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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短篇]/정령왕 엘퀴네스

만약에 (# Caries)

만약에 (# Caries)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만약에,

 

 

 

엘이 충치가 생겼다면……?

 

 

 

 

[정령왕 엘퀴네스] 2차 창작물

# 원작에서의 정령왕은 일체의 지병, 몸살, 상처가 나지 않는 정령체입니다. 

 

 

 

 

 

 

 

 

 

"엘, 엘~"

 

오늘도 평화로운 에바스 에덴의 한가운데 풀밭.

정령계 최고의 귀염둥이 엘을 부르며 트로웰은 달리고 있었습니다(?)

 

"으, 응? 나?"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엘은, 뒤에서부터 달려드는 트로웰에 우왓! 하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아, 아야, 트로웰……."

 

"미안, 미안, 엘. 반가워서 달려오다 보니까 속도조절을 못 해버렸네."

 

신체가 정령인 이상 무릎이 까지거나 상처가 나는 등의 일은 없지만 얼결에 엘을 밀어 넘어뜨려 버린 트로웰은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비켜섰다. 이런 일은 이프리트나 하는 짓인데, 오랜만에 엘을 보다 보니까 감정이 거세진 모양.

 

"엑? 그러고 보니 트로웰, 진짜 오랜만에 보네?"

 

이제야 말을 파악한 엘이 순한 눈을 크게 떴다. 세월이 가는지 거꾸로 가는지 모르는 정령계에 있더니 엘이 바보가 됐어. 뭐, 그건 그거대로 재밌고, 엘이라서 괜찮지만. 어딘가 이상한 생각을 하며 트로웰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응. 어제부로 당분간 유희 갈 일 없게 끝내버리고 왔어. 오랜 시간 활동할 수도 없잖아."

 

어린아이의 모습에, 자라지 않는 신체라는 제약 때문에 드래곤이란 종족처럼 탄생부터 죽음까지 유희하는 건 엄두도 못 내는 정령왕이다. 트로웰은 '그러니까 이제 놀자' 하며 일어나는 엘을 보고 사람 좋음 100% 미소를 보였다.

 

"유희에선 뭘 했어? 어떤 직업이었는데?"

 

금세 흥미를 갖고 반짝이는 눈을 한 채 묻는 엘과 함께 에바스 에덴 중간지점으로 이동해 먼저 앉은 트로웰은 쾌활하게 말했다.

"천천히 다 말해줄게, 엘. 음, 일단 난 사람."

 

그게 뭐야! 제대로 말해 줘! 금방 시무룩해져서 소리치는 엘을 보며 트로웰은 하하 웃곤 이내 수다를 풀어놨다.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여 듣는 엘과, 중간중간 웃긴 이야기를 함께 풀어놓는 트로웰의 수다는 어디선가 나타난 이프리트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됐다.

 

 

 

 

"야!!!!!"

 

항상 상비하고 다니는 엘의 러블리 아이템☆ 엘이 초콜릿을 꺼내 이야기를 듣는 도중 막 입에 넣으려던 순간이었다.

 

우렁차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엘은 으에 하는 표정으로 초콜릿을 홀랑 입에 넣어버렸고, 트로웰은 시끄럽다-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목소리만큼이나 강렬한 머리색을 가진 이프리트가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야! 너 또 먹으면 어떡해! 진짜 이 뽑혀야 정신 차릴래?!"

 

당장에 달려와선 흐, 흥!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엘을 짤짤 흔드는 이프리트를 보고 트로웰은 어이없는 얼굴로 이프리트를 막았다.

 

"뭐 하는 거야? 왜 그래?"

 

"잘 왔다 트로웰! 넌 보고 있으면서 왜 말리지 않은 거야! 초콜릿 또 먹었잖아!"

 

"그게 뭐 어때서?"

 

엘은 초콜릿 알레르기라도 있는 건가? 트로웰이 알 수 없단 표정으로 되묻자 이프리트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만악의 근원을 섭취하고 있잖아-!!!"

 

"아냐! 초코가 얼마나 좋으…… 은 건데!"

 

흔들리는 와중, 으에에- 하며 하늘이 돈다~ 하고 말하면서도 엘이 소리쳤다.

 

뭐야 이 상황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1人인 트로웰은 토해내! 토해내! 뱉어! 뱉으라고오오오! 하고 외치며 엘을 숫제 퍽퍽 쳐대는 이프리트를 일단 말리고 봤다.

 

"잠깐만. 만악의 근원이라고 할 것 까지야… 대체 왜 엘이 초콜릿을 먹으면 안 되는데?"

