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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Dear my Darling

[DMD] 제 13장 [라피스x엘] 꽃과 나비 下

 

 

 

왔구나!”

 

문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형체를 받아 안으며 엘은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았다.

 

트로웰, 여기서 뭐 해?”

 

검은 머리칼에 늘씬한 소년의 몸으로 해사하게 웃는 이는 라피스의 대부 트로웰.

 

라피가 엘 오면 밥 챙겨 먹이라고 앉혀 놨어-!”

 

생긋 웃으며 엘의 손을 잡아끈 트로웰은 식탁에 그를 데려다 놨다. 물수건으로 손을 문지르며 엘이 물었다.

 

라피는 어딨는데?”

 

나도 모르겠는데? 어디론가 가버렸어. 늦지 않게 들어올 거야.”

 

그게 뭐야. 진짜 찾지도 않은 거야?

 

엘은 잘 놀고 왔어?”

 

한 술 더 떠 트로웰이 하는 말에 엘은 침울한 얼굴을 했다.

 

그냥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왔어.”

 

사실 뻥이고 우울하게 웅크리고 있다가 결국 갈 곳 없어서 돌아온 거지만, 엘은 사족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런 엘을 보며 트로웰은 낮게 웃었다.

 

얼른 먹어. 라피가 엘 좋아하는 거 해두고 기다리래서 나 열심히 했단 말이야.”

 

덧붙여 기분 안 좋은 것 같으니 밥 먹이고 재우랬지, 피곤해 보인다고. 트로웰은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커플 사이 훼방 놓기라고 할까. 아니, 그보단 라피스 고생시키기 운동 본부 활동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이거 트로웰이 만든 거야? 잘 만든다.”

 

식탁 위에 있던 리조또를 한 입 먹은 엘이 감탄했다. 트로웰은 순식간에 모든 요리를 혼자 준비한 일등 신랑감의 표정을 지었다.

 

맛있어? 사랑을 담아 만들어서 그런가 보다. 천천히 많이 먹어~”

 

생긋 웃는 트로웰은 이번엔 사실 재료 준비랑 레시피는 라피가 하고 난 시간 재서 불 끈 것 뿐디저트도 라피 작품이란 뒷이야기를 삼켰다.

 

, 딱히 해야 하는 말도 아니잖아? 트로웰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며칠 전 보았을 때보다 핼쓱해진 엘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침울해 보이는 게 영 상태가 아니다. 트로웰은 속으로 혀를 차며 물었다.

 

, 혹시 어디 아파?”

 

아니. 전혀. 아파 보여?”

 

엘은 트로웰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감기에도 걸리지 않았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보는 엘의 눈에 트로웰은 으음- 말을 끌었다.

 

그냥. 그럼 뭔가 고민하고 있는 거라도 있어?”

 

움찔. 그냥 묻는 건지 어떤 건지 트로웰의 말에 엘은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트로웰, 못 보던 사이에 족집게 도사라도 된 거냐.

 

그런 거 없어. ?”

 

아니, 그래 보여. 우울해 보이고, 한 눈에 나 신경 무지 쓰이는 거 있어란 걸 알아보게 표정도 찌푸리고.”

 

, 그렇게 티 나나?

 

되레 찔린 엘은 흠칫 거리려는 어깨를 가까스로 원위치 시키며 아무것도 아닌 척 웃었다.

 

혼자 움찔움찔 아닌 척 행동하려 하는 엘을 보며 트로웰은 진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라피스에게 순순히 협조하기 싫어진다. 이렇게나 귀여운걸.

 

, 라피 예전 얘기들 해줄까?”

 

, !”

 

밝은 얼굴로 대답하는 엘에게, 트로웰은 곱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말이지…….”

 

 

 

 

엘에게 트로웰이 30%의 과장과 왜곡이 섞인 라피스 과거지사폭로를 하고 있던 그 시각. 그런 건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엘이 오늘 오전 내내 열렬히 욕 한 라피스는 아버지 라이칸의 집 뒤에 있었다.

 

너무 수수하지 않냐?”

 

빠직.

