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Years latter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진짜로 도전장이잖아?”
야나기는 유키무라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표정을 외면했다.
‘진짜 도전장’인 그것을 건네주고 있는 사람이 제 자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의 죄라면, 저 어린 망나니 키리하라 아카야의 선생이었던 과거와 어째선지 대학 입학 후에도 들러붙는 매력일까. 모를 일이었다.
“일단 전해주긴 했다.”
“응. 야나기 너, 상당히 약하구나 걔한테.”
여기서 말하는 ‘걔’는 당연히 키리하라를 일컬었고, 그걸 못 알아들을 리가 없는 야나기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흰 봉투에는 한자로 도전장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유키무라는 ‘상당히 동양적인데?’ 하며 웃었다. 와서 장갑이라도 던지지, 재밌을 텐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빛은 하나도 재미없게 만들어주겠다는 모습이지만.
유키무라와 함께 있던 터라 졸지에 도전장의 모습을 같이 보게 된 시시도는 고개를 기울였다. 슬슬 더 궁금해지는데.
“유키무라?”
“안녕, 후지.”
데즈카와 함께 연습실 건물로 들이닥친 사람은 음대 아이돌 중 하나인 작곡과의 후지 슈스케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출현에 ‘꺄악’ 하고 숨을 집어삼키는 여학생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지는 곧장 유키무라에게 다가왔다.
“도전장 받았다며?”
“응.”
후후. 소식 빠르네 후지? 유키무라가 싱긋 웃었다. 유키무라의 양쪽에 서 있는 이는 야나기와 시시도. 후지가 야나기를 올려다봤다.
“도전장이야? 정말로?”
“아아. 방과 후에 교정으로, 라던데.”
“글씨가 괴발개발이지 뭐야. 확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남학생의 글씨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적어도 유키무라도, 야나기도 제각각 곱거나, 바른 필체다. 후지는 대강 흘려 쓰는 주의였고, 야규의 필체는 단정하고, 시시도의 필체는 약간 둥글둥글 했고, 데즈카는 정석대로 썼다.
유키무라는 흰 봉투 겉면에 ‘도전장’이라고 적힌 것을 슥 밀어주며 웃었다.
과연, 한자가 엉망이다.
“귀엽더라. 이글이글하던데, 선배니 뭐니 괴물 자리 뺏겠다고.”
“아아, 귀여워. 든든한 후배가 들어왔어.”
유키무라가 생긋 웃으며 후지의 하이텐션을 받아준다.
“방과 후에 재밌겠다.”
자기 일도 아닌데 기대된다는 후지의 말에 유키무라는 ‘자기 일이 아니니까 기대되겠지’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그 자리에 있는 나머지, 데즈카와 시시도, 야나기는 화사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알 수 없는 대화를 신나게 나누는 두 사람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뭘 하기로 했는데?”
“그냥 흔한 배틀인 것 같은데.”
예컨대 내가 연주한 곡을 그쪽이 바로 받아치는?
유키무라의 설명에 후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오랜만에 재밌겠는데?”
유키무라가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
“작년 대회의 우승을 이끈 건, 지금은 졸업한 선배와 그 셋이야. 일명 목관악부 괴물들. 네가 덤빈 게 그들이라고.”
후지와 데즈카, 그리고 초록색과 검은색이 섞인 머리의 귀여운 소년은 사람이 한창인 일식당에 앉아 있었다.
체엣- 아주 삐딱한 표정으로 전년도 대회의 목관악기 앙상블 기사가 실린 음악잡지를 뚫어져라 보는 소년의 정체는 이번 년도 신입생인 키리하라 아카야. 오후에 교정에서 기세등등하게 기다리던 소년이었다.
극단적으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눈꼬리가 올라간 반항아적인 이미지. 언젠가 보았던 야규의 친구 니오와는 다른 타입의 악동 이미지였다. 니오가 퇴폐적인 악동이라면 이쪽은 말 그대로 심술궂은 악동.
일 년만 지나도 여자 꽤나 울리겠네~ 하고 애늙은이처럼 혼자 지켜보던 후지는 곧 소년이 유키무라에게 기선제압 되는 것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꽤나 버티다가, 소년은 물러났다. 집에 가는 길에 교문을 걷어차는 소년을 그대로 낚아서 일식집에 온 터였다.
“아. 난 후지 슈스케야. 작곡과.”
이런 전개로- 이리이리하여, 데즈카는 후지에게 휘말려 세 사람은 일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유키무라. 엄청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던데.
