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to you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네가 우는 모습이 예뻤던 나는 미친놈인 걸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울던 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울음이 사랑스럽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는 네가 안타까웠지만, 다신 눈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지만,
버림받은 널 보고 나는 참을 수 없이 기뻤었다. 내게도 기회가 오는가, 싶어서.
⁂
“가서 좀 말려 봐, 취한 것 같아.”
동료 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똑같은 안색, 멀쩡해 보이는 모습. 아, 이런 진짜 취했네.
그는 클럽의 낮은 조명 아래에서 우아한 자세 그대로 새 술병에 손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연신 힐끔대는 사람들.
좀 아는 사람들은 별 신경 안 쓰거나 ‘저런, 상태가 영 아닌데?’ 하지만 새내기들은 언제 말 한 번 붙여볼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이럴 때엔 그의 얼음 같은 성격이 좀 고맙다.
나는 꽤나 분위기 있는 고급클럽(마이너 성격의)의 바텐더다. 그는 이곳의 단골이자 유명인사. 손님과 직원이라기엔 안면을 튼 사이.
이 지역의 잘 나가는 미남인 그는 애인이 있던 시절에도 굉장한 대시를 받는 사람이었다.
3년째 사귀던 애인과 무참히 깨진지 1년여. 그는 더욱 강화된 냉기와 서늘한 미모로 일대를 주름잡았다.
이쪽 성향이고, 좀 나돌아 다녀본 근처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 격인 거다.
아무나 받아 주면서, 아무나 받아 주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에 한 번쯤 사귀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줄 서면서 소문이 퍼졌달까.
게다가 그의 천성적인 도도한 태도도 한 몫 했고.
나는 그 사이 쌩쌩하니 누군가를 바람맞힌 엘뤼엔을 보고 쓴웃음을 지은 채 다가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엘뤼엔. 집 가서 자. 바래다줄까?”
전혀 그런 기색 없지만, 오래 알고 지낸 단골들이나 바텐더 형들은 다 안다. 취한 그가 엄한 사람한테 걸릴까 나는 조심조심 그를 일으켜 보내려 했다.
“몇 시야…….”
“열 한 시야, 술 먹으려고 온 거면 바에 앉지 그랬어. 왜 자작을 해.”
그가 제정신이 아닌 틈을 타 귓가에 소곤소곤 타일렀다. 그는 경계심이 약해진 채 내게 기대듯 몸을 붙였다.
“계산하고 갈래, 달아둘까?”
그래도 완전히 취한 건 아닌 듯 해서 그에게 겉옷을 건네주며 물었다. 천천히 일어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 윽….”
사위가 어지러운지 그가 소매를 잡아왔다. 나는 느리게 그를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정신 차려, 집 가서 자.”
너 이러면 엄한 놈이 잡아간다니까. 나는 택시기사에게 돈을 쥐어주고 그를 보냈다. 왜 또 혼자 와서 술은 먹고 그래.
아니, 오는 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
가게 안으로 돌아가자 평일 밤답게 시끄럽지 않은 소음이 익숙하게 들렸다.
“보냈어?”
다른 단골인 엘과 얘기하고 있던 동료 형이 물어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네 말은 들으니까 다행이야.”
매번 수고. 형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는 틈을 보이질 않아서, 사장이나 큰 형을 제외한 다른 동료들은 그를 어려워했다.
5년여를 알고 지낸 내겐 그나마 풀어진 모습이지만.
제 애인은 어디다 팔아치운 엘이 바에 팔을 올린 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엘뤼엔 형 언제야 편해질까요.”
나랑 막상막하의 기간을 엘뤼엔과 알고 지낸 엘은 그가 아는 체 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엘뤼엔이 답지 않게 귀여워하는 동생인 엘 역시, 엘뤼엔이 애인과 헤어지면서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알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도. 나는 입가에 지어지는 쓴웃음을 그대로 둔 채 잔을 집어 닦았다.
- 나는 네가 나로 인해 편해지기를 바라
“그러게. 회복을 못 하네.”
그는 여태 이렇다 할 사람을 사귀지 않았다. 더욱 더 자신을 감싼 채인 그가, 안타까우면서도 만족스러웠다.
