐, 어디 그래 보셔라, 나는 방관할란다 마음 다잡아도 이놈의 보모근성 어디로 가지 않음이라. 복도를 터벅터벅 지나며 데르온은 바랐다.

 

하루 빨리 주군의 제정신이 돌아오시기를.

아니면 대부이신 정령왕께서 속히 오시기를.

 

 

 

 

 

 

 

 

전하는 어디 계시느냐, 네놈들은 뭘 한 거야!”

 

커질 대로 커진 언성이 휘하들을 호통 쳤다. 데르온은 정복도 갖추지 않은 채 성에 있었다.

 

이른 새벽이건만 성 안은 술렁이고 있었다. 밤사이 사라진 마왕님에 성 안 관리자가 꼭두새벽부터 대경하여 데르온을 뫼신 것이라.

 

차가운 공기에 서늘해진 뺨의 데르온은 당장 호위들을 추궁하고, 행적의 추적을 지시했다.

 

어디를 가셨나. 침입자의 흔적은 없지만, 변고라도 나셨나.

 

데르온은 불안과 초조에 가득 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서성였다. 걱정의 무게로 질식할 듯한 그 때에 때맞춰 시종 하나가 혼비백산하여 달려와 전하의 복귀를 알렸다.

 

주군!”

 

데르온은 주군의 모습에 급히 다가갔다.

눈앞에 나타난 아스모델은 어디 크게 다쳤는지, 피투성이였다.

 

흑색 머리칼 끝은 피에 엉겨 흉하게 내려와 있고, 원래 하얗던 피부는 색이 하얗다 못 해 창백히 뜨고.

 

아스모델 전하는 부축을 선 데르온에, 그에게 몸을 의지하고 여전히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여유를 부리는 주군 상태에 한시름 마음이 놓인 데르온이 그를 부축해가며 추궁하려 입을 떼었다.

 

주군, 간밤에 어디를…….”

 

데르온은 말을 잇지 못 했다. 멀쩡한 듯 하던 주군이 갑자기 크게 휘청이며 쓰러지는 것에 크게 놀란 것이다.

 

아스님!”

 

부르지 않던 이름까지 부른 데르온은 정신을 잃은 아스모델을 급히 안아 올려 복도를 내달렸다.

 

마법 방어가 설계된 성이 이렇게 싫었던 것은 처음이다.

 

뒤따라온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침실에 뉘이고 서 있자 치료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시종들이 머리칼과 몸의 피를 닦아내고 옷을 대강 갈아입히고, 치료사가 진맥을 하는 동안 데르온은 물러서 초조하니 지켜보았다.

 

저주마법에 의한 부상입니다. 상처는 아물지 않으나 급한 대로 출혈은 멈춰놓았습니다. 전하의 자체치유력과 마력을 보아선 아마 내일 밤이면 치유가 될 것이고 모레쯤이면 기력을 회복하실 겁니다.”

 

치료사는 수석 시종에게 공기를 따뜻이 하고 지켜보아 혹시 상태가 변하시면 당장 이르라 지시하고는 물러났다.

 

시종이 시립하려는 것을 데르온은 낮게 명했다.

 

내가 있겠다. 물러가라.”

 

그럴 수는…….”

 

마신께서 내게 당부하신 분이다. 내가 지키겠으니 밖에 있어라.”

 

그의 어조는 단호했다. 뭐라 말을 붙일 수 없음에 동동거리던 시종은 그가 마신까지 들먹여서야 방을 벗어났다.

 

아스님…….”

 

흑빛 눈이 감겨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별안간 어딜 가서 뭘 하신 것이기에 마왕 전하께서 이리 되시냐.

 

데르온이 안타까움과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등받이 의자를 하나 들어 데르온은 침상 옆에 자리했다.

어느 순간 돌연 어른이 된 주군이지만, 어린 소년 시절 앳됨이 아직 풍김이라, 데르온은 주군의 고운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속 썩이고, 매일 같이 한숨 쉬게 하셔도 좋으니 아프지 마십시오.

 

들리지 않을 부탁을 했다.

 

다치지 마십시오. 궂은 일 다 제가 할 터이니 언제까지나 고운 미소 보여 주십시오.

이 신하의 유일한 바람이자 욕심입니다.

 

동이 틀듯 말듯 어두컴컴하기만 했던 깊은 새벽이 서서히 물러갈 즈음.

곤했어야 할 밤에 놀라 달려온 데르온의 지친 몸과 정신이 아늑함에 서서히 늘어질 즈음.

