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 본문의 전대 이프리트 환생 신체의 이름은 순진한 오리님, Rme님, 지하♡님, 소레아님께서 참여해 공동으로 제작 했습니다 !
* 초반은 소녀풍 모놀로그로 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엘이랍니다. 이래 뵈도 남성체구요(별 다섯 개!), 태어난 지 오백년도 안 된 따끈따끈한 물의 정령왕이에요♡
“응? 엘은 정령왕이니까 체온이 없잖아?”
“캬악! 트로웰!”
옆에서 생글생글 웃는 이 살인미소의 요녀석은 땅의 정령왕인 트로웰이에요!
“그치마안- 엘은 이프리트가 아니잖아.”
제발 사소한 건 넘어가주지 않겠니, 트로웰!? 음… 하지만 어떤 면으론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 하니까…….
“그만하십시오, 트로웰. 엘이 진짜 심각하게 궁리하지 않습니까.”
으엑? 그럼 그렇지. 역시 장난이었던 거였어요. 아! 소개할게요. 이 은발 소녀는 바람의 정령왕인 미네르바(애칭 미네), 저기서 뚱하게 서 있는 여왕님은 무려 제 엄마자리를 노리고 있는 이프리트에요~
정령계는 언제나와 같답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에요!
바로바로! 오늘이 12월 31일 이라는 것! 헤헷, 구별이 안 되신다고요? 그야 여기가 정령계니까 그렇죠~
“그래서 우릴 다 부른 이유가 뭔데?”
끄덕끄덕.
앙칼진 이프리트의 말에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미네. 오직 트로웰만이 이해를 해주네요…….
“좀 있으면 새해잖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요. 이런☆ 저 무신경한 것들.
새해를 함께 맞고자 하는 내 마음도 모르다니, 음력이 없는 게 한이죠. 설날 명절의 묘미가… 크흑.
다 같이 윷놀이 하자고 꼬셔볼까요, 재밌을 거예요.
“엘~ 일 분 남았어~”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그니까 시계!)로 트로웰이 알려줘요.
“…삼, 이, 일. 새해다!”
“우와! 해피뉴이어! 새해 복 많이 받아~”
급 흥분해서 옆에 있던 셋을 끌어안아 버렸네요. 트로웰이 ‘그래그래 엘 너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미네가 기이한 미소를 지어요.
으음. 그리고 이프리트는…….
“해가 바뀌는 게 뭐가 신기하다고 난리야! 하여간 아직도 인간인 줄 안다니까!”
훗. 네가 뭘 모르는구나. 나이란 아무리 적응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거야.
새삼 느껴지네요, 우리가 정령이라는 게. 안 그럼 여성체 주제에 나이 먹는 것에 저렇게 태평할 리가 없잖아요.
소녀인(외모상) 미네야 그렇다 쳐도 이프리트는 엄연한 아가씨의 모습이니까요.
주름살도 안 생기고 피부 트러블도 없다니… 생각해 보니 진정한 여신피부… 쿨럭.
아무튼!
“시끄러 이프리트! 너 그렇게 마녀 같이 굴면 엘뤼엔한테 너 모함 하는 수가 있다?”
실제로 할 건 아니지만 이것만큼 잘 먹히는 협박은 없어요. 지금도 쳇쳇거리며 입을 다무는 걸요☆
서로 작년 한 해 고마웠다는 인사와 새 해에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며 우리 넷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답니다!
정령계도 여전히 평화롭고, 명계도, 으음… 아마 신계도요. 어? 근데 왜 엘뤼엔이 안 오는 걸까요? 오겠다고 했는데.
⁂
엘과 그 친구들이 에바스 에덴에 모여 새 해를 기다리고 있던 그 시각. 마신전에선 현재 신계 제일의 막내(그러나 마신)인 검은 청년 크로아첸이 드디어 마지막 결제를 끝내고 일어서고 있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살인적인 업무. 정말이지 제 정신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서류지옥이다.