 

초콜릿 몇 개 주워먹는다고 살이 배로 불어나는 것도 아니고, 피부가 썩는 것도 아닌데?

 

트로웰이 붙들자 '쪼그만게 힘은 왜 이렇게 세-!' 하고 바락바락 소리지른 이프리트는 결국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프리트가 떨어져 나간 그 새 입에 있던 초콜릿을 우물우물 꿀꺽- 하는 엘을 노려보며 이프리트가 말했다.

 

"저 녀석, 요새 사탕이며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산다고. 게다가 오늘 아침!!!"

 

두둥! 하고 효과음을 넣어줘야 할 것 같은 텀을 두고 이프리트가 말을 멈췄다. 오늘 아침? 트로웰이 괜히 더 귀를 기울이고, 엘은 애써 있지도 않은 먼산을 바라보는 가운데 이프리트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얼음물을 먹으며 끙끙댔다고! 분명히 충치가 생긴 거야!"

 

알겠어?! 그렇게 외치는 이프리트의 말을 들은 트로웰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무서운 소릴 들었다는 듯 굳은 트로웰은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엘. 아, 해 봐. 아-"

 

"시, 싫은데…?"

 

평상시라면 '응?' 하면서도 곧잘 따라서 '아-' 해보였을 엘이 눈을 피하며 말까지 더듬는다.

 

이거 봐! 맞다니까-?! 이프리트가 기세등등하게 소리치고, 트로웰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 날카롭게 변한 눈으로 트로웰이 물었다.

 

"양치질 제대로 했어, 안 했어?"

 

"했어. 했어."

 

괜히 말을 두 번 내뱉는 엘을 보니 둘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트로웰은 충치라 단정짓고 이프리트를 탓했다.

 

"넌 알고 있었으면서 왜 안 말린 거야?"

 

"나도 잘 몰랐어. 뭐 볼 일이 있어야 알지. 볼 때마다 초콜릿을 먹고 있긴 했지만 그닥 신경 안 썼는 걸. 그러다가 엊그제 의심하게 됐지."

 

이프리트가 비장하게 자신의 추리를 늘어놨다.

 

"그때 저 녀석, 초콜릿 다섯 개에 사탕 세 개를 먹으며 나랑 수다 떨더니 졸리다면서 그대로 낮잠을 자버리더라구. 한 두 번 해본 폼도 아니었어!"

 

충치가 생길 만 하네. 트로웰이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둥지둥 자신의 영역으로 가버리려는 엘을 보며 트로웰이 느긋하게 말했다.

 

"순순히 치료를 받는 게 좋을 텐데, 엘?"

 

"내, 내, 내가 할 수 있어. 엘퀴네스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말도 더듬고, 눈도 안 마주치고, 답지 않게 목소리를 키워봤자 의심밖에 못 산다고 엘. 트로웰은 물었다.

 

"그럼 왜 치료 안 하고 있는데?"

 

"할, 할 거야."

 

"흠."

 

트로웰은 뒤돌아서서 얼른 제 영역으로 튀려 준비하는 엘을 보며 이프리트에게 말했다.

 

"이프리트."

 

"엉?"

 

"들었지? 충치 맞대. 빨리 엘뤼엔한테 연락해."

 

"…#$@#^%#&!!!!!!!!!!"

 

유도심문 같지도 않은 유도심문에 걸려들어 자폭해버린 엘의 뒷모습이 심하게 움찔거린 것을 트로웰은 생긋 미소 지으며 쳐다봤다.

 

 

 

 

"엘. 충치가 생겼다면서?"

 

엘뤼엔에게 호출이 가고 그가 정령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채 30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거의 연락을 받자마자 온 모습에 엘이 사탕바구니를 발로 차서 옆으로 밀어 안 보였길 빌며 물었다.

 

"어, 에, 엘뤼엔 어쩐 일이야? 안 바빠?"

 

"입 벌려 봐."

 

쓸데없는 시간끌기 같은 건 전혀 통하지 않는 Lv. ∞ 엘뤼파파가 다가와 손을 뻗었다.

 

"아냐 안 생겼어-!"

 

이에 황급히 뒤로 이동하다가 물침대에서 떨어진 엘이 아야야- 하며 뒤통수를 문질렀다. 아들의 평소 같지 않은 제법 민첩한 반응을 보고 엘뤼엔이 중얼거렸다.

 

"진짜였군?"

 

"진짜라니까. 믿지도 않으면서 온 거야?"