 

아스가 눈을 떴다.

데룩데룩. 잠시 천장을 본 아스의 진한 눈이 천장을 한 번, 시계를 한 번 보았다.

그리곤 데르온을 한 번 보고, 다시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서 뭐 해?”

 

흠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스가 데르온을 불렀다. 수마에 흔들리느라 아스가 고요히 눈 뜬 것을 몰랐던 데르온이 깜짝 놀라 아스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을 받은 아스가 좀 더 강한 소리를 냈다.

 

여기서 뭐 하냐니까.”

 

이 새벽녘에.

정작 이 새벽에 온 성을 뒤집어놓은 장본인이 하는 말에 데르온은 물었다.

 

어디서 뭐 하고 오셨습니까.”

 

내가 먼저 물어 봤…….”

 

어디서, 뭐 하고 오신 겁니까.”

 

말까지 중도에 끊고 물어보는 데르온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아스가 뭐라 하려던 입을 다물고 데르온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의 표정과는 다른, 정말 싸늘한 표정. 그저 평소처럼 잔소리하고 말겠거니, 하고 뒷일은 신경 쓰지 않았던 마왕 전하, 아스는 이 전개에 당황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왕 전하께서 이 새벽에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무엇을 하셨기에 옷자락에 피가 묻고 저주가 담긴 상처까지 얻으셨는지, 말하십시오.”

 

잔소리 할 때나, 혼낼 때, 부탁할 때의 그런 목소리보다 가라앉은 낮은 톤.

 

심각한 분위기에 아스는 어설픈 웃음도, 장난스런 제스쳐도, 무엇도 하지 못하고 음말을 끌었다.

 

그냥…….”

 

제대로 대답하십시오, 어디서, 무엇 하셨습니까.”

 

눈치를 살피던 아스는 데르온의 얼음장 같은 기색이 풀릴 생각을 안 하자 난감해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에 뻐근한 팔을 들었다.

 

여기 있다, . 이거 구하러 갔다 왔어.”

 

주목적은 아니었지만뒷말을 흐린 채 아스가 건넨 건 굉장한 명도의 검은 색을 가진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데르온의 손을 끌어 쥐어준 아스가 웃었다. 예쁘지? 하고 묻는 아스와는 다르게 데르온은 그 보석을 본 순간부터 완전히 굳어 있었다.

 

예쁘지? 너 줄게.”

 

눈을 반짝이는 아스에게 눈길을 돌린 데르온이 입을 열었다.

 

지금 간밤에, 단신으로 마룡의 레어를 갔다 왔다 하시는 겁니까?”

 

…….”

 

아스는 합, 입을 다물었다. 고요한 방 안에 더한 정적이 흘러갔다.

 

눈치를 보는 아스를 무시한 채 손에 들린 보석(마룡의 심장으로 추정되는)을 만지작거리던 데르온이 하. 짧게 탄식했다.

 

완전히 심각해진 방 안 공기에 아스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누우세요.”

 

일으키려 했다.

 

상처에서 통증은 안 느껴지십니까.”

 

? 으응. .”

 

침대 옆으로 와 아스를 눕히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 주는 데르온에 아스가 이불 밖으로 눈을 내민 채 쳐다봤다.

 

잠시 서서 쓴웃음을 짓던 데르온은 의자를 끌어 왔다.

쓰게 미소 지은 채 마계 공작, 데르오느빌은 얼음장 같던 기운을 녹이고 잠시간 아스모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분위기가 많이 풀리긴 했지만, 지은 죄가 있는 아스는 데르온이 덮어준 이불 위로 불안이 깃든 눈을 들어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스를 보는 건지, 그저 투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게 한동안 바라보던 데르온이 입을 연 건 침묵과 정적을 못 견딘 아스가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처음엔.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막 전대 마왕을 떠난 직후였고, 마신님과 엘퀴네스님 덕으로 사건의 전말을 알면서 앞으로 닥칠 싸움에 더 흥분해 있었으니까요.”

 

본래의 낮은, 차분한 목소리.

갑자기 시작된 추억고백에 아스는 또르르 눈만 움직였다.

 

심적으로 지친 상태여서인지 그 기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저는 그때 주제넘지만 아직 알에 불과하시던 주군께 많은 위안을 받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데르온은 가만가만 말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다시 아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느 때와 비슷하지만, 다른 분위기에 아스는 농을 걸지도 못하고 데르온이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훌륭하게 마왕으로서 위엄을 보이시는 주군을 보며, 주군의 대부는 엘퀴네스님이시고,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불경입니다만, 저는 아스님을 강하게 성장하시도록 돌보았단 흐뭇함을 가끔 느낍니다.”