크로아첸은 혀를 내두르며 이제는 깨끗이 비워진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이야 깨끗해도 내일이면 또 탑처럼 서류가 쌓여 있겠지. 윽. 젠장.
생각만 해도 어지러워져 그는 대충 옷을 정리하고 이동했다. 엘뤼엔 녀석과 같이 움직일 생각 따윈 추호도 없지만 혼자 갔다가 엘한테 ‘엘뤼엔 데려와’ 라며 내쫓기는 것보단 아예 챙겨 가는 게 낫다.
순식간에 엘뤼엔의 신전 앞에 도착한 그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어이! 검은 머리카락의 앞에 가는 신! 잠깐만!”
뭐냐. 누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크로아첸은 (당연하게도) 무시한 채 손을 뻗었다.
그러나 크로아첸은 다짜고짜 어깨를 턱, 잡아오는 손에 신전의 문을 여는 행동을 끝낼 수 없었다.
“뭐야?”
눈꼬리를 치켜 올린 크로아첸이 잔뜩 삐딱한 질문을 던졌다.
“여기 엘뤼엔 녀석 신전 맞아?”
“알 게 뭐야, 치워.”
비틀린 대답에 은은한 붉은 적발의 남자(당연히 신이겠지만)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냐, 이 심각한 싸가지는. 혹시 네녀석이 엘뤼엔이냐?”
“나랑 그딴 놈이랑 비교하지 마.”
시퍼런 음색으로 크로아첸이 한 마디 했다. 그러자 남자가 질린 얼굴을 한다.
“설마 신계엔 널린 게 싸가지인 건가… 크악! 차라리 명계로 가는 게 낫겠다!”
“뭐라고 떠드냐? 그리고 그 따위 싹퉁바가지랑 나랑 같냐?”
“오오, 너 뭘 좀 아는 구나. 그 자식은 여전한가 보지? 그렇지, 그 성격파탄자.”
적발이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없는 자리에선 나랏님도 욕한다지만 영 찜찜해진 크로아첸은 동조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엘뤼엔님께서 들어오라 하십니다.”
마중 나온 천사의 말로 미루어 보아 이미 늦은 듯 하지만.
아씨, 괜히 또 시끄러워 지겠네. 크로아첸은 투덜투덜 거리며 천사를 따라나섰다. 어차피 보러 온 거니까.
“어… 어? 나도… 가야하나?”
친절한 안내 따위 없는 신전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는 뒷머리를 긁적이다 에라, 뒤따라 들어갔다.
“여기가 엘뤼엔 신전 맞… 헉.”
“넌 또 뭐야. 아아 그래, 내 신전 앞에서 겁도 없이 떠든 패거리로군.”
서로 으르렁 대던 집무실 문을 연 순간, 남자는 싸늘한 눈에 우뚝 멈춰 섰다. 문을 닫고 다시 나갈까 고민하던 남자는 ‘내 신전’ 이란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엘뤼엔? 그러고 보니 색깔 외에 변한 게 없네. 흠.”
“그러는 넌 누구지? 가만, 흐음. 이 짜증나는 느낌 꽤나 익숙한데…….”
“짜증… 뭐야?! 게다가 그나마 기억도 제대로 못 해?! 정말 엘퀴네스 때랑 변한 게 없잖아 이 자식!”
엘뤼엔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뭔가 떠오른 듯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너… 이프리트 놈이냐?”
그 말에 남자가 크하하! 웃으며 기세 좋게 외쳤다.
“오늘 부로 신계에 배정된 류하르테다! 으하하!”
“닥쳐. 시끄러.”
전혀 관심 없다는 태도로 이제 막 신이 된 전대 이프리트, 류하르테에게 엘뤼엔은 일갈했다.
“뭐, 뭐! 지금 무시하는 거냐!”
“이봐, 안 갈 거야? 엘이 기다릴 거라고.”
“갈 거야.”
류하르테의 시끄러운 발악을 무시하며 두 신은 저들끼리 일정을 논의 했다.
