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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Dear my Darling

[DMD] 제 14장 [카노스x엘뤼엔] 옥루 下

 

 

한겨울. 1.

옆구리 시린 이들이 온기를 찾아와 그냥저냥 매상을 올려주는 평범한 평일 저녁.

 

얜 어디 가서 안 와.”

 

여전히 직원과 손님이지만, 나는 여태와 같이 바지런히 그를 챙겼다. 일주일 만에 와서 바에 앉은 그가 삼십 분이 되도록 돌아오질 않음에, 나는 결국 그를 찾아 나섰다.

 

뻔히 바에 앉은 녀석이 잠깐 한눈 판 사이 사라졌다. 어디선가 갑자기 동행이 생겨 테이블로 이동했나?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내부를 훑어 봤다. 깊숙이 있는 테이블은 장식용 관목이나 각도로 잘 안 보여 정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일단 안엔 없는 것 같았다.

 

잠깐 나갔나?

 

엄연히 그도 성인이고, 사정에 따라 돌아다닐 수도 있는 거 안다. 하지만 파악되지 않는 그의 소재가 나는 신경 쓰였다.

그렇다 해도 손님 안 보여서 찾으러 갔다 올게요하긴 또 뭐 해서 결국 난 옆에 있는 애한테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손을 부딪치고 문을 나섰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느껴지는 쌀쌀한 공기. 겨울의 매섭고 건조한 바람에 손이 그새 굳어버린 듯 뻣뻣해진다.

대충 주위를 휙휙 둘러 본 뒤 나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우, 손 봐.”

 

한파라고 며칠 째 떠들더니 진짜인가.

감각이 언 손을 뜨거운 물에 적시려 나는 나무 원목의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항상 후배 직원들이 깨끗하게 청소해 놓는 화장실 내부는 은은한 커피 향이 난다.

아무도 없는 세면대로 가 물을 튼 나는 곧 화장실 안에 누가 있단 걸 깨달았다.

 

잘 생각더 불리과연…….”

 

그다지 듣기 좋은 목소리가 아닌 저음이 속삭이듯 재차 무언가를 권하고 있었다.

단지 감춰지지 않는 야비함 때문에 권유가 아닌 협박임이, 보이지 않아도 순식간에 짐작되고 있을 뿐.

 

거울로 살핀 뒤쪽 카우치엔 아무도 없었다. 그럼 칸막이 안?

성급한 손님들인가관심을 끄려던 내 주의를 집중시킨 것은 다른 목소리였다.

 

섣부른 협박에 넘어갈 정도로 보여? 비켜.”

 

, 이거 안 보여? 얌전히 있어. 그럼 곱게 상대해 줄 테니까.”

 

낮고 갈라져 잘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흥분했는지 커졌다. 덕분에 완전히 들리고, 그걸 듣는 사이 뭔가를 칸막이벽에 밀어붙인 듯 쿵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뒤이은 맑은 소리의 억눌린 신음 소리.

 

나는 더 있을 것도 없이 걸어가 문을 내리쳤다.

 

!

 

속이 빈 칸막이가 큰 소리를 내며 울린다.

 

, 뭐야!”

 

끄집어내기 전에 나와라.”

 

정말 부숴버릴 요량으로 말했다. 내가 끼어 들 상황인지 아닌지 따위는 파악할 기분이 아니었다.

내가 들은 몇 분간의 상황만으로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버렸으니까.

 

야 이 새끼야, !”

 

생긴 것도 비열하게 생겼네. 나는 기세 좋게 문 열고 나온 놈의 멱살을 잡아 밀쳤다.

 

…….”

 

벽에 부딪힌 놈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반사적인 신음을 흘렸다.

그 소리에 나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 괴롭지? ?

 

전개를 따라오지 못하는 놈을 압박하듯 눌러 어깨의 쇄골이 이어진 뼈에 주먹을 갖다 댔다.

 

팔 못 쓰고 싶어? 남의 가게에서 일 만들지 말고 꺼져.”

