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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長篇]/Dear my Darling

[DMD] 제 7장 [카노스x엘뤼엔] 웃어주세요 上

Smile, smile please !                     

Written by Rine in Rine's Side

 

 

 

 

 

신계에서 제일 유명한 신(말 그대로 유명했다), 신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신(그를 말릴 자 세 손가락에 꼽히니), 검은 머리의 마족의 아버지 카노스는 며칠간의 마계 나들이를 접고 신계로 돌아와 있었다.

 

유쾌하게 길거리를 활보하는 그를 먼발치서라도 본 신계의 여타 정상적이고 평범한 이들은 행여나 그가 자신을 부를까 왔던 길을 전부 뒤돌아 가기 바빴다.

 

한 편 간만에 마왕 녀석을 골려주고 유쾌 지수가 업 되어 있던 카노스는 그런 다른 신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고 기겁을 하는 드래곤의 신의 어깨를 다정히 토닥여주고 그가 도착한 곳은 카노스 자신과 함께, 멀리 해야 할 신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는 뉴페이스(그러나 그의 존재는 막강했다) 엘뤼엔의 신전이었다.

 

발걸음도 가볍게 들어가려던 카노스는 가벼운 동작으로 자신을 제지하는 천사에 의해 의문부호를 머리에 띄웠다.

 

? , 엘뤼엔이 출입금지령 내렸어?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이겨.”

 

엘뤼엔 님께선 지금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전혀 아니라고 받아치는 천사의 말에 카노스는 생각에 빠졌다.

 

신전귀신이 밖에 나가다니 별 일이네, 아항- 엘 만나러 갔구나.”

 

엘뤼엔의 행동반경을 가늠해보던 카노스는 빠르게 그가 향했을 곳을 추측해냈다.

 

그런 그를 보는 천사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엘뤼엔이 혹시라도 그가 오면 명계라던가 아무 데나 말해주라고 했는데 희희낙락해 중얼거리는 그는 벌써 이미 판단을 끝내버렸다.

여기서 어설피 귀띔해줘 봐야 본전도 못 찾을게 뻔했다. 엘뤼엔보단 카노스가 몇 수 위였다. 그래도 일단 운을 띄워보려 천사가 입을 열었다.

 

카노스 님, 사실은…….”

 

 

반짝

 

 

마신의 우월한 연륜으로 자신의 서류를 모두 처리…… 아니, 무시해 시간이 남아도는 카노스는 가련한 천사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곧바로 이동해버렸다.

 

 

 

 

엘뤼엔 부자 덕에 수시로 다녀가게 되는 정령계는 여전히 세월이 지나도 변화 없는 모습으로 그를 맞았다. 자신이 나타나자 여기저기로 숨은 하급 정령들에게 샤방하게 웃어준 카노스는 휑한 에바스 에덴을 둘러보았다.

 

정령계에서 그들이 잡담을 나눌 만한 장소는 기껏해야 에바스 에덴과 엘퀴네스의 영역이었으니, 모 아니면 도, 여기 아니면 저기였다.

 

놀래켜줘야지~ 라는 유치한 생각이 들자마자 카노스는 기척을 지워버렸다. 눈을 말똥히 뜨고 바라보는 하급 정령들에겐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해보이곤.

기척을 지워봐야 정령계의 주인인 정령왕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바로 알아챌 만한 얇은 장막이지만, 카노스는 엘이 자신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경쾌하게 물의 영역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인 건 옆모습의 엘과 그의 친구였다. 둘을 발견하고 카노스는 머리를 어딘가에 박은 듯한 느낌과 함께 걸음을 멈췄다.

 

무언가 쩔쩔 매며 손을 내젓는 엘.

그리고 주변을 한순간에 녹여 버리고 있는 그의 친구를 보고서, 카노스는 넋이 나갔다.

마족의 창조주이자, 마신의 정점으로서 태어나 살아온 셀 수 없는 세월 중에서도 이렇게 반짝거리는 것을 본 적은, 이렇게 넋을 놓은 적은 없다.

 

반짝거리는 백금발이 미려하게 흘러내리고, 은은한 정령계의 빛 아래에서 더욱 반짝이는 부드러움을 물씬 풍기는, 그런 미소에.

 

얼빠진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던 카노스를 발견한 건 홍당무가 된 얼굴로 엘뤼엔에게 열심히 설명인지 변명인지를 하던 엘이었다.

 

? 카노스!”

 

그와는 오랜만에 봐서인지 엘이 반갑게 그를 불렀다. 엘이 쳐다보는 곳을 따라 고개를 돌린 엘뤼엔의 얼굴에서는, 카노스에게는 야속하게도 그 웃음이, 주위를 모두 녹여버리는 듯한 달콤함이 사라져 있었다.

 

뭐야.”

 

왔군, 결국.

 

대충 지시해놓았던 일을 천사는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듯 했다.

별달리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당연하게 쳐들어온 그를 보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런 엘뤼엔과 엘에게 카노스는 조금 경직된 미소를 지어보였다.

 

냐하하 엘군, 오랜만. 그 새 더 예뻐졌네?”

 

뭐예요, 카노스! 그런 말 하면 화 낼 거라니까요?!”

 

어이쿠. 장난, 장난. 역시나 엘뤼엔 여기 와 있었네?”

 

평소보다는 부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며 카노스는 이유 모를 갑작스런 심장의 쿵쾅 댐에 당황하고 있었다.

