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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Music Hall Series

[아카렌지] 다가오는 타란텔라 【2】

 

 

 

 

 

 

2 Years latter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 유키무라네 들어갔다며?”

 

후지 선배.”

 

하릴 없이 교정 벤치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마주친 사람은 후지 슈스케였다.

한쪽 어깨에 멘 가방은 물론 품안에도 종이가 한 가득이었다.

키리하라는 그가 안고 있는 오선지 더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게 다 뭐에요?”

 

나 작곡과여서.”

 

정말 힘들다니까~ 후지가 능청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오선지 뭉치를 추슬렀다.

 

넌 강의 기다려?”

 

아뇨. 집에 갈까 싶어서.”

 

연습실 빌리지 그랬어? 아니면 집에서 연습?”

 

별로 연습할 기분 아니라 이러고 있는 검다…….”

 

키리하라가 툴툴대는 말투로 대꾸했다.

사나운 기세가 없는 키리하라는 구불구불한 머리를 흰 이마에 드리운 앳된 청년에 불과했다. 흥분하면 날카로워지는 눈꼬리도 지금은 얌전했다. 어딘가 남동생과 닮은 것 같아서 후지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오늘 강의 뭐였는데? 필기 보여줄까?”

 

근데 몇 년 전이라 있을지는 모르겠다.

후지가 그렇게 말하며 키리하라의 옆자리에 앉았다.

키리하라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음악사요.”

 

, 그거 혹시 할배?”

 

그의 질문에 키리하라가 못 알아듣고 눈만 크게 떴다.

후지가 웃으며 설명했다.

 

엄청 연로하신 교수님이지?”

 

맞슴다.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아요.”

 

별명이 할배거든.”

 

누가 지었는지 참, 그렇게 말하며 씩 웃는 모습이 장난기 가득이었다.

키리하라는 불쑥 다가오는 이 선배의 밉지 않은 면이, 바로 그의 가장 큰 특징일 거라 문득 생각했다.

 

화성학 교수님 만나봤어?”

 

아뇨…….”

 

사카키 교수님은 맨날 스카프까지 맨 정장 차림에 머리도 완전 정돈돼있고, 여러모로 특이한 분이라니까. 아토베네 지도교수님이야.”

 

아토베가 누구에요?”

 

에엥, 유키무라는 알고 왔으면서 아토베는 몰라? 그렇게 말하며 후지는 싱글싱글 웃었다.

키리하라가 입을 달싹이면서 정작 말은 않고 인상만 찡그렸다.

그 모습이 정말 그의 동생과 비슷해보여서 후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탄호이저라고, 유키무라네처럼 현악 콰르텟 모임 대장인 애야. 한 번 마주치면 못 잊을 걸, 진짜 독보적인 느낌이거든.”

 

으응, 특히 그 자신감 대단하지. 후지가 혼잣말을 흘렸다.

키리하라는 더더욱 고개를 기울였다.

 

하여튼 브레드레스랑 탄호이저랑 제일 유명한 학내 앙상블이고, 만나면 아웅다웅해. 사실 유키무라랑 아토베 아니면 다들 그렇게 관심은 없지만……. 미묘한 라이벌 의식? 너도 이제 브레드레스 소속이니까 자주 마주치겠다.”

 

멤버들 그 뒤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데요.”

 

키리하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어?”

 

후지가 제법 놀랐는지 새파란 눈을 크게 떴다.

선배인 사람에게 실례지만, 갈색 머리가 복슬복슬한 강아지 같은 표정이었다.

강아지라고 하기엔 너무 날카롭고 예리하지만.

 

그 뒤라니?”

 

인사 하고서, 한 번도 안 나갔슴다.”

 

눈치 보면서도 할 말은 퉁명스레 다 하는 게, 어째선지 약이 오른 모습이었다.

키리하라가 입 연 김에 불만을 쏟아냈다.

 

정작 하라고 한 야나기 선배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유키무라 선배는 악마 같이 웃고 있고. 대체 뭡니까.”

 

야나기가 상주하다시피 같이 있긴 하는데, 일단 걔 교내 오케스트라 수석 연주자라서.”

 

그러니까 지금 좀 바쁜 게 아닐까? 후지가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나 키리하라의 인상은 구겨진 채 펴질 줄 몰랐다.