 

이미 주도권을 뺏긴 사내가 몸을 비틀었다. 벗어나려는 놈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올려 찍고는 비켜섰다.

지금 안 꺼지면 화장실 벽에다 피를 묻혀주지.

나름 즐거운 생각을 하며 쳐다보자 제 허벅지를 붙잡던 놈이 절뚝거리며 물러났다.

 

.”

 

자동으로 닫히는 문이 부드럽게 닫히고, 순간 적막해진 공간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정확히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너인 거 안다.

 

나는 칸 안으로 다가가 벽에 등을 대고 서 있는 놈을 불렀다.

 

…….”

 

방금 전까지 답지 않게 시시껄렁한 놈과 있던 녀석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눈빛도, 생기도 모두 사라진 채, 공허하게 떨고 있떨어?!

 

! 너 왜 이래!”

 

나는 녀석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뭐야, 왜 셔츠 단추가 뜯겨 있…….

제기랄! 그 놈을 역시 보내선 안 되는 거였는데!

망할 놈, 죽여 버려야……!

 

혼자 이를 갈던 난 갑자기 녀석이 주저앉음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 자식, 충격이라도 먹은 건가. 웬만해서는 이럴 애가 아닌데!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난 녀석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녀석의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쳐내야 할 녀석인데,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얌전히 몸을 맡긴다. 이런 일로 충격 먹을 애가 아닌데 이런 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가?

 

…….”

 

?”

 

여기서 나가. 쉬고 싶어, 나갈래.”

 

침착하려 애쓰는 목소리가 힘없다.

난 혀를 차고 녀석을 일으켰다.

 

바에 있을래? 오늘 일 일찍 끝나니까 데려다줄게.”

 

- 너의 경계가 옅어진 틈을 탄…….

 

바래다주지 못하니 눈 닿는 곳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슬쩍 말을 붙였다.

고개를 젓던 녀석은, 이내 뚝 멈췄다.

 

그래. …….”

 

별 희망은 안 걸고 있었는데, 녀석이 먼저 일어서서 나간다.

 

저 자존심은……. 대체 무슨 일인지는 나중에 묻도록 하고, 나는 따라 나섰다.

 

오늘은 일찍 끝나니까. 한 시간 정도만 있으면 된다.

난 자리로 돌아가 갑자기 몰려드는 손님들을 상대했다.

그러느라 그를 틈틈이 살피지 못한 게 문제였다.

 

 

 

 

제정신이야? 거기서 술을 그렇게 퍼? 날 잡아 먹으세요, 그거야? 뭘 믿고 함부로 굴어?!”

 

화가 나서, 결국은 언성을 높였다. 완전히 술을 퍼마신 녀석은 나에게 몸을 기댄 채 대답 없이 피식피식 웃는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녀석을 데리고 나는 내 집으로 들어왔다.

한 개 뿐인 침대에 녀석을 눕히고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이건 뭐 물어볼 수도 없잖아.”

 

언제까지 바보처럼 굴 거야. 난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도대체 뭔 일이야.

 

카노스.”

 

자는 줄 알았던 녀석이 나를 불렀다. 약간 잠긴 듯한 목소리가 뒤이은 말은,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너도 내가 귀찮아?”

 

……?”

 

걔가 그랬대. 진짜 귀찮고 짜증나는 애였다고귀국 했다나 봐. 다 까발린다고 협박하면 금방 뒹굴어 줄 놈이라고…….”

 

……그 개자식이.

 

우울하게, 삽질을 하는 녀석을 진정시켜야 하는데.

 

하긴, 나 따위를 누가 사랑해 주겠어.”

 

허탈한 듯 말하는 녀석을 달래주어야…….

 

헛소리 하지 마.”

 

그래야 하는데이미 온몸이 싸해졌다.

 

언제까지 바보처럼 굴 거야.”

 

아직도 그놈 그림자에 매인 녀석에, 참을 수 없이 흉포해 진다.

