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 of summer storm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푸른 것이 우수수 흔들렸다.
잎에 맺혀있었을 빗방울이 속눈썹으로 날아와 맺혔다.
파도타기 하듯 여기서 저기로 온 잎이 푸스스 흔들린다.
“선배, 읍.”
으, 하는 낮은 신음소리가 목을 울렸다. 켄야는 단비라도 만난 것처럼 연신 그의 숨과 입술을 삼킨다. 풍경이 있다면 정신없이 흔들릴 바람.
바람 밖에, 수풀 밖에, 그밖에 없는 곳에서 켄야는, 제 손 안에 쥐어지는 손목을 강하게 잡은 채로 풀지 않았다.
연일 높게 달라붙던 공기 중의 물기가 온몸에 달라붙어 괴롭혔다.
하필 여행 떠나는 때에 비 소식이 이어질 것은 뭐냐고 투덜대던 켄야는 솟아오르는 불쾌감을 주체할 수 없는지 평소보다 시끄럽게 굴러다니다 별안간 조용해졌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다 조용해진 주위에 켄야를 돌아본 자이젠은 그 순간 마치 메치듯 잡아챈 손에 떠밀려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뭐 하시는,”
말 한마디도 못 뱉게 달려든 이에게 잡혀 있길 한참.
아픈 입술을 문지르며 자이젠이 그를 노려봤다.
“갑자기 왜.”
연신 우수수 흔들리는 소리를 한 번 쳐다본 켄야는 저벅저벅 다가가 열어두었던 창을 닫았다. 소리가 소거된 길갱이는 창 너머 섭슬리는 모습만 여전했다.
이번엔 자이젠의 옆으로 와 에어컨 리모컨을 집어 전원을 눌렀다.
그러고 나서야 자이젠 쪽으로 엎드려 얼굴을 맞댔다.
“갑자기 너무 좋아서.”
기가 찬다는 반응에도 켄야는 헤헤 웃었다.
삐로롱 소리를 내며 가동을 시작한 에어컨이 시원한 공기를 덥석 쏟아냈다.
눈가를 깜박이며 켄야가 자이젠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그의 양 팔은 켄야의 무릎을 차지하고 엎드려 있었다.
“무거운데예.”
“시러시러.”
비키기 시러. 애처럼 말끝을 늘이며 켄야가 그를 올려다봤다. 일부러 크게 뜬 눈을 깜박깜박 움직이기까지 했다.
한 움큼 찬 공기가 쏟아지는 것이 마음에 드는지 하품까지 곁들이는 꼴을 자이젠은 흰눈으로 쳐다보았다.
“기껏 왔는데 이기 뭐고.”
“어제 그래도 밥은 맛있다고 좋다믄서예.”
“밥은 맛있제. 온천도 좋고. 안마기도 좋고. 시설도 좋고. 다 좋제. 영 날씨가 안 좋잖아 날씨가.”
“어차피 종일 숙소 안에만 있으믄서.”
켄야는 아니야 그렇지만~ 하고 투정 부리며 뺨을 허벅지에 대고 누웠다.
졸지에 다리를 내준 자이젠이 옆에 둔 책을 밀며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부볐다.
“무거운데예.”
“시러시러.”
진짜 애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굳이 치우지 않는 자이젠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며 켄야는 티 나지 않게 웃었다. 자기도 더운 것, 습한 것 못 참으면서. 그가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며 굴러다니는 동안 책 보는 척 마찬가지로 짜증 참고 있었으면서. 짜증이 나면 좀 표현해도 될 텐데 이 애어른 녀석은 감정 표현하는 걸 죄악쯤으로 여기는지 애써 참는다.
더우면 덥다고 말하란 말이야!
뭐, 멀쩡한 에어컨 놔두고 창 열고 그 습한 공기 맛보고 있던게 제 탓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그가 자연풍 느끼고 싶다, 바람 소리 듣고 싶다, 숲 소리 듣고 싶다 주워섬긴 말 때문에 좀 참아준 것 같았다. 평소라면 진즉 온 창문 다 닫고 에어컨 풀가동 시켰겠지.
