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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短篇]/테니스의 왕자

[켄히카] 순간의 커피

Sugar Lips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우엑, 커피가 뭐 이리 쓴 기고. 설탕 없나?”

 

케잌하고 설탕을 우예 먹는다꼬. 원래 단 음식엔 쓴 거 먹는 겁니더.”

 

색깔은 지 머리색만치 까맨기.”

 

나잇살 먹고 음식투정이고.”

 

! 이긴 취향이데이!”

 

먹기 싫음 내놓으시든가예.”

 

평범한 이층집.

곳곳에 사람 사는 기척이 남아있는 아늑한 집 안.

향긋한 커피내음이 풍기는 식탁에, 두 선후배는 마주 앉아 있다.

아기자기한 모양새의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머그잔을 쥔 채 늘 그랬듯 티격태격 하고 있다.

 

자이젠이 금방이라도 케이크를 가져갈 것이라 생각했는지 켄야는 포크를 들고 우물거리며 접시를 왼손으로 가렸다. 그 모습을 맞은편에서 고스란히 보고 있는 자이젠의 표정은 자연스럽게 구겨졌다.

 

애 같습니더.”

 

여유롭게 앉아서 설탕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블랙커피를 음미하며 하는 말은 하나 같이 가시. 자이젠은 케이크를 게눈 감추듯이 먹는 켄야를 별종 보듯 쳐다봤다.

 

캐도 커피 너무 쓰다 아이가, 임마.”

 

쓰든지 말든지. 대답도 않고 먹기나 하십쇼하고 눈으로 말하는 자이젠의 모습에 결국 켄야는 신경을 다시 케이크 조각들에 쏟았다.

딸기가 올라가 있던 쇼트케이크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블루베리 생크림 케이크를 반으로 뚝 갈라 포크로 찍으며 켄야는 케이크엔 손도 대지 않은 채 간간히 커피만 마시는 제 후배이자 파트너를 쳐다봤다.

 

……?”

 

또 뭐, 라고 말하는 듯한 눈이네.

켄야는 눈빛으로 말해요 스킬 고수를 앞에 두고 습관적으로 웃었다.

 

와 하나도 안 먹노. 맛나구만. 쪼금 먹는 다꼬 안 죽는다, .”

 

너무 달아서 싫습니더. 느끼하고.”

 

자이젠이 케이크를 선호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절대로 아니다.

케이크를 제 돈 주고 먹을 리는 없고, 공짜로 줘도 별반 손을 대지 않을 사람이 쓰디 쓴 블랙커피만 마시고 앉아 있는 건 당연할 지도 모르지만. 켄야는 연신 커피만 뱃속에 들이붓는 자이젠에게 속 버린다며 혀를 찼다.

 

케이크라니.”

 

과자 계열이라면 그나마 도라야키(どら) 정도일까.

케이크는 선호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고, 하여튼.

말만 해도 별로라는 듯 자이젠은 고개를 저었다.

 

편식도 지 맘대로구마. 과자 잘 먹고 팥죽은 그렇게 잘 퍼먹으면서 와 케이크는 싫다 카는데?”

 

싫은 게 싫은 기지 뭘 또 구구절절 떠들라 카는교.”

 

정말로 조용히 먹으세요. 라고 말하는 눈빛에 켄야는 결국 쳇쳇 혀를 찼다.

아늑한 집 안. 주방. 식탁. 두 선후배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다.

 

 

 

 

선배.”

 

?”

 

아 좀 비키바라, 아가 내 부르잖노. 뭐뭐 내가 언제 그랬는데 증거도 없으믄서!

 

코하루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지 옥신각신 신나게 떠들던 켄야는 코하루의 말에 대답하고 놓여나고서야 겨우 다가왔다.

타박타박 빠른 걸음으로 앞에 온 그를 보며 리스트밴드를 만지작거리던 자이젠이 무심하게 말했다.

 

케이크, 좋아하시는교?”

 

케이크?”

 

케이크? Cake? ケーキ?