당장이라도 널 붙잡고, 그 심장에라도 새겨 넣고 싶어지는 흉포함.

멋대로 가져서라도 날 인지시켜 버리고 싶다는 사나움.

 

- 나도 그놈과 다를 게 없잖아

 

거센 감정이 일렁인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위로 몸을 기울였다.

 

그만 해. 그만하고 주위를 좀 봐. 아니, 다 필요 없어. 나만 봐. 나 좀 봐, 제발!”

 

끝내는 윽박지르듯 소리치자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던 녀석이 몸을 움찔거린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비소를 감추지 않았다.

 

날 좀 봐줘.”

 

참고, 참은 결과가 이런 파국임에 비소가 절로 나왔다.

 

. 이게 다 뭐하는 짓이야.

정작 당사자는 전혀 모른 채 개자식이나 추억하고 있는데.

꾹꾹 눌러왔던 혼자만의 억울함에 오기까지 치밀어 올라온다.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 ?

 

고개 돌리지 마, 엘뤼엔.”

 

그토록 꿈 꾼 너와의 입맞춤인데.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 손으로는 느릿하게, 아까 가게에서 준 내 와이셔츠를 입은 그 허리를 지분거린다.

 

이런 걸 바라고 여태 널 본 게 아닌데.

 

.”

 

결국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무언가의 느낌에 나는 그를 덮칠 듯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젠장, 젠장할…….

 

손에 잡히는 시트를 얼어 있을 그에게 던지듯 주고 침대에서 일어서 바닥에 발을 디뎠다.

 

- 너에게 안 좋은 기억은 주고 싶지 않아

 

나가야겠다 싶어 걸음을 뗀다. 그리고…….

 

미안해. 오늘은 같이 못 있어주겠다. 쉬다가.”

 

가지 마.”

 

평안을 가장해 말을 뒤로 던지는 사이로, 녀석의 손이 내 셔츠를 잡아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언제 몸을 일으켰는지 녀석이 머리칼이 가볍게 날리게 고개를 젓는다.

 

가지 마.”

 

다시금 이어지는 너의 말.

함께 있어달란 걸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섭지 않아? 친구라고 다 믿진 마, 엘뤼엔. 특히…….”

 

나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시선을 맞춘다.

 

나를.”

 

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너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네게 약하다.

안 그래도 놀란 애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다시 허리를 펴고 뒤돌았다.

 

가지 마. 가지 말라고!”

 

갑자기, 그가 내게 소리친다.

 

뭐든 좋아, 가지 마. 그렇게, 그렇게 뒤돌아서지 마!”

 

그의 안타까운 외침 속에서도 나는 한 부분만 집중하는 내 뇌에 씁쓸히 자조했다.

 

뭐든 좋다고? 그게내가 바라는 상황도라면, 난 정말 웃을 수 있을 텐데.

 

내가 뒤돌아 선 채 있자, 그가 다급해진 듯 말한다.

 

너 좀 봐 달라며. 그게 무슨 뜻인데! 나한테 말을,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꼭 너 충격 먹을 짓을 내가 해야겠냐.

나는 하얗게 질린 녀석의 손을 잡고 침대 맡에 앉았다.

 

그리곤 애써 다정하게 말했다.

 

네가 그 개자식 생각 하는 게 싫고, 날 친구로 보는 것도 싫다는 뜻. 나는 널 친구가 아니라 연정을 품고 보고 있었다는 뜻.”

 

말을 마치고선 그의 흔들리는 눈을 한 번 보고는,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네가 혼자 있길 불안해하는 건 알지만, 이젠 내가 널 볼 자신이 없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성급 했어

 

최악의 상황부터 말도 안 되는 가정까지 오가며 나는 집을 나왔다.

네가 나 없는 사이 무슨 고민을 할지 짐작할 수 없지만.

 

바라건대 울다 지치더라도, 나를 좋아해 보겠단 답을 내려주길.

 

나는 너를 생각하며 하늘만 본다.

이기적인 눈물이, 어리석은 불안과 섞여 기어코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