거기까지 생각하니 그가 질릴 때까지 짜증을 참아준 셈이다.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서 켄야가 벌떡 일어났다.
“깜짝이야.”
“히카루. 니 무지 사랑스러운거 아나?”
“압니다.”
자이젠은 코웃음 치며 켄야가 머리를 뗀 다리를 매만졌다. 빈 공간에 금세 찬바람이 닿아 남은 온기를 지워갔다.
켄야는 앞에서 철면피라니느니, 니 갈수록 더한다느니 쨍알거리는 중이었다.
일단 시원한 공기를 쐬고 있으니 아까만큼 짜증이 솟지는 않아서 조용히 들어주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푸른 것들이 바람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지금 저 창을 열면 아까와 같은 커다란 소리가 쏟아져 들어오겠지. 하지만 자연풍 운운은 아까로 족하다. 켄야가 다시 창 열자고 하면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하는 와중, 생각 속의 그가 현실에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오늘 여러 번 놀라네. 온도 좀 올리려고.”
끄덕임을 확인한 켄야가 에어컨 리모콘을 잡아 몇 번 매만지고 자이젠을 돌아봤다.
왜…? 입을 벙긋하기 무섭게 뒤로 밀려 다시 한 번 다다미 위로 뻗은 자이젠이 제 위로 올라탄 켄야를 노려보았다.
홉뜬 눈에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이 아까와는 다르게 상쾌한 안색이었다.
찬바람 좀 쐬더니 즐거워져서는, 정말이지.
자이젠이 몸을 일으키려는 걸 켄야는 몸무게로 밀어붙였다.
서로의 허벅지와 골반이 맞닿을 정도로 달라붙자 굳은 건 자이젠이었다.
“그럼 니 이쁜 것도 아나?”
묻는 질문은 아까의 연장선인지 똑같았다. 다만 신난 얼굴과 질문의 단어가 달라졌을 뿐.
어디서 아저씨 같은 소리만 배워 와서는, 비키기나 하라며 밀치려 드는 손을 제압하기 위함인지 아예 상체까지 밀착해 누워왔다.
운동하는 소년의 몸집이 그대로 눌러오자 자이젠이 이를 갈았다.
“비키라니까!”
숨 쉬기도 힘들게 만들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흡사 아까의 길갱이마냥 좌우로 움직이는 흑발에 켄야가 입을 가져갔다.
“악!”
찬 머리 위로 숨이 닿자 정말로 놀랐는지 답지 않게 짧은 비명을 지르는 자이젠에, 오히려 켄야가 더 놀래서 몸을 일으켰다.
“왜, 왜, 아파?”
“뭔 소리고.”
지가 달려들어 눌러놓고는.
숨통이 좀 트이자 흐트러진 머리를 슥슥 문지른 자이젠이 뚱하니 손을 뻗었다.
“어?”
힘을 준 목덜미를 감아 당기는 힘. 켄야가 눈을 휘둥그레 뜨는 걸 무시하며 입을 가져간 자이젠이 얌전히 그의 이마에 키스했다.
“지치니까 가만히 좀 있,”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아 정말 나는 남자친구가 아니라 애완견을 하나 기르고 있는 것 아닐까?
넙죽 달라붙어서 물고 핥고 난리가 난 이의 어깨를 별 수 없다는 듯 끌어안으며 머리 한구석에서 꽤 여러 번 했던 생각이 다시 한 번 지나갔다.
열렬히 키스하는 와중에도 벌써 반바지 밴드를 제치고 들어간 손의 열기가 낯설지는 않았다.
결국에는 동한 몸이 허리를 들어 바지를 내리는 걸 돕자 켄야가 맞대던 입술을 잠시 떼고 웃었다.
“히카루.”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불신의 눈으로 쳐다보는 자이젠을 보며 켄야가 웃었다.
“니 좋아한다고.”
애완견보다는 한참 낫지. 비록 입 열면 실없는 소리가 반이지만.
홀로 생각하며 자이젠은 먼저 그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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