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my First love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앙상블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흘러나오는 고음의 선율.
연주자의 감정이 실린 탓일까. 어딘가 날카로우면서 애잔한 음이 귀를 부드럽게 채웠다.
“아… 오오토리가.”
연주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는지 오시타리는 인기척에 활을 멈췄다.
연습을 방해한 건가요? 오오토리의 말에 오시타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힘이 없는 모습. 요 근래에 이상하게 자주 보게 된다 생각하며 오오토리는 물었다.
“…싸우셨어요?”
그렇게 묻는 오오토리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고백에, 다툼에, 하루도 빠짐없이 표정이 극과 극을 오간다.
그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도대체 뭘 하면 그렇게 만난 지 4년차는 된 것처럼 투닥거리는 전개가 되나요?
“아아.”
바이올린을 허벅지 위에 얹고, 힘없이 대답하는 오시타리의 눈이 멍했다.
초점 없이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실의에 빠진 사내.
아마 이 자리에 아토베나, 시시도가 있었다면 그에게 할 말은 뻔했다.
미친놈. 뭐 하냐.
“그분이 그렇게 좋아요? 만난 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게다가 곧 귀국하실 텐데.”
그렇게 묻는 오오토리의 질문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야, 요즘 오시타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니까.
정말로 좋은가?
고작 몇 번 만난 사람을, 그것도 이제 귀국할 사람을, 저렇게 진심으로 부딪히는 것.
하나도 자연스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오시타리가 한숨처럼 말했다.
“니도 보믄, 기양 생각이 퍼뜩 들 끼다. 이 사람은 내 꼭 잡아야겠구나, 이런 기.”
뭔지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모르겠어요.
오오토리는 애매한 미소로 대답했다. 별다른 말은 부러 꺼내지 않는다.
오시타리도 별다른 말은 더 하지 않았다. 그는 바이올린을 쥔 채로 말이 없었다.
“실례하겠다.”
문을 두어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방음이 철저하게 되어, 게다가 이 주변에서 언성을 높이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덕에 웬만한 소리는 문을 넘어 들어오지 못한다.
거기다 그들이 앉아 있는 연습실은, 거의 그들의 전세가 되다시피 한 암암리의 행태를 모두가 알고 있어 비어 있을 때에도 별달리 찾는 사람이 없는 곳. 게다가 안에 이용자가 있는 데도 찾아온 ‘관계자 외의’ 사람이라.
“야나기 선배?”
야나기 렌지.
언제나와 같이 차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그를 보고 오오토리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야, 밖에서도 아니고 연습실까지 찾아올 일이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에게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오시타리였다.
“오시타리. 핸드폰 확인 좀 하지 그러…….”
“어이쿠야. 미안타.”
득달 같이 반응한 그가 야나기에게 대뜸 사과부터 건넸다. 사정을 모르는 오오토리는 얌전히 있는 가운데, 야나기가 말했다.
“담당 교수님이 널 찾지 못해 나까지 붙들렸다. 핸드폰 확인 좀 하지 그래.”
“까마득히 잊고 있어서. 미안타.”
바이올린과 활을 급히 내려놓고, 악보도 정리하면서, 오시타리가 말을 동시에 했다.
낌새가, 뭔가 약속이 있다가 잊어버린 사람과 같은 모양새라 오오토리는 큰 일이 난 건가 걱정했다.
“무슨 일 있나요?”
“콩쿠르 관해서 교수님이 찾는데 오시타리한테 연락이 안 닿았다. 나한테 불똥이 튀었을 뿐 문제될 일은 없다.”
그런 오오토리의 심정을 눈치 챈 걸까. 야나기가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아. 그런 건가. 안심이 되는 동시에 의아해진다.
“선배. 콩쿠르 출전 하세요?”
요즘, 되게 뜸하지 않았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묻는 말에 오시타리가 대답했다.
“1년 쉬었으면 마이 쉬었다고 볶아가 살 수가 없다 아이가. 이는 뭐, 콩쿨 못 나가 죽은 귀신 붙은 기도 아이고.”
하긴. 오시타리 선배 정도 되는 사람 두고 투자 안 할 학교도 아니지. 같은 바이올린 전공이라서 간간히 듣는 것도 있지만, 저 선배, 정말로 음악에 관해선 진지하고 대단하다.