 

옆에 앉아서 계속해서 태클을 거는 라이칸에 라피스는 손에 있던 공구를 던졌다.

 

잘못하면 맞겠다.”

 

남이사 수수하든 화려하든 무슨 상관이야, 노인네. 왜 매번 옆에서 시비 거는 건데?”

 

그럼 뒤에 붙어서 떠들까.”

 

아 좀, 저리 가라고!”

 

라피스의 짜증 어린 외침에도 라이칸은 흐음하며 흥미롭단 기색만 내보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아 진짜, 평소엔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오늘은 왜 저래?

 

며느리 주려고?”

 

옆에서 또다시 날아온 한 마디에 라피스는 다시 냅다 공구를 던지고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완성품을 품에 넣었다.

 

드디어 완성이다오늘, 오늘,

 

과연 받아줄까?”

 

왜 와서 시비냐니까!”

 

해야지. 라피스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이제 겨우 몇 천 년 산 그에게 생애 처음으로 굳은 각오와 의지가 넘실거렸다.

 

여태 완성을 핑계로 미뤄온 일이 이제 물러설 곳도 없이, 오늘 저녁이었다.

답지 않게 심장이 쿵쿵거리지만 라피스는 애써 낙관했다.

 

처음에만 티격태격 했지, 요즘엔 나름 분위기 좋다. 큰 소리 난 적도 싸운 적도 없고, 엘도 자신을 불편히 여기지 않고.

 

그러니…….

 

……정말 괜찮을까? 단지 익숙해지기만 한 건데 성급한 짓인 거 아냐? 괜히 더 어색해 지면?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바로 어두운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 몰라.

 

라피스는 아예 생각을 멈췄다.

 

평소와 다르게 여유롭지도 않고, 느긋하지도 않게 발길을 재촉해 온 집 현관문을 열 때만 해도, 그는 생각을 멈추려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장난치듯 트로웰과 웃고 있는 엘을 본 순간 그러한 노력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지만.

 

라피, 일찍 왔네.”

 

어서와.”

 

아침과는 다르게 밝게 웃고 있는 엘을 보며 라피스는 다행이다, 작게 안도했다.

무슨 일인 진 모르지만 침울한 엘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트로웰 녀석이 엘을 웃게 한 모양이다.

 

지금 너 욕하고 있었는데. 한창 재밌었거든, 난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

 

싱그러움을 듬뿍 담은 미소를 지은 트로웰은 난데없는 폭로에 당황해 버린 엘에게 살래살래 손을 흔들고는 순식간에 이동해버렸다.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트로웰의 존재감이 휑하게 둘 사이를 스쳐지나갔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라피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욕 하고 있었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질문에 엘이 짧게 기침했다.

 

정말이지, 트로웰!’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하게 하는 짓궂은 사람을 원망한 엘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다가 곧 자신이 아침부터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불편한 사실로 얼굴 맞대는 것보단 차라리 계속 무시를 해야지.

엘은 조금 찔려오는 한 구석을 외면하며 쌀쌀맞게 말했다.

 

어떤?”

 

잠시 뜸을 들인 라피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엘은 질문을 회피하고자 되레 쏘아붙였다.

 

넌 어디서 뭐 하고 있었는데?”

 

그 물음에 라피스가 맞은편에 있던 의자를 밀던 손을 멈칫 했다.

상황이 역전되자 엘은 마침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너는 요즘 뭐 했는데? 라이칸 집에도 갔었다며? , 또 누구 데려오기로 했어?”

 

엘의 차가운 물음에 라피스가 당황해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라이칸에게 갔던 건 맞지만, 데려오다니, 그런 일 없어. 엘 너 있는데 또 누굴 데려와.”

 

아니라고 그의 오해에 당황해서 빠르게 대답하는 모습에 엘은 날이 섰던 마음이 좀 가라앉는 걸 느꼈다.

 

성 난 속을 풀며 엘은 다시 물었다.

 

거긴 왜 갔는데? 가서 뭐 해? 원래는 잘 보지도 않는 사이라며?”

