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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短篇]/테니스의 왕자

[오시가쿠] 빗물 아래 온기

I will Always love you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이게 끝이야. 다시는 보지 말자.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다, 라고 생각했다.

심장뿐일까.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릿하게 자각하고 나서야, 조그맣게 입을 열고, 말을 하려다가 공기를 들이킨다.

 

상대의 기세만큼이나 차가운 공기가 숨통을, 폐부를 파고든다.

수많은 만남과 수많은 이별을 거쳐 왔지만, 오늘처럼 차가운 날에 이런 이별을 겪은 적은 없었다.

아니, 그걸 떠나서 이렇게 일상적이지 못하고, 그저 한 순간의 열병으로 치부하지 못하는 이별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이다.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의 얼어붙은 허공으로, 그의 숨결을 따라 약한 입김이 번지고.

그는 가만가만 목소리를 냈다.

 

그기, 무슨 말인데.”

 

말 그대로야. 우리 헤어지자고.”

 

묻는 과정도, 물음도 벅차서 한없이 느리기만 했던 그와는 다르게, 상대방은 일말의 여지도 없이 단번에 대답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만약이지만, ‘장난이야라고 말할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

오시타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싸늘한 빗방울이 어지럽게 귓가에서 번지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도로.

한 우산 아래에 서 있는 두 사람 사이엔 한 사람을 옥죄는 적막이 넘실거렸다.

 

와 그라는데.”

 

목소리 끝이 떨린다. 떨리는 것은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흡사 추위에 내몰린 사람처럼, 손끝이, 옷깃이, 입가가, 약하게 떨리고 있다.

이 순간에도 평온하게만 느껴지는 목소리로 오시타리가 물었다.

 

와 그라는데, 가쿠토.”

 

이별이란 차가운 단어다.

누군가는 황혼을, 누군가는 따스함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오시타리 유시에게 이별이란 차가운 단어다.

아니. 막 그렇게 됐다.

 

결정적인 건 없어. 그냥 이제 헤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너도 한 사람 오래 만나는 건 싫다며?”

 

단정 짓 듯 하는 말을 들으며, 오시타리는 저를 올려다보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늘 그랬듯,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다른 점이란 언제나 그를 향하는 눈에 어려 있던 웃음과 생기가 없다는 것.

 

오로지 차갑게 가라앉은 투명한 눈빛을 보며 오시타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우산을 들지 않은 손으로, 상대의 하얀 손목을 붙잡는다.

공기만큼이나 차가운 피부를 온기를 머금은 손이 잡아 쥐었다.

 

오시타리의 손을 상대는 내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저 다시 한 번, 오시타리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이별을 담았을 뿐.

 

그러니까. 헤어지자.”

 

 

 

.

.

.

 

 

 

!”

 

오시타리 유시는 답지 않게, 헛숨을 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파드득 경기하듯 몸을 떨며 눈을 번쩍 뜬 그는 막 잠에서 깬 눈으로 정면 벽에 위치한 시계를 찾았다.

 

새벽 510.

 

어슴푸레 동이 터오는 창밖이 푸른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새벽빛이 차가워 보여, 오시타리는 저도 모르게 다시 한 번 몸을 움찔 떨며 한숨을 내쉰다.

 

열은 내린 기 같고.”

 

침대 헤드, 벽에 등을 기대고서 매트리스에 앉은 그의 품 안엔 둘둘 말린 시트가 안겨 있다. 둘둘 감다시피 한 시트 꾸러미. 오시타리의 허벅지에 올려진 꾸러미 안엔 곤히 잠이 든 이가 고른 숨을 내뱉고 있었다.

 

원래도 희었지만, 이틀 새 더욱 희게 질린 안색을 살피며 오시타리는 제 가슴팍에 뺨을 대고 잠든 이를 양 팔로 가득 안았다.

 

꿈이구마. 꿈 아닐 리가 없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말로 꿈이었음을 자기 자신에게 주지시키고 있는 사이, 껴안은 팔에 들어간 힘에 그에게 안겨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었던 이가 눈을 떴다.

 

유시?”

 

감기로 갈라지고, 가라앉아 더욱 작은 목소리를 번개 같이 캐치한 오시타리가 퍼뜩 그를 살폈다.

 

가쿠토, 깼나.”

 

왜 그래.”

 

계속 열에 시달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탓에 기운이 빠진 무카히가, 그에게 기대고 있던 얼굴을 들고 꾸물꾸물 움직여 팔을 시트 밖으로 빼냈다.

기력이 없어 얕게 떨리지만, 개의치 않은 채 오시타리의 뺨에 가만히 손을 올린다.

 

열은 없는데. 감기 옮았어?”

 

정말로 옮았나 싶어 제법 진지한 목소리다. 걱정이 담뿍 어린 무카히의 목소리에, 오시타리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 무카히의 손을 꼭 잡았다.

 

안 좋은 꿈을 꿨구마.”

 

꿈이어서 정말로 다행이란 표정으로, 오시타리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도 안도감에 가득 차 있어서, 무카히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뭐였는데?”

 

…….”

 

오시타리는 입을 다물었다.

입이 방정이라지. 그런 말은 꺼내지도 않는 게 좋은 거다.

입을 꾹 다물자마자 무카히의 눈이 가늘어지고, 이내 무카히가 말했다.

 

말 안 해?”

 

아토베가 효테이 콜 하는 꿈…….”

 

뭐야 그게. 안 좋긴 하지만 재밌긴 한데.”

 

지난 세월로 충분히 단련된 효과인가. 단박에 연상하고 미간을 찌푸리는 한편 재밌다고 하는 무카히의 허리에 팔을 둘러 가까이 하며, 오시타리는 낮게 말했다.

 

안 좋은 꿈이제. 가쿠토가 나온 것도 아이고.”

 

변태 같잖아!”

 

눈을 흘기며, 작게 소리치는 모습이 마냥 좋아서 오시타리는 힘을 주어 꽉 껴안았다.

 

가쿠토. 아프지 마래이.”

 

감기잖아. 이거 가지고 뭘.”

 

니 아파서 악몽 꾼 것 같으니 말이제.”

 

그게 뭐야. 무카히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시트 밖으로 나오고, 오시타리는 무카히를 껴안은 채로 고개를 숙여 뺨을 맞댔다.

 

내는, 내 좋아하는 평소의 건강한 가쿠토가 보고 싶데이.

 

서서히 주홍빛으로 번지는 창밖. 두 사람이 있는 침실 안에 주홍빛이 어린다.

그렇게 나빴어, ? 걱정의 기색으로 묻는 무카히의 말에 낮게 웃으며 응, 하고 대답하며 오시타리는 품 안의 무카히를 아로새길 듯 바라봤다.

 

사랑한데이, 가쿠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