전혀 나올 거라 생각도 못한 질문에 켄야가 눈을 꿈벅였다.

 

, , 좋제. ?”

 

잘 됐네예.”

 

뭐가 또 잘 됐는데? 혼자 끄덕끄덕 주억거리는 자이젠의 앞에서, 지나가는 켄지로에게 물통을 하나 건네받아 뚜껑을 돌리며, 켄야는 이 까만 후배가 덧붙이기를 기다렸다.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나서. 초시계로 치면 약 7초가 넘어섰을 때, 자이젠이 아직 앞에 서 있는 켄야를 올려다봤다.

 

별 거 아이고. 케이크가 갑자기 남아돌게 돼서 좀 가지시라고.”

 

? 준다꼬? 그래. 그 좋네, 생각하니까 출출하고.”

 

케이크라 하면 역시 맛있지. 돈 주고 사먹기까진 아까운데 생일날 한 번씩 먹으면 몽실몽실한 게 부드럽고. 켄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이젠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면, 내일 아침에 드릴까예.”

 

? 그카면 얼마 먹지도 못하고 수업 아이가. 기냥 집 갈 때 들리믄.”

 

켄야가 말했다.

일본인의 표준에서 훌륭히 벗어난 서글서글한 성격답게, 일본인의 표준점(남의 집엔 잘 방문하지 않는)은 안중에도 없는 그의 말에 다른 의미로 일본인의 표준점을 벗어난 후배는 고개를 기울였다.

 

가볍게 기울인 머리를 따라 생기로 달아오른 뺨에 검은 머리카락이 음영을 드리운다.

자이젠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깜박였다.

 

.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까.”

 

어째 매우 선선한 허락이 떨어지고, 점심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림과 함께 점심시간의 잠깐을 탄 부활동은 금방 정리 됐다.

오시타리 켄야, 시텐호지 중학교 3학년. 자이젠 히카루, 시텐호지 중학교 2학년.

정리 운동을 마치고, 사용한 코트와 볼을 정리하기 무섭게 수돗가에서 땀을 식히고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 사이에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 역시 각자의 교실로 갈라섰다.

 

, , 히카루! 좀만 기다려 달라꼬!!! 이 매정한 머슴아야!!!!”

 

, , !!!

입으로는 매정하다느니 너무한다느니 쉼 없이 떠들고, 켄야의 손 역시 쉬지는 않는다.

후배들이 주워온 볼을 바구니에 담아 재빠르게 구석에 갖다 놓고, 코트 정리 검사를 동시에 해내면서 그는 벤치에서 일어서는 자신의 파트너를 향해 애처롭고도 불쌍하게 소리 질렀다.

 

이 상황을 즐기는 게 여실히 드러난 채로, 감독 와타나베 오사무는 낄낄 아저씨처럼 웃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코트에 남아 있는 이들은 하나 같이 절절매는 켄야와, 냉담한 자이젠 두 사람을 연신 쳐다보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좀만 기다리라고, , 그도 못 기다려주나!”

 

자이젠은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기색만은 역력했다.

대략 간추리자면 알게 뭐람하는 눈빛. 그것을 몰라 볼 리 없는 눈치 빠른 켄야는 으아아! 미치것네!’ 하고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그를 안절부절 못 하게 만들고 있는 이는 바로 그의 한 살 어린 부활동 파트너 자이젠 히카루. 점심시간과 별다를 바 없이 차분한 태도로 벤치에 앉아 느릿하게 코트가 정리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5. 가 넘었다.

 

야 잠깐만! 히카루!!!”

 

문을 콰당 여닫는 소리가 난다 싶더니 전속력으로 달려온 켄야가 자리를 털고 일어선 자이젠 옆에 섰다. 말할 기운도 없는지 헥헥 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말은 계속 한다.

 

닌 그리 매정하노. 까짓 뒷정리 좀만 기다려주면 되지, 안 그러나.”

 

뒷정리 당번인 거 속이신 분이 말이 많네예.”

 

그걸 내가 속인다고 속였나! 말은 바로 해야제, 내도 몰랐다!!!!!”