 

데르온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그것이 마치 그런데 이렇게 삐뚤어지시다니등의 막 나가는 아이를 볼 때의 그것과 같이 느껴져 아스는 버럭 솟는 화에 이불을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런 게 아니야!”

 

갑자기 난 큰소리에 데르온이 놀란 눈을 했다. 그러나 이미 흥분한 아스모델이 그것을 살피고 진정할 리가 없었다.

 

, 마왕이야. 모든 마족들을 내 아래에 무릎 꿇리는 왕이란 말이다. 나는 내 위치를 알아.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하는지도 안다고!”

 

아스는 숫제 소리를 쳤다.

 

그런데 왜요.”

 

데르온이 침대에 앉은 아스를 보는 채로 조용히 물었다. 그의 말엔 궁금함과, 답답함이 섞여 있었다.

 

왜냐니. 너 때문이잖아!”

 

소리도 크다. 데르온은 아스가 지금 몇 살인지 헤아리다 한창 혈기왕성 할 나이임에 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제가 튀어 나옵니까?”

 

그래봐야왕 노릇 잘 해봐야 왕으로 밖에 안 보니까!”

 

왕으로 밖에 라니그럼, 애로 보아 주시기를 바라셨습니까? 사고뭉치 철부지로요?”

 

대화가 계속되자 잠잠하던 데르온도 차츰 본심을 말하고 있었다.

 

철부지 애요?’ 하며 흐음- 하고 쳐다보는 시선에 아스는 그, 그건 아냐! 라며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여러 번 흥분하시네. 데르온은 하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아스를 보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아스가 말을 흐린다. 뒷말을 주저하며 이익, 분해하듯 떠는 아스를 보며 데르온은 아스님?’ 하고 그를 불렀다.

시트까지 꾸깃하게 쥐고 말을 않는 아스모델에 데르온은 마주 앉아 있던 몸을 엉거주춤 일으켜 아스에게 손을 뻗었다.

 

아스님……?!”

 

제 성을 못 이겨 부들대던 아스가 될 대로 되라 식으로 덤비려 마음먹기까지 0.5. 데르온이 놀라 중심을 잡으려 손을 짚은 게 나머지 0.5.

 

사건은 1초 만에 일어났다.

 

눈을 꼭 감은 아스는 차치하고, 놀람과 경악에 눈을 크게 뜬 데르온은 주군의 얼굴을 일생 최고로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흑단의 머리카락. 혈색 좋은 매끈한 피부.

등의 여태 보아왔던 것에다 따뜻한 온기와 도톰한 촉감이 더해진 감각이 마치 제 몸이 아닌 듯 뇌에 전달해 왔다.

 

할짝이듯 혀를 내어 깊지 않게 마주 댄 아스는 이젠 완연히 새빨개진 얼굴을 휙 돌리곤 말했다.

 

애 취급 해달란 게 아니었어. 날 봐달란 말이야.”

 

일 치고 나니 몰려오는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아스가 잠시 옆을 보다가 다시 에이잇 젠장! 하는 소리를 질렀다.

 

상관없어, 몰라. 이젠 애로도, 주군으로도 보지 마. 그동안 지켜봐 준 걸로 충분하니까 앞으론 그냥 나로 봐.”

 

당황에 얼이 나간 건 데르온도 마찬가지. 정신을 못 차리는 데르온에 더욱 민망함이 배가 된 아스가 결국 또 소리를 질렀다.

 

명령이야! 이제부터 내가 네 애인이다!”

 

아스님?!”

 

시끄러! 말 하지 마!”

 

완전히 밝은 창밖만 뚫어지게 보는 이가 이제 막 풋풋한 사랑의 기운을 뿜어내는 마왕 전하임이라.

 

 

 

After 50 years

 

오늘도 집무실은 보는 이 질투하게 하는 분위기가 물씬.

 

수줍던 전과는 다르게 한창 물 오른 마계의 주인과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슬슬 마음 기우는 신하 사이는 조금 위험하게, 달콤하게,

 

아스님!”

 

뭐 어때, 아무도 없는데.”

 

생긋이 웃는 전하가 벽에 몬 제 사람에게 애정표현도 하면서,

 

하자. ? 키스해줘.”

 

그 아찔함에 감히 누구도 얼씬치 못하게도 하며,

 

그렇게 연애 중이다.

 

 

# 12 못난이 200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