 

추궁하듯 말한 엘이 입을 꼭 다물고 표정을 굳히자 라피스는 당황해 이것저것 일단 대답했다.

 

, 화났어? 딱히 별다른 일 아냐, 그냥. …….”

 

열심히 만든 게 순식간에 별다른 일이 아니게 됐지만 라피스는 말을 갖다 댔다. 라피스가 제대로 말을 잇지 못 하자 엘은 더욱 차갑게 말했다.

 

그러니까 뭐 했냐고, 라피스.”

 

진짜 화 나 보이는 엘의 모습에 라피스는 정말 당황해 버렸다.

 

하다니별 거 아니라니까아니, 그러니까나랑 결혼 할래?”

 

…….”

 

급박하게 돌아가던 내부 공기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만약 누군가가 처음부터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면 갑작스런 침묵에 눈치를 보거나 놀라 먹던 걸 뱉어버렸으리라.

 

…….”

 

…….”

 

그저 한없이 흐르는 정적 사이로 두 사람이 내쉬는 숨소리만 들렸다. 사실은 워낙 굳어 있어 그리 큰 게 아닌 데도.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든 주범인 라피스는 머릿속에서 생각의 회오리를 만들고 있었다.

 

미쳤나 보다. 진짜 돌은 건가. 왜 하필 그 타이밍에 그 말이 나오지?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 거야. 등의.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한 라피스는 그야말로 12초 흐를수록 속이 바짝바짝 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저기, . 내 말 좀 들어봐. 이건, 이건 말이지…….”

 

결국 고백이고 나발이고 완전히 얼어붙은 엘을 되살리기 위해 라피스는 급히 말했다.

 

아니라고, 말이 잘못 나왔다고, 정말 별거 아닌 일이라고 하려 하던 참이었다.

 

결혼 하자고? 너랑, ? 설마?”

 

아냐, 아니야, .”

 

라피스가 다급하게 말하는 게 들리지 않는지 엘은 작게 읊조렸다.

 

결혼? 설마, 설마.”

 

라피스는 정말이지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꼬박 한 달을 그것도 오후에 엘도 못 봐 가면서 고생하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우면서 효과적일까 고민하느라 밤 시간을 허비했는데.

 

단 한 번의 실수로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다니.

 

옆에 자신이 있다면 그야말로 목을 잡아 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젠 당황하다 못해 울 것 같은 마음으로 라피스는 털어놨다.

 

그 설마라 미안한데 엘. 나랑 결혼 할래?”

 

제법 차분하게 말을 건네자 현실도피 한 것처럼 멍하던 엘이 말했다.

 

라피, 장난하지 마.”

 

아니야, 진담이야.”

 

라피스는 아예 본전도 못 건지고 사이가 후퇴할까 얼른 주머니를 뒤져 완성품을 내밀었다.

 

결혼 하자.”

 

안 되겠어, 이게 내 한계야. 밤새 생각했던 수많은 말은 다 어딘가로 날려먹은 라피스는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말도 안 돼…….”

 

입을 벌렸다 다시 닫은 엘은 라피스가 긴장감에 터질 지경에까지 가만히 있다가 순간, 불이라도 난 것처럼 얼굴을 화르륵 붉혔다.

 

원래 새하얀 피부라 더 붉어 보이는 엘을 보며 라피스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결혼 해줄래, ?”

 

귀까지 새빨개진 엘이 입을 다문 채로 라피스에게서 푸른 보석이 박힌 반지를 낚아 채 갔다.

 

…….”

 

드디어 입을 여는 엘의 모습에 라피스는 진짜 남의 말에 최대로 귀를 기울였다.

 

,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너 때문에 여기 와서 안 내려가는 거니까, 평생 밥 해!”

 

그 말에 라피스가 그대로 달려들었다.

 

으악! 무거워!”

 

, 알았어, 그럴게. .”

 

알긴 뭘 알아! 라피스에게 꼭 붙잡힌 채, 엘은 버둥거렸다.

아 글쎄 좀 떨어지라니까! 그래그래, .

 

 

# 13 꽃과 나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