 

평소의 엘뤼엔과 있으면 느껴지는 재밌다거나, 즐거움의 심장박동과는 달랐다. 뭐지? 엘뤼엔의 미소에 충격을 받은 건가? 서서히 진정되어 가는 심장이 아쉬워했다. 그 기분 좋은 울림을 또 느끼고 싶어 심장이 애타게 바라고 있었다.

 

뭐야, 너 왜 그러냐?”

 

계속 멍 때리며 있는 카노스가 이상한 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멍청한 상태의 그에게 엘뤼엔은 흔하지 않은 관심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평상시라면 능글맞게 둘러댈 카노스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마냥 서 있다, 그들 부자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멍하니 허공을 보는 카노스를 엘은 조심스럽게 찔렀다.

 

저어, 카노스? 카노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카노스는 잠시간 넋을 놓다 엘뤼엔을 휙 바라봤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란 엘과는 달리 엘뤼엔은 그가 빤히 보는 게 기분 나쁘다는 듯(엘을 제외하고 누구나 기분 나빠하겠지만)

마주 시선을 맞댔다.

 

…….”

 

엘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물러서지 않는 눈싸움은 갑작스레 언령으로 사라져버린 카노스로 인해 끝났다.

 

 

 

 

엘이 괴소문을 듣게 된 것은 일이 시작되고 꽤 지나서였다. 아크아돈에 내려와 이사나를 열심히 돌보느라(?) 정령계엔 갈 일도 없고, 가지도 않아 소문에 어두웠던 엘이 알 정도면 이미 사태는 심각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정보의 전달자는 모처럼 만난 트로웰이었다.

 

에엑? 카노스가?”

 

그렇다니까, 이미 신계에선 소문이 자자해. 확실히 내가 예지로 본 카노스는 드디어 미쳤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어.”

 

뭐랄까, 미쳤다는 말을 카노스에게 붙이니까 너무 위화감이 없지만…….”

 

엘의 난감한 말에 트로웰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 카노스야 제정신일 때가 거의 없는 신이니까그래서 요즘 신계의 모든 신들이 자기 신전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는데.”

 

카노스 눈에 띌까봐?”

 

그렇지 뭐, 엘에게 답해주며 트로웰은 잠시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드디어 맛이 갔다고 소문이 자자한 카노스가 미친 장난에 표적으로 삼은 이. 현재 신계에서 가장 동정표를 받고 있는 신. 그의 친구(트로웰 쪽에서만 일지도)에 대한 것을.

 

결국 트로웰은 걱정스럽게, 그러나 재밌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

 

이번 장난의 대상이 엘뤼엔이라나 봐.”

 

 

 

 

엘뤼엔님, 이번에는 꽃이 어마어마하게…….”

 

태워 버려.”

 

카드는 어떻게…….”

 

 

파지지직

 

 

계속되는 천사들의 곤란한 말에 백금발 미남, 엘뤼엔의 눈엔 살기가, 주변엔 신력이 넘실거렸다.

 

천사들이 입을 못 열고 옆에서 대기하고, 5초간 짜증을 갈무리하던 엘뤼엔은 결국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구겨버렸다.

 

싸늘하게, 아찔한 미소를 지어 보인 엘뤼엔은 안절부절 하는 천사들을 내버려둔 채 다짜고짜 이 미친 짓을 하는 이의 거처로 이동했다.

 

눈앞이 살짝 흐릿한가 싶더니 금방 다른 환경이 보인다. 주인 성격을 그대로 빼닮은 신전내부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엘뤼엔은 자신의 갑작스런 방문(기습)으로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채 무언가를 하고 있는 청년의 등을 후려쳤다.

 

우아아악!”

 

살기를 느낀 검은 머리가 피하려 했을 땐 이미 늦었다. 장렬하게 맞은 카노스는 앞으로 철푸덕 쓰러졌다. 카노스가 신나게 포장하고 있던 상자를 지그시 밟으며 엘뤼엔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죽고 싶지?”

 

오늘따라 더 신나 보이는 친우(카노스 일방적으로)의 모습에 책상 위 쌓인 서류는 보지도 않고 몇 주째 하던 이상한 짓을 하던 카노스는 반갑게 웃었다.

 

, 엘뤼엔. 아침에 보낸 꽃은 잘 받았어?”

 

상황파악 못하고 생글생글 웃는 카노스를 엘뤼엔은 지그시 응시했다.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을 쳐다보듯이.

 

 

 

 

엘뤼엔이 아무 말도 안 하자 카노스는 의문부호를 띄우다가 곧 엘뤼엔이 한 질문을(혹은 단정) 떠올리고 낯을 굳혔다.

셀 수도 없이 긴 마신 인생에서 얻은 눈치가 도망가라고, 몸을 피하라고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ㄹ…….”

 

왜인 진 모르겠지만 카노스는 슬금슬금 몸을 뒤로 물리며 엘뤼엔을 부르려 했다. 눈앞에서 넘실거리는 살기등등한 신력에 시도로 그치고 말았지만.

 

엘뤼엔은 신력을 날카롭게 모았다.

마지막 자비라는 듯이.

 

카노스. 네 녀석에게 제정신을 요구한 내가 바보였다.”

 

오로지 카노스의 취향(각 세계에서 끌어모은 잡동사니 외)로 이루어진 신전에서 신계 양대산맥의 전투(알고 보면 일방적인 구타)가 있었다는 말은 신계 모든 신들을 놀라게 했다.