 

즉결 처방을 내렸던 트로웰이 물의 영역 가장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엘뤼에에에엔~' 하는 모드로 돌변해버린 이프리트를 버려두고 트로웰은 엘뤼엔의 옆쪽으로 와서 서선 침대 뒤편에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 할 수 있을까?'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엘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자, 엘. 확인만 해보자는 거니까 이리 와."

 

여전히 상냥하고 좋은 미소지만, 어쩐지 그 미소가 마치 '이리와봐, 응? 아냐. 얼만큼 흔들리나 보려고 그래. 와서 아- 해보기만 하렴' 해놓고는 입 벌리면 몇 번 쳐보다가 이를 밀쳐 뽑아버리는 어머니의 거짓말 컬렉션 중 하나로 느껴진 엘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 아냐. 충치 아니야."

 

쳇. 엘은 이런 건 눈치가 너무 빠르다니까. 작은 목소리로 혀를 찬 트로웰은 내내 조용한 엘뤼엔을 쳐다봤다.

 

"충치 아니라고 저렇게 우기는데 어떡할 거야, 엘뤼엔?"

 

"엘. 제대로 대답해라. 충치 맞는 거냐."

 

엘뤼엔의 심각한 목소리에 잠시 눈을 굴리던 엘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런 것 같아. 아, 그치만 까매지거나 하지 않았어! 그냥 뭔가 욱신욱신 할 뿐이야!"

 

뒤늦게 말을 덧붙이는 아들을 보며 엘뤼엔이 흐음- 하고 말했다.

 

"왜 치유술을 사용하지 않았지?"

 

"어, 어? 그게… 몰라. 시도는 해봤는데 감을 잘 못 잡아서 그런지 막연히 시도하다 끝났어."

 

그런가?

 

능력 컨트롤이 미숙한 엘이라면 가능하기도 한 얘기지. 트로웰은 속으로 생각했다. 엘뤼엔은 그런가…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치료를 받는 수밖에 없군."

 

자체 치유가 불가능하다면, 타인에게 치료를 받는 수밖에.

 

"치료신을 잡아와야 하나."

 

"어이, 엘뤼엔. 충치 치료하자고 치료신을 잡아올 셈이야?"

 

트로웰의 말에 엘뤼엔이 말했다.

 

"작은 충치라고는 하나 놔뒀다간 심각하게 진화할 수 있어. 치료신이 직접 주관하면 깔끔하게 낫겠지."

 

엘이 신계로 가진 못하니까 잡아와야겠다. 정말로 신계로 가버릴 듯한 엘뤼엔을 잡고 트로웰이 말했다.

 

"됐어. 인간들도 충치 치료는 할 줄 아니까 내가 데리고 다녀오면 되잖아. 갔다와서도 안 됐다면 치료신을 잡아오든 말든 그 때 가서 하라고."

 

딱히 엘뤼엔의 악명이 더욱 높아지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이가 '팔불출 Lv. ∞' 라는 칭호를 붙이고 다니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할 것 같아 트로웰이 말했다. 대화가 흘러가는 걸 가만히 듣고 있던 엘의 표정은 시시각각 질려갔다.

 

"잠깐만, 충치 치료라면 그 치과에 가서 눕혀놓고 드릴 같은 소리로 고문하는 그거 말이야?!"

 

"응? 충치 치료는 받아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엘, 너는 해봤나? 아마 네가 아는 지구의 방식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도 잘 몰라. 하며 트로웰이 말했다. 충치 치료는커녕 찰과상으로 반창고 구경조차 해본적 없는 트로웰과 엘뤼엔이 그걸 알 리 없었다. 트로웰의 가벼운 대답에 충치 치료라는 것의 실체를 알고 있는 엘은 서서히 뒷걸음질을 쳤다.

 

 

 

     차, 차라리 치유술을 연습해서 내가 치료할 때까지 버티겠어. 치과는 안 갈 거야-!!!!!!!!!!!!!!!!!

 

 

후다다다닥

 

"엘?!"

 

"엘, 어디 가?!"

 

그렇게 해, 하며 대화하는 두 사람과 뒤에서 엘뤼엔만을 바라보던 한 사람을 남겨둔 채로, 엘은 물의 벽을 뚫고 나갔다.

 

엘 왜 그래?! 하는 당황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잡히면 끝이다! 라는 생각을 한 채 엘은 얼른 인간계로 도망쳤다.

 

잡,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라! 난 치과 따윈 안 가! 엘의 나름 진지한 이유를 가진, 엘 가출하다 사건의 첫 번째였다.

 

 

 

# 만약에(# Caries)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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