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편 [長篇]/Dear my Darling

[DMD] 제 11장 [엘뤼엔x엘] 부자유친 上

Be happy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미안, 오늘은 학원 때문에 안 되겠다.”

 

곤란한 듯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말하는 친구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내일 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하교시간.

닷새 전만 해도 나도 저렇게 웃으며 돌아다녔는데.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

 

아직 다섯 시 밖에 안 됐다. 쓸데없이 왜 오늘 같은 날 단축은 하고 난리야. 개학식에도 안 하는 걸.

 

벌써부터 집에 들어가고 싶진 않지만 딱히 갈 데가 없다. PC? 아니, 게임 안 한다. 노래방 혼자 가긴 그렇고 오락실도.

 

카페도 가기 그렇고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도서실에서 잡지나 읽고 가자.

 

그렇게 마음 먹고 대충 아무거나 꺼내 그저 멍하니 쳐다봤다. 한 시간이 안 되서 사서 선생님이 문 닫아야 한다고 내몰았다.

 

아 진짜 갈 곳 없다. 이렇게 된 거 집 앞 벤치에나 앉아 있는 수밖에.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집에 안 들어가려 버텼다.

 

부모님이 때린다거나, 고민이 있다거나,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단지 오늘은 그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나는 나를 때려줄 부모도 없으며, 고민이라고 해봐야 내 보호자인 그 사람뿐이다.

56일의 출장이 오늘로 끝이었다.

 

아마 내가 학교에 있는 사이 이미 귀국해 회사로 돌아갔을 것이다. 출장이 끝난 날은 회사에 들렸다가도 금방 돌아오는 여태까지의 모습으로 볼 때 그는 지금, 집에 있을 터였다.

 

나는 그래서 들어가기를 미루고 있었다. 굳이 차가운 벤치에서 넋을 놓으며.

그가 날 때리거나, 구박하거나, 뭐 그러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 숨 막히는 분위기가 싫었다. 한 공간에 있는 시간이 늘수록 숨통이 눌리는 것처럼 답답했다.

 

벤치에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가로등이 켜지고 여름의 밤벌레들이 날뛰자 나는 이제 그만 들어갈까 고민했다.

 

그 사이 허기를 때우려 산 삼각김밥을 우물거리며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8시였다.

 

그가 이 시간에 자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차가운 밥 알갱이를 씹었다.

거친 밥알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겨우 삼키며 주스라도 사와야겠다, 생각했다.

 

벤치에서 어두침침한 얼굴로 편의점 삼각김밥에 목 메여 하는 이런 모습 따위. 친구들이 몰라서 다행이다.

 

항상 눌리는 집안 분위기에 내가 깔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는 친구녀석들 덕분이었다.

 

그러면 뭐 해. 이 중요한 날에 죄다 애인이니, 학원이니, 다 어디론가 가 버렸는걸.

 

벌떡 일어나 편의점으로 간 나는 과일 주스를 사서 다시 벤치로 돌아왔다.

슬슬 눕고 싶고, 좀 제대로 배를 채우고 싶다.

 

잠시간 고민한 나는 빈 페트병을 던졌다.

매번 엇나가더니 어째 오늘은 한 번에 골인. 나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 띠릭

 

지문인식이 되고, 열린 문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완벽하게 조용한 집안.

뭐야? 혹시 안 온 거야?

 

살금살금 내 방으로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니다. 서재에 있을 거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제발 이 인간이 서재든 침실이든 틀어 박혀서 안 나오기를 빌었다.

 

물론 그런 나의 작은 소망은 주방에 온 순간 저 멀리 사라졌다. 그가 떡하니 식탁에 앉아 있는 걸 본 순간, 나는 화장실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밥 안 먹냐.”

 

먹고 들어왔어요.”

 

식탁에서 종이를 보고 있던 그가 딱딱하게 물어왔다. 나는 빠르게 놀리던 발을 멈추고 대꾸했다.

 

이대로 샤워나 하고 그냥 자야지, 갑자기 피곤해졌어.

 

와서 밥 차려라.”

 

그런 내 걸음을 아예 멈추게 한 목소리. 왜 저래? 평소엔 혼자 잘만 먹더니.

 

그 말을 끝으로 또다시 무표정으로 아래만 쳐다보는 그의 모습에 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주방으로 갔다.

, , 냉장고에 있던 밑반찬. 마지막으로 수저와 젓가락까지 얌전히 놔주고 나는 내 갈 길을 가려 몸을 돌렸다.

 

안 먹냐.”