그러자 언제까지고 엘뤼엔에게 소리 칠 것 같던 류하르테가 순간 얼굴을 바꿨다.
“아 그래, 엘뤼엔. 생각났다. 지훈은 어딨어? 명계에서 아레히스가 너한테 가면 지훈이 있을 거라던데.”
묘하게 웃으며 말해준 아레히스를 떠올리며 류하르테는 고개를 까닥였다.
“‘엘’이다. 건들지 마. 내 아들이야.”
그리곤 휙. 제 할 말만 다 한 엘뤼엔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멋대로 이동한 빈자리를 보며 류하르테의 얼굴이 붉게 변하고, 크로아첸은 어쩔 수 없단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엘이 최고야, 죽고 못 사는 부자 같으니라고.”
쳇 하며 혀를 찬 크로아첸이 잔뜩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사라졌다. 순식간에 홀로 남겨진 류하르테의 입에서 괴성이 나온 건 잠시 뒤였다.
“…후후 내가 못 갈 줄 알고? 나도 신이다 이거야!”
둘의 이동잔재에서 정령계의 기운을 읽은 류하르테가 한껏 웃었다. 곧, 집무실 안에서 모든 기척이 사라졌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이라면, 같은 신이어도 마 속성인 엘뤼엔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 (후일 또 맞붙어 깨져 사기라고 외치는 류하르테에게 엘뤼엔이 비웃음을 날렸다는 건 여담)
⁂
“아버지!”
덥썩 안긴 채 반가운 얼굴로 인사한 나는 문득 부루퉁하게 표정을 바꿨다. 그러고 보니 엘뤼엔은 엄연히 약속 위반!
“왜 늦었어?”
목소리에 담긴 서운함을 그가 알아 챘는진 모르겠지만, 엘뤼엔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상한 걸 만났다. 미안하군, 화났다면 그놈 묻어줄까?”
“에… 에에엑?!”
진지하게 물어보지 마, 진짜 그럴 것 같… 그러겠구나·…….
약속에 늦으면 얼마나 늦었다고, 멀쩡한 생명체를 죽일 수는 없지!
나는 서둘러 엘뤼엔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아! 크로아첸은?”
‘앞으로 시끄러워질 것 같아 겸사겸사 죽이려 했더니’ …… 쯧하고 혀를 차는 엘뤼엔의 낮은 말을 다 들어버렸다. 허… 허허 엘뤼엔!
“여기 있어~”
잠시 아버지와의 대화에 빠져 소외 되어(?) 있던 트로웰이 외쳤다.
그쪽으로 돌아보자 언제 왔는지 트로웰에게 잡혀 새해 복 많이 받아~ 소릴 들으며 쓰담받고 있는 크로아첸이 있었다.
그의 표정은 굉장히 암흑에 휩싸여 있었다. 반면 트로웰은 굉장히 신나 하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고.
“우왓! 너 설마 트로웰이냐? 말도 안 돼!”
그 상태는 커다란 누군가의 외침에 의해 깨어져 버렸지만 말이다.
“응? 너는…….”
트로웰이 ‘응?’하는 표정으로 입을 연 순간, 나는 새로 나타난 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프리트처럼 타오르는 새빨감 과는 다른 은은한 적발에 남신의 외양(물론 당연하게도! 잘 생겼다, 엘뤼엔이 수려하다면 이쪽은 털털해 보인 달까).
정령계에 들어온 걸 보니 두 말 할 것 없이 신이겠지만, 난 저런 사람 모른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강한 느낌이 계속 들고 있긴 하지만.
단순하게 트로웰과 아는 사이인가, 생각하고 있던 내 귀에 말이 흡사 꽂히는 것처럼 파고들었다.
“…너 전대 이프리트?”
“뭐?”
“예에?”
동시에 이프리트와 미네의 경악성이 들려왔다. 무, 어, 뭐, 뭐라고?!