 

그럼 다른 멤버들은 안 만나봤어?”

 

인사는 했는데…….”

 

브레드레스 대단하지으응, 어떤 면이냐면 성격이 특히. 시시도는 연습 마니아고, 유키무라는…… 생각도 하기 싫군. 야규는 합리적이면서 궤변적이란 말이야.”

 

후지가 흐음-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리다 뭔가 연락이 왔는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후지가 핸드폰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침묵하며 기다리던 키리하라는 이쯤에서 이 선배는 타과 주제에 뭘 이리 잘 아나 궁금해졌다.

 

선배 작곡과 아님까?”

 

맞는데.”

 

질문의 요지를 눈치 채고도 모른 척하는 웃음이 일품이었다.

키리하라는 다시 물었다.

 

엄청 마당발이신가 봐요.”

 

그러게. 어쩌다보니까 다 엮여서 말이야. 그리고 다들 한 개성 하니까 눈에 잘 띄고.”

 

그러면서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몸을 기울여 속닥거렸다.

 

야나기도 정말 눈에 띄지 않니. 내가 하도 빤히 쳐다봐서 걘 이제 다 보이니까 눈 그만 봐라 후지이런다니까.”

 

심드렁하던 키리하라의 귀가 쫑긋거렸다.

키리하라가 머뭇거리다 물었다.

 

야나기 선배 시간표 아십니까?”

 

그건 직접 물어보면 자상히 알려줄걸? ---!”

 

키리하라를 쳐다보며 방긋 웃은 그는 휙 고개를 돌리고 한쪽 손을 든 채 쾌활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라고?

후지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한 손엔 악보집을 쥔 채 성큼성큼 걸어오는 야나기가 정면으로 보였다.

 

.”

 

마침 시간이 빈대서, 이리로 오라고 했지.”

 

그렇게 말하며 쥐고 있던 핸드폰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는 모습이 아주 즐거워보였다.

당황한 키리하라에게 후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바빠서 안 보인 거지, 다른 뜻은 없을 걸. 그러니 직접 물어봐.”

 

그건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도 전에 후지가 벌떡 일어섰다.

언제 챙겼는지 안고 다녔던 오선지 더미가 다시 품에 들려 있었다.

그는 한 손을 들어 키리하라에게 흔들어주고는 야나기에게도 인사했다.

 

안녕 야나기. 키리하라가 너 보고 싶대서 연락했어.”

 

폐를 끼쳤군.”

 

아냐. 그럼 난 가볼게. 다음에 봐.”

 

무엇에 신이 난 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후지가 가볍게 떠나고, 키리하라는 얼떨결에 앉은 채로 야나기를 올려다봤다.

 

아카야.”

 

……안녕하심까.”

 

안 그래도 같이 가려고 했었는데. 일단 일어날까, 연습실로 가자.”

 

손목시계를 들어보이고는, ‘이 시간이면 나머지 셋도 다 있을 거다하고 말하는 게 유키무라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 시간표도 꿰고 있는 모양이었다. 맞다, 시간표. 키리하라는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선배. 저 시간표 알려주세요.”

 

방금 전, 연습할 기분 안 난다고 늘어져 있던 때와 달리 눈매가 치켜 올라가 있었다.

큰 눈을 깜박이며 묻는 키리하라의 모습에 야나기가 물었다.

 

내 것을?”

 

.”

 

그는 곧 제 핸드폰을 꺼내들어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떨떠름해져서, 키리하라는 주섬주섬 짐을 어깨에 메고 일어섰다.

 

전송했으니까, 확인해봐라.”

 

과연 그의 핸드폰엔 야나기로부터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온갖 학교 강의는 물론 개인 레슨, 오케스트라 연습 등의 고정 스케줄도 다 표기된 꼼꼼한 시간표였다.

 

체력 좋으시네요.”

 

연습실 건물로 향하는 야나기의 옆에 서 키리하라가 겨우 꺼낸 말은 이런 것이었다.

야나기는 조용히 웃었다.

 

아직까진 좋지.”

 

입꼬리만 올려 조용히 미소 짓는 모습에 키리하라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함께 걷던 야나기는 갑작스레 멈춰 선 키리하라의 모습에 덩달아 멈춰 섰다.

 

아카야?”

 

반보 앞선 그가 키리하라를 불렀다.

 

아님다.”