 

먹었어요.”

 

평소와는 다르게 내게 묻는 그의 작태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표현하자면 떨떠름하다고 할까.

반복된 그의 질문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다시 먹었다고 대답했다. 사실 배가 좀 쓰리게 고프지만 저 인간하고 마주 앉아 먹는 것보단 그냥 자는 게 낫…….

 

- 꼬르륵

 

…….”

 

난데없이 나는 소리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 뭐야, 너 왜 소리 내. 애꿎은 배에 속으로 욕을 했다.

 

먹어.”

 

그리고 언제나 저 무표정인 그는 또 예의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질릴 정도로 차가운 모습에 나는 더 대꾸 할 생각을 포기하고 밥을 퍼 앉았다.

 

침묵 속에 가족들의 화목한 모임이라는 저녁식사가 끝났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머리를 베개에 부비며 멍하니 생각했다.

 

저 사람이 왜 저러지. 말이 많아지는 병이라도 걸려 돌아온 건가.

 

는 내 아버지였다. 양친을 잃고 현실을 실감하지 못 했던 어린 나를 거둬 준, 서류상의 아버지.

 

사회적인 지위도, 명예도, 돈도 다 가진. 게다가 조각 같은 마스크에 긴 신체비율을 가진.

 

차갑고 무표정한, ‘아버지였다.

 

 

 

 

 

 

 

 

시험이 다음 주인데, 왜 긴장이 안 되는 거지. 이래서 주말 끼고 월요일이 시험이면 안 된다니까.

 

이번 시험이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있는 첫 기말고사인데. 영 집중이 안 된다. 자습 따위 일찌감치 때려 치고 나는 집으로 걸었다.

 

학교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되는 고급 아파트 단지. 그 중 집은 그와 나, 둘이 살기엔 큰 평수의 층이다.

 

단지 내의 놀이터엔 아직 어린, 뺨이 통통한 아이들이 놀며 웃고 있었다. 주변엔 어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애들을 챙겨주고 있고.

 

간질간질한 게 마음을 긁는 것만 같아 나는 얼른 지나쳐 왔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왔는지라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이 시간에 없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기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타고 올라와 문을 열자마자 본 게 그라서 내가 기절할 듯 놀랐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문 안 닫고 뭐 하냐.”

 

.”

 

저번에야 출장 끝난 날이라 그렇고 그 다음 날부터 다시 늦게 왔는데 오늘은 왜?

 

자습 안 하냐.”

 

원래 안 하는 데요.”

 

진짜다. 학교보단 백배는 조용한 집이 더 잘 되니까. 그 역시 평일이건 주말이건 회사에 출근하니 더 좋고.

 

그러나 내 앞에서 정장이 아닌 니트 차림으로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있는 그는 오늘 내 계획을 전부 꼬이게 만들고 있었다.

 

아 왜 여기 있어, 오늘 공부 글렀네, 사실 잠이나 자려고 했지만. 따위의 생각을 궁시렁거리며 그를 지나쳤다.

 

막 내 방 문 앞에 도달했을 때 그가 말했다.

 

저녁 나가서 먹을 거다.”

 

…….”

 

나는 잘못 들었길 바라며 고개를 돌려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는 유유히 손에 책을 든 채 서재로 가고 있었다.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방문을 열었다.

 

책상에 가방을 던지듯 올리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피곤이 더욱 가중된 느낌이다. 교복이 구겨지건 말건 괘념치 않은 채 난 곧 정말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후아…….”

 

뛰었더니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진짜 자버려서 나는 그가 날 깨우고 나서야 일어났다. 그가 먼저 내려가고 난 그가 기다린단 생각에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뛰어 내려왔다.

 

이미 그는 차에 타 있었다. 그 옆에 올라 숨을 고르는 사이 그가 물었다.

 

먹고 싶은 거.”

 

?”

 

없냐고.”

 

같은 말 두 번 안 하는 그가 짤막하게 물었다. 내 부정에 아무 말 없이 그는 차를 몰았고, 전에 몇 번 와본 적 있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근데 나 교복 와이셔츠에 스웨터인데힐끗 본 그의 차림도 잘 봐줘야 준정장 수준이었다.

 

괜찮? 괜찮겠지? 나는 앞서 걷는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자리로 안내 받은 뒤 익숙한 메뉴를 선택한 나는 그에게서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웨이트리스의 볼에 떠오른 홍조를 보았다.

 

마침 그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으음. 저 얼굴에 훤칠한 키, 회사 중역, 게다가 나랑은 부자지간이라지만 열 살 차이도 안 난다.