천부적인 소질과 좋은 표현력이 차곡차곡 쌓인 훌륭한 예시라고 해야 하나. 천재답게, 이해할 수 없는 번뜩이는 재치도 보이긴 하지만.
더 묻지는 않고 오오토리는 손을 흔들었다.
“교수님 어디 있나. 연구실?”
“그래.”
야나기에게 고맙다~~ 말이 늘어지게 외치며 성큼성큼 걸음을 빨리했다. 뛰지는 못하겠고, 빨리는 가야겠고 어쩌다 이렇게 딴 데 정신이 팔렸는지 참.
가쿠토 만나기 전까지 연습에 매진해야지 싶어 핸드폰을 꺼놨던 게 하필 교수님이 찾을 때가 뭐람. 분명 자유곡 어쩔거냐 정했냐 달달 볶으실 텐데.
엄격하고 타협 없는 지도교수 얼굴이 절로 떠오르며 어깨가 떨렸다. 아무 생각도 안 해놨는데 어쩐다…….
문 앞에서 숨 고르고 들어가서는 역시나 일정과 곡에 대한 질문이 줄줄이 이어졌다.
생각 안 한 채 갔다가 말하면서 생각의 방향을 잡았으니 뭐라도 하긴 했다.
대화만 나눴을 뿐인데 약간 지친 느낌으로 문을 나오니 벌써 5시가 지나 있었다.
마침 핸드폰에는 가쿠토에게서 온 문자가 떠있었다.
“히익, 벌써 학교라니 발도 빠르지.”
잽싸게 건물을 뛰어나와 케이스를 어깨에 멘 채로 교정을 가로질렀다.
붉은 머리가 멀리서도 눈에 띄는 모습에 손을 올려 저었다.
“가쿠토!”
핸드폰을 쳐다보던 남자가 고개를 들더니 이쪽을 쳐다봤다.
오늘은 후드티구나. 뭘 입어도 잘 어울리네.
“야! 왜 자꾸 이름 불러?!”
“원래 해외에선 그러는 기다.”
“뻥치지 마!”
꼭 껴안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웃자 오늘도 활발한 무카히 가쿠토가 볼을 부풀렸다 꺼트렸다. 그 모습에 방방 뛰고 싶은 것을 억누르니 이번엔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에 고난의 연속이란 말을 실감한다.
“다 끝났어?”
“응. 나갈까? 아님 구경할래?”
현지 가이드를 자처한 오시타리가 묻는 말에 잠시 고민하던 무카히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말고.”
“그래. 밥은 먹었나?”
“응. 일단 우리 노천 카페 가자.”
“거 또 기가 막힌델 알제.”
마침 날씨도 좋다. 맥주 맛있는 곳을 안다며 오시타리가 나섰다.
손잡을까? 하는 말에 뭔 소릴 하냐고 다시 한 번 무카히가 소리 질렀다.
연신 웃는 오시타리를 흘기며 종알종알 욕하는 것도 귀여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섰다.
“헤에, 그럼 혼자만 유학 온 거네? 대단한데?”
“대단할 기 뭐 있노. 내만 그런 것도 아닌디.”
“아니 그래도- 외롭거나, 그렇잖아. 혼자라는 거. 특히 외국에서.”
갈색 머리카락과 바랜 금색 머리카락이 지천인 노천 카페.
관광객이 많은 도시, 베를린.
오시타리 유시는 그만의 운명과 사이좋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독일, 하면 백이면 백 떠올리는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쥔 상대방이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오시타리는 실실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그럼 학부? 쟁쟁한 학교잖아. 힘들겠다.”
“지금은 Bachelor 과정, 그러니까 학부 과정이고, 잘- 한다면 석사와 최고 연주자 과정도 마칠 수 있겠제.”
“……그보다 너 뭘 그렇게 실실 웃는 거야.”
상대방, 무카히가 샐쭉 눈을 흘겼다. 맥주 거품을 혀로 핥으며 쳐다보는 눈에 오시타리가 격침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어두워지는 거리를 한 번 쳐다봤다.
“어쨌든 가이드 잘 부탁해?”