 

그러니까 당당하다고!!!

켄야의 말에 자이젠이 대놓고 비웃음을 걸쳤다. 나란히 서 있다지만, 그걸 몰라볼 켄야가 아니다.

 

뭘 비웃고 그케, , 쌔임 가보겠습니더! 임마들 내일 보자!!!”

 

소리 높여서 인사하는 동시에 양 팔을 휘적휘적 허공에서 흔들어 보이는 켄야와는 다르게, 자이젠은 묵묵하게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아니고, 연습장 다 나가서 그러면 눈에 띄지 않고 무시되었겠지만 옆에서 온갖 주목은 다 끄는 켄야 덕에 그가 묻힐 일은 없었다.

 

정리 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뚱- 해갖고는.”

 

선배 때문에 30분 버린 거거든예.”

 

그케도, 평생에 한 번 기다려준 것 갖고 뭘 그리 뚱해선. 웃어바라.”

 

웃긴 뭘 웃으라꼬.”

 

집으로 가는 길은, 볼 때마다 그랬듯 투닥거리는 입씨름이 연신 이어진다.

켄야가 열을 내고 자이젠이 일침을 놓는, 늘 그렇듯 당연하고도 평화로운 패턴이다.

사선으로 맨 가방의 끈을 왼손으로 잡은 채, 다른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던 켄야가 잠시 말이 끊긴 사이 입을 열었다.

 

웬일로 순순히 집 오라 하고.”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까. 귀찮게 내일 가져가는 것보다 편하고.”

 

별 거 아니라는 듯 순순히 대답한다. 켄야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그 대가족이 한 명도? 켄야의 묻고자 하는 의미를 알아들은 건지 모를 요량의 자이젠은 여전한 어조로 대꾸했다.

 

없는데예.”

 

뭐 문제 있는교? 삐딱하게 올려보는 새초롬한 눈에 켄야가 황급히 고개를 붕붕 젓는다.

묻고자 하는 의도라든가 궁금한 점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됐다, 내가 니한테 뭘 바라고.

켄야가 그렇게 어깨를 으쓱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이젠은 골목을 돌며 중얼거렸다.

 

밤늦게야 온다 캤으니까.”

 

그 뒤로, 구체적으로 왜 늦게 오는지, 어디서 뭘 하는지 조곤조곤 떠들 마음은 요만큼도 없어 보이는 자이젠이 입을 다문 덕에 켄야는 혼자 어깨를 으쓱였다.

늘 그랬듯 별 거 아니지만 궁금해지는 것을 털어낸다.

 

손이 차네, .”

 

한두 번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켄야가 자이젠의 손을 쥐었다.

집으로 하교하는 길은 자이젠의 집이 전형적인 주택가에 위치한 덕에 한산했다. 아무리 한산하다지만 스스럼없이 손을 잡아오는 선배의 작태에 자이젠은 휙 손을 거둬들였지만.

 

그럼에도 켄야는 픽 웃으며 다시 손을 잡아챘다.

가볍게 손을 잡아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후배의 손바닥을 살짝 긁는다.

 

…….”

 

움찔하고 퍼뜩 놀라는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자이젠이 제대로 손을 뿌리쳤다.

 

장난 하지 마이소.”

 

기양 잡으면 될 거 갖고 뭘.”

 

켄야가 넉살 좋게 웃는다. 손 차고 서늘한 거 하루 이틀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왜 또 말하나 싶었던 자이젠은 코웃음을 쳤다.

 

기양은 무슨.”

 

자이젠 히카루의 표정은 늘 무심함 그 자체였고, 신경줄도 무심함 그 자체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신경계까지 둔하다는 말은 아니다.

눈초리를 홱 올리고 의심을 한껏 매단 채 자이젠은 켄야를 째렸다.

 

아이, 안 한다, 안 해.”

 

결국 켄야가 장난스럽게 양 손을 들었다.

집 안은 아늑했다. 켄야를 내버려둔 채 자이젠은 2층의 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고, 켄야는 어려움 없이 부엌에서 물을 찾아 마셨다.

