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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短篇]/테니스의 왕자

[켄히카] 네가 좋아

Love Mor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내린 곳은 창밖으로 들판만 보이기를 여러 번 반복한 어느 역이다.

열차 문이 열리고 걸음을 내딛은 순간 보인 건 느릿느릿 걸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

그리로 시선을 한 번 던진 자이젠은 이내 배낭을 고쳐 멨다.

 

시골의 한산한 기차역.

개찰구 옆에 선 역무원은 눈이 마주 닿자 사람 좋게 웃었다.

막 옆을 지나치다 부딪친 늙은 여인은 즉각 사과를 했다.

 

역사 주변은 인적 없는 2차선 도로를 빼면 멀리 주택이 드문드문 보일뿐.

가만히 선 채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본 자이젠의 옆으로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그는 철길 옆으로 난 야트막한 풀밭을 걸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산과 들과 철길 밖에 없었다.

 

내린 역에서도 얼추 멀어진 뙤약볕이 저물 시간에 자이젠은 걸음을 멈췄다.

표정 없이 다섯 시간을 넘게 일렁이던 눈동자가 연신 깜박였다.

이르게 가을을 맞은 낙엽이 점점이 떨어진 흙바닥에 우두커니 섰다.

 

다섯 시간을 넘게 한 마디도 뱉지 않은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표정 없이 이죽대는 속내를 죽이던 자이젠이 결국 손끝이 떨리는 오싹함에 스르륵 무릎을 굽혔다. 쭈그리고 앉은 그는 이내 배낭을 열었다.

 

우수수 떨어뜨린 것은 비닐에 든, 사진, 사진 뭉치.

봄부터 겨울까지, 아픔부터 기쁨까지 온갖 계절과 온갖 표정이 든 사진 뭉치를 한데 모아 두 손으로 잡아 쥐고 그는 첫 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한 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다음 장으로 넘겼다. 하루가 가도록 단 한 장만 바라보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이젠은 저 혼자 애써 다음 장, 다음 장을 넘겼다.

 

한 장 한 장. 이것도 저것도 모두 혼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없는 사진도 수두룩했다.

봄날 교복 차림. 여름날 흰 반팔 차림. 가을날 와이셔츠 차림. 겨울날 점퍼 차림.

가방을 든 그. 라켓을 든 그. 낙엽을 줍는 그. 눈을 뭉치고 있는 그. 그 사람.

 

이것도 저것도. 아픈 숨이 턱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자이젠은 들고 있던 사진 뭉치를 내던지듯 떨궜다.

연신 핸드폰이 울렸다. 기기를 들어 올리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진동 때문이야. 그렇게 눈을 내렸다.

 

주저앉아 흙바닥을 응시하던 고개가 끝내는 땅으로 내렸다.

무언가를 버텨내듯이 손을 옴팡지게 쥔다.

 

 

 

당신이. . 네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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