어느새 나는 반사적으로 엘뤼엔 쪽을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엘뤼엔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의 이프리트라면, 과거에서 티격태격하며 친분을 쌓고 나아가 강지훈일 때… 형제 해주겠다며 힘들 때…….
어쩐지 목이 메어 와 머리를 숙였다.
그래도 재회했으니 반가운 마음이 커 고개를 들고 인사를 나누려던 나는, 머리를 들고 본 그의 모습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온통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그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음… 저기 나 기억 나? 아, 당연히 나겠구나. ‘강지훈’이 나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그, 그건 딱 보면 알아! 너… 너…….”
이젠 아예 손가락까지 나한테 향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뭐가 그렇게 놀라운 거지?
“…새삼 반하기라도 한 건가.”
“엘의 팬클럽이 늘었군요.”
트로웰과 미네가 중얼거리기 무섭게 엘뤼엔이 새파란 목소리로 전대 이프리트에게 입을 열었다.
“엘한테 삿대질 하지 마.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 마.”
당장 두들겨 팰 듯이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에 (진짜 그럴리는 없지만)주변이 영하로 내려갔다.
전대 이프리트는 드디어 정신을 찾았는지 갑자기 허둥거렸다.
“화났네.”
“엘은 매력이 넘치니까요. 아버지로서 불안할 겁니다.”
그 순간에도 태평하게 떠드는 트로웰&미네 콤비다. 너흰 엘뤼엔의 저 벼락이 칠 듯한 오오라가 안 느껴지는 거냐!
“딸자식 둔 입장… 아하하 미안. 입 다물게 엘뤼엔.”
트로웰이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물러섰다.
‘이것들이…’하며 살기를 금방이라도 폭발시킬 듯한 엘뤼엔… 응?
“지훈, 아니 그러니까 엘!”
눈을 빛내면서, 헛기침을 하면서, 친구였던 녀석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진짜 반갑다!”
“으앗! 잠깐만!”
반가움에 지훈일 때처럼 껴안으려 다가간
나는 제지하는 그에 의해 어리둥절해 하면서 멈춰 섰다. 왜, 왜 그러지?
호, 혹시 싫은 걸까…?
눈치가 보여 고민하는 나에게, 후 숨을 들이 킨 그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여성체였냐?”
아. 그래서였구나. 네 얼굴이 새빨간 게. 다가오지 않고 주춤거리는 게.
내가 여성체인 줄 알고 놀란 거야?
하기야 난 티 없이 뽀얀 피부에 넘실거릴 정도로 길고 결 좋은 머리카락, 빨간 입술에, 하하 무엇보다… 계집애 같이 생겼으니까.
“크아아악! 하태진 이 자식…!!!”
크억. 정령도 혈압이 있나 보다. 안 그럼 내가 지금 고혈압 환자처럼 피 쏠리는 기분을 느낄 리가 없잖아!!!
“뭐, 왜, 왜 그래!”
컴온 프렌드. 내가 지금 이성이 약해져서 대화보단 싸움질이 하고 싶은데 말이지?
그렇게 놀란 눈으로 물러서지 마.
순수한 정령왕 상처 받아. 내가 괴물이라도 돼?
“후후… 이리 와, 어디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 내가 친히 가르쳐 줄게! 몸! 으! 로!”
내 말에 이 자식(어느새 호칭 확립)의 안색이 허옇게 변하는 게 보였다.
“이런, 엘은 너무 순수해.”
“으음. 눈이 맛이 갔군요.”
“저 어휘 선택 하고는… 쯧쯧 어린애라니까.”
옆에서 떠드는 것들은 잡음으로 무시. 나는 당장 눈앞의 녀석의 목을 잡고 칠면조랑 레슬링 하듯 앞뒤로 흔들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고!”
이 상황에 저 녀석은 알고나 맞자 모드다! 훗. 네 죄야 여기 있는 모두가 안다!
“난 남성체야!!!”
⁂
“에바스 에덴이 이렇게 된 거 엘뤼엔 이후로 처음 봐.”