 

곧 그는 힘껏 도리질 치며 대꾸했다.

키리하라의 머리카락이 햇볕을 받아 녹색을 띠었다.

야나기는 가만히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녹색 머리카락을 지켜보았다.

 

아카야. 키가 쑥 컸구나.”

 

야나기가 새삼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교 입학 전부터 만났던 야나기에게 있어 키리하라는 머리 하나쯤 작았던 기억이 선명한데, 지금 키리하라는 멀뚱한 표정으로 그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눈대중으로 키리하라를 훑었다.

 

. 확실히 컸군. 적어도 10cm인가.”

 

곧 선배보다 클 겁니다.”

 

성격은 변하질 않아서 전혀 못 느끼겠는데.”

 

아직 스무 살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다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야나기는 웃음기 어린 타박을 건넸다. 장난기 어린 모습에 키리하라가 뒤통수를 북북 긁었다.

 

사람이 한결같아야죠.”

 

라고 너는 말한다. 입만 살았구나.”

 

일단 갈까? 야나기가 멈췄던 걸음을 재개하고, 키리하라도 그를 따라 옆에서 걸었다.

서 있기만 해도 온갖 악기 소리가 들리는 학내.

그들이 지나는 길목 옆에선 모르는 학생들이 모여 서서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성악 전공인가? 아직 낯선 것투성이라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방금 전의 웃음기가 남은 목소리의 야나기가 물었다.

 

강의는 잘 들어가고 있나, 아카야.”

 

…… 일단은.”

 

학기 초라 만만해 보이겠지만, 정신 차리면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 있을 거다. 강의는 꼬박꼬박 나가도록 해.”

 

노력해보겠슴다.”

 

건성으로 대답하던 키리하라가 번뜩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그래. 야나기 렌지는 우수한 성적의 과외 선생님이었다.

애당초 대학생인 야나기와 입학 직후인 키리하라가 서로를 친근하게 알고 있던 건 과외 선생과 제자로서의 연 덕택이었다.

 

야나기 선배 공부 잘 하셨죠.”

 

지금도 잘 하고 있다만.”

 

선배 저 좀 도와주세요.”

 

건물 앞에 당도한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야나기는 힐난하는 눈초리로 키라하라를 쳐다봤다.

 

테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기 초에 벌써부터 뭘 도와달라는 거지.”

 

선배가 말했던 것처럼 곧 테스트도 있을 거고, 과제도 몰아치겠죠.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선배 제안으로 4중주 모임도 시작했는데,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정도는 도와달라고 안 해도 봐줄 수 있다.”

 

선선히 대답하는 말에 키리하라가 낼름 말꼬리를 잡았다.

 

시간표 보니까 일정이 빽빽하던데요.”

 

확실히 그렇다만, 그래도 널 봐줄 틈은 만들 수 있다.”

 

야나기는, 그러니 강의나 확실히 출석하라며 덧붙이고는 이만 가자고 키리하라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제법 단단해진 어깨가 흰 손에 들어왔다.

 

그럼 자주 좀 보러 와요.”

 

그래.”

 

야나기의 부드러운 긍정에 키리하라의 입가가 씰룩였다.

그러나 키리하라의 표정을 알 리 없는 야나기는 앞만 본 채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도 연습실 좀 오고.”

 

한 번도 안 왔다며? 유키무라가 아주 즐겁게 웃던데.’ 야나기가 하는 말에 키리하라는 절로 표정이 굳었다. 그의 표정이 얼든가 말든가 두 사람은 이미 연습실 복도에 들어와 있었다. 앙상블 연습을 위해 있는 큰 연습실 한 곳의 문 앞에 선 야나기가 단번에 문을 열었다.

 

, 아니, 선배 잠깐.”

 

연습실 안은 과연, ‘마스터야나기 렌지의 말답게 키리하라를 제외한 전원이 이미 모여 있었다. 피아노 옆에 서서 다른 이와 대화하던 유키무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키리하라가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유키무라는 놀란 기색도 없이 웃어 보였다.

습관과 같은 의미 없는 웃음이었다.

 

우리 막내. 오랜만에 보네?”

 

죄송함다…….”

 

시름시름 대답하는 키리하라를 밀어 넣으며, 야나기는 가차 없이 문을 닫았다.

 

 

 

 

 

# 2,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