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ium sine dignitat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뭐, 볼 건 없네.”
“뭘 기대했는데?”
“큰 성?”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으며 출구를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해지는 시간이었다. 손에는 컵 아이스크림을 들고 입에는 스푼을 물고 녀석이 말했다.
“오코노미야키 먹자.”
“그러든가.”
“오사카 성 근처 맛집 다 찾아봤거든.”
“뭐 밀가루 다를 게 있다고…….”
“음식에 대한 모욕이야!”
어디 밀가루 다른 거 있나 보자.
마지막 남은 젤리를 낼름 입에 넣고 던진 컵이 쓰레기통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걷는 걸 멈추진 않았기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어디 양껏 먹어봐라.”
“못 먹을 줄 알아?”
줄줄이 이어지는 주문에, 맥주에, 얼씨구.
불판에 반죽이 올라가고, 익힌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찔러보는 모양에 혀를 찼다.
“짜서 못 먹는다, 그거.”
흥얼흥얼 뿌려대던 소스 쥔 손이 뚝 멈췄다.
고동색 소스와 허연 소스가 가득. 그 위에 훅 갖다 얹은 가쓰오부시.
“니 솔직히 말해라.”
“어?”
“이 먹어본 적 없지?”
내참. 섬나라에서 못해도 스무 해 살면서 바다도 새롭고 오코노미야키도 새롭고 뭔데.
퉁명스러운 얼굴이 되었어도, 코테를 쥔 손은 꼭하니 풀지 않는다.
대답은 없었다.
“뜨거, 뜨거!”
일부분을 잘라낸 녀석이 입에 넣었다가 냉큼 다문 입을 도로 벌렸다.
1초 전까지 철판 위에서 익던 걸 통째 넣었으니 안 뜨겁고 배겨.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성격이 급한 거. 그래 그거다.
“맛은?”
“맛있어. 근데 좀 더 바삭바삭하면 좋겠는데.”
“꾹 눌러서 익히믄 되지.”
뭘 아쉬워하는 건데. 내친 김에 조금 잘라 꾹 눌렀다.
치이익 급하게 익는 소리가 틈으로 샜다.
슬쩍 들춰보니 갈색보다 짙은 색이 역력하다. 뒤집어서 똑같이 눌렀다.
“하나 더 시키자.”
“그래.”
곧장 메뉴판으로 고개 돌린 눈이 반짝반짝했다.
크게 뜨인 눈이 빠르게 요리조리 움직이는 게 재밌다.
“오징어랑, 파랑, 으음.”
“오징어는 먹었잖아.”
“맛있어서…….”
하나만 유난히 집중 포격하더니 그게 맘에 들었었구만.
심도 깊은 고민을 하는 모양의 표정을 흘끗 보고 코테를 들어 눌러 익힌 부분을 접시로 옮겨 놨다.
맥주도 하나 더 시켜야지.
다시 한 번 얹어진 반죽 위로 신나게 소스 칠을 하던 녀석이 우뚝 멈추고 갈색 병을 들었다. 그건 조심조심 뿌리는 게 딱 봐도 이제야 생각났구만, 짜다는 거.
“맘껏 먹었나?”
“응.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또 먹고 싶은데.”
“또 먹음 되는 기를.”
툭툭 털고 일어나 어깨를 풀었다.
밤거리는 으슥한 가운데 환했다.
이대로 쭉 가면 바로 공중정원 빌딩이 나온다. 이 시간에 사람이 많으…… 려나?
사실, 가본 적 없어서 모르겠다.
“와. 관람차!”
건물을 옆구리에 낀 관람차가 대낮처럼 훤했다.
천천히 도는 가운데 외관에 덮어놓은 전구들이 일제히 색을 바꾼다.
붉었다가, 파랬다가, 녹색, 노랑, 어느 순간엔 외곽은 하얗고 안쪽은 파란 빛으로.
녀석은 넋을 놓을 것처럼 바라보고 섰다.
“……탈래?”
설마하니 관람차도 처음 보나.
유원지 안 가도, 도시 하나에 하나씩은 꼭 껴 있는 건데.
별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로 시가지의 불빛을 한 겹 끌어올리는 밝기.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번갈아 이쪽을 비춘다.
“아니.”
녀석은 담담하게 눈을 뗐다.
“별로 타고 싶지 않아…….”
그러냐.
공중정원이 있는 옥상까지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갔다.
실외에 고층이라 부는 바람이 센 건 말할 것도 없고.
생각보다 사람은 별로 없었다.
붉은 머리에서 신경을 끄고 천천히 한 바퀴 돌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유시.”
“엉.”
“…내일 아침 뭐 먹어?”
“먹을 거 없다.”
그럼 사가야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녀석이 중얼거렸다.
나란히 서서 있자니 불쑥 무엇이라도 말하고 싶었다.
이 녀석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야.”
“어?”
“번호.”
주머니 속에서 미끈한 몸체를 잡아 뺐다. 손에 딱 들어오는 기기를 내밀었다.
눈을 꿈지럭하는 앞에다 흔들고 말을 이었다.
“번호부터 따고 시작하는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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