“내만 믿으래이.”
“…그래.”
첫인상은 이렇지 않았는데. 무카히는 도저히 첫인상(잘생긴 엘리트)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오시타리를 보고 옅은 한숨을 쉬며 ‘정말 믿어도 되는 거… 겠지?’ 라는 의문을 묻었다. 파티가 있은 지 3일이 흐른 오후였다.
대낮부터 맥주를 테이블에 올리고 시작한 대화는 바람직한 통성명에서부터 사귀자로 진행되어 있었다.
“어휴. 바보야, 사귀긴 뭘 사귀자고. 난 나흘 뒤에 귀국한다니까. 넌 여기 학생이고. 결정적으로 넌 남자, 나도 남자.”
무카히가 퉁명스러움을 가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돌발적이고 적극적인 대시는 태어나서 처음 받았고, 살면서 받을 거라곤 한 번도 예상치 못한 것. 무카히는 당황으로 물든 속내를 표정 아래 숨긴 채, 태연한 척 받아넘겼다.
“역시 그기 문제가. 귀국.”
하아… 답답하단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오시타리를 보며 무카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오시타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니 만난 지 사흘 지났다.”
“……?”
“알게 된 건 보름인데. 니가 와 이리 좋은 건지 모르겠데이.”
눈을 깜박이며 대답을 못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오시타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편안하게 몸을 등받이에 기댄다.
그저 다급함. 이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말 한 마디라도 고백하고 싶어서.
첫날부터 붙잡았다. 확실히 평소답지 않은 작업이다.
그만큼 간절하니까. 왜냐고? 글쎄.
첫눈에 반했는데 시간도 얼마 없다면 당장 붙잡고 보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합리화하면서도 오시타리는 내심 쓰게 웃고 있었다.
미친놈 취급당해도 쌀 꼴이구마.
그는 욕 한 마디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가쿠토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직설적이고, 면전에서 듣기엔 너무도 강한 고백에 가쿠토의 흰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미치겠네. 귀여워.
그한텐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운명이, 가쿠토가, 할 말을 못 찾는 듯 입을 몇 번 여닫은 몇 초 후, 입가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미친놈 같으니라고…….”
“내 평소엔 안 이렇데이.”
“알 게 뭐야.”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무카히가 눈을 흘겼다.
멀쩡하게 생겨선 역시 미친놈.
그 모습을 코앞에서 보며, 오시타리가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그의 머릿속은 ‘우째 이래 착할까. 욕도 안 하고, 근데 아는 와 이리 귀엽노. 엄한 놈이 잡아갈까봐 어디 델꼬 다니겠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 그의 머릿속을 알았다면, 무카히는 ‘됐어, 미친놈아!’ 하고 자리를 박찼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안 사귀니까 포기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하는 말에 오시타리는 풀죽은 표정을 했다. 그 상태로 심란함을 가득 풍기며 쳐다보자 무카히가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본다.
얼레. 보통 여기서 조금 찔려야 하는데.
역시 쉽지 않은가.
어떻게든 떠나기 전에 이어질 연을 붙이고 싶은 마음에 오시타리는 수단과 방법을 바꿔가며 대시할 것을 다짐했다.
“개 같이 쳐다보지 말고 일어나. 슬슬 해 저물 시간이야.”
개 같이 쳐다보…….
크흑, 속으로 좌절하는 오시타리를 아는지 마는지, 무카히는 태연한 표정 그대로 일어나 그를 쳐다봤다.
강아지 같은 눈으로 쳐다본다는 거겠지. 암. 그런 의미일 거야.
그는 애써 자신을 타이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니 가도 내 진짜 잘할게. 내가 오가면 되제, 편지도 있고 전화도 있고 영상통화도 있다.”
“얼마나 힘든 연애겠어.”
무카히가 냉정하게 한 마디 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표정은 부드러웠다.
그르킨 하제. 오시타리도 몸을 일으키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어디 가볼까?”
“글쎄. 가이드가 정해줘.”
웃을 때면 볼이 톡 올라오는 게 귀여웠다. 찔러보고 싶다는 마음을 삼키고 오시타리는 의자를 밀어 넣었다.
“예에. 그럼 갈까?”
“응.”
# 4,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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