정말 감탄하고 있는 건지 트로웰이 우와- 소리를 연발했다. 우린 지금 다 같이 내 집, 그러니까 물의 영역에 와 있다.
“한 사흘은 못 가겠군요.”
“미… 미안…….”
죄인된 기분으로 사과하자 미네가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재밌었으니까요.”
“…쿨럭. 그, 그래.”
에이씨 난 몰라. 괜찮대. 나는 한쪽에서 엘뤼엔에게 마저 밟히고 있는 류하르테(새로운 상급신이란다)를 바라보았다.
흠. 솔직히 내가 때린 건 주위만 부수고 소리만 요란했는데 확실히 엘뤼엔이 처리하니 낫네.
나는 흥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째 뭔가 진짜 삐진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난 그냥 화가 났을 뿐.
“어? 아우…….”
갑자기 눈앞에 불쑥 나타난 손가락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미간을 꾹꾹 누르는 손의 주인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인상 쓰지 마. 안 예뻐. 또 삐쳤냐?”
“삐지긴 누가!”
“누구긴 누구야, 너지.”
따악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나는 윽 뒤로 물러섰다.
“아프잖아! 첸!”
첸이 뭐냐면, 나와 트로웰이 지어준 크로아첸의 애칭… 이랄까. 나는 버럭 소리 지르며 내 이마에 딱밤을 먹인 손을 거둔 크로아첸을 노려봤다.
“그거 가지고 아프긴. 너. 저 자식이랑 붙어 다니지 마. 웃지도 말고.”
갑자기 또 왜 이래! 신이 되어도 그의 엘퀴네스집착은 여전한지(애들은 아니라며 웃었지만) 녀석은 이렇게 간간히 태클을 걸어오곤 했다.
“태진… 류하르테는 내 친구야!”
“친구도 아니다, 아들. 저 질 나쁜 녀석하고 놀지 마.”
옆에서 단호하게 거드는 말에 나는 ‘아버진 또 왜 그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엘뤼엔을 쳐다봤다.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터는 엘뤼엔 뒤로 류하르테가 끙끙 거리는 게 보였다.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고…….
“아들.”
“어… 으, 응?”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나를 부르는 엘뤼엔의 심각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 나왔다.
“세상 모든 놈들은 다 늑대다. 알겠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심각한 얼굴을 해선. 그러나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우욱 신음하며 내게 다가온 류하르테를 부축했다.
“괜찮아? 류하… 대충 류라고 부를게.”
“괜찮기는 무슨. 근데 너 진짜 남성체인 거냐?”
아직까지 그 소리냐… 아니, 남자였던 날 남자취급 하는 게 무슨 문제야?
단칼에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류가(얼렁뚱땅 애칭 확정) 침묵했다.
갑자기 조용해지자 당황하던 나는 드디어 본래의 목적을 떠올렸다.
새해 벽두부터 나타난 새로운 신의 출몰(?)과 연이은 소동으로 까먹고 있었지만, 그래도 새해 인사도 안 하고…!
“저기, 아버지.”
나는 좀 어색하게 엘뤼엔을 불렀다.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세배도 아니고 불효막심하게도(?) 새해 인사만 하는 건데 매년 했는데도 항상 그때마다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건지.
“으… 흠, 새해 복 많이 받고, 지난 해 동안 아버지 속 썩인 거 미안하고, 새해에도 잘 부탁해, 아버지.”
마, 말 했다! 피식 웃는 소리가 나고 엘뤼엔이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사랑한다, 아들.”
헤헤 거리며 그렇게 부자간의 친근한 시간을 가지고 있던 그 순간, 퉁명스런 목소리가 났다.
“나는?”
엘뤼엔에게 밀렸다는 사실 때문인지, 크로아첸의 표정은 험악해져 있었다.
넌 그 새를 못 참냐!
“크로아첸 너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내가 특별히 지난해 너의 잘못은 물에 흘려주마. 훗.”