냉장고 문을 연 자이젠이 조각 단위로 포장된 박스를 들어보였다.

 

딸기 쇼트? 블루베리 생크림? 녹차 크림? 종류가 꽤 많은데.”

 

그럼 딸기 쇼트랑 블루베리 생크림으로.”

 

식탁에 세모 남짓한 케이크 두 조각과 포크가 놓였다.

커피 머신 앞을 오가던 자이젠이 커피를 내려와 앉고, 켄야는 부활동도 끝났겠다 배고픈 김에 일단 케이크를 먹는데 신경을 쏟았다.

 

조용하네.”

 

켄야의 옆자리에 앉아 커피만 간간히 홀짝이던 자이젠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켄야는 손에 쥔 작은 포크를 검지와 엄지로 잡고는 고개를 기울여 어깨 근육을 풀었다.

항상 사람 소리가 끊이지 않던 집이 조용한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블루베리 생크림 케이크의 마지막 부분을 쿡 찍어 입으로 가져간 켄야가 한쪽 팔로 머리를 가볍게 괸 채 우물우물 입을 움직였다.

자이젠이 혀를 찼다.

 

뭔 머리를 괴고.”

 

, .”

 

딴 생각 좀 하느라. 켄야가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빤히 쳐다본다. 그 맑은, 한 점 티끌이 없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켄야는 피식 웃었다.

 

키스해달라고?”

 

손을 내뻗고, 따스한 등을 당긴다.

끌어안고, 검은 눈동자에 오롯이 담기는 그 자신을 보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도저히 닿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서, 그대로 입 맞춘다. 깃털처럼 가볍게, 이 순간을 내리찍듯이.

 

……제가 언제!!”

 

서로가 떨어지자마자 자이젠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변하듯 반짝였다.

당장에 성큼 몸을 빼고, 화악 소리를 지르는 움직임에 커피 잔이 왈칵 흔들렸다.

켄야는 뒷머리를 긁었다.

 

그리 보였는데 뭐.”

 

자이젠은 뒤로 몸을 뺀 채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으로 앉은 켄야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켄야는 모로 고개 돌린 자이젠이 단지, 화드득 놀란 마음에 일어선 거란 걸 알기에 더욱 어깨를 으쓱했다.

 

야 임마히카루…….”

 

니 그러고 있으면 내까지 열 오른다고…….

 

켄야가 중얼거리며 도로 의자에 앉았다.

그의 앞에 선 후배는 괜히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괜히 손을 움직여 컵을 입가로 가져간 켄야가 커피를 모두 들이켜고 나자 자이젠은 말없이 잔과 접시를 들었다.

 

몽땅 싱크대 안에 넣어놓고 소매를 걷은 자이젠이 수돗물을 틀었다.

부드럽게 물이 쏟아진다. 말없이 뒤돌아서서 잔의 손잡이를 잡고 물에 가져갔다.

물이 컵과 손을 감싸듯 갈라졌다.

 

선배…….”

 

손에 잔을 쥔 채로, 물이 흘러내리는 대로 자이젠이 멈춰 섰다.

확 굳은 몸, 매끄러운 허리에 팔을 감은 켄야가 멀뚱하게 대꾸했다.

 

.”

 

…….

당장 발을 걸고 싶은데 참는 듯 몸을 들썩이는 걸 켄야는 꿋꿋하게 붙잡았다.

쭉 뻗은 골격을 두 팔로 감싸고 그 채로 웅얼거렸다.

 

히카루. 좋아한다 몇 번 말했드나.”

 

피어스가 한껏 꽂힌 귀까지 빨개진 채로 자이젠이 우뚝 멈췄다.

물 흐르는 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켄야는 그대로 몸을 기댔다.

 

히카루.”

 

이름, 부르지 말라 안캅니까.

검고 삐친 머리 아래로 목울대가 움직였다. 말을 삼켰다.

사람 없는 조용한 집 안. 물 흐르는 소리. 두 선후배는 서로에게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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