“그러니까 너무 억울해 하지 마. 뭔가 연습했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사실,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유키무라는.”
아. 가버렸다.
단단히 삐쳤는지 그대로 식당을 나선 키리하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후지는 키득키득 웃었다.
“쟤 귀엽지 않아, 데즈카?”
“선배 노릇 할 생각이라도 들었나?”
“딱히? 그렇지만 원래, 선배란 후배를 괴롭히려고 태어나는 종족이잖아?”
데즈카의 보이지 않는 난처함이 진해졌음은 당연지사였다.
요즘 너무 평화롭고 아무 일도 없지 않아? 라고 지나가는 말투로 심심해하던 후지라서 조만간 뭔가 일을 칠 줄은 알았지만, 다행히도 일은 남이 치고 후지는 끼어드는 정도였다.
데즈카가 물었다.
“왜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물론 후지 슈스케가, 흥미만 있으면 24시간 투자해 파고들 수도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와 키리하라는 접점이 없었다. 후지는 평소와 같이 웃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데즈카는 그 아래 ‘어떡할까~’ 하고 홀로 즐거워하는 기색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단순히 재밌는 선후배관계가 생겨서라기보다는…….”
흐음. 어느 정도로 말해두지? 거의 확실하지만 확실하지도 않은데.
후지가 저도 모르게 테이블을 톡톡 치다가 빙그레 웃었다.
“재밌는 사랑놀음이 기대돼서?”
무슨 소리지? 이해하지 못하고 데즈카가 지그시 쳐다보는 앞에서 후지는 한 마디 보탰다.
아니 나도 당황스럽네. 뜻밖의 깨달음이라.
눈치가 빠른 것도 죄지 뭐.
끝까지 친절한 설명은 없었고, 데즈카는 그저 묵묵히 남은 식사를 끝마쳤다.
⁂
“선배.”
“아카야.”
얼마만이지? 그러니까, 도전장 사건 이후로 이틀만인가.
야나기는 날짜를 헤아리다 키리하라가 입학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라고 말았다. 입학 전에는 입학으로 걱정시키더니 입학 후에는 또 다른 걱정거리를 물어온다.
그를 불러온 키리하라가 무슨 말을 하든 놀라지 않겠다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야나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키리하라는 묻고자 했던 질문을 했다.
“선배는 앙상블 같은 거 안 합니까?”
“전에도 말했다만, 난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피아노를 맡고 있다.”
피아노 전공자 중 제일 가는 괴짜를 담당하고 있는 야나기가 말했다.
키리하라는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 교내 오케스트라는 뭡니까?”
“별다를 것 없는, 대학교 오케스트라인데.”
“그 선배들은 왜 오케스트라 안 하고 앙상블 하는데요?”
‘그 선배들’이 브레드레스를 말하는 것이리라. 야나기는 차분히 대답했다.
“유키무라가 원하는 곡 위주로 연습하고 싶어서 시작한 모임이다.”
멀뚱히 서 있는 키리하라 주변으로 삐죽삐죽 뿔이 솟은 것처럼 보이지만, 왜 그렇게 심술이 났는지 알 길이 없어서 야나기는 되물었다.
“할 생각이 없나?”
“그럼 선배는 왜 연습실에 계셨던 건데요?”
질문이 돌아왔다. 앙상블 멤버도 아니면서 왜 있었냐는 뜻인가?
“친해서? 다들 학교에 살다시피 하니 이야기도 나눌 겸, 반주도 해줄 겸 자주 만난다.”
요컨대 친구라는 뜻이다.
이성적인 추론 하에 답해주니 키리하라가 흥 코웃음 쳤다.
“자주 온다 이거죠.”
“그렇지.”
“그거 한다고 어디 가서 말하면 돼요?”
“유키무라한테. 오늘은… 5시부터 있겠군.”
시간표도 외우고 다녀요? 그렇다만.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은 걸까. 키리하라가 쿵쿵대는 걸음으로 돌아섰다.
뒷모습에 대고 야나기가 말했다.
“키리하라. 원래 연습실은 대여한 사람 외엔 들어가선 안 된다.”
“알 게 뭐에요.”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대답은 한다. 비록 그 대답이 골 땡기는 것이긴 하지만.
야나기는 그래도 결국 키리하라가 앙상블에 가입했다는데 의의를 뒀다.
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을 유키무라라면 잘 잡아줄 것이다. 갑자기 왜 순순히 들어가기로 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석한 확률대로.
이내 그도 몸을 돌려 강의실로 향했다.
# 1,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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