엘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적당히 해요, 형. 좀 데려가든가.”
동료 형이 너희 무슨 얘기 하냐? 물어왔다. 나는 아니란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데려갈 거야.”
- 내 꺼야
머릿속을 울리는 어두운 나의 본심.
친한 사이인 척 가장하는 나를 이 녀석은 너무나 예리하게 꿰뚫었다. 원래 이런 애였다.
자기 일엔 그렇게 둔하면서.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달리 가장할 표정이 없었다. 엘은 흥, 하니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
“올 해엔 눈이 많이 올까?”
“글쎄. 오면 좋겠어?”
“아니 그냥…….”
나는 눈치를 봤다. 나와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는 형도.
문 연지 얼마 안 된 저녁 시간대에 찾아 온 엘뤼엔은 자정을 넘긴 지금까지 있었다. 상대도 없이, 굳은 표정의 그는 연신 술을 펐다.
주변의 팬들도 무시하고 몇 시간 째 술만 마시는 그는 위태로웠다.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가운데 형들은 사장 어디 갔어? 큰형은 왜 또 오늘 휴가야? 라 중얼거리며 내 등을 떠밀었다.
“야, 네가 가서 좀 말려 봐. 퇴근시켜 줄 테니까 챙겨서 데려 가. 저러다 뭔 일 나겠다.”
결국 매니저 형이 총대를 메고 나한테 왔다.
내내 그만 쳐다보고 있던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색 앞치마를 벗어 옆에 있던 동료에게 맡긴 나는 한숨을 쉬며 그쪽 테이블로 걸어갔다.
개방형 테이블에 자리한 그는 주변의 시선엔 전혀 상관 않고 소파에 기댄 채 후- 한숨을 쉬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현기증이 나게 강하게 나는 술냄새에 나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구겼다.
“일어나.”
엘뤼엔이 순순히 일어났다.
정상이 아니군. 지나치게 얌전한 그는 일어나긴 일어나되, 정신을 못 차리고 휘청였다.
나보다 작긴 하지만 큰 녀석을 껴안듯 부축한 나는 옆에 있는 그의 재킷을 한 손에 집었다.
“너 카드 어디 놨어.”
뭔 일 날까 걱정하는 매니저 형 눈치로 봐선 계산이고 뭐고 당장 나가주는 게 도와주는 것 같지만, 나는 물었다.
“안주머니에…?”
의문형은 뭐냐 이놈아. 나는 그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놓고 다른 팔을 마저 빼 들고 있던 재킷을 뒤졌다.
“형 계산.”
걱정스레 지켜보는 매니저 형에게 카드를 내밀자 형이 얼른 긁어 영수증과 함께 가져왔다.
받아들어 지갑에 고이 넣은 나는 설마 아무 카드나 긁었다고 화내진 않겠지, 하며 그를 추슬렀다.
“집에 가자.”
팔을 둘러 그를 부축해 가게를 가로지르며 나는 살짝 인사 했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그래, 조심해서 가고. 잘 챙겨.”
매니저 형이 대표로 대답하고, 가게를 나오며 나는 어마어마한 시선 속에 중얼거렸다.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나랑 싸우자고 내일부터 덤벼드는 거 아냐.”
- 그럴지라도. 나는 기꺼이 너의…….
그의 팬들의 강렬한 시선을 떠올리며 나는 택시를 잡았다. 그는 거의 잠든 터. 예전부터 느꼈지만, 술버릇이 깔끔하구나.
나는 또다시 퍼지는 검은 본심을 모른 척 억누르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
“아이고.”
마른 체형이긴 했지만 잠들어 늘어진 그를 거의 안고 들어온 나는 빠르게도 침대에 눕힌 그대로 색색거리며 잠든 엘뤼엔을 내려다 봤다.
가끔 그를 챙겨 보내긴 했지만 정확한 주소(대충 어느 동인지만 일러 주면 녀석이 정신 차리고 알아서 들어갔으니까)는 모르는 난 결국 그를 내 집으로 데려왔다.
늘어지듯 잠든 그의 버클을 풀어준 나는 녀석의 옷을 갈아입혀 줘야 할지 고민 했다.