 

확실히, 누구나 반할 만 한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여긴 왜 데리고 온 걸까. 처음 왔을 때나, 무슨 날 아니면 솔직히 자주 마주 할 일도 없는데.

 

애초에 이 인간,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집에 와 있었던 거지?

 

오늘혹시 무슨 날인가? , 생일? 추석? 아니면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다.

 

애써 짐작해 보려 해도 나오지 않는 답에 끙끙대던 난, 눈을 들었다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

 

열일곱 살인가.”

 

낮게 혼잣말하는 소리에 괜스레 울컥해져 버렸다. 저 인간과 살게 된지 약 3년 째.

나는 열일곱이 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몇 년을 함께 살았는데 아직도 저 사람에 대해 모르겠다. 무지 말이 없고, 반복 하는 거 싫어하고, 잘 나가는 사회인이란 것 정도?

 

, 한식보단 양식을 선호하지만 밥은 꼭 챙겨 먹고 다니고, 외식보단 집 밥을 선호한다. 옷은 단정한 걸 좋아하고 액세서리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같이 살았다고, 많이 알긴 하네.

 

으음. 나는 곧 나온 식전요리에 집중했다.

쓸데없는 거 생각하지 말자, .

조용히 우물거리다가 또다시 떠오른 생각.

 

그러고 보니

 

근데 오늘 왜 이렇게 빨리 퇴근 했어요?”

 

스푼을 내려놓던 그가 나에게 눈길을 향했다.

조명 탓일까. 이상하게 그의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저녁 먹으려고.”

 

그가 가볍게 대답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또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밥 먹으려고 일찍 들어왔다고?

 

갑자기 밥은 왜요.”

 

느닷없이, 저녁에 왜 신경 쓰는데? 먹고 싶었으면 회사에서 동료들하고나, 하여튼 잠깐 나오면 되잖아.

 

너 다음 주부터 시험이라며.”

 

그가 던지듯 담담히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샐러드를 뒤적이던 포크를 놓쳤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포크를 한쪽으로 치우고 웨이터에게 새 포크를 건네받았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충격뿐.

 

당신이 왜 그걸 신경 써?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계속 하는 그에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당신은 그런 거 모르잖아. 관심 없잖아.

알아도 신경 안 쓰잖아. 그게 당신 아니야?

 

갑자기 좀 전까지 생각했던 그에 대한 내가 아는 바가 뒤섞이는 걸 느꼈다.

그는, 이렇지 않은데?

 

내가 혼란에 휩싸여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동안 그는 유유자적하게 식사를 즐겼다.

 

그게 또 그다워서, 식사가 끝날 즈음 나는 어느 정도 혼돈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자 이미 자신의 몫을 다 먹고 기다리던 그가 일어섰다. 나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따라 나섰다.

 

차에 탑승해 나올 때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그는 그러나 무표정인 채였다. 이젠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침묵 속에 집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씻은 나는 공부를 할까 말까 조금은 제 정신 아닌 듯한 시험 전의 생각을 하며 주방에서 물을 마셨다.

 

그냥 자야지, 쪽에 생각이 기운 난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사람의 온기가 머리 쪽에서 느껴졌다.

 

언제 왔는지, 그가 날, 쓰다듬고 있었다.

 

 

이 손길이 그임을 눈치 챈 나는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엘뤼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이름을 부른다. 여기 오고 일 년 간만 부른 이름이었다. 그 후엔 의식적으로 그를 부르길 꺼렸고, 밖에선 아버지라 지칭했으니까.

 

당황과 경악으로 컵을 든 채 굳은 내 머리를 느릿하게 쓰다듬은 그는 내가 들고 있던 컵을 잡아 채 남은 물을 마시고 휙 하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 죽을 때라도 된 거야?

 

처음에 안 하던 짓을 했을 땐 껄끄로웠는데 이젠 무섭게 느껴졌다.

 

정말 왜 저러지? 진짜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 아냐? 역시 출장 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원래도 가깝게 여기진 않았지만 이번만큼 그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던 적은 없었다. 나는 선 채로 그의 손이 닿았던 머리칼을 매만졌다.

 

딱딱한 표정과는 대비되는 부드러움이 아직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뭐냐고. 왜 갑자기 자상하게 행동하는 건데?

 

나는 굉장히 어렵고 심오한 난제에 던져진 채 잠자리에 들었다. 기분이 싱숭생숭해 잠이 제대로 오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