내 사랑이 담긴 새해 인사에 크로아첸이 찜찜한 표정으로 잠시 내 말을 곱씹듯 가만히 있더니 이내 뭐 아무렴 어떠냐는 듯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새해라고 딴 데로 눈 돌리지 마. 그리고 노엘 자식 옆에 붙어 다니지 마.”
…이 녀석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언제나 그렇듯 인사랍시고 또 소유욕 한 가득 담은 말을 하는 크로아첸을 한 대 때리고, 나는 류를 향해 눈을 돌렸다.
“다시 만나서 진짜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해, 류.”
“큭… 에엘! 나도, 나도 진짜 반가워!”
내 말에 갑자기 눈물까지 맺혀 크윽 엘! 하며 달려드는 류하르테. 이제야 인사다운 인사를 하는 구나 감격하는데,
“떨어져.”
“이프리트, 네 오빠뻘이다, 데려가.”
순식간에 갈라놓는 엘뤼엔과 그것도 모자라 이프리트에게 던지는 크로아첸.
“야! 잠깐만!”
버둥대며 반항하는 류를 보며 나도 뭐라 한 마디 하려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 에에엘~ 뭐 해애애애~? 〕
으응? 갑작스런 전음(?)에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카노스? 갑자기 뭐에요?”
본인이 상관없다고 하기도 해서 나는 그를 카노스라 부르고 있었다. 정령계에 다녀오겠다고 미리 양해도 구해놨고 무엇보다 엘뤼엔이 떠넘긴 서류산으로 인해 정신없어야 할 그가 갑자기 왜?
〔 냐하하 새해 복 많이 받아 엘~ 〕
“엑? 그 말 하려고 일부러 말 건 거예요, 카노스가?”
〔 헉! 날 그렇게 매정한 엘프로 보고 있었던 거야? 너무해 〕
그리고 들려오는 흑흑 소리. 일부러 전화(?)까지 한 사람에게 너무 삐딱하게 대답한 것 같아 나는 사과했다.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었…….”
〔 역시 엘은 똑똑해! 사실 나 할 말 있걸랑. 옆에 엘뤼엔 있냐? 〕
이 엘프가 지금! 또 속아 넘어간 나는 한숨을 쉬며 엘뤼엔을 찾았다.
어느새 이프리트에게 ‘엘뤼엔을 좋아해? 너 미쳤구나!’ 하며 오빠로서의 충고를 하는 류하르테의 뒤에 음습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는 엘뤼엔이 보인다.
“좀 떨어져 있어요, 뭐 할 말 있어요?”
〔 냐하핫 그럼 엘뤼엔한테 나 서류 한 뭉치 찢어버렸다고 전해 줄래? 절대 고의는 아니었다고. 〕
“네에!?”
방금 뭐라구요?! What?!
“잠깐만 카노스!”
〔 그럼 잘 놀다 와 엘~ 〕
그리고 더 이상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아마 일단 어딘가로 내뺀 걸 거다.
왜 나한테… 카노스 이 엘프를 그냥!
혼자 화를 내다가 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한숨을 쉬었다. 바빠서 오지 못하는 페르데스에게 간 트로웰을 빼곤 다 있었다.
나는 엘뤼엔에게 가 소매를 당겼다.
“엘?”
“아버지, 있잖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내게 엘뤼엔은 천천히 말하라며 웃었다. 나는 속으로 기합을 넣고 털어놨다.
“카노스가 서류 다 찢어서 종이비행기로 날렸대.”
뻔하다. 저번에 이어 또 그랬을 게. 왜냐고? 단순히 ‘찢은’ 걸로 카노스가 도망갈 리가 없으니까.
서서히 엘뤼엔의 기운이 사나워지는 게 느껴졌다. 크로아첸과 이프리트는 쯧쯧 혀를 찬다.
뭘 모르는 류하르테만 어리둥절해 할 뿐.
올 해도 별로 조용할 것 같진 않다 ♪ (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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