영 불편해 보이는데… 근데 함부로 손댔다간 깨어나서 맞을 것 같고…….
잠시 갈등하던 나는 결국 녀석의 와이셔츠 단추에 손댔다. 아 몰라, 술 먹고 정신 놓은 사람 잘못이지, 난 도와준 것뿐인데 뭐.
살며시 단추를 풀어 낸 뒤 그의 상체를 일으켜 가슴에 기대게 한 나는 와이셔츠를 벗겨주고 가져온 넉넉한 티를 입혔다.
도중에 다시 누우려는 듯 몸을 뒤트는 그를 달래느라 겨우겨우 갈아입힌 나는 다시 조심히 그를 눕혀 주었다.
- 정말 취했구나 너
얼른 갈아입히고 재워야겠다. 이러다 그가 그놈 이름이라도 부르면 화……. 아…!
나는 창밖을 확인했다.
겨울이 가까운 때였다.
갑자기 그가 이런 이유가 짐작 돼 나는 그대로 굳었다.
- 그 놈 때문이지?
- 난 너에게 있어서, 좋은 사람일 뿐
화가 난다. 멋대로 취하고 멋대로 잠든 그를 보며 당황하고, 그 와중에도 진득한 감정에 쳐다보는 것만도 좋아 설레여 하다가,
널 이렇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일 그 놈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순식간에 내 머릿속은, 심장은, 차갑게 식는다.
너를 안고, 너에게 키스하고, 너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버린 사람.
- 너는 도대체…….
이런 나를 넌 절대 모르겠지. 네 상처 끌어안는 것도 힘든 너는. 날 절대 돌아봐 주지 않겠지.
너에겐 어떠한 죄도 없지만, 나는 괜히 네 탓을 한다. 당장에라도 외치고 싶은 바람을 꾹꾹 눌러 담는다.
너의 하얀 피부에 또다시 두근거리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을 무시해가며, 나는 정중히 손을 움직이며 설핏 웃었다.
대조적인 붉은 입술에 맞댄 입술이 뜨겁다. 아찔한 술냄새마저도 뒷전이 되는, 나의 도둑질.
⁂
“으음…….”
“야… 일어나….”
익숙한 침대. 익숙한 이불의 감촉.
매일 아침 ‘저놈의 것 커튼을 사오던가 해야지’ 하면서도 매번 까먹어 익숙해진 햇빛.
거기에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사람의… 사람…?
“일어나라고, 멍충아.”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내 손은 누군가의 허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안긴 몸을 일으키는 파리한 기색의 누군가는…
“일어났냐?”
맙소사. 이런 꿈같은 아침이.
“몇 시야…….”
“열 두 시.”
이거 사실 꿈은 아니지? 나는 푼수 같은 웃음을 싱글거렸다.
“속 쓰려.”
“아, 그러고 보니 너 출근 안 해? 나야 밤근무지만…….”
“안 가. 나 속 쓰려, 일어나.”
그렇게 말하며 주섬주섬 이불을 걷어낸 그는 자신의 바뀐 옷을 내려다보곤, 내 쪽을 봤다.
“설마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 주정뱅이야.”
그래? 그럼 됐어. 서늘한 미간을 펴며 엘뤼엔은 욕실을 찾았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붕 뜬 머릿속을 가라 앉혔다.
“속 쓰려, 야, 밥 먹으러 가자.”
묘하게 당당한 기세로 씻기까지 마친 그가 하품을 하는 내게 얼른 일어나라고 보챘다.
나는 어젯밤을 정리하던 상태로, 정말 충동적인 질문을 했다.
“새 사랑 할 생각 없어?”
“…무슨 뜻이야?”
국물이 먹고 싶다, 너 빨리 옷 챙겨 입어, 등등의 말을 하던 그가 움직임을 뚝 멈췄다.
무서운 기색의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냥.”
허탈한 마음과 정말 세뇌라도 시키고픈 검은 욕망을 꾸깃꾸깃 접으며 나는 나서는 그의 뒤를 따랐다.
“너 다음에도 술 먹고 주정 부리면 손님 취급 안 한다?”
“난 주정 안 부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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